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46)
서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인인 아브라함으로부터 그의 아들 이삭을 위해 아내를 구해오라는 사명을 맡은 늙은 종은 마침내 아브라함의 고향 땅인 메소보다미아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의 성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때 이 늙은 종이 목적지를 미리 알고 일부러 그곳을 찾아갔던 것은 아니었지요. 늙은 종은 나중에야 자신이 주인 아브라함의 동생이 사는 성에 온 것임을 알고 27절에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늙은 종이 성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때라" 했는데 이 시간은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였지요. 이 시간 역시 늙은 종이 맞추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정확히 맞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도착한 장소와 시간까지도 너무나 정확했기에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이곳에서 리브가라는 여인을 순적히 만나게 되지요.
그렇다면 늙은 종은 어떠한 방법으로 리브가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일까요? 그의 방법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것이었으며 마음에 주관을 정확히 받아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본 론 /
1. 늙은 종이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를 만나 데려온 과정
그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13-14절에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했지요. 하나님께 확실한 징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의 이러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대로 역사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종이 말을 마치지 못해서 리브가라는 여인이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왔는데 이 여인은 종이 조금 전에 기도했던 내용대로 종이 물을 조금 달라하자 그에게만이 아니라 종의 약대를 위해서도 물을 길어 주었던 것입니다. 마치 자기가 했던 기도 내용을 들은 사람처럼 리브가는 너무나 정확하게 행동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광경을 보고 있는 늙은 종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주인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친히 모든 것을 주관하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격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하지만 늙은 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21절에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했지요. 단번에 아 이 여인이 찾던 여인이구나 한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인코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에게 금고리 한 개와 금 손목고리 한 쌍을 주며 묻기를 "네가 뉘 딸이냐 청컨대 내게 고하라 네 부친의 집에 우리 유숙할 곳이 있느냐" 하였지요. 그러자 이 여인은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대답했던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 이 늙은 종은 주인의 명에 따라 주인의 고향으로 떠나기 전에 당연히 주인의 가족 관계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고향에 누가 살고 있고 아브라함의 형제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 아브라함은 평소에 자신이 알고 있던 고향 소식을 이 늙은 종에게도 알려 주었지요. 그러했기에 늙은 종은 이 여인으로부터 나홀, 밀가, 브두엘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사 인도해 주신 결과임을 느낄 수 있었지요.
그래서 그는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 경배하며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이후 리브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어미 집에 고하였고 이에 리브가의 오라비 라반이 나와 늙은 종을 맞이하게 되지요. 그리고 라반은 종을 자신의 집으로 인도하여 대접하며 종으로부터 일의 자초지종을 듣게 됩니다. 늙은 종은 먼저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에 대해 소개를 한 후에 자신이 이곳에 왜 오게 되었으며 어떻게 리브가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정확하게 설명하지요.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리브가의 오라비 라반과 그녀의 아비 브두엘은 50-51절에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너무나 순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장면이지요.
이에 늙은 종은 먼저 땅에 엎드리어 여호와 하나님께 절을 한 후에 자신이 가지고 온 은 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보물을 줍니다. 모든 일이 형통하게 성사되었기에 이제야 늙은 종은 자신이 가지고 온 귀한 것을 리브가와 그 가족들에게 사례함으로써 주인의 마음을 대신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그곳에서 하루를 유숙한 종과 종의 종자들은 아침에 일어나 곧바로 길을 재촉합니다. 주인에게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리브가의 오라비와 어미는 그래도 리브가로 하여금 며칠은 자신들과 함께 머물게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늙은 종은 "나를 만류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대답하지요. 결국 리브가가 스스로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게 되었고 리브가는 종의 요청대로 즉시 그를 따라 길을 떠나기로 정합니다 .이렇게 해서 리브가는 유모와 비자를 함께 데리고 늙은 종을 따라 자신을 기다리는 이삭이 있는 땅으로 길을 떠나지요. 그리고 이삭의 아내가 되어 그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2. 아브라함의 늙은 종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들
(1) 하나님 앞에 징표를 구했던 늙은 종의 마음
성경에는 하나님을 시험치 말 것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늙은 종은 마치 하나님을 시험하는 듯한 내용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코자 함이 아니었지요. 어떤 욕심이나 사심을 품고 하나님 앞에 조건을 달아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인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에서 선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오늘날 사사로운 마음을 품고 하나님 앞에 조건을 달아 기도하는 경우들이 있지요. 예를 들어 "이 병만 치료해 주시면 내가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내겠습니다." 이것은 바로 조건부적인 신앙으로서 올바른 신앙의 자세도 아닌 것이고 참 믿음이라 말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그저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늙은 종은 요행을 바라거나 어떤 조건을 내걸고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주인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마음에서 이와 같은 기도를 올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나를 시험한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마음에 감동을 입으시고 그의 기도대로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성경 상에 보면 조건 없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렸던 예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이지요. 그들은 왕이 만든 신상 앞에 절하지 않는다 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당장 던져지게 될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아무런 조건 없는 무조건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 3:16-18에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을 능히 풀무불 가운데서 건져 내실 수 있는 분임을 전적으로 믿지만 설령 그렇게 건져 내 주지 않으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사람의 생각 같아서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저희들을 구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 계신 것을 나타내 보여 주시고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저희들도 더 하나님을 잘 섬기겠나이다" 기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는 결국 자신들의 생각 가운데 조건을 거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자신들의 생각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맡기는 절대적인 신뢰와 확신을 내보였던 것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늙은 종도 하나님 앞에 어떤 표징을 구한 것은 하나님을 시험코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기며 주인 아브라함을 보시고 순적히 역사해 주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했던 아브라함의 늙은 종
늙은 종은 자신이 기도했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성급하게 일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셨는지 그 여부를 다시 한번 정확히 확인코자 하였지요. 그렇다고 이것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한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역사를 분명히 믿지만 더 신중하고 확실하게 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데 어떤 분들은 자신의 생각 속에 어떤 것을 정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이 팔리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 이번 달 안에 팔리게 해 주세요" 하면서 자기 스스로가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정말 자신이 기도했던 대로 그 달 안에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아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셨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하고 이내 결정을 해버리고 말지요. 자신이 기도했던 대로 일이 되어지니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지만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어쩌다보니 자신이 정해놓은 대로 된 것이지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이것이 꼭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만약 결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하나님 제가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오늘 길을 가다가 제 마음에 꼭 드는 여자를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하면서 기도했다고 합시다. 그리고는 길로 나갔는데 자기 마음에 꼭 드는 여자를 보았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이런 식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응답을 받은 것이다" "성령의 주관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늙은 종은 하나님의 주관하심 가운데 기도하였고 그대로 응답이 되어졌음에도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신중하게 행동해 나갔던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정말 확실한 증거를 얻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응답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돌렸던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확실히 구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알았음에도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다고 하여 의심해서 다시 증거를 구하는 것과 오늘 본문에 늙은 종이 신중하게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3) 늙은 종이 리브가에게 준 금고리와 손목고리의 의미
고리에는 어떤 것을 속박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을 연결한다는 의미와 그것을 이룬다는 것을 확실히 규정짓는다는 의미가 있지요. 결국 늙은 종이 리브가에게 고리를 준 것은 일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확신의 증표로서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증거를 삼은 것입니다.
(4) 라반에게 정확한 사실만을 전달하는 아브라함의 늙은 종
34절부터 49절까지를 보면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라반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말함에 있어서 매우 정확한 것을 볼 수 있지요. 주인에게서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기도했고 그 기도대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가감 없이 정확히 설명했던 것입니다. 늙은 종은 주인 아브라함이 했던 말을 임의로 변개하거나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한 것이 아니었고 자기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대해서도 자기 임의로 판단하여 설명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늙은 종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했기에 라반이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 고백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늙은 종의 진실함과 정확함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듣는 라반의 마음을 주관하사 역사해 주실 수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많은 분들이 명심해야 하는 분야입니다. 중간에서 쓰임받는 분들이 진실하고 정확해야만이 사단이 역사를 못하지요.
예전에 제가 직접 양 떼를 관리할 때, 만약 어떤 양 떼가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제가 직접 심방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대신 사람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을 대신 보내면서 그분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하고 지시를 내리지요. 이때 대신 가서 전하는 분이 제가 전하라는 말을 그대로 전하게 되면 즉시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교회에 나오게 되었던 것이지요. 바로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거나 변개하지 않고 그대로 전했을 때 제가 한 말에 담긴 권세와 능력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지시를 받거나 말을 전해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임의로 그 말을 바꾸거나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경우들이 있지요. 마음에 명심하지 못하니 자신의 생각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구요. 그래서 결국 원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까지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가에서부터 나오는 문제이지요. 진실한 마음일 때만이 정확하게 말을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유익에 따라 말을 바꾸는 일도 없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좀더 설득력이 있겠다 생각할 수도 있으나 진실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역사를 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잠 12:19에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은 과연 얼마나 진실된 마음에서 입술에 정확한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5) 자기의 유익을 조금도 구하지 않는 늙은 종의 마음
늙은 종은 라반이 자신을 집으로 청하여 그 앞에 식물을 베풀고 대접할 때에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며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지요. 이렇게 먼 길을 왔고 상황을 볼 때 일이 잘 풀릴 것 같아 보이니 내가 잠깐 요기를 한 후에 이 사람과 대화를 해야겠다 이런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모든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되고 나서야 비로소 먹고 마셨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하루를 유숙한 후에는 곧바로 주인에게 돌아가기를 재촉했지요. 사명을 잘 완수했으니 이곳에서 며칠 쉬어야겠다거나 리브가의 가족들로부터 어떤 대접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한시라도 빨리 이 좋은 소식을 주인에게 전해드리기 원하는 마음이었고 애타게 자신과 며느리될 사람을 기다리는 주인의 마음을 먼저 헤아렸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디 조금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는 사명을 맡아서 완수하여 주인에게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온통 사명에 대한 마음뿐이었으며 일의 결과를 한시라도 빨리 알기 원하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이었기에 그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신뢰받는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하나님께서도 그의 길을 형통케 하신 것이지요. 모든 것을 주인의 마음이 되어서 일을 이룰 수 있는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은 자발적으로 평탄한 가운데 이루어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늙은 종만 주관하신 것이 아니라 리브가도 라반도 또한 그의 아비와 어미의 마음도 주관해 가셨던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래서 마치 모든 일이 이미 계획이나 되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 리브가의 오라비와 어미가 적어도 리브가와 열흘 정도는 함께 있다가 떠나보냈으면 할 때도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마음을 주관하시니 즉시로 늙은 종을 따라 떠나겠다 말을 하지요.
리브가가 육적인 정을 생각했다면 당연히 얼마 동안은 가족들과 있으면서 마지막 정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생길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리브가의 마음을 주관해 주시니 늙은 종이 원하는 대로 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늙은 종을 따라 떠나는 리브가에게 라반과 그의 어미가 축복의 말을 해 주었는데 이 역시 하나님께서 그 입술을 주관해 주신 것이었지요.
60절에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고백은 창 22:17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말씀하신 언약과 같은 맥락에서 주신 말씀으로서 이 축복은 훗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나신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지요.
이렇게 해서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어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에 동참하는 축복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 땅의 삶을 마치게 되는 내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좇아 순종만 해나간다고 하면 형통함을 받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막상 현실에 닥치게 되면 형통함을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나오게 되지요.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분명히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막상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일까요?
첫 번째로,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믿는다면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순종할 수가 있지요. 예를 들어 범람하는 요단강에 발을 내딛으라 하셨을 때 온전히 믿는다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요단강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그러나 온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은 지금 잘못 말씀해 주신 것 아닌가,어떻게 저처럼 사납게 범람하는 강물에 발을 내딛을 수 있다는 말인가하며 결국 순종이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실을 보고 순종을 못하니 당연히 형통함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사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도 내게 유익이 되는 것, 내 마음에 맞는 것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심이 있게 되면 처음에는 순종하는 것 같다가도 점차 점차 처음 주신 말씀에서 변질되어지고 맙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순종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니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주관하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성령의 주관이 아닌 자기 생각과 자기 뜻대로 해나가는 경우이지요. 이는 결국 마음 안에 그만큼 악이 있기 때문이며 육신의 생각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을 통해 주인인 아브라함의 말을 온전히 믿었고 전혀 사심이 없었으며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정확히 받아나가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이 능력이 되셔서 여러분의 삶에 형통함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감에 있어서 언제 어느 곳에든 마음껏 쓰임 받을 수 있는 귀한 도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30:26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