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로부터 난 지혜(2)
    • 하나님의 지혜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을 받는 것과 흡사합니다. 마음에 악이 없는 것이 성결의 기본 조건이듯이 하늘의 지혜도 마음이 선한 만큼 더 섬세하고 깊이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는 항상 선한 방법으로 나옵니다. 마음에 악이 있으면 누군가 선한 지혜를 알려 준다 해도 그 방법을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먼저 마음의 악을 버리는 것이 지혜를 받고 지혜가 주는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마음에 악이 없는 사람은 대화할 때에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선한 표현을 씁니다. 곱고 은혜로운 말, 누가 들어도 덕스러운 말을 하지요.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만한 표현은 하지 않고, 선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선하고 덕스러운 말이나 선한 기도는 자신이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악이 있으면 은연중에 악이 배어나오지요. 반대로 마음이 선하면 자연히 선한 기도, 선하고 덕스러운 말만 나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이나 말로 인해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은 선한 의도로 말했는데 도리어 난처한 입장에 놓이거나 비방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럴 때에는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맡겨 드리는 것이 낫습니다. 자기 입장을 변명할수록 잘못된 인식만 쌓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변론하여 억울함은 밝혀낸다 해도 그 과정에 타인의 허물이 드러날 수도 있지요.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서로 감정이 상해 관계가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상대편에서는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니 더욱 감정을 품는 것입니다.
      차라리 잠잠하고 상대를 품어줄 때 진실이 전해져 자연스럽게 오해가 풀리게 되지요. 사실이 밝혀졌을 때에는 상대의 마음이 녹아져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외모가 출중하고 지혜도 뛰어났지만 마음이 악하여 자신의 지혜를 악한 데 사용했습니다. 압살롬은 이복 맏형인 암논이 자신의 여동생 다말을 범한 일로 분개하였습니다. 게다가 아버지 다윗왕이 암논에게 아무런 징계를 내리지 않는 것도 불만이었지요.
      그는 자신의 감정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2년 뒤, 압살롬은 양털 깎는 행사에 암논을 초대한 후 부하들을 시켜 그를 죽이고는 왕을 피해 멀리 달아나지요.
      시간이 흐르고 이 일로 슬퍼하는 다윗왕의 마음을 헤아린 요압 장군이 압살롬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왔지만, 다윗은 이후로도 2년 동안이나 그를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자신이 다윗왕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을 안 압살롬은 앙심을 품고 반역을 도모합니다.
      마침내 압살롬이 때를 잡아 반란을 일으키니 다윗은 황망히 쫓기는 처지가 되었지요. 압살롬은 다윗의 수하에 있는 모사 아히도벨까지 자기편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반역은 실패로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지혜를 어둡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히도벨이 단번에 다윗을 제압할 작전을 내놓았지만 압살롬은 다윗에게 유리한 작전을 제안한 후새의 말을 들었지요. 지혜로운 압살롬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시니 멸망의 길을 택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면 물거품처럼 헛된 것임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야고보서 3:17)

    • 2021.09.27  |  시사뉴스 [칼럼]  |  조회수:57
    • 감사
    • 2021.07.05  |  시사뉴스 [칼럼]  |  조회수: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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