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의 도(20)

    영생(2) [마7:21,요일5:16-17]
    2005.08.28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서 증거하고자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7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한 대로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시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동안 복음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 땅에 남아 탄식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여 혼란에 빠지게 되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당황하고 탄식하는 사람들은 바로 주를 믿는다 하며 교회에 다녔는데 자신은 공중으로 들림받지 못하고 이 땅에 남겨진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신이 들림받지 못한 현실을 볼 때 얼마나 두렵고 참담하겠습니까.

      이처럼 “주여 주여” 부른다고 해서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요, 구원의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 중에서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령 모독, 훼방, 거역하는 경우

      지난 시간에 설명한 대로 성령 모독, 훼방, 거역은 성령의 역사를 거스리는 말과 행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하게 대적하는 것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핍박하는 것과 달리 “믿음이 있노라” 하고 진리를 알면서도 자신의 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것을 말하지요.

      오늘날의 경우도 주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이나 행동으로 훼방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질병과 약한 것이 치료되고 귀신이 물러가는 등의 역사를 보고 오히려 “귀신 들렸다”거나 “사단의 역사라” 하여 훼방하기 위해 거짓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권능을 행하실 때 선한 사람들은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권능의 역사가 나타났으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임을 인정하여 영광을 돌리며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께 감사했지요. 양심이 선한 사람이라면 성령의 역사를 볼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이 두려워서라도 훼방하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이 사람의 질병을 치료해 주거나 약한 것을 고쳐 줄 권능도 없을 뿐 아니라, 만약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악한 영들이 귀신을 내어쫓고 질병을 치료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할 리가 없지요.

      하나님께서 보장하시고 권능을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종에 대해 훼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사람을 부인하며 그를 통해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는 것이니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지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할 때 모세는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했지요(출 16:8).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 사무엘이 자신들을 다스리는 것을 싫어하여 왕을 구할 때도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했습니다(삼상 8:7).

      또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땅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을 했는데, 욕심이 생겨서 땅값의 일부를 숨기고 베드로에게 나와 전부를 드리는 척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베드로를 속인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속인 것이요,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행 5:3-4). 결국 아나니아는 회개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결코 성령을 모독하거나 훼방, 거역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참고로 기억할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귀신을 불러들였다가 내어 쫓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아프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매사에 귀신의 역사라고 말하며 사람이 스스로 시인하고 귀신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계의 법에 따라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귀신이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귀신에게 사로잡힐만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귀신을 물리치면 금방 물러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귀신을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것이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귀신이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성령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에 더러운 귀신이 임의로 들어올 수는 없으며 자기 입으로 시인하여 귀신을 불러들인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일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귀신을 내쫓는다고 험한 욕을 하거나 사람을 때리기도 합니다. 이것도 진리에 비춰 볼 때 맞지 않으며 성령의 역사도 아닙니다. 혹 귀신이 들렸다 해도, 그 사람 자체는 인격적으로 대해줘야 하는 것이며, 성령의 역사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은 욕하거나 때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말씀으로 명하면 됩니다. 귀신은 더러운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쫓아내실 때 “더러운 귀신아” 부르신 일은 있지만 욕을 하신 적은 없으시지요. 또한 귀신들린 사람을 때린다고 해서 영의 존재인 귀신이 아프다 할 리도 없고 두려워서 나갈 리도 없는 것이지요. 귀신을 내어쫓을 수 있는 권세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단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기만 해도 즉시 두려워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보이는 경우

      히브리서 6:4-6에는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령을 받고 은혜의 체험을 한 사람,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며 진리의 말씀을 들어 알고 믿으면서도 세상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떠나고 타락하므로 현저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경우를 말하지요.

      비록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오던 사람이라 해도 지식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다가 세상으로 빠져 버렸다면 어느 땐가 다시 구원받을 은혜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 속에 은혜를 받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어둠으로 가득 차서 더 크게 사단의 역사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원래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보다 더욱 악을 발하고 이전에 받았던 은혜를 부인하며 오히려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기도 하지요.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를 현저히 욕보이는 사람들은 회개의 영을 받을 수 없으니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친히 예수님의 사역을 지켜보았으나 자기 유익을 구하여 예수님을 배신하고 은 삼십에 팔아버렸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잡히신 후에 가룟 유다는 양심에 심한 가책을 느끼고 회개하고자 했지만 결국 회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마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3.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범죄하는 경우

      히브리서 10:26-27에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진리를 알고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금하신 불법을 고의로 행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2:21-22에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말씀한 대로 짐짓 죄를 범하는 사람은 범죄한 후에 잘못인 줄 알아 회개하고 같은 죄를 계속해서 반복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 다윗이 잠시 시험에 들어 살인이라는 큰 죄를 지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선지자가 와서 책망하자 즉시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그로 인해 큰 연단을 받을 때도 겸비함으로 통과하여 마음속의 죄성까지도 뽑아버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지요. 반면에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깨우쳐 주어도 “백성들이 원해서 불순종한 것입니다”라고 변명하였습니다. 이처럼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지 않고 번번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되자 결국 죄의 담이 쌓여 버림을 받고 말았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있고 진리를 아는 사람이 범죄하면 성령께서 탄식하시며 깨우쳐 주시니 회개했다면 철저히 돌이키므로 이후로는 빛 가운데 거하고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했다 하면서도 죄의 유혹을 물리치지 않고 여전히 불법을 거듭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짐짓 범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외면하시므로 회개의 영을 받을 수 없게 되고 결국 성령이 소멸되어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회개하여 용서를 받고자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회개의 영을 주셔야 하며, 그 회개를 받으시고 사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지 않으면 출애굽기 32:33에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을지라도 그 이름이 다시 지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면 회개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고 하나님께 외면당한 채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결코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라고 해서 “범죄해도 상관없다”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죄라도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으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도 없고, 오히려 사단의 미혹을 받아 결국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게 될 수도 있으며 구원을 받는다 해도 겨우 부끄러운 구원에 이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았으면 모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버려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고자 힘써야 합니다. 아무 죄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진정 깨닫고 믿는다면 죄와는 상관없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온전히 빛 가운데 거하심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8-29 오후 12:58:47 Posted
      2013-03-05 오후 5:49:5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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