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기 강해 (16)

    욥의 오해 [욥 7:12-21]
    2022.06.05 | 이수진 목사
    • 오늘은 하나님을 향한 욥의 오해와 원망, 탄식과 조롱을 참으시며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욥의 오해

      “내가 바다니이까 용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래시고 이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욥 7:12~14)
      욥은 바다의 웅장함을 알고 있었으며, 용을 위대한 동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다나 용처럼 대단하지도 않고 하찮은 자신을 왜 하나님은 이처럼 상관하며 괴롭게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가운데 자신을 치셨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욥은 잠이나 푹 잘 수 있다면 고통을 잠시나마 잊어버릴 텐데 잠이 오지 않아 잘 수도 없었습니다. 어쩌다 잠이 드는가 싶으면 악몽으로 인해 깜짝깜짝 놀라 깨어나곤 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잠도 재워 주시지 않고, 오히려 꿈으로 놀라게 하시며, 이상으로 두렵게 하신다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사람이라면, 어려움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시험 환난이 오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은 이유를 깨달아 회개하고 통회자복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해결자가 되실 수 있도록 모든 짐과 염려를 맡겨 드려야 합니다(시 55:22, 벧전 5:7)
      마태복음 7장에 우리가 구하면 주시겠다 약속하셨고, 찾으면 찾게 해 주실 것이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질병이 틈타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부요한 자가 되고, 성공할 수 있는지 성경 곳곳에 자세히 알려 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것만을 약속해 주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욥은 불면증으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상황인데, 그나마 잠시라도 잠이 들면 꿈마저도 괴롭고 편치 않았습니다.
      꿈은 영적인 꿈과 혼적인 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적인 꿈은 내 영이 꾸는 꿈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가끔 영적인 꿈을 꿉니다. 비록 아담의 불순종 이후 영이 혼에 갇혀서 활동할 수 없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는 상태이지만, 깊은 마음에서 영이 작동하여 영적인 꿈을 꾸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앞일을 알려 주시거나 성령님께서 알려 주시는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시험 환난이 올 것을 알려 주심으로 미리 대비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여 꿈을 통해 답을 주시기도 하지요((민 12:6, 욜 2:28)
      다음으로 혼적인 꿈은 내 생각 속에 꾸는 꿈입니다. 평소에 ‘미국에 가고 싶다.’ 생각하면 꿈속에서 미국에 갈 수도 있습니다. 만일 어떤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꿈속에서 도둑에게 쫓기거나 나쁜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요. 이런 생각 속의 꿈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대부분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온전히 진리의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너무 꿈에 의존할 필요는 없습니다.


      2. 계속되는 욥의 원망과 탄식

      “이러므로 내 마음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욥 7:15~16)
      욥은 마음 중심에서 죽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숨 막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앙상하게 뼈와 가죽만 남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라고 하나님을 향해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통스럽고 힘들 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셨으니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매달려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질병에 걸렸어도, 사업에 실패해도, 시험이 와도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좇는다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시며 정말로 기뻐할 만한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죽기를 원하는데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지 않으니, “제발 빨리 좀 내 생명을 거둬 주세요.”라고 하소연하고 있지요.
      욥은 하나님을 밝히 알지 못하고 천국 소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며, 전혀 합당치 않는 말로 엄청난 올무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저와 여러분은 생명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하며, 결코 생명을 거둬 달라는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욥 7:17~19)
      욥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크게 여기신다고 했는데 이 말은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너무나 값지고 소중하게 여기시기에 늘 마음에 두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너무나 사랑하시고 크게 여기시기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잠시도 놔두지 않고 분초마다 괴롭힌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항상 불꽃 같은 눈동자로 감찰하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권징’이란 권선징악의 준말로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살피시다가, 만일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못할 때는 시험과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사생자가 아니고 참 아들이기에 죄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빛 가운데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험 환난이 왔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발견하고 통회자복 하는 행함이 선행되어야 하지요.
      욥은 하나님께서 침을 삼킬 만큼의 잠깐 동안도 자기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고통스럽게 하시느냐고 불평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잠시도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간섭하시며 연단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욥은 아직 진리를 잘 알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만 알았을 뿐 만나고 체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이 진리에 어긋난 많은 모습들을 깨달아 회개하고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연단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욥 7:2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시 11:5, 시 139:3, 잠 16:2, 잠 21:12, 히 4:12). 이렇게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정확히 아시는 하나님 앞에 인생이 어찌 변명하며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욥은 자신이 범죄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무슨 해가 되겠느냐고 말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범죄하면 하나님께서는 많은 해를 받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버지와 자녀”라는 관계가 허물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슴 아파하십니다. 또 죄를 지은 그 자녀가 멸망의 길 곧 지옥으로 가기 때문에 너무나 마음 아파하십니다. 범죄한 자녀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없고,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없기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 것이지요.
      또 우리가 죄를 지으면 주님이 흘리신 보혈이 헛되이 돌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께 해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마귀의 뜻대로 되어 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받으십니다. 마귀의 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원수 마귀의 뜻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효자, 효녀가 되어야겠습니다.

      욥은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 왜 굳이 나 같은 사람을 표적물로 삼으셔서 스스로 힘들어 하십니까” 이런 뜻이지요. 하나님을 원망하고 탄식하고 저주하다 못해 이제 하나님을 비웃는 말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욥의 원망과 조롱의 말까지 들으면서도 짐스러워하지 않으셨고 조금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미워해서 징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해서 허락하신 연단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욥이 아름다운 의인으로 변화될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을 기쁨으로 참고 이기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장차 성결되어 참된 아들, 딸로 나올 것을 바라보시며 하루하루 인내와 기쁨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 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욥 7:21)
      욥은 처음에는 하나님께 “나를 그냥 내버려두세요. 이제 그만 생명을 거둬 주세요.”라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용서해 주시고 치료해 달라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아무 응답이 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욥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돌이킬 때 용서해 주시는 분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지난 허물을 기억지도 아니하시지요. 중요한 것은 먼저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허물과 죄가 많이 있었는데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어찌하여 죄를 사하여 주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적당히 눈감아 주지 않으십니까?”라고 엉뚱한 말만 하고 있으니 어떻게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겠습니까?
      욥은 시험이 오기 전에는 하나님이 두려워서 번제도 드렸었는데 악창 가운데 고통을 받다 보니 이제는 두려움도 없어졌습니다. 음부에 내려가면 그만이니 빨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탄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는 성도님들 중에도 정작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으면 욥처럼 하나님을 오해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는 체험의 신앙이 매우 중요합니다(잠 8:17), 가난한 심령이 될 때라야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이 승해지고, 또 겸손히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간절히 찾아 늘 응답의 하나님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6-08 오후 3:17:42 Posted
      2022-06-10 오후 2:07:1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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