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54)
서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선교팀 일행은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페루 연합 대성회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기도와 금식과 정성을 다한 선교 헌금으로 페루 연합 대성회에 동참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성도님들의 헌신과 정성이 모아져서 이처럼 크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돌아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정녕 이 땅의 것은 조금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천국을 소망하며 하늘에서 주어질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기에 이와 같은 믿음 있는 성도님들로 아버지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도 믿음 있는 성도들을 보면서 살전 2:19-20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말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성도님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만민 매거진을 통해 페루 성회에 관한 간단한 하이라이트를 보셨는데 돌아오는 주일부터 선교보고를 해 드리겠고 만민 매거진은 다음 시간부터 다음 금요일부터 본격적으로 페루 연합 대성회에 관해 방영이 될 것입니다. 거침없는 아버지의 역사 가운데 2004년도를 너무나 아름답게 마무리하시고 영광의 해 2005년을 맞게 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으심으로 기쁘고 행복하고 충만하게 2004년을 마무리하시고 2005년을 맞이하시는 만민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 론 /
1. 편협된 사랑을 가진 이삭과 리브가
이삭은 자신의 수명이 다했음을 느끼게 되자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에게 축복을 빌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에서였지요. 이삭은 에서와 야곱 두 아들 중에 에서를 더 사랑하였기에 에서에게 장자로서 받을 수 있는 축복을 빌어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것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미 태중에서부터 에서가 아닌 야곱을 택하셨고 그 사실은 이삭이나 리브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자신이 더 사랑하는 에서에게 장자로서의 축복을 받게 해 주려는 마음에서 이처럼 마지막 순간까지도 에서에 대한 편협된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를 지켜보는 리브가 역시 결코 고운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리브가도 이삭과 마찬가지로 자녀들에게 편협된 사랑을 주고 있었는데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했지요.
그러니 이삭이 에서에게만 축복해 주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리브가는 어찌하든 그 복을 야곱이 받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엿들은 얘기를 야곱에게 해주며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까지 알려 주지요. 그러나 그 방법은 선한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남편을 속이고 자기 아비를 속이는 방법이었지요. 바로 육에 속한 지혜가 동원되어 에서에게 빌어 줄 복을 야곱이 대신 받을 수 있는 간교한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지요. 염소의 좋은 새끼를 가져오면 리브가 자신이 이삭이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줄 테니 그것을 가지고 가서 에서 대신 축복을 받아오라는 것입니다.
이에 야곱은 모친 리브가에게 대답하기를 11-12절에 "내 형 에서는 털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했지요.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으로부터 보장받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을 빌어주면 그 복이 임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반대로 저주를 하게 되면 저주가 임하게 된다는 것도 알았지요. 야곱 자신과 형 에서와는 외모적으로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칫 아버지 이삭을 속이려 했다가는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게 되지나 않을까? 이것이 염려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곧 야곱의 속마음에서는 어머니 리브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은데 그렇다고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이유가 혹여나 아버지 이삭에게 들통이 나지나 않을까? 이것이 염려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지요. 즉 야곱은 지금 어머니 리브가의 제안이 진리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삭이 알아차렸을 때 오게 될 저주가 두렵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진정 야곱이 진리의 사람이라 선과 정도를 좇는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어머니 리브가가 자신을 위해 이러한 제안을 해 왔다 할지라도 단호히 거절을 했어야 하지요. 아버지를 속이는 일이요, 또 자기 어머니는 남편을 속이는 일이니 당연히 거절했어야 하는데 야곱 역시 에서에게 돌아갈 장자의 축복을 자신이 받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기에 어머니 리브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2. 장자의 축복을 받고자 리브가의 제안을 받아들인 야곱
리브가가 야곱에게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하자 야곱은 리브가의 말대로 새끼 염소를 취하여 오지요.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던 저주를 그 어머니가 대신 받겠다고 하니 야곱은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도 야곱의 속 마음이 나오고 있지요. 야곱이 어머니의 말을 듣고 간교한 방법을 동원했다고 하지만 결국 그에게도 장자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욕심과 간교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말에 따랐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이 선한 마음이었다면 선이 아닌 방법을 좇지도 않았을 것이고 어머니가 "너의 저주는 내게 돌리라" 한다고 해서 그 말에 즉각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았겠지요.
그런데 리브가 역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야곱에게 축복이 돌아가게 하려는 마음에서 너무나 쉽게 입술의 말을 내었던 것을 봅니다. 잠 18:21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는 말씀처럼 말 한마디가 생각지 못한 열매로 돌아올 수 있기에 입술의 말이라 해서 결코 쉽게 내어서는 안 되지요. 리브가는 이렇게 쉽게 낸 말 한마디로 인해 남은 여생을 마음의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결국 그처럼 사랑하던 아들을 멀리 떠나보내야 했고 아들이 타지에서 20년간이나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며 리브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더구나 에서가 야곱을 원수처럼 여기면서 그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아는 리브가로서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육신의 생각을 동원한 결과 이처럼 가족의 화평이 깨어지고 헤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을 맞으면서 리브가는 자신의 말로 인한 열매를 먹게 된 것이지요.
사람이 연단을 받게 되면 자연히 마음의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이는 연단을 받아 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체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어차피 연단은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되어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인데 이렇게 마음의 고통이 따르는 연단을 받으면서 사람은 자기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고 사람의 생각과 방법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되지요. 사람이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좇지 않고 사람의 생각과 방법을 좇았을 때는 반드시 연단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야곱 역시 결국에서는 변화되어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중심이었지만 아직 그에게는 깨어지고 변화되어야 할 분야가 많기에 이처럼 자기 욕심 가운데 연단의 길을 자초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본문의 내용을 보면 야곱이 이렇게 간교한 방법을 썼음에도 결국은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이삭이 그에게 축복을 빌어 준 대로 야곱은 결국 장자의 명분을 잇게 되지요.
그렇다면 야곱은 이처럼 간교한 방법을 썼음에도 왜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삭을 통해 장자의 축복권을 받도록 허락하신 것일까요? 비록 야곱이 간교한 방법을 쓰기는 했으나 이는 악한 자가 궤계를 쓰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기 위해 치밀하면서도 간교한 방법을 썼지요.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편으로 돌리고 자기 세력을 구축하여 마침내 다윗을 몰아내고 성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그처럼 치밀하게 준비했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다윗 왕의 편이셨지요. 결국 압살롬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때 육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압살롬이 궤계를 부린 것이나 야곱이 간교한 방법을 쓴 것이 비슷하게 보일지 몰라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편에서는 근본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압살롬의 궤계나 야곱의 간교한 방법이 모두 악한 것임은 맞습니다. 하지만 압살롬의 경우는 자신이 취하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정말로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고 반면에 야곱은 그 마음이 근본 악해서라기보다는 욕심을 이루려는 마음에 그만 육의 방법을 좇게 된 경우라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것도 근본적으로는 간교한 속성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이런 마음으로는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은 하시되 연단을 통해 근본의 악까지 철저히 발견하여 벗어낼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압살롬과 야곱의 경우가 단순히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비슷할지라도 원인은 전혀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어찌되었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가 받아야 할 축복의 기도를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전에 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샀던 사건이 너무나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으로 입술을 통해 장자의 명분을 넘긴다 말했고, 야곱은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기에 이미 영적으로 거래가 성사된 것이었지요. 이미 영적으로 주고받고 또 대화까지 입술로 냈으면 영적인 거래가 성사가 되었다 이 말입니다. 사람은 문서에 사인을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도장을 찍어야 하지만 영적인 세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입술의 말이 바로 계약서이고 도장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진실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장자에게 돌아갈 축복의 기도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선하고 좋은 마음에서 정당한 절차를 좇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중심으로 세우시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3.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야곱에게 입힌 리브가
리브가는 장자에게 돌아가는 축복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이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 야곱에게 돌아가기를 너무나 바랬지요. 그만큼 영적인 축복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리브가가 아들 야곱을 변장시키기 위해 에서의 옷을 고르는 장면에서도 나오지요.
15절에 "리브가가 집 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했습니다. 어찌하든 에서의 흉내를 내야 하니까 아버지를 속이려고 하니까 옷까지도 좋은, 거기다 에서의 옷을 입혔다 이 말입니다. 야곱을 축복의 자리에 보냄에 있어서 의복을 대충 갖추도록 한 것이 아니라 비록 에서처럼 변장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에서의 옷 중에서 좋은 의복을 취하였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별미와 함께 좋은 의복으로 갖춰 입은 후에 아비인 이삭 앞에 나가 축복을 빌어 달라 청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 앞에 나와 축복받기를 구하는 사람에게도 동일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 앞에 나와 무엇인가 얻기를 구할 때는 그에 합당한 믿음의 행함을 내보여야 하지요.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마음과 정성을 담아 드리는 예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그와 함께 또 한 가지를 말씀하고 있지요. 그것은 바로 좋은 의복을 갖춰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도 하나님 앞에 좋은 옷을 입고 나와야만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구약 시대는 행위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행위적으로 좋은 의복을 갖춰 입는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 나올 때의 마음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옷은 영적으로 마음을 뜻하는 것으로서 좋은 의복을 갖춰 입고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좋은 마음으로 나와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더럽고 때 묻은 의복이나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아무 때나 막 입는 의복이 아닌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귀한 의복처럼 선하고 아름다운 영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 앞에 열심히 심는데도 아직 그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가 바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직은 그 마음이 준비되지 못한 경우이지요. 막 4:8에도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가 되었느니라" 말씀하셨듯이 좋은 밭 즉 좋은 마음을 일구었을 때 영육 간에 놀라운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행위적인 구약 시대에서 어떻게 해야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 그에 대한 영계의 법칙을 알았기에 이처럼 별미를 준비함과 동시에 좋은 의복을 취하여 야곱에게 입혔던 것이지요.
4. 야곱과 리브가의 간교한 꾀에 넘어간 이삭
이처럼 야곱은 에서처럼 변장을 하고 아버지 이삭 앞에 별미를 가지고 나아가 그것을 먹고 마음껏 축복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이때 이삭이 아무리 눈이 어둡고 나이가 들었다 할지라도 에서와 야곱의 목소리 정도는 구분할 수가 있지요. 물론 야곱이 에서의 목소리처럼 연습하고 흉내를 냈겠지만 그래도 구분은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삭은 야곱을 가까이 불러 그를 직접 만져 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이미 염소 털로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을 꾸몄고 형 에서의 옷까지 입었지요. 그러자 이삭은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야곱에게 축복을 빌어 주게 되지요. 이러한 상황이 좀 어리숙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삭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가 이처럼 속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의 마음에는 오직 에서에게만 축복을 빌어주려는 마음이었고 그래서 별미를 가져오라 시킨 것도 에서에게만이었지요. 이삭의 마음에는 온통 에서에게 축복을 빌어줄 마음으로만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삭은 별미를 가지고 자기 앞에 나온 것이 야곱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지요. 야곱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손을 만져 보고는 이내 안심하고 그에게 축복을 빌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 마음에 이미 정한 바가 있고 그것을 밀고 나갈 마음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마음에 정한 대로 행해 나갔던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삭이 속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들어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이 그 마음에 욕심이 없었고 선하며 진실된 마음을 가졌다면 이런 상황에서 야곱과 리브가의 간교한 꾀에 넘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지요. 자기 욕심 가운데 자기 뜻만을 좇으려다 보니 주변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는 가운데 속게 된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왜 사기를 당하고 이런저런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이겠습니까? 결국은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있기 때문에 진리로 정확하게 분별을 하지 못하게 되지요. 진리 안에 정도를 걷는다면 속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한편 마음에서는 좀 미심쩍고 수상해 보여도 다른 한 편 마음에 있는 욕심이 워낙 크기 때문에 좀 의심스럽다 하는 마음을 접어두고 결국 욕심을 좇아 행해 나가더라는 말입니다. 욕심에 눈이 가리워 분별력이 떨어진 것이고 욕심을 좇다 보니 성령의 음성이 들려와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마음에 사심이 있고 욕심이 있으며 편협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정확한 분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아직 육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한편 사람을 더 좋아하고, 다른 한 편 사람은 덜 좋아하는 상황이라면 또는 한 편 사람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상황이라면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공평한 판단을 할 수가 없지요. 한쪽 말만 듣고 그 말만 믿는다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쪽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므로 상대적으로 다른 쪽 사람에게는 불이익이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잠 11:1 후반절에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매사에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이는 바로 마음에 사심이나 욕심이 없고 거짓이 없는 영의 마음일 때만이 온전히 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은 에서만을 더 사랑하고 그에게만 복을 빌어 주고자 하는 편협된 마음과 욕심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능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만 간교한 꾀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삭과 리브가와 에서와 야곱, 가족들 간에 시작된 연단은 누구 한 사람의 악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편협된 사랑의 마음과 자기 뜻을 좇고자 하는 욕심,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는 마음과 경솔하면서도 충동적인 마음, 간교한 마음 바로 네 사람의 이러한 마음들이 섞여서 결국 가족 간에 불화와 이별, 마음의 고통과 슬픔 등을 가져오는 연단이 시작된 것이지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해 주는 내용과 뒤늦게 별미를 준비하여 온 아들 에서는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화평"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모든 사람과 평화를 이루는 마음,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마음, 내 믿음에 맞추지 않고 상대에게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아 은혜를 끼치는 마음, 나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걸림이 없는 마음, 언행에 편벽이 없는 마음이라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화평에 대해 얼핏 생각하면 단순히 다른 사람과 걸리지 않는 마음, 이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더 깊은 차원의 화평은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의 화평도 깨어지지 않고 오히려 나로 인해 모든 사람이 더욱 화평해질 수 있는 마음이지요. 그러려면 앞서 말씀드린 화평의 마음 중에 언행에 편벽이 없는 마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머리된 사람이 아랫사람들을 치리하면서 특정한 사람만을 편애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불편해지게 되지요. 물론 모두가 영의 마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육의 마음이 남아 있는 이상은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사랑받고 인정받을 때 함께 기뻐하기보다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머리된 사람은 이러한 사람의 마음까지도 헤아려서 결코 편벽된 마음이나 행함이 있어서는 안 되지요. "자기들이 악하니까 그렇지"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아직 영으로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헤아려서 나의 말이나 행동 또는 마음 씀의 편벽됨으로 인해 그들 사이에 화평이 깨어지는 일이 없도록 내 편에서 더 주의하고 마음을 써야 합니다.
이처럼 내 주변의 화평까지도 생각해서 더 넓은 마음으로 살피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화평의 열매를 맺은 사람이지요. 또 한 가지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연단을 받을 때 그 원인을 결코 다른 사람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으로 인해 야곱은 멀리 떠나가게 되고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는 마음까지 가지게 된 상황에서 만약 이삭이 리브가에게 "왜 당신이 그렇게 하였는가 당신이 그처럼 간교한 방법만 생각해 내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러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며 모든 탓을 리브가에게 돌렸다고 합시다. 그러면 리브가는 이삭에게 "당신이 에서만 사랑하고 그에게만 축복주려는 편협된 마음만 없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하며 이번에는 그 탓을 이삭에게 돌리겠지요.
또한 에서에게 "네가 경솔하게 장자권을 죽 한 그릇에 팔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말했다면 그는 "야곱이 악하고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거지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것입니까?" 하며 그 탓을 야곱에게 돌리고자 할 것입니다. 야곱 역시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것이구요. 매사가 이렇게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면 화평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생각은 여전히 자기만 옳은 것이지요.
여러분은 이것이 얼마나 소인배의 마음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자기만 옳다고 하는 것이 소인배라 이 말이에요. 그러니 많은 사람을 덕으로 사랑으로 다스릴 수가 없지요. 상대의 마음도 읽을 줄 알고 상대의 마음도 사야 하며 상대의 마음도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이해해 주려고 해야지 무조건 "당신 옳지 않아,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니까, 그것은 당신이 몰라서 그래" 이래서는 아니 된다 이 말입니다.
이처럼 서로 남의 탓만 하고 있다면 결국 자신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고 연단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탓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마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될 수 있는 축복의 길이 열리는 것이지요. 야곱은 20년의 연단 끝에 마침내 철저히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깨어지는 역사가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변화된 그를 쓰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연단을 받을 때에 가장 먼저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자신을 발견하고 깨닫게 하시는 것이며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던 근본의 악까지도 발견하게 되지요. 이러한 사실을 잘 명심하셔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연단을 통해 정금과 같이 나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29:52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