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영·혼·육(4)

    2차 영·혼·육 [살전5:23]
    2004.02.22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오늘은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본분을 좇아 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거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이유를 알아서 사람의 본분을 좇아 살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도리와 본분을 잘 지켜나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이는 사람마다 양심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 했지요.
      스스로 선한 양심을 만들어 온 사람은 '이것이 사람의 도리다'라고 깨달아 쉽게 도리를 좇아 갈 능력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만큼 정욕과 본능을 좇아가려는 욕구가 더 강해지므로 사람의 도리를 좇아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선한 양심의 소리를 좇아 살아온 사람은 쉽게 진리로 변화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변화의 속도가 그만큼 더딘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이렇게 양심이 사람마다 다르게 형성되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서로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또 선한 양심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따라 각자의 양심이 다르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1. 사람의 성장 단계

      사람은 처음부터 장성한 어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동기, 소년기, 청년기를 지나 마침내 장년이 됩니다. 이러한 사람의 성장 단계에는 질서에 따라 겪어야 하는 과정이 있으므로 각각의 나이에 따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적절한 체험과 훈련을 겪어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젖먹이 어린아이에게 소년기의 체험을 시킬 수 없고, 소년이 장년과 같은 교육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유아기에 습득했어야 할 것을 습득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 청년이 되었을 때 유아기의 체험을 얻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처럼 사람의 성장 단계 속에서 정신과 육체의 각 분야가 발달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데 간단하게 세 단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보는 단계'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을 비롯하여 오감을 통한 모든 자극을 본능적이고 단순하게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지요. 갓난아이들을 보면 자극이 올 때 그 자극에 대해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하여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반사적으로 반응해 나갈 뿐입니다.
      예를 들어, 갓난아이가 배탈이 나서 아프면, '아, 내가 지금 상한 우유를 먹어서 아프구나, 다음에는 조심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거나 '엄마는 왜 나한테 상한 우유를 먹였을까, 속상하다' 하면서 원망하면서 우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 단순히 아픔이 오니까 고통에 반응하여 울 뿐입니다. 그 밖에도 뜨거움과 차가움, 불편함과 아픔, 배고픔과 목마름, 포근함과 안락함, 따뜻함,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접하면서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느끼는 단계'입니다. 오감을 통해 체험한 것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느낌을 갖게 되고, 그 체험과 느낌을 기억 속에 담아나가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행하는 단계'입니다. 보고 듣고 체험하며 느낀 것들을 기반으로 생각과 의지를 동원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결정하고 행해 나가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뜨거운 다리미에 화상을 입은 아이는 '저렇게 생긴 것을 만지니까 뜨겁더라' 하는 기억과 느낌이 함께 작용해서 다음에는 다리미를 만지지 않고 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장 단계들이 정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느끼는 단계에서도 볼 수 있고 행하는 단계에서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각각의 단계 속에서 어떻게 보고 느끼며 행하는가를 결정하게 되므로 사람의 성장 과정에 맞게 보고 느끼고 행해야 할 것을 해당되는 시기에 반드시 체험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2. 육체의 결여로 인해 파생되어지는 문제점들

      사람이 성장 과정에서 마땅히 거쳐야 할 단계를 거치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건너 뛰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는 단계에서 마땅히 보고 체험할 것을 못했다거나 느끼는 단계에서 느끼지 못하고 성장한 경우, 어른이 되었다 해도 문제점이 발생하게 됩니다. 즉 사람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지적인 능력, 육체적인 능력 등이 결여되거나, 정서적으로 일반적인 사람들과 동떨어진 감정 상태를 갖게 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을 통틀어 육체의 결여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사랑 가운데 섬세하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어야 할 나이에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한 경우가 많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학대받으며 자란 사람들은 나중에 생명체를 학대한다거나 자기 스스로를 학대하기도 하지요.
      또한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자라면서 사회성을 키워 나가야 하는데 과잉보호를 받아 적절한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나 이기적인 심성으로 굳어져 다른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사람이 되거나 사회생활에 적응할 능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더구나 과잉사랑으로 인해 부모님이 "오냐, 오냐" 하면서 키운 아이는 유약하고 의존적인 성품을 형성하여 스스로 해야 하는 일도 누가 대신 해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이렇게 자라면서 육체의 결여가 생긴 사람들은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인정받기도 힘들지요. 조금만 피곤하고 힘들어도 쉽게 지각하고 결석하는 일이 잦으며 자신을 속이고 해치려는 악한 사람들을 만나도 대처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므로 범사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담대함이 사라질 뿐 아니라 인생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릴 때에는 남보다 뛰어났던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육체의 결여가 생겨 뛰어난 자질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지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나라에 유명한 천재 소년이 있었는데 한 살 때 천자문을 떼고 영어회화를 하며 세 살 때 대학 수학 과정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부모님은 고등학생, 대학생들과 같이 자라게 했습니다. 어린아이로서 겪어야 할 환경에서 자라게 하지 않고 어른들에게 맞는 환경에서 자라게 한 것입니다. 자기 나이에 거쳐야 할 단계를 거칠 수 없게 되니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나라를 빛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천재 소년에 대한 기억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습니다. 만약 부모가 육의 질서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아이의 지능을 최대한 개발해 주면서 성장 단계 중에 겪어야 할 과정들을 겪게 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보는 단계, 느끼는 단계, 행하는 단계를 정상적으로 밟아 왔을 때는 그만큼 옳고 그름에 따라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육체의 결여가 생긴 사람은 그만큼 영으로 들어가는데도 지장이 있습니다. 육체의 결여가 있는 만큼 사단의 역사를 받게 되니 영을 이루기 위해 행해야 할 일들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자신을 잘 다스리며 만들어 온 사람은 "몇 시에 기도하러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 즉시 그대로 행하게 됩니다. 또한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마음을 모으려고 하면 쉽게 마음이 모아져 깊은 영의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정해 놓은 시간이 되어도 기도하러 가기가 싫어집니다. 텔레비전을 보던 것을 마저 보고 싶고, 집에 누워 좀 쉬고 싶어서 기도하기로 정한 시간이 되어도 계속 미루며 기도하기 위해 마음을 모으려고 해도 잡념이 계속 떠오르는 것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 외에도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육체의 결여가 없는 사람은 비교적 쉽습니다. 미워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사랑하라, 겸손하라, 기뻐하고 감사하라 하면 바로 순종하니 속히 영으로 들어갑니다. 반면에 육체의 결여가 있는 사람들은 구습대로 편하게 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아멘" 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제어하고 복종시키는 훈련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생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고향에 내려가 농사일을 돕곤 했는데 저는 미리 부모님과 약속을 합니다. 제가 도와야 할 하루 분량의 일을 정하고 나면 그 후에는 제가 할 일을 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남보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벼를 베고, 최대한 맡은 일을 빨리 끝내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께서 계속 일을 하시니 저도 계속 도와드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단 제가 할 분량만큼을 정해 놓으면 반드시 그 일을 먼저 감당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규칙적이고 계획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하루에 할 일은 물론 한 주간, 한 달간의 계획을 정확하게 세워놓았고, 만약 제가 정해 놓은 스케줄을 지키지 못하면 스스로 벌칙을 가해서라도 자신을 다스려 나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제 자신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나서도 신앙생활 하기가 너무 쉬웠지요. "버리라, 하지 말라, 지키라, 행하라"는 말씀들을 배운 대로 명심하여 순종할 수 있었으니 빠르게 죄악을 벗어 버릴 수 있었고 믿음이 쑥쑥 성장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동안 여러분에게 육체의 결여가 있어서 말씀대로 행하지 못했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결여된 부분을 채워 나가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불같이 기도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아 작은 것 하나부터라도 성령의 소욕을 좇아 순종하여 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노력해 나갈 때 처음에는 변화가 더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기도하고 또 다시 노력하면 결국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할 수 있게 됩니다(막 10:27). 예를 들어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특별히 어느 과목이 약한지를 알아서 약한 과목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합니다. 점수가 떨어지는 과목을 잘하는 과목만큼 올려놓으면 전체 등수도 올라가는 것이지요.
      영적으로도 자신이 결여된 부분을 발견했으면 그 부분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전케 하므로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세미한 부분까지라도 발견하여 영의 주도적인 흐름을 타고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6-20 Posted
      2007-12-18 오후 5:06:5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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