• 겸손한 사람
    • ‘가장 훌륭한 지혜는 친절함과 겸손함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 선인들 중에는 학문과 권세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더욱 겸손하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 최고의 학자인 퇴계 이황은 학문의 깊이가 심오하였고 겸손과 덕을 겸비한 인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학문을 우러를 때에도 정작 자신은 온전한 도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죽는 날까지 학문 정진에 힘썼습니다.
      혹 자신의 학문에서 잘못된 것을 깨우쳤을 때에는 바로잡기를 서슴지 않았고, 그것을 지적하는 제자가 있으면 더없이 기뻐했습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여러분과 더불어 학문 연구에 최선을 다하였으나 어리석고 게을러서 변변치 못할 뿐이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묘비명을 써두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죽고 난 뒤 후학에게 자신의 묘비명을 맡길 경우 과장과 예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인정받는 위치에 오를수록 더욱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믿음 안에서 영적인 세계를 알아가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겸손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영의 세계는 시작과 끝이란 말이 존재하지 않는 무한한 세계입니다. 따라서 영의 세계를 체험하면 할수록,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깨달아 알면 알수록 자신은 티끌만도 못한 존재라는 고백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자신이 알고 체험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니 생각의 틀, 상식, 이론 등이 깨어지지요.
      이렇게 낮아진 마음이 되면 상대의 티나 허물이 보이지 않으며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나보다 낫게 여기기 때문에 좋은 점은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 배우려 합니다. 또한 그 입술의 말도 겸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 중심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존중하는 말을 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는 지식의 잣대로 판단하여 상대의 말을 무시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경청합니다.
      혹여 상대의 말이 옳지 않다 해도 정확한 분별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할 뿐, 그 자리에서 상대가 그르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분명히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사랑으로 권면하여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사람과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고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 상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생명 다해 달려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는 등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고도 참으로 겸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10을 보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고백에서 우리는 겸비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겸비함을 가진 바울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권능을 주셔서 크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이 받는 ‘의의 면류관’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언 18:12)



    • 2019.06.07  |  시사뉴스 [칼럼]  |  조회수:127
    이전페이지 1 2 3 4 다음페이지
    • 언어선택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