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12)

    아랫음부 3단계 형벌(빌라도) [마 27:22-26]
    2009.08.23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지난 시간에는 아랫음부의 3단계 형벌 중 지옥사자가 갖가지 흉기로 살을 저미는 고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고 성령을 훼방하는 등 중한 죄를 범한 이들이 3단계 형벌을 받는데, 그중에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빌라도가 받는 형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본디오 빌라도가 아랫음부에서 받는 형벌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는데, 빌라도는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으로서 이스라엘 지역을 다스리는 책임자였습니다. 로마의 속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자체적으로 사람을 처형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처형하려면 지배국인 로마법의 승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즉 빌라도의 허락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빌라도 앞에 예수님을 끌고 와 고소했던 것이지요.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큰 물결처럼 몰려온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거세게 요구하자,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졌습니다.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에 민란이 일어나면 황제 앞에서 문책을 당해야 하고, 자칫하면 모든 권세와 명예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유대인들에게 내어 줍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함으로써, 빌라도는 스스로 사망의 길을 택하고 자신이 받을 형벌을 정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26절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했습니다. 빌라도의 군병들에게 맡겨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 온몸에 채찍질당하십니다. 이를 허락한 빌라도 역시 아랫음부에서 지옥사자들에게 채찍질당하고 있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내리쳤던 채찍은 긴 가죽 끈 끝에 쇳덩어리나 뼛조각을 매단 흉기입니다. 포악하고 무자비한 로마 군병이 이 채찍을 한 번 휘두르면, 가죽 끈이 온몸을 착 휘감으며 살을 찢습니다. 채찍 끝에 달린 쇳덩어리는 살점 깊숙이 파고듭니다. 이 채찍을 다시 홱 잡아채면, 채찍 끈에 살점이 묻어납니다. 아랫음부의 빌라도 역시 이와 비슷한 채찍으로 맞고 있습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 땅의 사람들이 빌라도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지옥사자가 채찍을 휘두른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예배 첫머리에 신앙고백으로 사도신경을 외우는데,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배나 기도회 때마다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이 사도신경을 외우겠습니까? 그때마다 빌라도는 채찍에 맞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이름을 부르면, 채찍질의 속도가 빨라지고 강도도 점점 세집니다. 주변 지옥사자들이 고문을 지원하러 몰려들어, 이미 찢어질 대로 찢어져 너덜너덜하고 피투성이가 된 빌라도를 에워싸고 서로 경쟁하듯 채찍을 휘두릅니다. 빌라도의 몸은 살점이 떨어지다 못해 허옇게 뼈가 드러나고, 나중에는 뼛속까지 채찍이 파고들어 채찍 끈에 골수까지 묻어납니다. 채찍이 자신의 몸을 후려칠 때마다 빌라도는 제발 내 이름을 부르지 마소서, 그때마다 내가 괴로움을 당하나이다. 하고 애원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애원할 수도, 고통을 호소할 수도 없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3~24절에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한 대로,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한 그 혀는 저주받아 뽑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랫음부에서는 고문에 의해 몸이 손상되더라도 곧 재생됩니다. 그런데 빌라도의 혀는 재생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의 이름은 저주받은 자의 대명사로서 마지막 대심판의 그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불릴 것입니다. 그때마다 빌라도는 로마 군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포악한 지옥사자에게 채찍질당하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본디오 빌라도의 잘못된 선택

      성경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줄 때, 물을 가져와 손을 씻으면서 유대인들을 향해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외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에 급급해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화답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고백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민족적인 수난이 연속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40년이 채 안 되어 예루살렘은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무수한 유대인이 학살당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세계 각처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끊이지 않던 차별대우와 박해는 2차 세계대전까지도 이어져, 당시 나치 독일의 점령지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를 흘린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한 영계의 법칙에 따라, 입술의 악한 말이 얼마나 정확하게 응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전적으로 유대인들의 책임이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빌라도가 무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무리 유대인들의 청원이 거셌다 해도, 빌라도가 끝까지 정의를 따랐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아무리 유대인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들, 자신은 무죄하다고 결백을 주장한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사형을 언도한 죄가 사라질 리는 만무합니다. 더구나 빌라도에게는 범죄에 가담하지 않고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기회들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던 빌라도는 예수님께 아무 죄가 없음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총독으로서 유대 지방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많은 염탐꾼을 곳곳에 심어 놓았는데, 그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표적에 대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았기에 예수님을 불러 대화도 해 보았고, 예수님의 설교 내용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빌라도가 로마 황제에게 예수님에 대해 보고한 공문서인 빌라도 보고서에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빌라도는 자신의 입으로 예수님은 결코 사형에 처할 죄인이 아님을 시인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14~15절에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문을 받으시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빌라도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깨우쳐 주려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8장 33~34절에 보면, 심문 당시 빌라도와 예수님의 대화 내용이 나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묻자,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하고 물으십니다. 이에 빌라도는 당황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질문한 것은 유대인들의 고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빌라도 자신도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시니, 빌라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앞에 두고도 빌라도를 한 영혼으로 바라보시며 그를 구원하시고자 했습니다. 이때라도 빌라도가 예수님의 마음을 느꼈다면, 적어도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더 이상 죄의 길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빌라도에게 주신 기회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빌라도가 십자가 처형을 언도하기 바로 전날 밤, 빌라도의 아내는 예수님에 대한 꿈을 꿉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죽음에 관여하지 말라고 남편인 빌라도에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물론 빌라도도 예수님을 풀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거친 유대 군중들과 교활한 지도자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2절에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했는데, 빌라도는 이 말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나름대로 옳은 길을 택하려 했지만, 자신이 수세에 몰리니 결국에는 죄에 가담하는 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생명을 위협받자, 마음이 변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번 기회가 주어졌지만, 빌라도는 끝끝내 그 기회들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예수님께 십자가 처형을 언도한 대가로 아랫음부에서 참혹한 채찍의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한 순간의 실수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빌라도의 마음 안에는 이미 악과 불의가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자기 유익을 따라 변개하는 간사한 마음, 무엇이 옳은지 알고도 옳지 않은 일을 행하는 불의한 마음, 비겁한 마음 등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 죄로 열매를 맺은 것뿐입니다. 이미 마음에 가득한 악과 불의가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큰 죄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죄악이 관영하여 양심이 무뎌진 오늘날에는 수많은 사람이 빌라도와 같이 불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 옳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서슴지 않고, 자신이 살자고 남을 모함하고 죽이려 합니다. 결코 작은 죄가 아닌데도 이 정도쯤이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마치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자신의 비겁한 행동을 유대인들의 탓으로 돌린 것처럼, "저 사람 때문에, 상황과 조건 때문에 그랬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 내 탓이 아니다"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라도 악행에 대한 책임을 결코 남에게 돌릴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 일이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고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어서 선악 간에 선택할 수 있는데, 그 선택의 결과는 천국의 행복 또는 지옥의 형벌 중에 하나로 돌아옵니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습니다. 빌라도는 비겁한 입술의 말로 인해, 혀가 잘리고 끊임없이 채찍질당하면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내가 왜 그랬던고" 하며 수없이 자책하지만, 이제 지옥의 형벌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잠시 좋은 것을 누리고자 바른 길을 저버린 행위가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을 낳았습니까?
      그러므로 작은 욕심, 사심, 변개하는 마음, 비겁한 마음 등 비진리의 마음이 발견되면 그것을 작다고 그냥 넘겨서는 결코 안 됩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신 대로, 마음의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자라면 결국 사망을 낳습니다. 마음의 죄성까지 다 뽑아내어 어떤 환경을 만나든 항상 옳은 것, 선한 것만을 택하여 영생에 이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08-25 오전 1:59:31 Posted
      2018-06-25 오후 5:23:37 Updated


    • 언어선택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