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기 강해 (18)

    [욥 8:12-22, 9:1-4]
    2022.06.19 | 이수진 목사
    •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욥을 향한 빌닷의 권면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1. 사곡한 자의 결말

      “이런 것은 푸르러도… 다른 풀보다 일찍이 마르느니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사곡한 자의 소망은 없어지리니”(욥 8:12~13)
      왕골이나 갈대는 아무리 푸르고 싱싱해도 물을 떠나면 이내 시들고 말듯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이와 같다는 말입니다. 즉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까이할 때는 축복을 누렸지만, 지금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잊어버렸기 때문에 금세 쇠락하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불평, 불만, 탄식, 저주와 원망은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물이 없으면 왕골이나 갈대가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내 안에 악이 없으면 악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빌닷은 욥에게 직접적으로 “네가 악하니까 그처럼 악한 말이 나오는 것이고, 하루아침에 망하게 된 것이지”라고 찌르는 것이 아니라, 비유를 통하여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곡’이란 ‘요사스럽고 편곡한 것’ 즉 성품이나 행동이 올바르지 못한 모양을 가리킵니다. 결국 사곡한 사람은 죄를 짓고, 죄의 삯은 사망이며 영원한 지옥이니 그 소망이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빌닷은 욥에게 “넌 사곡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대신, 욥이 악한 말과 행함을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사곡한 자의 결말처럼 소망이 끊어질 것임을 깨우쳐 주는 것이지요.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결코 사곡하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과 생각은 물론 행동이나 성품, 말도 주의 교양으로 아름답게 다듬어 나가야 합니다.

      “그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그 집을 의지할지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잡아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욥 8:14~15)
      거미줄은 너무 약해서 사람이 손가락으로 가볍게 대기만 해도 끊어지고 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곡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한다 했지만, 실상은 자녀와 재산과 지식, 명예 등 믿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마치 거미줄이 끊어지듯이 순간에 사라지고 결국 빈손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삶이나, 하나님의 뜻대로 쌓지 않는 모든 것은 모래성같이 순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전 1:2~3). 그렇지 않다 해도 정작 자신이 구원받지 못해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이 땅에 쌓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빌닷은 욥에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건강도, 부도, 명예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 배경, 경험 등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시 20:7, 146:5). 아브라함이나 요셉, 모세, 다윗, 사도 바울 등 믿음의 선진들처럼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이 땅에서는 물론 영원한 천국에서 세세토록 무너지지 않는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 말씀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을 멈추지 말아야

      “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벋어가며 그 뿌리가 돌무더기에 서리어서…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 하리니”(욥 8:16~18)
      식물은 햇빛을 받으면 광합성 작용으로 양분을 만들며 푸르게 자라납니다. 어떤 나무는 바위틈에도 얼기설기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가지가 무성하게 뻗어서 멋진 거목으로 우뚝 서는 것도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아무리 크고 굵은 나무로 잘 성장했다 해도 뿌리가 뽑히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당장은 푸르고 싱싱해 보여도 시간이 흐르면 점점 시들어 죽고 말지요. 빌닷은 이러한 식물의 속성을 비유하여 욥을 깨우쳐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빛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또한 빛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지요(요 1:9, 14:6). 식물이 햇빛을 받아 푸르게 자라는 것같이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아갈 때 믿음이 성장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잘 성장한 식물도 어떤 계기로 뿌리가 뽑혀 버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식물이 푸르름을 유지하며 계속 성장하려면 뿌리를 땅속에 단단히 내리고 햇볕을 계속 받아 가야 하지요.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이 성장하여 반석에 선 사람일지라도 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떠나 죄악 가운데 살아간다면 아무 값어치가 없게 됩니다. 사람이 진리에서 떠나면 하나님이 외면하시니 지킴을 받지 못하지요.
      전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다면, 부지런히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믿음이 성장하여 반석에 서야 합니다. 또한 반석에 선 사람은 영을 향하여 가야 하고, 영을 이룬 사람은 온 영을 향해 가야 합니다. 이러한 성장 과정은 어느 선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조금 쉬자’ 하며 멈추다가는 뒤로 미끄러지며 믿음을 잃을 수 있습니다. 만일 교만이 틈타면 즉시 물리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받아들이면 점점 자신도 모르게 사단에 사로잡히게 됩니다(잠 16:18, 고전 10:12). 그 상태로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 안에서 뽑혀져 나가니 결국 뿌리 뽑힌 나무처럼 아무 쓸모없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식물은 뿌리가 뽑히면 말라 죽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얼마나 비극입니까? 따라서 식물이 일광을 받아 푸른빛을 유지해 나가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며 성장을 멈추지 말고 천성을 향해 전진해 가야 하겠습니다.


      3.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길의 희락은 이와 같고 그 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리라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욥 8:19~22)
      욥은 재산이 많고 건강할 때는 희락 속에 살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뽑혀져 버리고 나니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아무리 푸른 식물도 뿌리가 뽑히면 아무 소용 없듯이, 지난날 욥이 누렸던 행복과 부와 명예도 하나님이 외면하시니 순간에 무너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뽑힌 그 자리에 고난, 근심, 슬픔, 원망, 두려움, 탄식이 생겨났지요.
      빌닷은 욥의 상황을 이렇게 비유로 설명한 후에 소망의 말을 들려줍니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욥은 순전하다 인정받은 사람이었는데, 그의 순전함은 온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적인 의미의 순전함은 “깨끗한 마음 안에 영의 열매가 가득 담긴 상태”이지요.
      욥은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온전한 순전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선한 마음으로 온유함을 힘써 행하였기에 순전하다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온전한 순전함을 이루길 원하셨기에 연단을 허락하셨지요. 그렇게 연단하시며 변화될 것을 믿어 주시며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는 붙들어 주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는 악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초조와 불안 속에 걱정할 일이 많습니까? 당장은 형통하고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무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더 큰 문제는 그 영혼이 결국은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힘써 일궈 왔던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진리 가운데 살아 영적으로 순전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니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설령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해도 도리어 그를 미워하는 그 사람이 부끄러움을 입게 됩니다. 결국 악인의 장막은 없어져 버리고 사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을 돕고 축복하면 자신도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사랑하셔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창 12:3) 말씀하셨고 그대로 이루어졌지요.
      모세 선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며, 온 집에 충성된 사람이라 인정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세를 비방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여기며 엄중히 경계하셨습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라 할지라도 모세를 비난할 때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문둥병이 발했습니다.
      고라와 그 일당이 모세를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땅이 갈라져서 고라와 그 일족이 산 채로 음부에 떨어지고 말았지요.
      이처럼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인은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의인을 대적하는 악인은 결국 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닷은 욥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면 다시금 그 입술에 웃음과 즐거운 소리로 채워 주실 뿐 아니라,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축복받고 보장받을 것임을 설명합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이켜 순전한 사람이 되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 9:1~2)
      빌닷의 권면이 끝나자 다시 욥의 변론이 시작됩니다. 욥은 일단 친구 빌닷이 하는 말들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욥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라고 덧붙인 것은 막상 이런 어려운 처지에 처해 보니 자기 말이 광풍 같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탄식하는 말들이 계속 나오는 것을 자신도 어쩔 수가 없다는 표현입니다. 즉 머리로는 진리를 알고 있어서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불평하지 말고 감사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는 진리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욥은 이전에는 자신은 의롭다고 주장했었는데(욥 6:29~30), 본문에서는 다시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롭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욥이 다른 인생들과 비교해 볼 때 자신은 정직하게 살았기에 의롭다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감히 의롭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수 없습니다(롬 3:10).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만큼 흠도 점도 없으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참된 의를 이뤄갈 수 있지요(10:9~10). 그러나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아도 정작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022-06-22 오전 11:04:37 Posted
      2022-06-29 오후 4:24:5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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