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34)
서 론 /
소돔 성이 불의 심판으로 멸망당하는 가운데서 롯과 그의 가족들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롯의 삼촌인 아브라함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의인 아브라함이 롯을 늘 마음에 품고 있으므로 그와 영적인 끈이 연결되어 있었던 롯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롯에게 아무리 기회가 주어졌다 해도 롯 스스로가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면 결코 구원의 길이 열릴 수는 없었습니다.
롯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롯의 가족들이 롯의 말을 믿고 소돔 성에 있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롯과 함께 소돔 성을 떠났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원리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지요.
우리가 구세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사함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일 1:7에 보면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지요. 입술로만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받는 것이 아니라 빛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할 때만이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예전에 몸담고 살아가던 소돔 성과 같은 어둠의 세상에서 나와 진리 안에 빛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스스로는 아무리 "믿는다" 고백해도 그 모습이 예전과 다름없이 세상 가운데 머물고 있다면 그는 아직 소돔 성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롯과 그의 가족들이 소돔 성을 떠난 것처럼 일단 세상을 뒤로 하고 떠났다 해도 그것으로 온전한 구원을 이룬 것은 아니지요. 롯의 아내는 천사들의 경고를 명심하지 못하고 그만 뒤를 돌아보므로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다 해도 마음에서부터 세상에 대한 미련과 욕심을 온전히 벗어내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 그로 인해 세상을 다시 돌아보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다시금 어둠이 좋다하여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지요.
성경에는 이를 경계하는 말씀들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롬 6:6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말씀하시고 또한 갈 5:1에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말씀합니다.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산으로 도망하여 이르기까지는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라" 경고했던 것처럼 우리가 가야하는 최종 목표인 천국에 이르기까지는 결코 세상을 다시 돌아보거나 믿음의 행군을 멈추어서는 안 되지요. 롯과 두 딸들 역시 어찌 자신들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터전인 소돔 성을 한 번쯤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이들도 천사들의 경고에 순종을 해서 그 유혹을 이길 수가 있었고 결국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천국을 향해 달려감에 있어서 때로는 다가오는 유혹과 핍박을 이겨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도이지요. 막 14:38에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셨습니다. 마음에서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간절히 원하지만 아직 버리지 못한 죄성으로 인해 결국 육신에게 지게 되면 시험에 들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육신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 기도하므로 늘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위로부터 공급해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분들은 아무리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었다 해도 마음에 할례를 할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의 음성과 주관과 인도를 받을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본 론 /
1. 소돔과 고모라에 불의 심판을 집행한 네 생물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후대 사람들에게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본보기와 같은 경우입니다. 신약에 와서도 소돔과 고모라가 여러 번 인용될 만큼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의 상징이며 장차 있을 죄의 심판에 대한 모델이지요.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단순히 천사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 바로 성령 하나님과 두 천사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친히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지요. 친히 소돔과 고모라의 상황을 살피므로 정확한 공의 가운데 심판하시기 위함이었지요. 이 심판이 너무 중대하고 또 후대에까지 미치는 너무 중대한 심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천사들과 대동하고 친히 보고자 오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정확한 공의 가운데 심판하여 최종 결론이 내려지고 나자 그 결론에 따라 심판을 집행한 것은 바로 네 생물이었습니다. 전에 네 생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는데 네 생물은 하나님을 호위하며 그 명령에 따라 친위대와 같이 움직이는 존재이지요. 그들의 권세 역시 대단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심판하는 권세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큰 권세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과 직접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겔 1: 24-26 말씀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생물들이 행할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은즉 많은 물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그룹의 모습을 설명한 것이며 그들의 권세나 위엄이 얼마나 대단하면 날개 소리를 전능자의 음성에 비유하는지요. 또한 겔 1:14에는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 같이 빠르더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생물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조금의 지체도 없이 번개같이 움직여서 그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네 생물이 수행하는 사명은 어떤 것일까요? 전에 네 생물을 의금부에 비유하면서 마치 나라나 임금에 대해 중한 죄를 지은 죄인을 의금부에서 관장하는 것처럼 네 생물도 하나님과 직접 관련된 죄가 있을 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성령 훼방 모독 거역과 같은 죄이지요. 또한 네 생물은 어떤 민족이나 나라가 전체적으로 심히도 악을 행하여 그 죄값으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될 때 직접 심판을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과 같은 경우이지요.
그런데 네 생물이 각각 수행하는 역할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네 생물은 서로 각각이면서도 마치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존재이기에 항상 함께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상황에 따라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생물이 있는 것입니다. 예전의 설교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소돔과 고모라에 불의 심판이 내릴 때 네 생물 중에 어떤 생물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지 아시겠지요. 바로 불을 토하는 권세를 가진 사자 생물입니다.
이처럼 재앙을 부리는 권세를 가진 사자 생물은 아무 때나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 입을 여는 것이 곧 재앙과 연관있기 때문에 사자 생물이 입술을 여는 경우는 재앙이 임하게 할 때나 또는 재앙을 거둘 때이지요. 모세를 대적했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니 바로 이 네 생물이 역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니 바로 네 생물 중에 한 생물이 역사하게 되더라 이 말이에요. 그래서 네 생물에게 명할 때도 사자 생물에게는 함부로 입을 열도록 명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 날개를 펴서 움직이라고는 명할 수 있어도 입을 열도록 명하는 것은 재앙과 직접 관련이 되기 때문이지요.
이외에 인자 생물은 그룹들을 명하여 움직이게 하는 권세가 있다 했고 독수리 생물은 하늘 문을 열고 닫는 권세, 송아지 생물은 첫째 하늘에서 일어나는 천기의 변화와 기후에 관한 것을 주관하는 권세가 있다 했습니다. 그러니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린 유황과 불의 심판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유황과 이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니까 하늘 문을 열고 닫는 권세를 가진 독수리 생물도 역할을 감당해야 했지만 주도적인 역할은 불을 토하는 권세를 가진 사자 생물이 감당했다는 사실입니다.
2. 철저한 재앙의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한 것이었던지 25절에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했지요. 땅 표면에 나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땅 속까지 갈아엎는 듯한 엄청난 재앙이 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소돔과 고모라에 엄청난 재앙이 임하고 있을 때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아브라함도 그 사실을 알 수가 있었지요.
27-28절에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과 만났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 쪽을 바라보았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이미 언제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이 행해질지를 알고 있었음을 말해주지요.
아브라함은 한번 하신 말씀을 반드시 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때가 이르러 정확하게 심판이 행해질지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소돔 성에 있는 조카 롯을 생각하며 또한 멸망 가운데 떨어져 있는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입니까? 어떻게든 소돔 성에 임할 심판이 거두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최후까지 하나님 앞에 아뢰기를 소돔 성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말아달라고 간구했지요.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임해있었기에 한 사람이라도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러한 아브라함의 마음을 어찌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것은 정확한 공의 가운데 이루어지기에 소돔 성은 결국 의인 열 명이 없으므로 심판의 재앙을 맞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과 용서가 한이 없으신 분이지만 그것도 반드시 공의의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셔서 늘 공의의 법칙 안에 거하시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지킴받고 사랑받으며 축복받아 나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브라함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돔과 고모라 쪽을 바라 볼 때 그곳에서는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지요. 마치 옹기를 구워내기 위해 피운 불이 연기를 내며 타는 것과 같이 소돔과 고모라도 불과 유황 비속에 불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계 21:8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말씀하신대로 죄의 결과는 영원한 지옥불인 것이지요.
이처럼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은 철저한 재앙의 심판을 받으므로 오늘날까지 그 땅이 죽은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땅이 생명력을 잃어 더 이상 아무 것도 날 수 없는 땅이 되었지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가버나움과 벳세다도 이와 마찬가지이지요. 이곳들은 이전에는 번성한 도시였으나 예수님의 저주를 받은 이후 땅이 생명력을 잃었고 그 주변에서 물도 찾을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리므로 이곳들 역시 저주받은 땅의 본보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그곳에 임한 심판이 소돔과 고모라에 속한 주변 지경에까지도 해당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곧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나 하나의 범죄함이 때로는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속한 주변에게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신 28:15-19에 보면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몇 주에 걸쳐 대예배를 통해 들으시는 대로 자신에게 와야 할 징계나 재앙이 영적인 끈이 연결된 다른 사람에게 오거나 관련된 주변의 일들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아프다고 할 때 그 사람에게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깨우침을 주시기 위한 경우도 있고 때로는 부부나 부모와 자녀라는 영적인 끈의 관계 속에서 대신 질병을 앓는 경우도 있지요. 그렇다 해서 무조건 모든 질병의 경우가 다 이런 이유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질병이나 어떤 문제를 해결받고자 할 때 혹여 나는 이런 관계 속에서 문제가 온 것은 아닌가? 점검해 보시라는 의미이며 주변의 가족들 역시 가족 중에 누군가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통해 자신도 한 번 점검해 보는 기회를 삼으시라는 의미이지요.
3. 아브라함으로 인해 구원받은 롯
이어지는 29절에는 롯이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셨기 때문임이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했습니다. 여러분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되면 여러분에게 속한 모든 것들이 함께 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약 5:16 에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은 사람의 기도는 그만큼 영적인 힘과 권세가 따르게 되지요. 요셉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기에 창 39:3-5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패역해진 소알
이제 30절에 보면 "롯이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였더니" 했습니다. 천사들이 소돔의 멸망을 피할 곳으로 처음에 롯에게 지목해준 곳은 산이었습니다. 그러나 롯이 소알 성을 택하였기에 소알 성과 그곳의 백성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과 함께 멸망당할 상황에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들이 소알 성에 들어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시고자 소알 성은 심판의 재앙에서 제외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소알 성 역시 소돔과 고모라의 영향으로 이미 패역해진 곳이었으나 롯으로 인해 잠시나마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지요. 그런데 롯이 이곳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했으니 무슨 의미입니까? 바로 소알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지요. 소알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보았음에도 여전히 돌이키지 않은 채 패역한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지켜보는 롯에게는 다시금 두려움이 임할 수밖에 없지요.
소돔 성이 왜 심판을 받았는지 너무나 잘 아는 롯으로서는 소알 성의 상황을 보면서 이곳 역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심판을 피해 소돔 성을 떠나왔는데 이곳 소알 성에서 다시금 소돔 성의 사람들이 행하던 패역한 삶의 모습을 보게 되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든 것이지요.
롯은 소돔 성의 심판을 보면서 죄악 가운데서 철저히 떠날 것을 다짐하였기에 패역한 소알 성에는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천사장들이 지정해주었던 대로 산으로 올라가 굴에 거하였던 것입니다. 산은 영적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는 곳으로서 롯이 산으로 올라가 거했다는 것은 이제 세상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결심하며 노력했다는 것을 말해주지요.
이렇게 산에서 두 딸과 거하던 롯에게 사람의 생각으로는 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 사건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롯의 두 딸들이 아버지인 롯을 통해 종족을 보존하고 번성시키게 되는 사건이지요. 그렇다면 롯의 두 딸들이 왜 이러한 행동을 하였는지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께서 죄의 행함에 대해 혹독하리만큼 큰 연단이나 징계를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랑과 긍휼과 용서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큰 연단이나 징계를 허락하시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죄의 결과에 대한 본보기입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 결과에 대해 철저히 깨닫게 하심으로 동일한 죄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시기 위함이지요. 바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경우입니다. 반면에 니느웨 백성들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길을 갈 수도 있었으나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킨 결과 심판의 재앙을 피할 수가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성경에 이러한 사건들을 기록해 놓으신 것도 바로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본을 삼아 결코 멸망에 이르지 않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서 온전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잘못했을 때 오히려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하시지요. 다윗 왕과 같은 경우도 충성된 백성을 이방인의 손에 죽게 한 죄로 인해 혹독하리만큼 심한 연단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윗에게는 축복이었지요. 그 연단을 통해 철저히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합한 자로 변화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에도 시험이나 연단 가운데 계신 분이 있다면 이를 통해 오히려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되는 축복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시험이나 연단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이며 그것을 얼마나 영으로 깨닫고 값지게 받느냐에 따라 같은 시험과 연단을 받은 사람 사이에도 커다란 차이가 생기는 것이지요. 단지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차원에 머무르고 마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그것을 계기로 다시는 똑같은 모습이 나오지 않도록 자신 안에 있는 육을 발견하고 벗어 버리므로 영으로 변화되는 기회로 삼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연단을 받지 않을 수는 없으되 어떻게 받느냐가 영적인 성장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자신에게 다가오는 작은 연단 하나라도 소홀히 여기지 마시고 자신을 온전케 만드는 계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소돔의 멸망을 통해 롯이 잠시 머물고자 했던 소알 성에서도 즉시로 떠날 수 있었던 것처럼 연단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능력이 되어 신속히 육에서 떠나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42:03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