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을 척량하시니(14)

    [겔 47:1-5, 갈 5:19-21]
    2012.06.17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지난 시간에는 ‘현저한 육체의 일들’ 중에서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갈 5:19~21).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현저한 육체의 일들 가운데에서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믿음의 경주를 하려면 말씀의 물에 잠겨야

      처음 수영을 배울 때는 대부분 물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조금씩 물에 익숙해지고 수영 실력이 느는 만큼 수영의 즐거움을 맛봅니다. 깊은 물에서도 담대히 수영을 즐기지요. 말씀의 물에 잠기는 일도 비슷합니다.

      믿음이 적을 때는 물 밖 곧 세상이 더 친근하므로 ‘말씀’이라는 물에 잠기는 일이 어색하고 더 나아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그러나 막상 말씀대로 하나 둘 행함으로써 말씀 안에 사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오히려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기며 사명도 잘 감당합니다. 세상 사랑했던 마음을 끊고 주 안에 들어와 말씀의 물에 잠겨 살면 즐겁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요.

      여러분은 말씀의 물에 어느 정도 잠기셨습니까? 이제 발만 겨우 담근 분들도 있고, 또는 조금만 더 분발하면 곧 온몸이 물에 잠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하여 많은 말씀을 듣고 교회의 머리급이라 해도 순종치 않으면 여전히 믿음이 2단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여러 가지 시험 환난에 늘 젖어 살게 됩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하셨습니다. 왜 무거운 것을 지고, 안으며 끙끙 대고 가십니까? 이런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산다면 얼마나 가볍고 행복하며 좋습니까. 죄의 결과는 뻔한데도 그걸 버리지 않고 갖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와 진리의 바다를 헤엄치는 희열을 간증해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죄’라는 족쇄를 차고 말씀의 물에 발조차 담그지 못한 채 고통과 두려움 가운데 사시는 분들이 계신지요?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현저한 육체의 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구원받지 못하는 죄에 해당하지요.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 모두가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죄를 다 벗어 버리고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진리 안에서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서 주실 평안과 상급을 소망하며 힘차게 믿음의 경주를 하시기 바랍니다.

      2. ‘분리함’과 ‘당 짓는 것’을 버려야

      지난 시간에는 다윗과 대조적인 인물들, 곧 사울 왕과 압살롬의 행위를 통해 원수 맺는 것, 투기와 시기, 분냄, 술수 중 술책, 분쟁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 육체의 일들의 근본에는 미움 곧 영적인 살인이 있습니다. 또한 탐심이 있지요.

      다음으로 설명드릴 ‘분리함’과 ‘당 짓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분리함’이란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자기적인 의나 욕심을 좇아 분리해 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자기의 유익을 좇아 분리되는 사람들은 대개 당을 짓습니다. 당 짓는 일 또한 현저한 육체의 일에 속하지요.

      저는 신학교 4학년 전도사 때부터 부흥성회를 다녔습니다. 그럴 때 보면 담임 목사님들이 제게 부탁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자기 교회의 당파 좀 분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 파, 장로 파, 권사 파 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의외로 당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30년 동안 당파라는 게 없습니다. 누구 파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띠, 진리의 띠로 하나가 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주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당 짓는 것’은 자신이 속한 그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그룹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입장이 비슷한 사람끼리 더 친하게 지내며 교류하는 차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모여서 본래 속한 조직이나 조직의 머리를 판단 정죄하고 비방하며 이에 대해 수군거리는 행위를 말하지요.

      이는 비단 세상에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섬기는 교역자와 마음이 맞지 않아서 또는 성도님들 간에 의견이 다르다 해서 파를 만들어 서로 갈라지는 일이 있습니다. 자신의 허물을 숨기기 위해 당을 지어서 교회의 머리를 중상모략 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모임은 사단의 회이며 당을 짓는 악행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며 성도들은 그 지체입니다. 따라서 분리하고 당을 짓는 일은 자기 악과 유익을 좇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찢고 나누는 일입니다. 얼마나 악한 행위입니까? 물론 교회의 머리나 일꾼들이 명백히 비진리를 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을 아끼는 성도라면 어떻게 행할까요? 서로 판단하고 비방하고 몰아내려고 하겠습니까?

      스스로가 판단 정죄하고 나뉘기 이전에 먼저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기도할 것입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판결과 역사를 기다릴 것이고요. 만약 그 일꾼이 하나님 앞에 합하지 않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치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웠으며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판단과 정죄를 해도 하나님이 하셔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다 인정받은 다윗은 사울이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을 죽이려고 군대를 몰아 쫓아다녀도 그가 기름 부은바 된 왕이기 때문에 대적지 않고 피하며 오히려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이 참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반면에 압살롬은 자신의 악과 유익을 좇아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그러기까지 그에게는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우선 아버지 다윗 왕이 아버지이자 왕으로서 큰 죄를 범한 암논을 징계하지 않은 일을 부당하게 여겼습니다. 전에 암논은 압살롬의 아리따운 누이를 억지로 범하여 욕되게 하고도 외면했지요.

      이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압살롬의 마음에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백성의 사랑을 받을 만큼 준수한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지요. 물론 권력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요.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압살롬을 옳다 하지 않으셨지요.

      압살롬은 이처럼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기적인 의와 유익을 좇았습니다. 한 나라의 왕자로서의 본분을 버리고 아버지 다윗 왕에게서 분리되어 나갔던 것입니다. 이때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을 비롯한 다수의 백성들도 자기 유익을 좇아 다윗에게서 나뉘어 압살롬을 따랐습니다.

      이런 모습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분리되고 당을 짓는 것은 미움, 의와 틀, 욕심 등 악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악을 마음에만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행하기까지 한다면, 더구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머리를 대적한다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3. ‘이단’에 관한 바른 분별이 있어야

      이 밖에 구원받지 못하는 현저한 육체의 일들 중에는 ‘이단’도 있습니다. ‘이단’은 한마디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에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를 보혈로 사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도 이단적인 신앙이 자신을 멸망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이와 함께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단의 성경적인 정의를 모른 채 남을 경솔하게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 또한 매우 큰 죄라는 점입니다. 이런 죄를 범하는 이들은 대부분 성경 이외의 잣대로, 즉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로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을 이단이라 쉽게 판단, 정죄합니다. 이는 주님을 대적하는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확실한 성령의 역사가 따르는 교회를 함부로 이단이라 정죄하면 이는 판단 정죄에 성령 훼방의 죄를 더하는 일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근거로 ‘이단’을 분별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22~23절에도 참 그리스도인과 거짓 그리스도인을 분별하는 명확한 기준이 나옵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즉 아버지와 아들 곧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시인하는 교회와 성도를 함부로 이단이라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관적인 잣대로 타 교단이나 교회를 이단이라 판단 정죄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군다나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기사와 표적, 권능이 따르는 교회를 이단이라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큰 죄이며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이 영적으로 심히 혼탁해지고 사람의 사상이나 철학이 발달하면서 참 진리는 오히려 배척하고 그릇된 이단 사상에 미혹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이단들 또한 말씀을 의지하여 분별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2~3절에는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했지요. 그런데 이때 예수를 시인한다는 것은 입술로만 “믿습니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행위’가 따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리 제단은 오직 주님 말씀대로 살기에 하나님께서 그 열매로 권능을 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대부분 어찌하든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시므로 이 권능을 체험하십니다. 또 권능이 담긴 손수건과 단물을 통해 성도님들이 직접 나타내기도 하지요. 시편 62편 11절에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증거를 가진 여러분은 굳건한 믿음 위에 서서 거짓에 미혹을 받는 일이 결코 없으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012-06-18 오후 11:18:19 Posted
      2012-06-29 오후 5:29:23 Updated


    • 언어선택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