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니고데모와의 대화 (1)
    •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머물던 예수님은 성전을 정결케 하며, 병든 사람을 고치고 이제껏 들어 보지 못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는데, 그중에는 바리새파의 산헤드린 의원인 니고데모라는 유대인 지도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교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에세네파 등으로 나뉘었습니다. 그중 바리새파는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것을 신조로 하고, 죽은 사람의 부활을 믿었으며 백성 사이에 큰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 사두개파는 엄격한 율법주의를 반대하고 부활과 영생, 천사와 영을 부인하던 현실주의적 교파였습니다. 그리고 에세네파는 하나님과의 보다 완전한 일치를 추구하고 재산을 공유하며 세상과 단절된 채 금욕생활을 했습니다.

      1.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3:1~2)
      니고데모가 속한 산헤드린 공회는 대제사장을 포함한 71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법을 제정하고 재판하는 기관으로서 오늘날의 국회와 법원의 기능까지 담당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지방 자치 정부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상류 지도층 인사로서 영향력 있는 사람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여느 사람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자신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그분의 가르침에서 알 수 없는 권세를 느꼈지요. 또 병을 치료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 것은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니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인정하였습니다. 하루는 밤중에 그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당시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같은 지도층 사람들은 예수님을 ‘귀신 들렸다. 바알세불 지폈다’ 하며 판단 정죄했습니다. 많은 백성이 예수님을 따르므로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그들과 달랐습니다. 늘 진리에 갈급했지요. 철저히 율법을 지켰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갈급함을 해결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비록 사람의 시선을 피해 밤중에 찾아왔지만 그는 예수님을 선한 분으로 인정하며 더 알기를 원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들었다 해도 반응이 다릅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권능을 보고 함께 기뻐하며 마음을 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들으려 하지 않으며 부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된 것이 없는지 염탐하며 훼방거리를 찾는 악한 사람도 있지요. 마음에 있는 선악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자신도 존경받는 지도층 인사이지만 예수님을 랍비라 높이며 ‘하나님께로서 온 분’이라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존경의 의미를 담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2. 거듭남의 영적 의미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3:3~4)
      잠잠히 니고데모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그에게 “네 말이 옳다”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씀을 합니다.
      빌립의 전도로 찾아온 나다나엘을 만나기도 전에 그의 중심을 아신 예수님은 니고데모 또한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 아들임을 믿고 그러한 고백을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선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타내는 표적을 보고 하나님의 사람이라 생각했지요. 그런 생각이 영적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말이 옳다, 틀리다’ 하지 않고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영적 사실을 깨우쳐 주십니다.
      과연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평소 이웃에게 손가락질 받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착실한 사람으로 변했다면 그를 가리켜 ‘새사람 됐다’, ‘새로 태어났다’ 표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한 것은 그러한 육적 거듭남이 아니라 영적 거듭남입니다.
      영적 거듭남이란 비진리 가운데 살던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변화하여 진리 안에 사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말 잘하던 사람이 진실한 사람으로, 혈기와 미움이 많은 사람이 온유하며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간혹 불치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치료되면 그 은혜에 감사하여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금방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행하여 영적으로 거듭나며,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두 번 태어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이해되지 않으니 되물을 수밖에 없었지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태아는 열 달의 성장 기간을 거쳐 세상에 태어납니다. 한번 태어난 사람이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수 없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율법에 정통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어도 영적 말씀을 깨닫지 못하니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사람이 거듭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이번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니 니고데모는 더욱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물은 갈증을 해소하며 오장육부를 비롯한 모든 기관이 활동하는 데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더러움을 씻어 줍니다. 따라서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악을 씻어낸다는 의미입니다. 눈앞에 물이 있어도 마시지 않으면 갈증을 해소할 수 없고 씻지 않으면 깨끗해질 수 없듯이 영생수인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대로 미움, 시기, 질투, 판단, 정죄 등 비진리의 마음을 버려 나가면 사람의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더불어 성경에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사랑하고 섬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등 진리의 사람으로 나오는 것이 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류의 조상인 아담은 영, 혼, 육을 지닌 사람이었으나(살전 5:23)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는 불순종의 죄를 지어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 사람은 혼과 육으로 지은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전 3:18).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은 영이 살아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됩니다.
      이처럼 성령은 성도들의 마음에 내주하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케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은혜와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안다 해도 성령의 도움이 없으면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없습니다. 씨를 심었으면 열매를 따기까지 가꾸고 수고해야 하는 것처럼 성령을 받았으면 성령의 도움으로 영이 자라게 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여 진리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며, 그럴 때 비로소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말씀만 있고 성령이 없으면 세상이나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없으며, 성령이 오셔도 말씀이 없으면 우리를 깨끗게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과 성령이 연합하여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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