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33)
서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침내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자 천사들은 롯을 재촉하여 가족과 함께 성을 빠져 나가도록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들은 모든 것이 정확한 때와 기한에 맞추어 역사하기에 누구도 임의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행 1:7에 주님께서도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 경작의 6,000년 역사 역시 처음부터 시작과 끝에 대한 모든 계획이 나와 있었고 어떠한 이유에서든 변경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만약 중간에 어떤 이유 때문에 바뀐다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지예정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앞일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정하신 것이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게 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어떤 일을 행하심에 있어서 미리 징조를 나타내 주시거나 하나님의 사람에게 알려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암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말씀한 대로 이지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역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미리 알려 주셨고 롯에게도 알려 주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미리 알려 주셨을 때 그 말씀을 받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롯은 자신들의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도 소돔에 임박한 심판에 대해 알려 주었지요.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사위들은 어떠했습니까?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했지요. 그러니 아무리 앞으로 있을 심판에 대해 알려 주어도 사위들은 전혀 준비하지도 않았고 결국은 소돔과 함께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롯은 어떠했습니까? 즉시로 천사들의 말에 순종하여 소돔을 떠났던 것을 볼 수 있지요. 자신이 그동안 소돔에서 일구어 온 많은 재산과 삶의 터전을 포기한 채 소돔 성을 탈출해 나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롯과 그의 사위들과의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롯의 사위들은 롯의 말을 믿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 말을 믿으려 했다 해도 소돔 성의 삶과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지요. 결국은 세상이 좋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이 쌓아 온 육의 것들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있지요. 주일날 교회에 나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돈 버는 일에 미련이 있어서 주일을 어기거나 반쪽 주일만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기도해야 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을 사랑하고 육을 사랑하니 끊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롯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동원하거나 미련을 가진 것이 아니라 즉시로 순종해 나갔던 것을 볼 수 있지요. 이처럼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하나님께서 롯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도 있었지만 롯 스스로도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로 순종하는 믿음과 행함의 신앙이 있었기에 구원의 은총을 입을 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당연히 순종할 수 있는 것에만 순종하는 것은 영적인 의미에서 온전한 순종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면 순종할 수 없는 것, 현실을 보면 순종할 수 없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순종이지요. 성경을 한번 쭉 상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다니엘과 세 친구 등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같이 믿음이 아니면 순종할 수 없는 것에 순종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상황,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 자기가 남아 있는 이상은 결코 순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순종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은 어떠하십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조차 순종하지 않고 있는 모습은 없으신지요? 만약 여러분에게도 롯과 같이 삶의 모든 터전을 포기한 채 떠나라고 하신다면 기꺼이 "아멘"으로 순종하실 수가 있으신지요? 아니면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를 대시겠습니까?
그런데 본문 16절에 보면 롯이 잠시 지체하는 장면이 나오지요. 그러나 롯이 이렇게 지체한 것은 소돔에 대한 어떤 미련이 있거나 순종할 마음이 안 되어서가 아닙니다. 이때 롯이 지체한 것은 바로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했지요. 노아가 방주의 문을 닫는 순간까지 심판이 임박했음을 외쳤던 것처럼 롯도 마지막 순간까지 어찌하든 그동안 자신에게 속해 있던 사람들에게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림으로 그들과 함께 소돔 성을 떠나려했던 것입니다.
당시 롯은 그래도 소돔에서 어느 정도 부를 누리며 터전을 잡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게 속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요. 소돔 성의 멸망을 아는 롯으로서는 그들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던 것이고 그래서 어찌하든 한 명이라도 데리고 나오려 했으나 결국은 겨우 아내와 두 딸만을 데리고 성을 빠져나와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심판이 가까왔고 마지막이 가까왔다고 외쳐도 구원은 스스로의 자유의지 가운데 순종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지요.
본 론 /
1.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
17절에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하였지요. 상황이 너무나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나머지 천사들은 일단 롯과 가족을 성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다시 한 번 당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천사들이 롯과 그의 가족을 성 밖으로 이끌어 내었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능력을 나타내었음을 의미하지요. 앞서 16절에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하신 말씀처럼 천사들은 영의 공간을 타는 능력으로 롯과 그의 가족들을 인도하여 낸 것이었습니다.
두 천사장이 이 땅에 내려올 때는 육의 제한적인 공간을 입어야 했고 또한 제한된 육의 법칙에 따라야 했지만 이미 소돔 성의 죄악을 몸소 체험하며 목적한 바를 이룬 후였기에 더 이상 육의 한계 속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지요. 그래서 롯의 집으로 몰려온 소돔 성의 백성들의 눈을 어둡게 할 때부터 이미 두 천사장은 원래의 능력으로 회복이 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재앙이 임박한 상황에서 다시금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여 롯과 가족들을 순간 성 밖으로 인도하여 낸 것이지요.
그렇다면 천사들이 당부한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라는 것은 죄악된 세상을 철저히 끊어 버리고 돌이키라는 뜻입니다. 또한 자기 안에 있는 육적인 것들을 철저히 끊어 버리라는 뜻이지요.
소돔은 영적으로 패역한 세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소돔 성을 돌아보거나 일단 소돔 성을 떠난 후에라도 중간에 머무르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나온 것이 아니지요. 여전히 세상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사람들이 있지요. 세상을 버리고 주 안에 들어왔다가도 다시금 세상으로 빠지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세상을 버리지 못한 채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교회 안에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소돔 성을 빠져나왔지만 뒤를 돌아보거나 중간에 머무르는 사람이지요.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은 세상과 구분되어진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산은 곧 세상과 구분되어 살아가는 장소로서 이러한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은 세상과 접하지 않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라는 의미이지요.
롯이 비록 처음에 선택을 잘못하여 소돔이라고 하는 패역한 세상에 빠지고 말았지만 이제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왔을 때 구원이 허락되었습니다. 단지 몸만 세상에서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거나 머무르지 말라는 말씀에 따라 마음에서도 온전히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철저히 끊어졌던 것이지요. 마음에서부터 끊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마음이 세상으로 향할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충만할 때는 그런 마음이 드러나지 않다가도 충만하지 않은 상황이 되면 눌려 있던 세상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나게 되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행함과 함께 마음에서부터 온전히 진리로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에 오직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 때만이 세상의 어떤 것도 틈타지 못하고 사단의 역사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2. 재앙의 징조가 임박하자 소알 성으로 가기를 청(請)하는 롯
"산으로 도망하라"는 천사장들의 말에 롯은 18-19절에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답변하였지요. 이를 통해 우리는 소돔에 내릴 재앙이 얼마나 임박해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워낙 재앙의 징조가 임박한 상황이 되자 롯은 두려움으로 인해 산까지 도망할 마음을 갖지 못하고 더 가까운 소알 성으로 도망할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하였던 것입니다. 20절에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하며 간구한 것은 롯이 소돔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거나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씀에 불순종하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내릴 불의 심판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으면 그 징조만 보고도 롯이 이처럼 두려워 떨며 급히 피할 곳을 찾으려 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징조 앞에서도 막상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은 깨닫지를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마지막 때도 이와 같습니다. 마 24:37-39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살전 5:4-6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깨어 있었던 롯이 소돔 성에서 나올 수 있었음과 같이 깨어 근신하며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결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된 상태에서 신랑되신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한 채 맞게 되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으십니까? 세상에 취해 잠들어 있다가 그날을 도적같이 맞는 분은 한 분도 없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롯이 소알 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
이처럼 재앙의 징조에 두려워 떨며 근처에 있던 작은 성으로 도망하고자 하는 롯의 간구에 21-22절에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했습니다.
롯이 더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씀에 끝까지 순종했으면 좋았겠지만 롯에게는 그만한 믿음이 없었지요. 이러한 롯의 간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한 번 더 인자를 베푸심으로 롯이 소알 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롯이 소알 성에 들어가는 것도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계기가 되지요.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강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작은 하천을 사이에 두고 있던 도시들입니다. 결코 작은 도시들이 아니었으며 많은 백성과 문명이 발달된 커다란 성들이었지요.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거의 한 성과 같아서 사람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였고 삶의 모습이나 풍습 또한 세상적인 향락 문화들이 비슷했습니다. 그러니 소돔 성의 패역함이 곧 고모라의 패역함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지요.
소알 역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서 소돔과 고모라와 똑같지는 않다 해도 이곳 역시 이미 많은 것에 물들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소알 성 역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과 함께 얼마든지 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태였지요. 그런데 이러한 소알 성이 롯이 그 성을 도피처로 선택함에 따라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에는 그 성 곧 소알 성 역시 멸할 수 있는 곳이나 롯의 소원을 들어 주심으로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결국 소알 성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얻게 된 것입니다.
만약 롯이 소알 성으로 도피할 것을 간구하지 않았다면 소알은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엄청난 재앙으로 인해 함께 멸망할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롯이 소알 성으로 들어감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성 또한 멸망에서 건져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소알 성의 백성들은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재앙을 똑똑히 지켜볼 수가 있었지요.
자신들이 살고 있던 성에 비하면 너무나 크고 화려하며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던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루아침에 그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알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가까운 곳이었기에 하늘로부터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는 붉은 유황과 불의 비를 직접 볼 수가 있었지요. 거기다가 소알로 도망쳐 온 롯과 그의 가족들로부터 소돔과 고모라가 왜 심판을 받아야 했고 그 심판을 내리신 분이 누구신지를 듣게 됩니다. 소알 성의 사람들은 죄악의 결과가 무엇인지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을 통해 너무나 확실한 본보기를 보게 된 것이지요.
4.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심
롯이 소알 성에 들어가고 난 후에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심으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십니다. 25절에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했지요. 성과 주변의 들과 백성들뿐만 아니라 땅에서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심으로 소돔과 고모라 땅을 다시는 사람들이 살 수 없는 황폐한 곳으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심판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후대 사람들 역시 분명히 보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이처럼 철저히 심판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땅에는 또 한 가지 재앙이 더해집니다. 그것은 바로 땅에 염분을 더하셔서 죽은 땅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요. 전에 롯이 소돔 땅을 택하여 갈 때는 그 땅이 어떤 상태였는지가 창 13:10에 잘 나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했지요. 바로 이러한 땅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오늘날 소돔과 고모라 땅 곁에는 사해(死海)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죽은 바다로서 이 바다에는 어떠한 생물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물이 넉넉하여 기름지며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던 그 땅 주변에는 이제 죽은 물이 고여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당시의 소돔 성 역시 지반의 침강으로 인해 지금은 사해 물 속에 잠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그 성이 있던 자취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어떤 것도 자랄 수 없는 죽은 땅이 되게 하심으로 누구도 다시는 그곳에서 예전처럼 문명을 일으키거나 삶의 터전을 이룰 수조차 없게 하신 것이지요.
5. 소돔 성을 뒤돌아본 롯의 아내
롯과 함께 소돔 성을 빠져 나왔던 롯의 아내는 그만 천사장들의 말에 불순종하여 뒤를 돌아보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지요. 이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잘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눅 9:62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셨지요. 주님을 믿고 주 안에 들어온 사람이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합당치 않은 것이며 더욱이 주 안에서 사명을 맡은 사람이라면 주의 일이 가장 먼저요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벧후 2:20-21에는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했으니 여러분은 진리의 길에서 결코 돌아서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이 잘 나타나 있지요. 정확한 공의 가운데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되 그들과 함께 멸망시킬 수도 있었던 소알에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어찌하든 긍휼과 자비를 베푸셔서 한 사람이라도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사랑이 적용될 수 있었던 것은 소알 성으로 롯이 들어갔기 때문이지요. 롯에게 적용되는 구원의 공의로 인해 롯이 들어간 소알 성까지도 공의의 테두리 안에서 기회를 얻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해 롯이 구원을 받고 롯으로 인해 그의 가족들까지 구원을 받으며 이제는 롯과 그 가족들로 인해 소알 성의 백성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것이지요.
이것만 보아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얼마나 끝까지 기회를 주시는 분인지를 잘 느껴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무한한 사랑이 있음에도 끝까지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국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되지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 편에서 그 사랑을 받아들일 만한 조금의 마음 문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깨달아 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공의 안에 녹아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여러분을 통해 주변의 사람들이 구원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전파될 수 있는 귀한 도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42:0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