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의 분량(8)

    믿음의 3단계 [롬12:3]
    2005.12.04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1.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단계인 믿음의 3단계

      믿음의 1단계는 성령받아 구원받은 단계요, 믿음의 2단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라 했습니다. 2단계에서는 말씀을 알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서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때로는 말씀을 어기고 육체의 일을 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것처럼,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믿음이 성장하여 점점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분량이 많아지게 되지요. 그래서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 되면 바로 믿음의 3단계로 올라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는 행할 수 있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2단계에서는 말씀대로 행하지 못해 육체의 일을 범할 때도 있지만 3단계에 이르면 당연히 육체의 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지요. 3단계에서는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일 성수나 십일조에 대해서도 그냥 알기만 하는 것과 깨닫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여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 한 주간 재난이나 질병, 사고에서 지키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시지요.
      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여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함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어떤 열매도 거둘 수가 없지요. 그러니 우리의 모든 수입이 결국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중 십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쓰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릴 때 하나님께서 물질의 손실을 입지 않게 지켜 주시고 창고가 넘치도록 축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지요(말 3:10).
      이렇게 영혼이 잘되어 질병과 시험 환난이 떠나고 물질의 축복을 받는다고 해도 여전히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거나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머리로 들어서만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야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가 축복이라는 것을 정말 마음으로 깨닫게 된다면 반드시 온전히 행하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행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에서부터 깨닫지 못하므로 행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렇게 깨달아서 행하는 3단계와 깨닫지 못한 2단계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믿음의 2단계에서는 깨닫지 못했다 할지라도 일단 들어서 알기 때문에 행하려고 노력은 해나갑니다. 기도하며 행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은혜를 주셔서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시지요. 그것이 은혜가 되고 능력이 되어 마음에 자신의 믿음으로 와 닿게 되며 그 후로는 능히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걷게 되는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누워서 손짓 발짓을 하고 기어 다니다가 두 발로 설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에 점점 다리에 힘이 생기므로 마침내 걷고 뛸 수 있게 되지요. 믿음도 마찬가지로 말씀을 듣고만 있다고 해서 행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이 오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행하려고 노력해 나가야 행하려는 그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깨달아지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지요. 이렇게 노력한 것이 하나, 둘씩 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맺히게 되고 믿음의 확신이 생기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더 이상 짐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치 일상생활을 하는 것처럼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서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누리게 되지요. 눈에 드러나는 비진리는 거의 정리가 되었기에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제 육신의 일을 버리며 마음의 죄성까지 뽑아 나가는 단계입니다. 말씀이 온전히 마음에 임하고 악의 큰 뿌리마저 온전히 뽑힐 때까지 계속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나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해 갈 때 마음에 깨달음이 오고 깨달으면 쉽게 행할 수 있다 했습니다. 예를 들어, 데살로니가전서 5:16-18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마음에서 깨닫지 못한 사람은 고난을 만났을 때 기뻐하고 감사하려고 노력은 해보지만 형식적으로만 하게 됩니다. 마음에서는 여전히 "내가 이렇게 어려운데, 감사할 일이 아닌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기뻐하려고 노력은 해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찌하든 순종하기 위해 노력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지기 시작합니다. "잠시 잠깐의 고난이 있다 해도 영원한 천국에 갈 소망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나같은 죄인이 용서받고 구원받게 되었으며 믿고 구하면 응답받아 영광돌릴 것이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며 감사의 조건들이 깨달아집니다.
      또한 말씀대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면 시험 환난이 물러가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 점점 더 믿어지는 믿음이 오게 되지요. 말씀대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빛의 행함입니다. 시험 환난은 어둠인 원수 마귀 사단이 주는 것이지요. 캄캄한 방안에 불을 켜서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물러가듯이 중심에서 감사하고 기뻐할 때 그 영적인 빛으로 인해 시험 환난이 떠나가고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마음에서부터 깨닫게 되면 어떤 어려움을 만났다 해도 믿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가운데 시험 환난이 물러가는 것을 체험하게 되지요. 이런 체험으로 인해 마음에 더 확실한 믿음이 주어지고 다음에는 시험이 와도 더 쉽게 기뻐하고 감사하여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아무리 막막하고 어려울 때도 말씀의 의미를 마음으로 깨달을 수만 있으면 보이지 않는 축복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말씀대로 행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겉보기에 말씀대로 행한다 해서 무조건 믿음의 3단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그가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가에 따라 믿음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눈치가 보이고 주일을 어기면 재앙을 당할까 무서워서 예배에 나오거나 예배에 나온다 해도 졸음과 잡념 속에 드린다면 그를 믿음의 3단계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믿음이라는 것은 행함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변개함이 없어야 합니다. 심고 행하면 축복이라니까 심고 행하기는 했는데 생각한 만큼 빨리 축복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행한 것을 후회하거나 행하지 않던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사람은 마음으로 깨달아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단계에 이른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분량이란 것은 어느 한두 가지의 외적인 행함만을 보고 몇 단계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깨달아지고 믿어지는가를 통해 분별할 수 있는 것이지요.

      2.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3단계 반석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서 말씀대로 행한다고는 해도 처음에는 아직 마음에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는 남아 있는 죄성들이 있기 때문에 두 마음의 갈등이 여전히 있는 것입니다. 진리대로 행하기는 하되 그러면서도 선한 마음을 좇으려는 영의 생각과 악한 마음을 좇으려는 육신의 생각이 싸우는 것이지요.
      앞에서 설명한 대로 고난을 당하게 될 때 믿음의 2단계는 기뻐하고 감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결국 이기지 못하여 불평을 쏟아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는 고난 중에도 능히 감사하고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3단계라 해서 모두가 100% 온전한 기쁨과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지요.
      3단계 중에서도 초입이라면 어려움을 만나는 순간 "너무 힘들다" 하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낙심되고 충만함이 사라지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곧 성령의 음성을 들으므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데 내가 왜 낙심하는가 하고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여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으면 더 큰 감사와 기쁨이 솟아나게 되지요. 그러다가 3단계 중반 이후를 넘어서서 말엽이 되면 이제 육신의 생각이 많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갑자기 만난다 해도 낙심하거나 불평하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게 되지요. 혹시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친다 해도 즉시 그 생각을 몰아내고 감사와 기쁨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24-25에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하셨지요. 고린도전서 10:4에는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했습니다. 시험 환난에 믿음이 요동하지 않고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는 믿음이 되면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세워졌다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도 60% 이상이 되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더 이상 무겁고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반석 위에 세워진 믿음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70에서 80%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이때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마치 몸에 배인 습관처럼 저절로 나와지게 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순간의 육신의 생각조차 동원되지 않고 즉시로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영의 믿음, 곧 믿음의 4단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동료가 너무 무례하게 행할 때 믿음의 2단계에서는 기분이 상하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알기 때문에 감정을 삭이고 섬겨 주려고 노력은 해보지만 속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심히 불편하기도 하고 더 이상 참지 못할 때는 대놓고 짜증을 내어 버리기도 하지요. 3단계에서는 그렇게 화평을 깨는 일은 없습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하며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 상대가 원하는 대로 섬겨 주지요.
      그런데 아직 3단계 초입에서는 온전히 마음에 진리가 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단 마음에 불편한 생각이 떠오르기는 합니다. 그런 불편한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해도 아니야 하고 다시 생각을 바꾸며 마음을 돌려 좋게 생각하려 하고 선한 마음을 품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 반석에 서면 순간적으로는 혹시 불편한 생각이 든다 해도 즉시 영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고 평안한 마음으로 화평함을 좇아 상대를 섬겨 줄 수 있습니다. 그런 순간적인 생각조차 없이 온전히 죽어지는 밀알처럼 상대를 섬겨 줄 수 있다면 이때는 믿음의 4단계,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계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여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 안에 있는 죄성들을 발견할 때 그냥 흘려 버리지 말고 생명을 다해 부르짖는 기도와 금식, 철야나 작정기도를 통해 죄의 큰 뿌리까지 뽑아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이 임하고 결국은 죄성들이 하나하나 마음에서 버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결된 마음을 이루게 되면 여러분의 삶은 육의 차원에서 영의 차원으로 옮겨지므로 불통이 형통으로 변하고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항상 체험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영의 차원을 간절히 사모하여 신속히 죄를 버리고 성결된 마음을 이루어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12-05 오후 5:02:19 Posted
      2013-03-09 오후 9:15:19 Updated


    • 언어선택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