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기 강해 (7)

    영의 분별과 영적 교만 [욥 4:12-21]
    2022.03.27 | 이수진 목사
    • 오늘은 욥의 친구 엘리바스의 영적 체험을 살펴보면서 영의 분별을 하는 방법과 영적인 교만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는 만큼 범사가 잘되며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영적인 분별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한다 해도 정작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영혼이 잘되지 못하고, 영적인 분별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영적으로 교만해지게 되지요. 말씀을 통하여 영혼이 잘되며 영적 분별력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1. 엘리바스의 영적 체험

      깊은 밤중에 엘리바스는 영적인 체험을 했는데, 이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이 번거로웠습니다. 그는 아직 하나님을 밝히 아는 상태는 아니었고, 또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도 없는 상태에서 영적인 체험을 하니 두렵고 떨렸지요(욥4:12~14). 어떤 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니 몸에서 털이 쭈뼛쭈뼛 솟기까지 했고, 어떤 영이 와서 섰는데 그것이 사단의 영인지 하나님이 보내신 영인지 분별할 수가 없었습니다(욥 4:15~16).
      이때 엘리바스의 귀에 어떤 음성이 들려왔는데,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욥 4:17) 했습니다. 엘리바스는 마치 하나님께서 음성을 주신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영 분별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인생이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 없고 더 성결될 수 없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며, 죄를 버리고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의로워지고 성결되어 갑니다. 사람이 아무리 선하다 해도 하나님의 선에 닿을 수는 없으니, 엘리바스가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의롭고 성결될 수 없다고 한 여기까지의 말은 진리이지요.
      그런데 사단이 미혹할 때는 진리와 비진리를 교묘하게 섞어서 상대가 분별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분별하는 기준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이어야 합니다.


      2. 영을 분별하는 방법

      영 분별이란 신령한 것과 육적인 것, 성령의 음성과 육신의 생각, 선과 악, 참과 거짓, 의와 불의 등을 하나님 뜻에 따라 분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영을 분별하려면 하나님 뜻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진리의 이론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복종해야 합니다(고후 10:5).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때 하나님 뜻과 영계의 법칙을 알고 영 분별의 은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영 분별의 은사를 받으면 사람에게 속지 않습니다. 흔히 사람은 외모를 보고 “선해 보인다” 또는 “악해 보인다”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므로 상대가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알려 주실 수 있습니다. 마음에 깨우침을 주시기도 하고, 영안을 열어 분별하게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통해,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쉽게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6)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진리의 영에 속한 사람이요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받지 않으면 미혹의 영에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만일 영의 사람 되기를 소망한다 하면서 비진리의 말을 즐겨 듣고 함께 말하고 있다면 이런 사람은 영 분별의 능력이 없음은 물론 진리에 속한 사람이라 할 수도 없지요. 판단 정죄하는 말, 수군거리며 험담하는 말, 서운해하며 믿음 없는 말, 부정적인 말 듣기를 좋아하고 있으니 예배하고 기도하여도 변화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 안에 진리가 없고 지식으로만 담아두니 영 분별의 능력이 없는 것이지요.


      3. 하나님께서 믿으시는 종과 믿지 않으시는 종

      엘리바스가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욥 4:18)라고 한 말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으로 불러 연단하여 쓰셨습니다. 모세, 엘리야, 사도 바울 등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운 종은 다 믿으셨지요. 예지 예정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미리 다 아시고 그 그릇됨에 따라 종을 믿고 뽑아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에 믿지 않으셨지요(요 6:64). 이처럼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종이 있는가 하면, 예지하시고 섭리 가운데 믿고 세우시는 종이 있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오해하여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했는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데 친히 부리시는 사자 곧 천군 천사들이 미련하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이 사자를 세우셨으면 그 사자를 미련하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말씀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미련한 사람을 쓰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지혜 있는 척하고 교만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선한 사람을 택하여 쓰신다는 의미이지요.
      성경을 보면 요셉, 다니엘, 사도 바울 등 하나님께서 택하여 쓰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똑하고 지혜로웠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없었고, 아직 영적 분별을 할 만한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그만 영적인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성도들 가운데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 해도, 그것이 100%가 되기까지는 성령의 음성인지 아닌지 스스로 분별하는 훈련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아직 확실히 분별하지 못할 때는 함부로 성령의 역사라고 단정해서 말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잘못 인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마음먹은 대로 실행하지 못할 때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라는 말씀을 잘못 인용하여 변명하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경우가 있지요.
      또 습관적으로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셨다” 혹은 “하나님께서 막으셨다”라고 말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입니다(출 20:7, 레 19:12).
      만일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자기 생각을 성령의 역사라고 말한다면, 이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도 거짓말한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4. 엘리바스의 교만

      엘리바스는 욥을 비유하여 말하기를,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 눌려 죽을 사람이며, 조석 사이에 멸한 사람이라 합니다(욥 4:19~20). 동방의 부자였던 욥이 하루아침에 다 망하고 빈털터리가 된 구차한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어날 기력도 없이 완전히 망한 욥을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 것입니다.
      욥기 4장 21절에, 장막 줄을 뽑아 버린다는 것은 아예 근거까지도 없애 버린다는 뜻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다시 회복할 기미가 없고 아무 소망도 없는 상태라고 말하며, 그러한 자들이 죽을 때는 지혜도 없다고 비꼬는 것입니다.
      이러한 엘리바스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당시에 바리새인이나 율법사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지만 막상 자신들은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아는 지식으로 예수님에 대해 판단 정죄하였지요.
      사람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의 옳고 그름을 말할 때, 내 생각에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말씀에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설령 상대가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명백히 위배된 모습이라 해도, 이를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 모습인 것입니다(약 4:12).
      욥은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으로서 아직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고난을 호소하고 있는데, 엘리바스는 욥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며 비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교만해져서 이상 중에 하나님 말씀을 들은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5. 육적인 교만과 영적인 교만

      육적인 교만은 육적인 조건에서 자기가 상대보다 더 낫다고 여기는 분야를 드러내어 자랑하기 원하며 우쭐하여 남을 무시하는 등 겉으로 쉽게 드러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진리를 배우면 육적인 교만은 비교적 쉽게 발견하여 버릴 수 있지요.
      이에 비해 영적인 교만은 발견하여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로 진리를 머리로만 알고 마음에 이루지 못했으면서 자신이 이룬 줄로 착각할 때 영적으로 교만해집니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이 높아지면 자신의 믿음도 그만큼 성장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또 자신의 믿음은 좋다 생각하니 다른 사람을 볼 때 쉽게 분별하며 가르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나름대로 믿음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자부심이 있으므로 남의 권면이나 책망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신을 점검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지요.
      또한 성령의 음성을 듣거나 영안이 열리는 등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한 것, 혹은 영적인 말씀을 많이 아는 것, 사명 감당을 오래 하여 그 분야에 경륜과 능력이 쌓인 것 등으로 인해 ‘내가 더 잘 안다’ 하며 마음이 높아져 버리는 것도 영적인 교만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육적인 교만은 물론 영적인 교만의 모습이 없는지 점검하며, 진정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상태에서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쌓아 가면 영적인 교만까지 더해져서 스스로 재판장이 되어 많은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영으로 무장하여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영으로 분별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22-03-30 오후 7:22:31 Posted
      2022-03-31 오후 4:36:0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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