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장(4)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고전13:2]
    2007.04.01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사랑장 네 번째 시간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 말합니다. 이 말처럼 요즘에는 국적을 넘어서 국제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들 중에는 자신의 나라를 떠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음식도 다르고 여러 가지 관습도 다르기 때문에 외국에서의 삶에 적응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지요.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세상의 어둠 가운데 세상의 법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아 하늘의 시민권을 갖게 된 후에는 세상에 있을 때 따르던 구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법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그러면 마치 외국 사람이 한국에 오래 살므로 “저 사람은 한국사람 다 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변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세상 사람이 아닌 하늘나라 시민의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3 전반절에 예수님께서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말씀하시고 에베소서 5:8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하므로 주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를 잘 알아도 그 아는 바를 행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이는 말씀을 아는 것에 불과할 뿐, 행하지 않으므로 여전히 어둠 가운데 있고 주님을 닮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을 사랑한다 고백할 수도 없지요.

      그러므로 이 시간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하신 말씀의 의미를 증거할 때, 여러분 모두는 ‘말씀대로 행하는 사랑’, 곧 ‘참된 영의 사랑’을 온전히 이루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언하는 능과 모든 비밀, 모든 지식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씀드렸고 사랑이 없으면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증거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언하는 능은 은사로서의 예언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장차 될 일을 안다는 포괄적인 의미의 예언이라 했지요.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장차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것과 심판이 있을 것, 천국에 가게 될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잘 알아도 마음에 사랑이 없으면 그 뜻 안에 살지 않으므로 자신에게도 유익될 것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뜻과 섭리를 세상에 전한다 해도 내가 빛이 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또 모든 비밀이란 바로 구원의 도인 ‘십자가의 도’이며 모든 지식이란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를 아는 지식’이라 했습니다. 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음을 말씀드렸지요.

      많은 진리의 지식을 알아도 사랑이 없으면 그 진리에는 능력이 없고 영혼에게 생명을 줄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지식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대가 되는 등 선하지 않은 목적으로 쓰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모든 능력이나 지식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오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 안에서의 모든 능력과 지식 위에 참사랑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시간, 어떻게 하면 참사랑을 이룰 수 있는지를 말씀드릴 때 여러분 모두가 말씀대로 행하기를 결단하고 또 결단하셔서 참사랑을 이루심으로, 알고 있는 모든 진리의 지식들이 참 생명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여 많은 말씀을 알고 어느 정도 충성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 ‘나는 그래도 이만큼 주님을 사랑한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 중심은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참으로 주님을 그만큼 사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많은 선과 사랑의 말씀을 들었기에 단지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말씀들도 마치 자신의 마음에 이룬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요.

      따라서 자신의 마음에 얼마나 영적인 사랑을 이루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한데, 그 한 가지 방법이 시험이나 환난을 만났을 때의 마음과 행함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해도 주님을 향한 마음이 변함없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면 그만큼 마음에 참사랑이 임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반면에 원망하고 불평하며 세상의 방법과 사람을 의지한다면 그 사랑은 지식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고요.

      예를 들어 여러분 자신이 어느 날 갑자기 중한 질병에 걸려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요? 들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이심을 압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료받은 무수한 사람들도 보았지요. 또한 말씀을 통해 시험은 축복이며 축복의 연단 뿐 아니라 죄로 인해 받는 징계마저도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도 오지 않고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가 아닌 원망과 불평만 나온다면 이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머리에 지식으로만 알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그러니 지금까지 들어온 많은 진리의 말씀도, 보고 체험한 하나님의 능력도 머리로 아는 것일 뿐이며 문제를 해결 받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식으로만 아는 사랑은 시험을 통해 확연히 구분됩니다. 이는 마치 위조지폐가 진짜 돈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사실은 돈이 아닌 종잇조각에 불과하여 돈으로서 조금의 가치도 없음이 밝혀지는 것과 같지요.

      반면에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을 가진 사람, 곧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시험이 왔을 때도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만 해도 자녀들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재앙을 만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과 사랑을 온전히 이룰 때까지는 때를 따라 이런저런 이유로 시험이 올 때도 있지요. 이때 로마서 5:3-4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신 말씀이나, 데살로니가전서 5:16-18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신 말씀을 지식으로만 아는 사람은 쉽게 좌절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이 말씀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이라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변함없이 믿어지므로 말씀을 의지하여 시험도 능히 승리해 나갈 수 있지요. 말씀대로 행함으로써 그 마음에 사랑, 희락, 오래 참음, 온유, 절제 등 사랑의 속성들이 임해 있기 때문에 쉽게 하나님을 떠나는 일도 없고 어떤 연단이든 감사함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험이나 환난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기도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제 어느 정도 신앙이 성장하여 믿음이 반석 위에 서신 분들이라면 어떤 시험이 와도 원망이나 불평 등으로 하나님을 심히 서운케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따라서 이런 분들은 연단이 왔을 때 얼마나 중심으로 감사하는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만을 좇아 행하는지 살펴볼 때 참사랑을 이룬 정도를 스스로 점검해 볼 수 있지요.

      결국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참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참사랑을 할 수 있는 마음을 이룰 때, 곧 비진리가 없는 영의 마음이 될 때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영의 마음이 되려면 진리를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내 안에, 나의 것으로 임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사람이 밥을 먹을 때도 음식물을 씹어서 삼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먹은 음식을 잘 소화시켜서 영양분을 흡수해야지만 온몸에 힘이 나고 호흡 등의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져 생명도 유지하고 활동도 잘할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었으면 잘 소화시켜서 온전히 양식 삼아야 자신의 것이 되어 그 말씀이 생명이 되고 유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말씀을 양식 삼아 나가는 것이 바로 말씀대로 행해 나가는 것이지요. 들은 말씀대로 죄는 싸워 버리며 선을 행하고 희생하며 헌신할 때 여러분의 마음 안에 참사랑이 임하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안에 임한 사랑이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살리게 되는 것이고요.

      물론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다 보면 처음에는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기도 합니다. 주님을 알기 전, 세상에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 육신의 소욕을 좇아 살던 구습이 하루아침에 벗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작은 것부터 행하고 꾸준히 행하다 보면 점점 마음 안에 사랑이 임하게 되고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의사가 되려는 의대생들은 사람의 신체 등 여러 가지 의학 이론을 공부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이론을 안다 해도 수술이나 실험 등의 실습을 통해 이론을 적용시키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많은 지식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는 것을 잘못 사용하면 자칫 사람의 생명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실습’해서 아는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영적인 사랑을 이루고자 할 때도 이와 마찬가지로 아는 것을 행해 나가는 훈련의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여러분은 육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아니라 많은 영혼들을 영원한 사망에서 살리는 영적인 의사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고 계시지요. 세상에서 상처받은 많은 영혼을 사랑으로 치료하며 생명을 얻게 하는 사명을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때도 진리의 지식은 있는데 아는 것을 행하여 마음을 영으로 이루지 않으면, 의학 이론을 잘못 사용하여 생명을 위태롭게 하듯이 진리의 지식 또한 잘못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지식으로 상대를 판단하며 찌르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에 맞춰 말씀을 왜곡시키기도 하지요. 이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미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지식은 아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고 아는 것을 반드시 행하여 마음 안에 참사랑을 이루어야 하지요.

      이런 사랑의 능력을 이루려면 구체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로 ‘뽑아내는 행함’과 ‘심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뽑아내는 행함이란 마음에서 비진리를 뽑아내는 것을 의미하지요. 빛이 어둠과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 사랑이 임하려면 사랑과 반대되는 것들, 곧 미움,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등을 벗어버림으로써 마음 안에 사랑이 임할 자리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뽑아내면 그만큼의 사랑이 임할 수가 있는 것이고요.

      온전한 영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영의 마음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갓 나온 초신자들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들다’ 고백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사도 바울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도 온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죄와 싸우며 인내하고 수고하는 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7:24에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죄와 싸울 때의 심정을 고백했던 것도 볼 수 있지요.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얼마나 생명 다해 달려갔는지요. 말할 수 없이 많은 핍박과 환난을 당하는 자신을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혹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다”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수고하고 헌신해 나갔음에도 사도 바울은 ‘내가 이만큼 충성하니 되었다’ 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9:27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백할 정도로 자신을 무던히 복종시켜 나갔던 것이지요.

      사도 바울이 주님 앞에 존귀한 사람이 된 것은 뜨거운 열정으로 충성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처럼 끊임없는 수고와 노력함으로 죄를 온전히 버리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여 주님께 참된 사랑을 이루어 드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비진리를 뽑아버릴 때 바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 ‘심는 행함’이란 여러분의 마음에 용서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섬기는 마음 등, 사랑에 속한 마음들을 심어 나가며 진실한 사랑을 몸소 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5-16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말씀하신 것처럼 형제를 사랑한다고 해도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이를 참사랑이라 할 수 없지요.

      부모는 자녀가 아프면 밤을 꼬박 새워 돌보기도 하고 늘 수고하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자신은 조금 못한 것을 가지더라도 자녀에게는 예쁜 옷과 좋은 학용품을 사 주는 등 어찌하든 더 좋은 것,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 하지요. 바로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처럼 상대를 위해 자신의 것을 헌신하고 희생하여 주고 또 주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행함과 함께 여러분의 마음에도 차츰 자신보다 상대를 더 위해 주는 아름다운 사랑이 임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는 뽑는 행함과 심는 행함의 훈련을 통해 입술로만의 사랑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이 따르는 온전한 영의 사랑을 꼭 이루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랑이 풍성한 영의 사람이 되시므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또 모두에게 영적인 사랑을 베풀므로 큰 사랑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13장 2절 후반절을 보면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는데 어떻게 사랑이 없을 수 있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은 참으로 큰 믿음이지요. 그러나 믿음이 크다고 해서 사랑도 반드시 큰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성경 66권의 말씀을 다 믿으시는지요?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가른 기적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죽어 장사된 지 나흘 된 나사로를 말씀으로 명하여 살리신 것도 믿으시는지요? 아마 우리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권능을 통해 역사되는 많은 기사와 표적들을 보셨기에 성경에 있는 일들이 모두 믿어지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바울의 앞치마나 손수건을 가져다가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떠나는 희한한 능도 많은 성도님들이 몸소 체험하고 계시지요. 또한 여러분은 깊은 영의 말씀들을 많이 들어서 어떻게 하면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많은 체험들을 해 왔기 때문에 우리 성도님들은 대부분 믿음이 좋으신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을, 우리 주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첫째로 사랑하고 계십니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시는지요? 아무래도 아직은 담대히 “아멘!” 하고 대답하실 분들보다는 이 사랑을 이뤄 나가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과 사랑이 일치하지만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은 많은 표적과 기사 등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체험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늘 보고 체험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실 때는 예수님을 따라 자신도 물 위를 걷기까지 했지요.

      그러나 당시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것도 아니고 마음의 할례를 하여 영의 마음을 이룬 것도 아니었으므로 영적인 사랑이 임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체험적인 신앙으로 인해 믿음은 성장할 수 있지만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죄를 싸워 버리는 노력과 헌신, 희생이 따를 때 임하고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이 사랑과 무관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음으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사랑하고자 노력해 나가게 되지요.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구세주이신 주님을 믿으며 천국을 믿는 참 믿음이 있으면 죄를 싸워 버리고 성결되어, 참사랑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클수록 믿음은 당연히 큰 것이고요.

      그러나 들은 말씀대로 주님을 닮아가며 참사랑을 이루어가는 행함이 없으면,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이 있어서 아무리 충성하고 많은 일을 행한다 해도, 마태복음 7:23 후반절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말씀하신 대로 주님과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루는 모든 일들도 결국에는 참된 것일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참된 믿음 가운데 참사랑을 이루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천국에서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과 참사랑을 주고받으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면 꼭두새벽부터 더러워진 거리를 청소하시는 환경 미화원들을 볼 수 있는데, 그제야 ‘이처럼 수고하는 분들이 있어서 거리가 깨끗하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조금만 더 들은 말씀대로 행하고자 애쓰고 수고하면 우리를 구원하셔서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성실히 행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만 행함으로 사랑하는 증거를 내보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셨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끊임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지요.

      시편 121:4-6에 한 시편 기자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즉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고백한 대로 단 한 순간도 자녀들을 그 마음에서 놓지 않으시고 밤낮없이 정직과 성실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는 이런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심으로 천국에서 우리 주님을 뵐 때까지 행함과 진실함으로 주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진리의 지식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행하여 영의 마음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 했지요. 구체적으로는 비진리를 뽑아내고 진리를 심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 말씀드렸습니다.

      마음에 이 참된 사랑이 얼마나 임해 있는지는 시험이 왔을 때의 마음과 행함을 통해 점검해 볼 수 있다 했고요. 또한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며, 믿음이 크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도 큰 것은 아님을 말씀드렸습니다. 성도님들 모두가 오늘 들은 말씀을 힘써 행하심으로 영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더 크게 임하여 날이 갈수록 주님을 향한 사랑이 더 깊어지고 더 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04-03 오전 1:26:57 Posted
      2013-03-12 오후 4:00:3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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