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14)

    아랫음부 4단계 형벌 [마 27:1-5]
    2009.10.18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지난 시간까지 들으신 아랫음부 1, 2, 3단계 형벌만 해도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을 만큼 참혹한데 4단계 형벌은 과연 얼마나 더 참혹할까요? 또 이 형벌을 받는 영혼들은 얼마나 큰 악을 행했기에 그처럼 비참한 처지가 된 것일까요? 오늘은 아랫음부 4단계 형벌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아랫음부 1, 2단계와 3, 4단계 형벌의 구분

      아랫음부의 4단계 형벌을 크게 둘로 구분하면 형벌이 비교적 가벼운 1, 2단계와 형벌이 매우 무거운 3, 4단계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1, 2단계 형벌에 떨어진 영혼들 중에는 불신자가 많습니다. 주님에 대해 듣지 못해서 또는 진리를 잘 몰라서 죄 가운데 살다가 지옥에 간 이들이 많지요. 반면에 3, 4단계 형벌을 받는 영혼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는데도 중한 형벌에 떨어졌을까요?

      요한일서 5장 16절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했습니다. 이렇게 사망에 이르는 죄, 곧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사람들이 바로 3, 4단계 형벌을 받습니다. 이중 죄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람들은 3단계의 형벌을 받고 더 무거운 사람들은 4단계의 형벌을 받지요. 그러면 사망에 이르는 죄, 곧 용서받지 못할 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사망에 이르는 죄란 무엇인가

      1) 구원받았다가 타락하여 다시금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경우
      히브리서 6장 4~6절에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알기 전, 마귀의 자녀로 세상과 짝하여 살면서 예수님을 이미 한 번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주셨지요. 이런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다시 타락하여 세상과 짝하며 산다면 이는 주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죄입니다. 그러니 이런 영혼은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더구나 갓 구원받은 초신자도 아니고 각종 성령의 은사와 놀라운 권능, 영의 세계 등 신령한 것들을 많이 체험하고 진리의 말씀을 많이 들어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구나 용서받기가 어렵지요. 결국 영원한 사망, 지옥의 형벌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짓는 경우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했지요. 짐짓 죄를 범한다는 것은 죄인 줄 알고도 고의로 죄를 지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지옥 말씀을 들으면 곤고하고 두렵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키려고 나름대로 노력합니다. 그러나 결단해서 마음의 음욕, 탐욕 등 죄성을 버리지 않으면 말뿐인 공허한 회개가 되고 맙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똑같은 죄를 지어 나가지요. 베드로후서 2장 22절에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렇게 진리를 알면서도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계속 정욕을 좇아 짐짓 범죄하면 양심의 가책이나 곤고함도 없어집니다. 회개의 영도 오지를 않지요. 회개를 못 하면 당연히 용서받을 수 없으니 성경은 이런 사람의 앞날에는 무서운 불지옥이 기다릴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움 속에 심판의 날을 기다려야 한다 말씀하지요.

      3)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를 범한 경우
      사복음서 곳곳에는 성령을 훼방, 모독, 거역하면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성령을 훼방, 모독, 거역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당시 기사와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 지폈다” 하거나 “마귀의 역사라” 비방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비방하는 자들은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한 것이나 다름이 없지요.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교회들을 보면 “사단의 역사다”, 혹은 “이단이다”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적인 근거나 확실한 증거도 없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반감을 갖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사람으로서는 나타낼 수 없는 권능의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더욱이 권능의 역사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면 이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성령의 역사를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를 구원받은 자녀라 인정하지 않으시지요. 이렇게 성령을 대적한 사람들이나 성령의 역사를 분명히 체험하고도 배신한 사람들은 회개의 영이 오지를 않습니다. 말로 회개한다고 해도 죄의 담이 헐리지를 않지요. 또한 죽은 후에는 아예 주님을 몰랐던 불신자들보다 더 큰 죄인으로 정죄받아 아랫음부 중에서도 3, 4단계의 중한 형벌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3. 아랫음부 4단계 형벌

      지옥사자가 형벌을 직접 주관하지만 고통의 정도나 참혹함은 아랫음부 3단계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인간 경작 이래 가장 극악한 죄인들이 형벌받는 곳이니 그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4단계에는 십자가에 달린 채로 고문받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들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저주의 대가를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에는 사실 우리 각 사람이 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십자가에는 누가 달렸습니까?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달리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로 인한 저주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4단계 형벌에 떨어진 영혼들은 이런 대속의 은혜와 전혀 상관이 없지요.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이들은 양심에 화인 맞아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저주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에 달려 각자 자신의 죗값을 받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배신자의 대명사로 알려진 가룟 유다이지요.

      가룟 유다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곁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사랑받았고 진리의 말씀, 선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놀라운 기사와 표적도 전해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보았고 체험했지요. 그러나 끝내 탐욕을 버리지 않으므로 사단의 사주를 받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스승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팔아 넘겼지요. 물론 예수님이 죽음에 넘기우시는 것을 보고는 늦게나마 자기 죄를 깨닫고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회개하려고 했겠습니까. 자신에게 돈을 건넨 자들에게 가서 되돌려 주려 했지요. 그러나 회개하려 해도 유다에게는 회개의 영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죄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가룟 유다는 마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사도행전 1장 18절에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하고 비참한 결말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지요. 가룟 유다는 4단계 아랫음부의 수많은 십자가 무리의 맨 앞에 매달려 피 흘리고 있습니다. 이 가룟 유다를 필두로 하여 그 뒤로 하나님을 심히 대적한 많은 영혼들이 십자가에 달린 채로 쭉 늘어서 있습니다. 이 음산한 광경은 마치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생겨난 공동묘지, 혹은 수많은 짐승을 잡아 매달아 놓은 도살장을 연상시킵니다. 십자가 형벌은 이 땅에서도 가장 참혹한 사형 법 중의 하나입니다. 가룟 유다를 비롯하여 십자가를 지고 있는 영혼들은 마지막 대심판의 날까지 길게는 수천 년 동안 십자가에 달려 있어야 합니다.

      가룟 유다의 머리에는 굵은 가시나무로 만든 관이 씌워져 있습니다. 온 머리를 휘감은 가시는 계속 자라고 자라서 피부를 뚫고 두개골을 파고들어 부드러운 뇌를 찔러댑니다. 이 십자가 아래에는 무언가 꿈틀거리는 짐승 같은 것들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4단계 형벌에 떨어진 다른 영혼들입니다. 이들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큰 악을 쌓아 지옥에 온 자들입니다. 심한 고문을 당해 몰골이 말이 아니지요. 이들은 가룟 유다의 십자가 아래에서 지옥사자의 창에 찔리며 고문을 당합니다. 자기들이 창에 찔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가룟 유다를 창으로 찔러댑니다. 자기들의 고통이 심할수록 더 힘껏 가룟 유다를 찌릅니다. 악에 받쳐서 더욱 악랄하게 찔러대며 분풀이를 하지요. 타락한 천사들, 곧 지옥사자들은 함께 입을 모아 가룟 유다를 조롱합니다. “저가 구세주, 자기를 구원할 자를 팔아넘긴 자라. 저가 우리에게 이롭게 하였도다. 정녕 잘하였도다. 웃기는도다” 하며 웃어 대지요.

      가룟 유다는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과 함께 이런 조롱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함께 받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팔아넘긴 저주받은 자임을 거듭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점점 자라나는 가시가 머리를 찌를 때마다 날카로운 창들에 찔릴 때마다 그 기억은 더욱 뚜렷이 살아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실 것입니다. 자살하면 귀신이 되어 이 땅을 떠돈다고 했는데 가룟 유다는 왜 이미 아랫음부에 가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사울 왕, 빌라도의 사례와 함께 다음 시간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2009-10-20 오전 2:10:13 Posted
      2018-06-25 오후 5:23:3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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