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내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

    [눅 22:39-44]
    2019.04.14 | 이수진 목사
    • 고난 주간을 맞아 엄청난 희생을 감당하신 주님의 사랑에 더욱 감사하며 주님께서 마신 고난의 잔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 잔을 마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셨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과연 나는 주님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있는가 점검하고 능히 십자가를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우리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나님 섭리 가운데 예정된 대로 순종하여 이루셨습니다. 때가 되어 십자가를 지셔야 할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알려 주셨지요.
      마태복음 20장 18~19절에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삼 일에 살아나리라” 말씀합니다. 이는 많은 고뇌가 담긴 말씀이었지만 제자들은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거나 깨우치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예수님의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리실 영광’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장차 세상의 왕이 되심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만백성을 다스리실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의 나라에서 ‘누가 큰 자가 될 것인가’에 마음을 쏟고 있었지요.
      특히 제자 중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들이 주의 좌우편에 앉을 수 있기를 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없는 제자들을 향해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주의 나라는 이 땅의 나라가 아니라 천국이므로 그곳에서 영화로운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고난의 잔을 함께 마셔야 합니다. 하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이 질문의 의미를 깊이 깨닫지는 못했기에 “할 수 있나이다”라고 담대하게 대답했지요.
      마태복음 26장 31~3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시자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합니다. 또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권능을 베푸시며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 밝은 빛을 비춰 주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질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감람산으로 올라가 한밤 간절하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이것은 죄 없으신 예수님의 핏값으로 모든 영혼을 구원받게 하시려는 생명을 건 절규였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 참혹한 고난을 온전히 감당하고자 능력을 구하시는 기도였지요. 기도를 마친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이끌고 온 유대인들에게 잡히셨고 본격적으로 십자가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밤새 심문을 당하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예수님께서는 군병들이 씌운 가시 면류관과 잔인한 채찍질로 인해 온몸에 피가 낭자하였습니다. 잔인한 고문으로 피로 물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지고 처형 장소인 골고다 언덕을 향해 800미터가 넘는 길을 걸어가셔야 했습니다. 힘겨운 걸음을 옮기시는 예수님 곁에는 부축할 제자들조차 남아 있지 않았지요.

      골고다 언덕 위에 도착하자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손과 발에 못 박기 시작합니다. 백부장의 신호에 따라 군병이 망치를 내려칠 때마다 연약한 살 속으로 못이 박히면서 피를 흘리지만 급소를 피해 박기 때문에 고통만 극심할 뿐 금방 죽지는 않습니다. 이어 십자가를 세우자 못 박힌 손과 발에 몸 전체의 무게가 실리면서 찢기는 고통은 가중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섯 시간을 강렬한 햇볕 아래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습니다. 죽기까지 계속해서 피를 쏟으니 타는 목마름 또한 말로 다 할 수 없으며 사막지대의 독한 벌레들이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들어도 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겨 나눠 가졌고, 벌거벗은 몸으로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군중은 저주하며 희롱하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했지요.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명하여 악한 군중을 멸할 수도 있지만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만 온 인류를 구원할 줄 잘 아셨기에 결코 내려오실 수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죽기까지 사랑의 간구만을 올리셨지요. 이렇게 많은 고통을 당하며 온몸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신 후에 십자가의 고난을 마치셨습니다.


      3.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때 예수님의 마음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은 탄식과 원망이 아닌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섭리가 이뤄지기에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예수님과 성령님을 낳으시고 인간 경작의 계획을 서로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인간 경작이 시작되어 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것을 알고 계셨지요.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신 대로 범죄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은 죗값으로 사망을 당해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의 삯인 사망을 대신 감당해 주심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육체로 행한 죄를 사하기 위해 손과 발에 못 박혀야 했고, 생각으로 범죄한 것을 위해 가시관을 쓰셔야 했습니다. 또한 질병과 연약함을 감당하기 위해 채찍에 맞아야 했고, 저주를 대속하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지요.

      요한복음 12장 27절에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의 고난은 피하고 싶을 만큼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으니 기꺼이 그 고통을 감당하시겠다는 의미이지요.
      또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소리치는 군중과 채찍으로 때리고 손발에 못 박는 군병들을 보실 때도 오직 사랑과 긍휼만이 가득했습니다. 타락하고 범죄하며 악으로 나오는 무리들이라 할지라도 구원의 길로 나올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기에 예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면서도, 십자가에 달려 군중을 바라보시면서도 예수님의 마음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스쳐갑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 자라셨던 기억과 마지막 3년 동안 사랑을 나누셨던 제자들, 예수님을 섬겼던 선한 여인들, 그리고 배신한 제자들도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 영혼들을 향한 애통으로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이 땅의 영혼들을 생각하면 불쌍하고 애처롭게 여기다가도 한편으로는 보혜사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에 위로가 되셨습니다. 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고난을 이기고 승리해 천국에 올 것을 생각함으로 위로를 받으셨지요. 무수한 영혼들이 구원에 이르고 많은 영혼이 성결되어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올 것을 생각하면서 십자가의 고난을 이길 힘이 되셨던 것입니다.


      4. 오늘도 동일하게 “나의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물으시는 주님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성과 권능을 가졌지만 인성도 가지심으로 피곤하고 배고픈 것도 느끼며 슬프고 아픈 것도 다 느끼셨지요. 많은 사람이 자기 유익을 좇아 배신하여 떠날 때 심히 슬프고 상하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힐 때도 예수님이라고 해서 덜 아픈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를 대신해 죄인의 몸이 되어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십자가의 외로움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러나 오직 하나님과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고통을 감당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주님의 잔을 마실 수 있으신지요? 제자들은 능히 마실 수 있다고 고백했지만 그 당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앞두고 누가 크냐 다투었던 철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죽기까지 같이 하겠다고 고백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두려워 숨었으며, 주를 아는가 물었을 때 세 번이나 부인하던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 후 성령 받고 변화된 제자들은 능히 주님의 잔을 마실 수 있었지요.
      로마서 8장 17~18절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하신 대로 큰 소망 가운데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거나 칼에 베이고, 펄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지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과 찌끼같이 멸시받을지라도, 관제와 같이 형체도 없이 희생하고 헌신하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만 있다면 크게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잔을 마실 수 있는가 돌아봐야겠습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을 수 있는가? 부귀영화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는가? 하나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해 생명이라도 줄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주여, 내가 그러합니다. 주의 잔을 마시는 삶을 살아가나이다.” 이처럼 답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어 마음의 소원마다 응답하심으로 마음껏 영광 돌리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사랑을 받았다면 날이 갈수록 기쁨과 감사가 더욱 새롭고 깊어져야 합니다. 죄인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피조물로부터 온갖 수난을 당하면서도 죽기까지 사랑만 주신 주님을 항상 기억하며 감사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주님의 잔을 마시며 또한 주님의 영광에도 동참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04-15 오후 10:55:24 Posted
      2019-04-25 오후 10:22:5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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