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계명(2)

    제2계명 [출20:4-6]
    2006.07.23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오늘은 십계명 두 번째 시간으로 우상 숭배를 금하신 내용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육적인 의미의 우상

      우상이란 "형태가 없는 신을 물질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어떤 형상"을 말합니다. 나무나 돌, 쇠붙이나 금, 은붙이 등으로 사람의 형상이나 땅 위에 있는 짐승, 곤충, 새, 물속의 어족이나 하늘의 해, 달, 별, 혹은 상상 속의 어떤 것을 물질적인 형상으로 만들어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 곧 우상 숭배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우상에는 생명이 없고 축복을 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사람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우상을 섬기며 그 앞에 복을 달라고 빌고 있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사 46:6-7). 뿐만 아니라 부적을 의지하거나 죽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는 등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행위들도 우상 숭배에 해당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헛된 우상을 만들고 경배하는 것은 사람에게는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져야 만족을 느끼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고 물질적인 형상으로 나타낼 수도 없으니 결코 어떤 형상을 만들어 하나님이라 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상 아닌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그림이나 형상을 놓고 경배하거나 혹은 동정녀 마리아나 믿음의 선진들의 형상을 만들어 경배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입니다. 동정녀 마리아나 믿음의 선진들은 피조물이요,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만 우리가 경배하고 기도할 대상이지요. 또 성자 예수님의 형상을 만들었다 해도 진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요, 화가나 조각가의 상상물에 불과하므로 이것에 경배하고 기도한다면 역시 우상 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까지 우상이라 하기도 하는데 십자가는 우상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복음의 상징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나무 십자가를 지셨고 보혈의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유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와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니 십자가 자체가 무슨 숭배의 대상이나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양을 안고 계신 성화나 최후의 만찬 등의 그림 같은 경우도 그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이나 그 행적을 표현하기 위한 그림일 뿐 성화를 신성시하며 경배하거나 기도하는 것은 아니지요.
      이렇게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하면 어떤 사람들은 "모세도 우상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민수기 21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하다가 사막의 불뱀에 물렸을 때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지요. 많은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는데,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뱀을 바라보기만 하면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놋뱀의 형상을 만들게 하신 것은 그 형상을 숭배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장차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로써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놋뱀을 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멸망받지 않았던 것처럼, 죄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가던 영혼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영접할 때 구원받고 생명을 얻게 됨을 나타내고 있지요. "모세도 우상을 만들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은 이런 영적인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왕기하 18:4에 보면, 오랜 훗날 히스기야 왕이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을 척결할 때에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곧 놋조각)이라 일컬었더라" 했습니다. 놋뱀이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됨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우상의 영적인 의미

      영적인 의미로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부모님이나 남편, 아내, 자녀 혹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이들이 영적으로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하나님께서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사랑한다 해서 그로 인해 진리를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면 이는 영적으로 우상을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곧 믿지 않는 부모의 마음에 맞추기 위해 주일을 어긴다면 이는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을 서운하시게 할 뿐 아니라 부모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사랑한다 할 수가 없지요.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가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줘야 참 사랑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주일을 지킬 뿐 아니라 속히 부모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전도해야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한다 할 수 있지요.
      부모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녕 자녀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아무리 자녀를 사랑해도 사람의 힘으로 원수 마귀로부터 지켜줄 수는 없고 불치의 병이 걸릴 때 치료해 줄 수도 없지요. 그러나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녀를 주 안에서 사랑할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자녀를 지켜 주시고 강건함을 주실 뿐만 아니라 범사에 형통한 복을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때라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라" 하시며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에 갔더니 하나님만 사랑하고 가족들을 사랑하지 말라더라' 하고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여 주일조차 온전히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누리는 명예와 권세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러한 모든 것이 영적인 우상 숭배가 되지요.
      어떤 사람들은 연예인, 운동선수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우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결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물론 연예인들의 달란트를 존중하고 좋아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된다면 그로 인해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가 없습니다. 이 외에도 어떤 사물이나 물건을 좋아하여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면 이런 것도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에 순종할 때와 불순종할 때의 축복과 저주

      출애굽기 20:5 후반절과 6절을 보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 순종하는 사람에게 내려질 축복과 불순종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지요.
      이때 하나님의 질투는 사람이 하는 질투와는 의미가 다릅니다. 사람의 질투는 육의 속성 속에서 비롯되는데 추하고 더러우며 상대에게 해를 입히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면 아내가 이를 질투하여 다투거나 주변에 알려서 수치를 당하게 하는 등 남편에게 해를 입히게 되지요. 그러나 영으로 남편을 사랑한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하였나, 정녕 남편을 사랑하고 섬겼는가" 등을 생각하며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자 하겠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랑의 질투를 하실까요? 만약 성도들이 우상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외면하시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도록 내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앙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공의의 법칙으로 인해 범죄한 사람을 사단에게 내어 주셔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이 각종 시험 환난, 재앙을 당하면 마음이 가난해져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질투하신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것은 자녀들이 죄로 인해 멸망의 길로 가지 않고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참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질투하지 않으셔서 범죄한 성도들을 외면하시지도 않고 내버려 두신다면 계속 범죄하게 되니 결국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가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주 아버지이시며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셔서 희생하시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마땅히 섬기고 공경해야 할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사랑하며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보응을 받게 되는데 그 죄가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이르게 된다 했지요.
      이 말씀대로 우상을 심히 섬기며 행악하는 가정에는 우환이 끊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질병이나 불구자, 정신 이상자 등이 나오고 물질의 어려움과 각종 환난이 끊이지 않지요.
      그런데 이런 재앙을 4대에 이른다고 단정하지 않으시고 3, 4대에 이른다고 표현하시므로 약간의 여지를 두신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의 표현입니다. 곧 조상이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대적했다 해도 자손들 중에서 회개하여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되므로 그 재앙이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도 쉽지 않고 주님을 영접한다 해도 조상들과 영적인 끈으로 묶인 것과 같아서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계속 송사하며 어찌하든 사망으로 끌고 가려고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럴 때도 끝까지 겸비한 마음으로 조상의 죄를 대신 회개하고 자신의 악을 버려나가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킴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천 대까지 곧 영원히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재앙은 3, 4대에 이르나 축복은 천 대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을 볼 때,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자신이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그 후손들에게도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상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 해서 후손들이 무조건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진리 안에 거하며 우상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을 때라야 윗대로부터 쌓인 축복들까지도 다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도 아니함으로 천대까지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07-25 오전 9:39:48 Posted
      2018-12-02 오후 4:24:41 Updated


    • 언어선택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