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11)

    아랫음부 3단계 형벌의 종류 [눅 16:22-26]
    2009.08.16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아랫음부의 1단계 형벌은 뜨겁게 달군 바위나 모래, 끓는 물, 얼음 등 생명이 없는 무차원의 존재에 의해 고통받는 단계입니다. 아랫음부의 2단계 형벌은 짐승이나 벌레 같은 생물들에게 고통받는 형벌입니다. 3단계 형벌은 지옥사자들이 직접 고문하는 형태의 형벌입니다. 이 3단계 형벌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오늘은 지옥사자가 갖가지 흉기로 살을 저미는 고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지옥사자가 갖가지 흉기로 살을 저미는 고문

      저민다는 것은, 여러 개의 작은 조각으로 얇게 베어 내거나 깎아 내는 것입니다. 생선회를 뜰 때 생선살을 조각조각 발라내는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이 고문 장면을 묘사해 드릴 때 여러분이 그 참혹한 현장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영혼이 나무에 묶여 있습니다. 온몸을 고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꼼짝달싹하지 못하지요. 이 영혼 곁에서 흉악하고 탐욕스런 돼지 탈을 쓴 뚱뚱한 지옥사자가 갖가지 고문 도구를 준비합니다.
      지옥사자는 작고 예리한 칼부터 도끼같이 큰 도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고문 도구를 "사악사악" 갈아서 날을 세웁니다. 영의 세계인 아랫음부에서는 도구를 갈지 않는다고 해서 이 육의 세상에서처럼 칼날이 무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사악사악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연장을 가는 이유는 바로 고문 직전에 극도의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지요. 고문하기 전에 이처럼 느긋하게 사전 준비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갖가지 고문 도구들이 서로 부딪치며 카랑카랑한 소리를 낼 때, 흉측한 지옥사자가 섬뜩한 소리로 칼을 갈다가 자신을 향해 징그럽게 웃을 때, 이 영혼은 전율합니다. "이제 저 도끼로 내 살을 베어 낼 텐데, 저 칼로 내 살을 저밀 텐데, 이제 어찌할꼬, 그 고통을 어찌 감당할꼬." 밀려오는 공포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무에서 벗어나려고 소리 지르며 몸부림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단단히 감긴 밧줄이 살갗을 깊숙이 파고 들어 깊은 상처를 낼 뿐, 달아날 길은 없습니다.
      지옥사자는 먼저 손가락을 집어 들고 살점을 저미기 시작합니다. 마치 연필을 깎는 것처럼 손가락을 꽉 쥐고는 손끝의 살점부터 베어 내지요. 투둑 투둑 핏덩어리처럼 보이는 살점들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탁, 탁 힘주어 쳐낸 손톱 조각이 여기저기 튀어 날아갑니다. 잠시 후 열 손가락이 앙상한 뼈로 변합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큼직한 연장을 집어 들고는 손목, 팔뚝, 어깨 순으로 저밉니다. 어느새 팔이 피범벅이 된 앙상한 뼈로 변합니다. 다음으로 발과 종아리, 허벅지의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 다음 배를 저며 들어가면 이윽고 장기들이 드러나지요. 그러면 하나씩 끄집어내서 휙 던져 버립니다. 다른 장기들도 마찬가지로 거치적거린다는 듯 뭉클한 장기를 움켜 내어 사정없이 팽개칩니다.
      마치 요리사가 생선을 손질하듯 지옥사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살점을 저며 나갑니다. 두려움과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영혼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어 댑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하면 더 정교하게 저밀까 하며 다시금 살을 저미는 작업에 몰두하지요. 이때까지 고문받는 영혼은 자신의 두 눈으로 자기 살을 저미고 장기를 끄집어내는 모양을 하나하나 보고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예리한 칼날로 살을 도려내니 그 아픔은 가히 상상할 수가 없지요.
      온몸을 다 저민 지옥사자는 피범벅 된 칼을 내려놓고 날카로운 송곳을 집어 듭니다. 그 송곳으로는 무얼 하려는 것일까요? 이미 이 영혼은 자기가 당할 일을 훤히 알고 있습니다. 아랫음부로 끌려온 이후로 지금까지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당했기 때문에 다음 순서를 다 꿰고 있지요. 그래서 두려움이 더욱 가중됩니다. 지옥사자의 손에 들린 뾰족한 송곳은 묶여 있는 영혼의 눈동자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다가 마침내는 두 눈에 박힙니다. 지옥사자는 두 눈알 깊숙이 송곳을 푹 찔러 넣습니다. 이렇게 송곳을 박아 놓은 채로 남은 부위, 곧 얼굴을 저미기 시작합니다. 온몸을 저며 냈기에 지금 이 영혼은 붉은 피로 물든 앙상한 뼈 위에 얼굴 가죽만 씌워 놓은 형상을 하고 있지요. 지옥사자는 이제 남은 부위, 곧 얼굴의 양 볼과 코, 이마 등 돌출된 부위부터 저미고 귀와 입술도 베어 냅니다. 목에 붙은 살까지 목뼈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깎아 들어가지요. 이렇게 해서 목까지 저미면 형벌의 전 과정이 한 번 끝납니다.
      그러나 아랫음부에서 고문의 끝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다음 번 고문의 새로운 시작일 뿐이지요. 잠시 후면 원래의 성한 몸으로 돌아옵니다. 방금 겪은 고문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악몽 같은 고문이 다시 시작되지요. 온몸이 한 조각 한 조각 저며지고 송곳이 두 눈동자를 향해 다가옵니다. 대심판을 받은 후 유황못에 던져질 때까지는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형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2. 생체 실험의 잔악성과 비교도 안 되는 아랫음부의 형벌

      사람이 교통사고나 산재 등 불의의 사고로 일부 신체만 손상돼도 정신적인 충격을 평생 씻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한 고통을 한두 번도 아니고 쉼 없이, 끝없이 받아야 하는 이 영혼은 더 이상 살려 달라는 애원조차도 못합니다. 처음에는 괴성을 지르며 저항도 해 보고 고통을 참아 보려고도 하지만 나중에는 아픔과 공포에 짓눌려 체념해 버리지요. 혹여 이 상황이 잘 와 닿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와 유사한 역사적 사건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일부 국가들이 전쟁포로나 점령지 주민 등을 생체 실험한 끔찍한 일이 실제로 있었지요. 즉, 살아 있는 사람을 실험용 생쥐, 혹은 실험용 토끼처럼 실험 대상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 생체 실험은 생화학 무기, 즉 전염 병균 등 단시간에 수많은 사람을 죽일 강력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시작됐다고 하지요. 비밀리에 행했지만 오늘날 이 사실이 피해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구성한 책, 영화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건강한 사람에게 암 세포를 이식시키거나 질병균을 감염시킨 다음,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관찰합니다. 사람의 몸을 해부할 때도 더 정확한 자료를 얻기 위해 시체가 아닌 산 사람의 배를 갈라 관찰합니다. 물론 마취도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처럼 특별한 구상이나 계획 없이 생각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실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중 한 가지입니다. 피 실험자를 영하 30도의 칼바람을 맞으며 두 팔을 들고 수십 시간 서 있게 합니다. 이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팔에 종종 찬물을 끼얹습니다. 팔에 고드름이 맺힐 정도로 꽁꽁 얼어붙으면 실험실로 데려와 끓는 물을 붓습니다. 그러면 헐거워진 살가죽과 근육이 녹아내리고 뼈만 앙상하게 남지요.
      이처럼 생각나는 대로 갖가지 실험을 하다가 더 이상 실험 재료로써의 가치가 없어지면 고통 속에 죽어 가도록 버려 둡니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할 수가 있었을까요? 바로 이들에게 피 실험자들은 이미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었습니다. 토끼나 생쥐, 파리만도 못한 실험 재료에 불과했지요. 통나무와 같이 여겼습니다. 실험을 당하는 사람이 받는 고통이나 생명의 소중함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 생체 실험에 대한 자료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당시의 참상과 이런 실험을 자행한 자들의 잔악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지요. 피 실험자들은 실험대에 묶여서 자신의 배를 가르고 장기를 꺼내는 모습, 피가 솟구치는 모습을 다 보고 있어야 합니다. 세균에 감염된 몸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저항조차 할 수 없으니 얼마나 비참합니까? 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끔찍한 형벌, 그리고 지옥사자들이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의 아랫음부입니다.

      3. 영혼을 공처럼 부풀려 가지고 노는 지옥사자들

      그러니 전에 어린아이들의 형벌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비참한 처지에 있는 영혼들을 가지고 공놀이까지 합니다. 형벌받는 영혼 중에 아무나 하나 집어내서 몸에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몸이 탱글탱글해지면 굴리고 축구하면서 즐깁니다. 기본적으로 길고 납작한 형태의 사람이 공처럼 부푼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장과 허파가 부풀어 오르면서 내장을 감싸고 있던 갈비뼈와 척추가 차례로 부러집니다.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피부는 터지기 직전까지 늘어나서, 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오지요. 이렇게 부풀어 오른 영혼을 굴리고 발로 차다가 질리면 뾰족한 창으로 배를 찔러 펑 터뜨려 버립니다. 물을 담아 부풀린 물 풍선을 터뜨리면 갈기갈기 찢어진 고무 조각들이 널브러지고 사방에 물이 튑니다. 이런 것처럼 부풀었던 영혼이 펑 터지면 온몸이 조각나 사방에 피와 살 조각이 튑니다. 그리고 잠시 후면 다시 몸이 회복되고 원래 있던 형벌의 자리로 돌아가 또다시 반복되는 고문을 받지요.
      지옥사자의 잔악성을 우리는 다름 아닌 동시대 같은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즘 사이코패스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종의 인격 장애로서 타인의 불행이나 아픔을 보아도 마음에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분노는 느끼지만 그 외에 기쁨, 슬픔, 동정심 등 일반적인 감정은 거의 느끼지 못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고통스러워해도 공감하지 못합니다. 절도, 폭력, 더 나아가 살인을 하고도 마음에 죄책감이나 미안함이 일지 않지요. 오히려 상대를 해침으로써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상습적으로 이런 범행을 저지르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무죄한 사람들을 20명 넘게 죽인 한 연쇄살인범이 구속되면서 사회를 놀라게 했지요. 이 살인범은 매우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 버리곤 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살인한 것이 아니라 그냥 죽이고 싶어서 살인했다고 진술했지요. 이렇게 극단적인 범죄로 발현되지 않더라도 사회 곳곳에 이런 사이코패스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법망에 걸리지 않을 뿐 말쑥하게 차려입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도 있다고 하지요. 이런 사람들의 경우,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사기를 치거나 오직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하루하루 사고를 만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편 121편 5~7절을 보면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고백하지요. 이처럼 하나님께 늘 지킴받으려면 여러분이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도 참으로 끔찍한 악이 존재하는 것처럼 지옥 또한 현실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지어낸 이야기도, 가상의 시나리오도 아니지요. 그렇다고 해서 늘 지옥에 대한 두려움 속에 신앙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느낌으로 악을 버려 나가야 하지요. 죄의 유혹이 올 때 이 실존하는 지옥, 참혹한 지옥을 생각해서라도 단호히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옥 말씀으로 인해 신속히 온전한 빛의 사자들로 나와 어둔 세상을 환하게 밝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참으로 선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08-17 오후 10:42:12 Posted
      2018-06-25 오후 5:23:3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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