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복(3)

    [마5:1-12]
    2002.02.10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오늘은 팔복에 대한 말씀 중 세 번째인 온유한 자에게 임하는 축복에 대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영적인 온유는 부드럽고 온화한 가운데 덕이 있는 것

      마태복음 5:5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했습니다. 사전에는 온유에 대해 '인품이 온화하고 순함, 부드럽고 유순함,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듦'이라 풀이하고 있지요.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도 내성적이거나 소심한 성품이라서, 혹은 좀 지혜가 없고 바보스러워서 성낼 줄 모르는 사람을 온유하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적인 온유함은 이런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에 겸하여 덕(德)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무더운 여름 햇볕 가운데 아름드리 큰 나무가 많은 사람들에게 쉴 만한 그늘을 제공하듯이,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깃들여 쉴 수 있는 마음입니다.
      또한 솜털같이 부드럽고 포근한 마음을 말합니다. 단단한 쇠에다가 돌을 던진다면 쇳소리가 나고, 유리에 돌을 던지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어집니다. 이런 것처럼 교만과 자기 중심적인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상황이 되면 쇳소리처럼 요란하고 거친 반응이 나오지요.
      그러나 솜뭉치에는 아무리 돌을 던지고 막대기로 찌른다 해도 소리가 나지 않으며, 그저 폭 감싸 버립니다. 온유한 사람은 이러한 솜털 같은 마음을 이루므로 아무와도 걸림이 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할 수 있지요.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는 사람도 능히 품어줄 수 있으며 매사에 모든 것을 악으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감싸 주고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해 버리며 겸손한 마음으로 섬겨줍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이 불편함을 주지도 않으며 아무리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발하는 사람이라 해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그가 변화될 것을 기다려 줍니다. 상대가 더 잘할 수 있는 길을 알아서 그러한 길로 이끌어 주고 도와주지요.
      또한 입술의 말도 요란하게 떠들고 다투며 들레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잔잔하며 많은 말들을 허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진리의 말을 합니다. 자신을 미워하고 욕하는 사람도 이해해 버리므로 감정을 품거나 상처받지 않으며 또 지적을 받을 때 불편한 마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의 마음을 밭에 비유했는데 마치 거친 밭에서 가시를 뽑아내고 돌을 골라내어 옥토밭이 되도록 경작해 나가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에서 미움이나 시기, 질투, 다툼, 판단, 정죄 등 악을 벗어 버리면 온유한 마음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온유함을 칭찬하신 사람이 나오는데, 바로 모세입니다. 민수기 12:3을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말씀했지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정만 해도 60만이 되었으니, 이 무리를 다 품고 험난한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시므로 나타내 주신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악한 백성들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모세에게 갖은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지요. 심지어 자신들이 당하는 고난이 모세의 탓이라 하며 모세를 돌로 치고자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백성들과 함께 40년이나 거하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진리로 인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모세가 얼마나 온유했는지를 나타내지요.
      하나님께서도 그를 지극히 사랑하여 놀라운 권능으로 늘 보장하실 뿐 아니라 혹여 백성 중에 모세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들이 모세의 형이나 누이라 해도 용납하지 않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영적인 온유는 진리 안에서의 강하고 담대함과 충성이 겸해져

      영적인 온유함을 이룬 사람이라면 그 마음이 옥토를 이룬 것이라 했는데, 옥토에는 무엇을 심어도 신속히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신속하게 성결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름진 땅에서 풍성한 소출이 나는 것처럼 영적으로 빛의 열매나 사랑장의 열매,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도 쉽지요. 또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구하는 것에도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보기에는 온유해 보이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그 온유함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영혼이나 맡은 사명에 있어서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인데 이는 바로 그의 온유함이 영적인 온유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편한 일이 있어도 겉으로는 참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스스로 고통을 받는다거나 억지로 눌러 참다가도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폭발해 버리는 경우도 있지요. 또 어떤 사람은 비진리를 보면서도 남과 부딪치기 싫어서 타협하고 우유부단하게 행동하거나 성격적으로 조용하고 유순하기는 하지만 그 마음에 충성하고자 하는 열정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온유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모습들은 영적으로 온유하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분명 온유한 사람이었지만 진리로 가르쳐야 할 때는 엄히 가르치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심히 범죄할 때는 진노하여 크게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민수기 12:7에 보면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과 뜨거운 열정을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것을 볼 수 있지요.
      예수님의 경우를 보아도 너무나 온유하신 분이지만 때로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해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강한 어조로 책망하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장사하고 더럽히는 사람들을 볼 때는 그 상을 엎으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짐승들을 쫓아내셨지요. 정녕 온유한 사람은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을 품을 뿐만 아니라, 진리 안에서 필요하다면 누구보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3. 온유의 열매를 맺은 사람은 천국에서 넓은 터를 기업으로 받아

      이렇게 온유의 열매를 맺은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했는데 그러면 온유한 자가 받는 기업이란 어떤 땅을 말하는 것일까요?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땅을 얻는다 해도 그것은 영원한 기업이 되지도 못하고 참된 복이라 할 수도 없으므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땅, 곧 천국에서의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천국에서 땅을 얻는 것은 덕이 있어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기 때문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이 중심에서부터 굴복하고 그 안에 품어지게 되며 덕이 있는 만큼 더 넓은 마음 밭이 되고 그것이 곧 영적인 권세가 되지요.
      예를 들어, 기관장이나 구역장, 혹은 주의 종이 덕이 있으면 양 떼가 먼저 사모하여 함께하고자 합니다. 머리된 사람들이 온유하고 덕이 있다면 그만큼 교회는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신이 맡은 구역이나 기관에 불순종하고 악하게 찌르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를 외면하고 소외시키거나 '차라리 저 영혼이 없으면 좋겠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사랑하고 포용하여 기도해 주며 어찌하든지 그를 변화시켜 좋은 알곡이 되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유하고 덕스러운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고 힘이 되지요. 그러니 양 떼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기 사모하며 그로 인해 힘을 내어 진리 안에 거할 수 있고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품고 천국으로 인도한 사람은 그만큼 천국에서도 크고 좋은 상급을 받게 되지요. 이런 사람이라면 당연히 천국에서 더 크고 웅장한 처소를 얻게 되며 그 집을 지을 터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더 많은 덕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한 만큼 더 큰 땅이 주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반대로 온유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깃들이지도 못한, 마음이 좁은 사람은 천국에서도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천국에서도 제일 아랫단계인 낙원에 거하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품지도 못했고 죄악을 버리고 온유함을 이루지도 못했으니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1천층 이상부터는 집이 있으며 각자의 온유함과 얼마나 덕을 이루고 많은 사람을 포용했는가에 따라 집의 터가 달라지는데 특히 새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영적인 온유함이 온전히 임했으므로 넓은 땅이 있고 땅이 넓은 만큼 집도 크고 아름답게 되지요. 또한 집에 걸맞도록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이 있고 함께 즐길 수 있는 호수나 수영장, 계곡, 운동장, 무도회장, 동산이나 각종 시설들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 안에 품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마음껏 잔치하고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축복 중에 온유한 자가 받을 복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 한번 들어간 후에는 '내 땅이 너무 좁고 내 집은 너무 작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온유함을 이루고 더 많은 영혼들을 품어 천국으로 인도할 것을' 하고 후회해도 이미 늦고 맙니다. 그러니 할 수 있을 동안에 열심히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온유함을 이루어 넓은 땅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열심히 찾으십니다. 그래서 많은 영혼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품어 구원하고 진리로 인도하도록 사명을 주시고 천국에서 넓은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온유하고 하나님 앞에 합당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넓은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3-03-12 오후 4:19:0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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