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을 척량하시니(23)

    사망에 이르는 죄 (1) [겔 47:1-5, 요일 5:16]
    2013.10.06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농촌에서 논에 모내기를 한 후 한창 물을 대야 할 때 날이 가물어 버리면 논바닥이 드러나고, 가뭄이 오래 가면 쩍쩍 갈라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뿌리가 바싹 말라서 모가 죽고 말지요. 사망에 이르는 중한 죄를 지은 사람을 바로 이런 벼에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성경 곳곳에 기록된 ‘구원받지 못하는 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

      에스겔은 이상 중에 성전에서 물이 나와 성전을 두루 흐른 뒤 성전 밖으로 흘러나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는 성전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으로 퍼져 나감을 의미한다 했지요. 이 물은 점점 깊어지다가 강을 이루었습니다. 에스겔이 처음 이 물을 건널 때는 물이 발목까지, 다음에는 무릎까지, 다음에는 허리까지 찼습니다. 마침내는 헤엄칠 만큼 창일해졌습니다.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몸이 물에 잠긴 정도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정도, 곧 믿음의 분량을 나타내지요.

      하나님께서는 장차 백보좌 심판 때에 각 사람의 믿음을 측량하신 후 그에 따라 준엄한 판결을 내리십니다. 이때 바로 말씀을 기준으로 믿음을 정확하게 측량하시지요. 본문을 보면 주의 사자가 에스겔이 물을 건너기에 앞서 매번 일천 척씩 척량합니다. 이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각 사람의 믿음을 얼마나 정확하게 측량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측량하셨을 때에 물이 발목에도 미치지 못하면 즉 최소한의 분량인 1단계의 믿음도 갖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하는 죄들 곧 우상 숭배, 안식일을 범하는 죄, 십일조를 드리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죄, 갖가지 음행, 현저한 육체의 일들을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성경 곳곳에는 이와 같이 구원받지 못하는 죄들이 있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그중에서 대표적인 열네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죄라고 해서 다 같은 죄가 아닙니다. 죄 중에는 회개하면 바로 용서받을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죄가 있는가 하면 ‘그 죄를 범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신 무거운 죄들도 있지요. 예를 들어 초신자가 거짓말을 했는데 그로 인해 구원받지 못한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초신자라고 해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거나 음행을 할 경우에는 그 죄질이 다릅니다. 이런 죄들을 짓고도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고 계속 지어 나가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제 말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인 것은 설령 이런 죄를 지었어도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드릴 사망에 이르는 죄는 다릅니다.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지요.



      2. 사망에 이르는 죄

      요한일서 5장 16절 말씀에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선, 죄에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사람들은 사함 받을 길이 없음을 깨우칠 수 있지요.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이들을 위해서는 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즉 ‘본인이 용서를 구해도 또 주변에서 중보해도 소용이 없다.’는 단호한 말씀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망에 이르는 죄의 결과는 너무나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망에 이르는 죄는 구원받지 못하는 죄와 어떻게 구분될까요? 간단히 요약하면, 사망에 이르는 죄란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진리를 알면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중한 죄를 지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했습니다. 물론 이제 갓 신앙생활을 시작한 초신자는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구원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초신자는 아직 진리도 잘 모르고 믿음도 연약합니다.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의 경중을 보실 때 이런 점을 참작해 주십니다.

      그래서 새신자나 초신자가 구원받지 못하는 중한 죄를 지었다 해도 중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킨 후 그 죄성까지 버리기 위해 노력해 나가면 다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지요.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도 잘 알고 신앙의 연륜도 적지 않은 주의 종이나 일꾼이 구원받지 못하는 중한 죄를 범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그 범한 죄가 구원받지 못하는 죄의 차원을 넘어서서 사망에 이르는 죄가 됩니다. 왜 그런지 히브리서 6장과 10장에 그 이유가 잘 나와 있습니다.
      먼저 히브리서 6장 4~6절을 보겠습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다음으로 히브리서 10장 26~29절을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말씀합니다.

      이 두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구원받지 못하는 중한 죄를 범한 사람이 얼마만큼의 신앙 연륜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서 6장과 10장에서 가리키는 대상 즉 신령한 세계를 맛본 사람이나 진리의 지식을 받은 사람은 초신자가 아닙니다. 일꾼이나 장로, 주의 종 같은 직분을 받을 만큼 신앙 연륜을 가진 사람들이라 할 수가 있지요. 이런 사람들이 마음에 할례하지 않고 정욕에 이끌려 구원받을 수 없는 중한 죄를 거듭 행해 나가면 회개케 할 수 없고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러한 죄를 가리켜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님들 중에는 머리의 위치에 있지 않거나 어떤 직분을 받지는 않았다 해도 5년, 10년 많게는 30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신앙생활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대부분 영의 세계도 체험하셨고 진리의 말씀도 무수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종이나 장로, 머리 된 일꾼이 아니라 해도 오늘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잘 정립하셔서 경계의 말씀으로 삼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공의 가운데 구원과 응답의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

      구약이나 신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변개할 수 없고, 빼거나 보태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심판 날에는 그 말씀에 기준해서 정확하게 심판이 되어집니다. 이렇게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는 것을 저는 개척 때부터 많이 설교해 왔는데도 하나님 말씀을 무시해 버리고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 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회개해도 용서를 안 해 주신다고 했고, 하나님 앞에 구하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몸부림쳐 왔습니다. 제 몸이 엉망이 되더라도 함께 사역했던 주의 종과 레위족 등 수많은 사람을 잃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채우고 죄를 낱낱이 회개하면 중보기도를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게 아닌데 제 중보기도를 통해 저의 눈과 기억력이 흐려지고, 기가 다 소진되어 몸이 만신창이가 되면서 공의를 채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권능으로는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눈도 잘 보이고 기(氣)도 돌게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제가 원치 않는 것은 여러분이 계속 믿음의 반석으로, 영으로 들어와서 영의 평준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죄악으로 관영하여 믿는다고 하지만 깨어 있는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빛 가운데 기도하며 나간다는 우리 제단이 그러니 제가 해서는 안 될 기도를 하게 됐던 것입니다. 내가 천 명을 구원시킬 수 있다면 대신 지옥 불이라도 들어가겠노라고 기도했더니 원수 마귀 사단이 하나님께 송사한 것이지요. 그 기도가 참인지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제 기도가 거짓말이 아니라 참인 것을 믿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불같은 연단들이 계속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온갖 고통을 감수하면서 사랑으로 공의를 채웠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믿고 낱낱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 정화작업을 시켜 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단에서 찬양하고 율동하고 무용하는 예능위원회부터 시작해서 주의 종, 레위족, 장로님, 청년, 가나안, 아동과 중고등부 학생들까지 정화시켜 나가신 것입니다.

      저는 오직 순종만 할 뿐입니다. 제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야 하는데 은혜 주시고 믿을 만한 증거를 계속 베풀어 오셨습니다. 이 제단에 성경에도 없는 기이한 많은 기사와 표적을 펼쳐 보이신 것입니다. 수많은 잠자리 떼를 수련회 장소나 교회 상공에서 내려오게 해서 여름에 가장 지장 받는 모기, 나방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수련회 때에는 하나님이 잠시 외면하시니 갑자기 무더워지고 벌레 떼들이 금방 몰려와 새까맣게 덮는 것도 보았습니다. 물론 잠시 후에 다 물리쳐 주심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게 하셨지요.

      이번 수련회 때에는 두터운 구름층을 열어 하늘이 보이고 비를 그치게 했습니다. 그런 역사는 수없이 베풀어 왔습니다. 그래도 어떤 분은 ‘왜 저런 역사가 목자를 통해 나타나지?’ 하며 궁구하고 마음 문을 열어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것을 눈으로 보면서 무시해 버리고 듣지 않고 행치도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화시키신 것이지요.

      이로써 많은 이들이 믿음의 반석에 속히 들어올 수 있게 역사하셨고, 영을 향해 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새 예루살렘 소망도 주시고 더 나아가서는 새 예루살렘 본채 안에까지도 깊이 있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 세 가지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죄 사함의 기회를 많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양심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거듭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말씀 안에 거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013-10-07 오후 11:30:21 Posted
      2013-10-22 오전 2:38:0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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