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45)
서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삼 1:2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보장해 주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지요.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몸이 쇠약해지거나 아팠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삭을 낳은 후에 더 강건하여져서 자녀를 여섯씩이나 더 낳을 수 있었지요. 또한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으므로 물질의 부요함만이 아니라 힘과 권세 역시 대단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또 한 가지 복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은 집의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이었는데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아내를 얻는 중대한 일 역시 이 늙은 종에게 맡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지시를 하면서 그의 손을 자신의 환도뼈 즉 넓적다리 뼈 밑에 넣도록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환도뼈는 영적으로 모든 것에 곧은 것을 의미하며 약속이 변치 않는다는 의미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인정하시고 이루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육적으로도 자신의 환도 뼈 밑에 손을 넣도록 한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종과의 관계가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가까운 관계라는 것을 말해주지요. 따라서 아브라함이 이처럼 자신의 환도뼈 밑에 종의 손을 넣도록 했던 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늙은 종이 그만큼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과 이삭을 통해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변치 않고 정한대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본 론 /
1. 아브라함이 늙은 종을 보낸 이유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함에 있어서 자신이 직접 나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기왕이면 아들 이삭까지 데리고 가서 마음에 드는 여인을 택할 수도 있었겠지요. 아브라함이 만약 많은 종들을 거느린 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와 권세를 드러내려 했다면 그것을 보고라도 많은 사람들이 사모하며 이삭의 아내 되기를 원했을 것이구요.
육의 사람들은 육의 조건만을 보기 때문에 육의 것에 끌리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아브라함은 오히려 육으로 보면 초라해 보이는 늙은 종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육의 조건들은 철저히 배제한 채 오직 하나님의 주관하심과 역사하심을 통해서만 이삭의 아내를 구하려 했던 것이지요.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온전한 순종으로 바로 이러한 주인의 뜻에 따랐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정말 중요한 영적인 것은 외면한 채 육적인 것에 치중하는 경우들이 있지요. 일반적으로 영적인 것이 부족할 때 이를 가리기 위해 육적인 것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생기게 됩니다.
쉬운 예를 들면 세상에서도 정말 실력이 있는 가수 중에는 굳이 외형적인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반면에 실력이 자신 없는 사람 중에는 의상이나 무대 등 외적인 것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실력도 있는 상태에서 의상이나 무대도 훌륭하면 더 좋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실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도 자신감이 없게 되면 오히려 육적인 것으로 덮으려 하기 때문에 더 육적인 것에 치중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전 4:20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씀하신 대로 말의 유창함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육적인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나오는 영적인 힘과 능력이 중요하지요. 내가 많이 배웠고 명예와 권세가 있으며 많은 부를 가졌다는 것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얼마나 영으로 들어왔느냐가 자신을 평가하는 진정한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이 어떤 조직의 머리된 사람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 영적인 기준에 합당한 사람을 머리로 뽑아야지요. 가끔 그렇지 못한 사람을 머리로 뽑아서 회원 전체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결코 육적인 것이나 외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육의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에 혹여라도 이삭의 육적인 배경을 보고 그의 아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간 것이 아니라 대신 외모로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늙은 종을 보냈던 것이지요. 아브라함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육적인 것을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왜 많은 종들과 가족들을 거느린 채 화려하게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성공했다" 하며 일가친척들 앞에서도 자랑하고 싶어 했겠지요.
만약 아브라함이 그렇게 했다면 그의 일가친척들 중에 아브라함의 육적인 배경을 보고 앞 다투어 이삭의 아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정말 하나님의 주관하심 속에 이삭의 아내가 되어야 할 여인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구요.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이처럼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아브라함의 뜻에 따라 순종하고자 질문하는 늙은 종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그만큼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아브라함의 믿음과 비교해 보면 많이 부족했던 것을 볼 수 있지요.
5절에 "종이 가로되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주인의 말에 순종하여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어떤 여자가 과연 나의 말만을 믿고 선뜻 이방 족속이 사는 이곳까지 따라올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던 것이지요. 신랑될 사람을 데리고 가서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어떤 확실한 징표를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기에 혹여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일말의 염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하여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만약 육신의 생각을 동원했다면 아예 처음부터 이삭을 데려가고자 했을 것이고 자신의 말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어떤 증거나 징표를 구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의 분량 안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며, 자기의 한계를 넘어서는 부분에 있어서는 솔직하게 주인의 의중을 정확하게 물어서 그 뜻에 따라 행동하려 했던 것이지요. 주인 앞에서는 "아멘" 해 놓고 나중에 가서 생각을 동원하여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는 이처럼 처음부터 정확한 의중을 물어서 그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입니다.
3. 늙은 종에게 오직 믿음으로 순종할 것을 권면하는 아브라함
이어지는 6-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종에게 대답하는 내용이 나오지요.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했던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의 생각도 동원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만을 믿고 순종해 나갈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신앙이었지요. 아브라함은 늙은 종에게도 이러한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늙은 종을 보시고 역사하시는 일이 아니지요.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고백한 대로 늙은 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성취를 위해 아브라함을 대신하여 수행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일을 수행하는 종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 대한 본인 자신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주인이며 선지자인 아브라함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내 믿음으로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도 주인인 아브라함을 신뢰하고 순종했을 때는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역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대하 20:20 후반절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본교회의 해외선교를 담당하는 일꾼들이나 지교회나 해외 지교회를 담당하는 주의 종들이 바로 이러한 사실을 명심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해외성회를 이루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목자를 보장하시고 그 말씀하시는 바를 이루어주셨는지 보셨습니다. 현실은 막막해 보인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믿고 순종해 나가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도울 사람을 붙여주셨고 길을 열어주셨지요. 그러나 내가 하고자 하는 만큼 즉, 내 힘, 내 생각 내 방법을 동원하는 만큼 일이 지체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해외 지교회나 국내 지교회를 이룰 때도 사람의 생각 가운데 이루고자 하면 결국 여러분의 한계 안에서만 이루게 됩니다. 반면 목자의 말씀을 의지하고 목자를 통해 나타나는 권능을 의지함으로 목자의 공간 안에서 이루고자 할 때는 하나님께서 그대로 보장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대표적인 예가 아프리카의 정명호 목사님이십니다. 때가 되어서 제가 교회를 개척하라 하니 생각을 동원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순종하셨고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셔서 어떤 것을 지적해주면 그 자리에서 즉시로 통회자복하며 돌이키셨지요. 그러니 목자와의 사이에 원수 마귀 사단이 어떠한 훼방도 하지 못하는 것이고 목자의 공간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먼 곳 아프리카에서도 목자의 손수건을 가지고 날로 더 큰 권능들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이루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여러분이 들어서 머리에 지식으로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녕 나는 목자의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며 순종하려고 하는지 또 나는 목자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즉시로 돌이켜 나가고 있는지 마음에서 얼마나 목자와 하나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 나가고 있는지 바로 이러한 것들을 스스로 점검해 본다면 자신에 대한 평가가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4.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을 고백한 아브라함
8절에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앞서 종에게 말하기를 "그가 즉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했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에 이처럼 고백한 것이었고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고백대로 반드시 보장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선택한 여자가 따라오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장해 주시지 않는 것이고 아브라함과 하신 맹세가 깨어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리가 없지요. 여자가 좇아오지 않는 일도 없을 것이요, 하나님과의 맹세가 상관없게 되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지금 부정적인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강한 믿음을 이처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말했던 것이구요. 여자가 좇아오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내 아들 이삭을 데리고 그리로 갈 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만일 여자가 좇아오지 않으면 이삭을 데리고 그 땅으로 가서라도 여자를 데리고 와야 할까요?" 하고 묻는 종의 질문에 이처럼 단호한 믿음의 고백으로써 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으로부터 답을 얻은 종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때 만약 종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또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주인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만약 여자가 저를 좇아오지 않는다 해도 저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했으니 일이 잘 안되어도 저는 책임이 없습니다." 이런 말들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니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이런 상황이 되면 "주인님, 그래도 이삭 도련님을 데리고 가는 것이 확실하지 않을까요?" 하며 끝까지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분도 있습니다. 또는 "이삭의 아내될 여인을 어떠한 방법으로 찾아낼까요?" 하며 구체적인 방법을 묻는 분도 있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그러지 아니했습니다.
9절에 "종이 이에 주인 아브라함의 환도 뼈 아래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했습니다. 이는 더 이상 어떤 질문을 하거나 자기주장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즉시로 주인의 말을 "아멘"으로 받았음을 뜻하지요. 자신이 궁금히 여기는 부분에 대해서 주인에게 솔직히 여쭙기는 했지만 이때 주인이 믿음의 고백을 하자 그 역시 더 이상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5.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의뢰하여 형통함을 입은 늙은 종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여인을 찾음에 있어서 전혀 사람의 방법이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의뢰하였습니다. 10-11절에 "이에 종이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고 떠났는데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약대를 성 밖 우물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이었더라" 했지요.
여기서 종이 주인의 약대 중에 열 필을 취하고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났다는 것은 능히 주인의 마음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사로운 마음이나 욕심에서가 아니라 찾고자 하는 대상을 만났을 때 그에게 주인의 마음을 대신하여 전할 수 있는 징표로서 약대와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간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 리브가를 만났을 때 리브가의 가족들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창 24:53에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육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육적인 방법을 동원하려 했다면 먼저 은금 패물과 의복과 보물을 꺼내어 보여줌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사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늙은 종이 이것들을 전한 것은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겠다고 정한 다음이었지요. 그러니 늙은 종이 주인의 것 중에서 모든 좋은 것을 취하여 가지고 간 것은 육적인 방법을 동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여인을 만났을 때 그 여인과 가족에게 주인을 대신하여 마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 편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빈틈없이 준비해 간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저녁때가 되어 성 밖 우물곁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종이 그곳에 도착한 시간도 하나님의 정확한 인도하심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이 바로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였으니 얼마나 형통함을 입고 있는지를 알 수 있지요. 일부러 맞추려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주관하여 인도하시니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순적히 여인을 만날 수 있는 길로 역사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때 종은 오직 주인 아브라함을 보시고 모든 것을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라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기도를 올립니다. 12절에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했습니다.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며 자신이 순적히 만나게 되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찾는 여인을 순적히 만남으로 "내가 이렇게 형통하게 여인을 찾았다" 하며 자신의 공으로 돌리려는 마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오직 주인 아브라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임을 고백하고 있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러한 선한 마음과 사심이 전혀 없는 종의 기도를 어찌 응답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되는지는 다음시간에 이어서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결 론 /
아브라함은 종을 대신 보낼 때에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목적지와 이 사명의 취지만을 설명해 주었지요, 그리고 나머지는 종에게 다 일임했습니다. 주인의 소유 중에 무엇을 가지고 갈지도 또 목적지에 도착해서 어떤 방법으로 여인을 찾아야 할지도 모든 것을 종이 알아서 하도록 했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키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성전세를 내도록 하실 때도 마 17:27에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셨지요. 어느 쪽 바다로 가야할지, 언제 가야할지, 어떤 물고기가 걸릴 것인지 등 다른 어떤 것도 말씀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타실 나귀새끼를 구할 때도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를 보내시며 마 21:2-3에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만찬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 26:17에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여쭈자 18절에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셨지요. 그리고 19절에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만약 제자들이 육신의 생각을 동원했다면 순종하지 못하는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가 나오거나 더 세세한 것까지도 질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아멘" 하였지요.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순종입니다. 만약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묻는 세세한 질문 하나까지도 답해주고 그대로 하라고만 말한다면 아마 어린아이라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믿음이란 히 11:1 말씀처럼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사실을 깨달아 참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늙은 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역사해 주시려 해도 이미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종에게 위임했기 때문에 종이 연결고리가 되어주지 못한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수 있지요. 따라서 종의 믿음과 순종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종은 주인 아브라함 곁에서 그동안 믿음의 훈련을 받아왔고 주인을 온전히 신뢰하였기 때문에 능히 주인의 뜻을 이룰 수 있는 도구로서 충분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있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이러한 믿음을 지닌 주의 종과 일꾼들이 많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주의 종들과 일꾼들과 모든 성도님들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그리고 아브라함의 늙은 종과 같이 능히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영적 장수로 신속히 나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35:48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