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차 영·혼·육(11)

    [요일2:24-25]
    2005.02.13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오늘은 영에 속한 영혼육을 이루기 위해 육을 버리고 영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면서 육의 분야를 마무리하고 혼의 분야에 대해서 증거하겠습니다.

      1. 육을 벗고 영을 이루려면

      지난 시간에 육을 벗고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차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육체의 일을 끊고 육신의 일도 벗어나가야 합니다. 이처럼 육을 벗어나가려면 죄를 버리려는 자신의 노력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며 네 가지 힘이 하나 되어야 사람 안에 있는 육적인 요소들을 철저히 벗겨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육체의 일, 육신의 일을 버릴 수 있을까요?

      1)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기도하라, 사랑하라, 겸손하라, 섬기라, 판단하지 말라, 시기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을 버리라, 교만을 버리라, 안식일을 지키라” 등 무엇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며 순종하는 것이 곧 육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에 순종하는 만큼 영의 지식들, 곧 진리가 마음에 채워지게 됩니다.

      농부가 잡초가 무성한 밭에서 수확을 거두려면 먼저 잡초를 뽑고 곡식을 심어야 하듯이 ‘하지 말라, 버리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마음밭에서 잡초를 뽑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을 지켜 나가면 마음밭에 진리의 씨를 심는 것과 같으므로 비진리의 잡초를 뽑으면서 진리의 씨를 심는 작업을 계속 행하면 영의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사랑장에 있는 사랑의 열매, 빛의 열매 등이 하나하나 맺히게 되니 어느새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2) 큰 죄성을 먼저 뽑아내면 나머지 죄성들은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 안에는 버리지 못한 육이 너무 많은데 어느 세월에 다 버립니까?” 하고 처음부터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진리가 많아도 그중에 가장 큰 것부터 목표삼아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뽑아버리면 됩니다. 큰 나무를 뽑을 때 큰 뿌리만 뽑아내면 나머지 잔뿌리는 따라서 뽑혀 나오듯이 자기 안에 있는 가장 큰 죄성만 버리면 나머지 작은 죄성들은 훨씬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 안에 제일 큰 죄성이 미움이라면 미움이라는 제목을 놓고 불같이 기도하고 금식하며 동시에 미움과 반대인 사랑을 이뤄내면 됩니다. 전에는 미워했던 사람에게 반대로 사랑하는 행함을 보여 주면서 진리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손이라도 한번 더 잡아 주고 한번 더 웃어 주고 어찌하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살펴서 그가 요구하지 않아도 먼저 찾아 섬기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미움이 버려지면서 영적인 사랑이 임하면 시기하지 않고 혈기내거나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판단 정죄하지도 않는 등 다른 여러 가지 비진리도 버려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움이라는 큰 뿌리를 뽑아내고 사랑이 임하니 이런 잔뿌리같은 육의 요소들까지도 동시에 사라지더라는 사실입니다.

      2. 영에 속한 육

      이렇게 육적인 것들, 곧 비진리의 요소들을 다 벗고 나면 사람의 몸도 육에 속한 육이 아니라 영에 속한 육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런저런 병에 걸리고 배고픔과 피곤에도 못이기는 연약한 몸이 아니라 건강한 몸으로 변하게 되지요.

      성령받기 전의 베드로는 졸음 하나를 이기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시기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함께했던 제자들은 겨우 몇 시간을 참지 못하고 졸음에 빠지고 말았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육신이 약하다는 것은 몸이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을 받지 못한 베드로가 아직 죄를 다 버리지 못한 사람으로서, 영에 속한 육을 이루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육을 버리고 영으로 들어가면 혼이나 육이 영의 지배를 받게 되므로 육이 피곤하다 해도 마음이 깨어 있기 원할 때는 잠들지 않을 수 있지요.

      그러나 당시의 베드로는 아직 육을 다 버리지 못한 상태였기에 마음이 아무리 깨어 있기를 원한다 해도 피곤과 게으름 같은 육의 속성을 다스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신 후에 순간의 두려움으로 인해 사랑하는 예수님을 부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것도 육신이 약한 상태이기 때문이었지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빌미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주님을 부인했는데 나 같은 사람이야 잘못할 수도 있지”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육신이 약했던 것은 그가 성령을 받기 이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고 육을 벗어 버린 후에는 피곤하거나 병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질병과 연약함, 귀신들린 것도 고쳐 주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권능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자청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기까지 모든 고난을 두려움없이 감당할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에 성결을 이뤄가는 만큼 영에 속한 육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온전히 성결된 것은 아니라 해도 영으로 변화되어 가는 만큼 예전에 연약하던 사람들도 강건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말씀이 그대로 임하게 되는 것이지요.

      3. 영에 속한 혼

      3차 영혼육 중 육의 분야를 마치고 혼의 분야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혼의 분야에서는 주로 육에 속한 혼을 영에 속한 혼으로 바꿔나가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1) 혼의 정의

      사람의 뇌 속에는 기억 장치가 있는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게 된 지식들, 곧 보고 듣고 배우고 체험한 무수한 내용들이 기억 장치 안에 저장됩니다. 이렇게 저장된 자료들, 곧 기억된 내용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말하지요. 머리 속의 기억 장치와 그 안에 기억된 지식들,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작용들, 이런 것들을 다 통틀어서 혼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컴퓨터 기계 안에 기억 장치가 있고 그 안에 자료를 저장할 수 있어서 자료를 검색하여 찾아내거나 프로그램에 맞게 활용할 수 있지요. 컴퓨터의 기억 장치와 자료, 그리고 검색하고 활용하는 모든 과정들이 사람으로 비유하면 혼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보고 듣고 입력해서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는가 또 이것을 어떻게 떠올리며 활용하는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릅니다. 태어나서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그 안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 각각 달라서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도 사람마다 생각하고 대응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며 혼의 작용이 다 다르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영에 속한 혼의 작용으로 영의 생각을 해야

      혼의 작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육에 속한 혼의 작용과 영에 속한 혼의 작용이 있습니다. 곧 ‘육신의 생각’을 하는 경우와 ‘영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지요. 사람들이 입력된 지식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것이 생각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의 지식이 활용되어지면 영의 생각을 하는 것이요, 비진리의 지식이 활용되어지면 육신의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머리로 진리를 많이 안다고 해서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지식이 마음에 임한 만큼, 곧 육을 버리고 영의 마음을 이룬 만큼 영의 생각을 하게 되지요. 비유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애매한 일로 심히 모욕을 주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때 진리의 지식이 마음에 임해진 사람은 온유와 화평과 긍휼, 이런 마음들 속에서 먼저 영의 생각이 떠오르지요. ‘이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아야지, 감정을 풀어줄 수 있는 대답을 해야지’ 생각하게 됩니다. 또 상대에 대해서도 기분 나쁘고 싫기보다는 저렇게 악을 발할 수밖에 없으니 그 영혼이 불쌍할 따름이지요.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고 자신이 죽어져서라도 상대와 화평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혈기가 나지 않고 같이 맞서 싸우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들은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고도 바보같이 참아야 하는가, 저 못된 사람에게 매운 맛을 보여 줘야겠다’ 하면서 당장 마음에 혈기가 부글부글 요동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언성을 높여 변론하게 되고 상대를 공격함으로 싸움이 벌어지게 되지요.

      세상 사람만이 아니라 믿는다는 사람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어 주라, 성내지 말라, 선으로 악을 갚으라” 하는 진리의 지식들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으나 이를 마음에 이루지 않았기에 세상 사람과 똑같이 육신의 생각이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만 영으로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7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하셨으니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 영으로 들어간다거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하게 되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통달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밝히 알려 주시니 성령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길로 행하여 만사형통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부지런히 영의 지식을 마음에 채우고 혼의 작용도 진리로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영의 생각 가운데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밝히 받아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3-24 오전 1:01:01 Posted
      2007-12-18 오후 5:03:5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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