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차 영·혼·육(8)

    [요일2:24-25,2:15-16]
    2005.01.09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영혼육 말씀은 영과 혼과 육에 대해 알며 영이 살아나고 장성하여 온 영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게 합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영에 속한 영혼육을 이루기 위해 육을 취하게 만드는 원동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람은 영혼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겉으로 보이는 육이 전부가 아니고 그 안에 있는 영혼이 참된 자신이며, 영과 혼 중에서도 영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영이 죽어 있으므로 혼과 육의 작용만으로 살아가게 되니 참다운 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헛된 삶을 살다가 결국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죽었던 영이 살아나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데 마치 갓난아기가 장성하여 어른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영도 날마다 자라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엡 4:13)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1.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육을 취하게 만드는 원동력

      본문 요일 2:15-16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가 결국은 썩어질 육이기 때문에 이러한 육을 사랑하면 영으로 들어 갈 수가 없는데 본문을 보면 육을 벗어 버리라는 말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리 라는 말과 같음을 알 수 있지요. 쉽게 말해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썩어질 육을 취하게 만드는 원동력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육을 좋게 느끼고 사랑하게 하며 세상 것들을 취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라는 뱀의 미혹을 받았을 때 선악과가 먹음직스러워서 육신의 정욕을 자극하며 보암직도 하니 안목의 정욕을 일으키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이생의 자랑도 불러일으키더라는 것입니다(창 3:6). 하와가 이러한 정욕들을 받아들이니 선악과를 따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고 실제로 따먹기에 이르렀지요.

      예전에는 하나님을 거역할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선악과가 맛있어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고 하나님과 같이 지혜를 얻고 싶다는 정욕들이 동하게 되니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하도록 하와를 충동질한 것입니다. 이처럼 죄악이 좋아 보이고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육신의 일을 행하고, 결국 육체의 일까지 범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육을 벗어 버리려면 가장 먼저 이 세 가지를 끊어 버림으로 육을 취하기 원하는 마음이 발동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마음에서부터 육을 벗어나가야 하지요. 여기서 죄에 물든 세상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먼저 깨달으면 정욕들을 더 쉽게 끊을 수 있게 됩니다. 만약 하와가 이 선악과를 따먹는 것이 곧 사망이요 엄청난 고통의 길인 줄 알고 있었다면 그것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느껴졌을 리가 없습니다. 먹고 싶기는커녕 만지기도 바라보기도 싫었겠지요.

      마찬가지로 육의 것들을 취해나가면 그 결과 얼마나 고통을 받게 되는지 알게 되고 최후에 당하게 되는 지옥의 형벌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정녕 깨닫는다면 육을 추구하는 마음들을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2. 육신의 정욕을 차단하려면

      육신의 정욕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육신을 좇아 범죄하게 하는 속성이라 했지요. 예를 들어 술을 끊지 못한 초신자의 마음에는 “술취하기 원하는 육신의 일”이 남아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 육신의 정욕이 동하면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술취하려는 육신의 정욕이 사람을 충동질해서 술을 마시는 육체의 일을 행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비록 초신자라 해도 기도를 충만히 하고 성도의 교제를 통해 은혜를 받으며 성령이 충만할 때는 육신의 정욕이 쉽게 동하지 않습니다. 마음 한편에 육신의 정욕이 생긴다 해도 즉시 진리로 물리칠 수 있지요. 하지만 기도를 쉬고 성령의 충만함이 떨어지면 원수 마귀 사단으로 하여금 육신의 정욕을 부추길 수 있는 틈을 내어주게 됩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을 차단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한순간도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음으로 육을 취하려는 마음보다 영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 같은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하며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벧전 5:8).

      스스로 “믿음 있다” 생각하는 일꾼들도 아무리 바쁘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어도 기도를 쉬면 성령 충만이 떨어지며 육신의 정욕이 틈탈 길을 열게 되므로 마음으로 범죄하기도 하고 자칫하면 육체의 일을 행하기도 하지요. 기도를 쉬므로 하나님의 일을 이룬다 하면서도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잘못된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

      물론, 육을 다 벗어 버리고 성결된 차원에 들어가면 기도의 양을 채우지 못했다고 육신의 정욕이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성결된 사람은 기도를 쉬지도 않겠지만 영으로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므로 육신에 져서범죄하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육, 곧 몸까지도 강건해지지요.

      성결된 사람은 육신의 정욕을 차단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을 입고 권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이루기 위해 불같이 기도해 나가는 것입니다.

      3.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려면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고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는 속성을 말합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마음에 안목의 정욕이 들어오게 됩니다. 곧,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마음에 작용하여 느낌으로 와닿고 그로 인해 안목의 정욕이 생기는 것이지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것은 아무리 보고 듣는다 해도 별 느낌이 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붉게 잘 익은 사과의 맛이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하던지..” 하고 감탄하는 말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때, 사과라는 것을 본 일도 먹어본 일도 없는 사람은 그런 말을 들어도 식욕이 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잘 익은 사과를 먹어 보았고, “맛있다”고 느꼈던 사람은 이런 말을 들으면 벌써 입 안에 침이 고이게 되지요. 예전에 먹어봤던 기억이 떠오르고 다시 맛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면 시장에 가서 사먹는 행동으로 나오기도 하지요.

      안목의 정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을 볼 때, 육의 느낌과 함께 받아들여 놓으면, 다음에 비슷한 장면을 볼 때 이전과 같은 느낌을 이끌어 냅니다.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그에 관한 말을 듣기만 해도 예전의 느낌이 기억나고 그로 인해 안목의 정욕이 유발될 수 있지요.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지 않고 계속 받아들이면 육신의 정욕을 유발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 왕이 안목의 정욕을 받아들임으로 큰 연단을 자초한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이 높은 곳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설령 보았다 해도 즉시 고개를 돌리고 보지 않으면 더 이상의 범죄로 발전하지 않을 수 있는데 다윗은 그러지 않고 보는 것을 통해 안목의 정욕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로 인해 육신의 정욕이 동함으로 그 여인이 남의 아내인 줄 알면서도 취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충성된 백성을 이방인의 손에 죽게 하는 죄까지 범하게 되지요. 그 결과 하나님께 심히 책망을 받았을 뿐 아니라, 회개한 후에도 죄에 대해 큰 보응으로 많은 수치와 연단을 받아야 했지요. 한순간의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지 못함으로 심히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에 나오는 아간 역시 안목의 정욕으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갔던 인물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여리고 성을 공략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성에서 얻는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명하셨지요. 그런데 아간은 전리품 중에서 아름다운 외투와 은과 금덩이를 보고, 그만 안목의 정욕이 틈타서 몰래 감춰 두었던 것입니다.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외면하시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다음 전투에서 많은 사망자를 내고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아간 자신도 그 범죄가 밝혀짐으로 비참한 죽임을 당하게 되었지요. 순간적으로 안목의 정욕이 틈타서 탐심을 좇아 도적질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결과는 사망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폭력적인 만화나 영화를 보면 놀 때에도 때리고 부수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악한 것을 보므로 자기 안의 악이 요동하는 것이지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술을 끊으려는 사람이 직장 동료들과 함께 술집에 동행하여 남들이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또 그 냄새를 맡게 된다면 마음이 요동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육을 버리려면 먼저 안목의 정욕을 철저히 차단해야 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하며 비진리의 것들을 접할 만한 장소는 아예 가지도 않는 것이 좋지요. 아무리 기도를 쉬지 않고 금식하고 철야하며 육을 뽑아버리고자 애를 쓴다 해도,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지 않고 있으면 육신의 정욕이 더 힘을 얻고 발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육이 쉽게 버려지지도 않고 죄와 싸우는 것이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지지요.

      비유를 들어, 더러운 물이 담긴 그릇 안에 깨끗한 물을 계속 채워 넣으면 결국은 깨끗한 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깨끗한 물을 채워 넣으면서 동시에 더러운 물도 함께 부어 주면 아무리 시간이 가도 그릇 안의 물이 깨끗해지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안목의 정욕을 통해 육을 계속 받아들이면 성결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가 더디게 됩니다. 안목의 정욕을 차단할 때 쉽게 죄를 버릴 수 있는 것이며 이를 차단하는 것은 자기 의지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못 버리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안 버리는 것뿐이지요. 그러니 참으로 성결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사모한다면 안목의 정욕을 철저히 차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소돔 성을 멸하시기 직전,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롯의 가족들을 이끌어내셨습니다. 그리고 죄악이 관영한 소돔 근처에 머물지도 말며 미련을 두어 뒤돌아보지도 말고 멀리 떠나도록 명하셨지요.
      이것이 바로 육의 것들을 철저히 끊고 육에서 멀리 떠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썩어질 부귀영화나 향락, 맛있는 음식이나 육의 가족에 대한 집착, 이성에 대한 정욕, 그 밖의 육의 것들을 철저히 버려나가며 마음에 있는 죄성들과 깊은 본성 속에 있는 미세한 육의 것들까지도 벗어 버림으로 온 영을 이룬 사람들에게 예비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4-06-07 오전 1:51:3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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