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40)

    3천층(5) [약1:12]
    2008.02.03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3천층에 들어갈 성도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비춰보고자 합니다. 이 시간 말씀드릴 성도의 사례를 통해서도, 많은 분들이 자신을 깨우치고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1. 성실한 신앙을 지닌 장로님

      오늘 말씀의 주인공이신 장로님은 항상 기도에 힘쓰셨고, 각종 예배에 잘 참석하시면서 너무도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목자와 영혼들을 사랑하여 틈나는 대로 열심히 전도도 하셨습니다. 모 대학교의 교수로서 국내 물리학계에서 인정하는 분이셨지만, 세상의 명예나 부는 조금도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든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렸고, 물질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오직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의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003년도에 장로님의 영혼을 불러가시면서, 장차 3천층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실히 신앙생활 했는데, 하나님께서 장로님의 생명을 거두시는 것은 어찌보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장로님 자신에게는 가장 큰 위로와 축복이었습니다.

      사실, 장로님에겐 이 땅에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성결 되기를 너무나 사모했고 새예루살렘에 대한 사모함도 컸지만, 오히려 그 사모함이 무거운 짐이 되었던 것입니다. ‘꼭 성결되어야 하는데’ 라는 부담감으로 마음은 늘 무겁게 짓눌렸고, ‘나는 너무 부족하다’는 자책감까지 밀려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짐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장로님은 몸을 혹사시킬 정도로 그처럼 성실한 행함을 통해 마음의 무거움을 덜어내려 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도 이분과 비슷한 유형의 신앙 스타일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충성해서 꼭 열매를 내야 되는데’ 하면서 고민하고, ‘새예루살렘에 가야 되는데’ 하고 조바심을 냅니다. 그렇지만 성결도, 새예루살렘도 내가 고민하고 염려하거나 노력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도저히 이룰 수 없습니다.

      2. 잘못 형성된 성격의 틀

      장로님의 경우와 같이, 스스로의 의무감과 부담감으로 인해 마음의 고통을 받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경우가 생기는 것은 그 사람의 ‘성격의 틀’ 때문입니다.

      1) 장로님의 성격의 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어려운 일에도 “잘 될 거야. 할 수 있어” 하면서 여유롭고 넉넉한 모습을 보입니다. 늘 밝은 모습인 것입니다. 반면에, 많은 근심과 걱정 속에 사는 사람들은 성격이 어둡습니다. 식욕도 떨어지고 기(氣)도 빠지며 건강도 나빠집니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살도 잘 찌지 않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은 가정의 불화로 어려서부터 어둡고 부정적인 성격으로 자기를 형성하며 성장했습니다. 늘 우울했고 깊은 근심이 있었습니다. 근심으로 인해 생각에 생각이 동원되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었으며, 작은 자극 하나를 받아도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상처가 치유되기까지의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로님이 소천하기 4년 전에 이분의 성격의 틀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서, 근본적으로 성격을 개조해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어두운 성격은 신앙 안에서도 영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므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 어떤 것도 넉넉히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잘못 입력된 신앙관도 문제였습니다. 자신을 정죄하며 스스로를 압박하는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지요. 작은 잘못이나 자신의 부족함에도 심히 자책하고 스스로 정죄함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다 했지만, 이러한 잘못된 신앙관이 잘 깨어지지 않으므로 늘 주님의 보혈의 공로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는 애절한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장로님의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부모님께 어떤 잘못을 했습니다. 그러나 금방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는 그 잘못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가 부모님을 뵐 때마다 “그때 너무 죄송했어요. 잘못했어요.” 하면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부모님은 이미 다 용서해 주셨고 벌써 잊어버리셨는데, 자녀가 매번 용서를 구한다면 부모님의 마음도 민망한 일입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는 온전히 성결 되기까지는 죄를 벗기 위해 마음을 찢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진리를 번연히 알면서도 죄를 지었다면 철저히 통회 자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영으로 변화되어 가는 중이라면 그것 때문에 낙심하고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민망하기는 하지만, “발견케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면서 불같은 기도로 능력을 받아 즉시 버리는 편을 택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인정하고 변화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녀를 보실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악이 발견되었다고 힘을 잃고 낙심하는 자녀를 보신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도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습니까.

      2) 성격의 틀로 인한 신앙생활의 어려움
      장로님은 자신의 성격의 틀로 인해 잠시도 마음의 쉼을 얻지 못했습니다. 너무도 영으로 변화되고 싶었지만, 노력에 비해 변화 속도가 느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오기 전부터 있었던 질병도 완전히 치료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장로님이 안타까우셔서 성격의 틀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서, 근본적으로 성격이 개조되어야 몸도 건강해 질 수 있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발견’ 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너무나 감사하며 허약했던 몸도 회복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발견한 자체가, 그리고 그것을 깨트려 버려야 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발견했을 때는 순간 기뻤지만, 이내 다시 더욱 자신을 힘들게 묶어버린 것입니다. 엄청난 의지를 드려 더 많은 시간을 간절히 기도 했지만, 쉽게 성령의 감동을 입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틀 속에서 ‘내가 어찌하든 많이 기도해야 한다’는 의무감, 곧 자기 스스로 하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성격의 틀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를 형성하고 있던 것이기에, 자기 힘과 의지만으로는 안 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폭적으로 믿으며 온전히 나를 맡겨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정녕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나님 앞에 자기를 비운 사람은 “아버지!” 하고 한 번만 부르짖어도 성령의 감동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은 자기의 틀 속에서 기도함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기가 그만큼 힘들었기에 가혹하리만큼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철저하다 보니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도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도 상대방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서 충만하고 힘을 얻게 해 주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을 마음의 부담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영혼들이 장로님 주변에 깃들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좋은 분인 줄은 알지만, 편하게 가까이 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던 것입니다.

      3. 사랑과 공의 가운데 이루어진 믿음의 테스트

      장로님은 이러한 성격의 틀을 온전히 깨트리지 못했습니다. 몸과 마음은 다시 쇠약해 졌고, 질병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장로님의 질병을 치료해 주실 수 있었지만, 장로님은 그 단단한 성격의 틀을 깨트리지 않는 한 단 하루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편하게 살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이 이 세상에서 힘들게 살게 하느니 참된 안식을 얻도록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당시 장로님은 온전히 성결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2천층 밖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장로님은 간절히 새예루살렘을 소망하고, 목자를 사랑하고, 영혼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너무도 성실한 행함을 보였습니다. 항상 쉬지 않고 기도했으며 늘 충성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축복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바로 3천층의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을 증명하는 테스트로서, 자신의 생명이 달린 상황 앞에서도 끝까지 순교의 믿음을 내보일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살아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분명히 성결될 수 있습니다. 장로님 역시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결국 성결을 이루어 낼 중심이었지만, 그러기까지는 자신의 틀로 인해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일찍 부르시어 무거운 짐을 덜어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장로님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중에도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치료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고, 자신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관하시도록 온전히 맡겨 드렸습니다.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기도와 예배 등 하나님 앞에서의 성실함은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걷기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있는 힘을 다해 성전에 나와서 예배에 꼭 참석했고, 꼭 자기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힘이 없어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속으로라도 기도하려 했습니다. 장로님은 이처럼 끝까지 하나님 앞에 믿음을 지키고 변함없이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다 아시지만 아무 증거도 없는 사람을 무조건 3천층에 들이실 수는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그는 성결되지 않았는데 왜 3천층을 허락하십니까”라고 송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생명을 드리기까지 변함없는 행함으로 믿음의 증거를 보였습니다. 순교의 믿음의 테스트를 통과함으로, 공의 가운데 당당히 3천층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겸손과 선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틀을 깨트리면서 힘차게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02-05 오전 1:45:50 Posted
      2018-06-25 오후 5:15:4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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