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98)
서 론 /
노아의 홍수가 있기 전에는 지구가 하나님께 속한 빛으로 둘려 있으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운행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생물들이 살아가기에 가장 적당한 환경이 유지되었고 더위나 추위 또는 자연 재해 등으로 인해 고통을 당해야하는 일도 없었지요. 그런데 홍수가 시작된 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처음 육의 공간을 만드시고 육의 공간에 주셨던 육의 법칙에 따라 지구도 순응하게 되었습니다. 빛이 거두어지면서 사람과 짐승들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것도 근본 육의 속성대로 돌아가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지구에는 더위와 추위도 나타나게 되고 육에 속한 자연의 법칙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본 론 /
1. 척박한 환경의 중동지역
지구의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는데 아름답고 수려한 자연경관을 가진 곳이 있는가 하면 더위와 추위와 가뭄 등으로 인해 황폐해져 가는 곳도 생겨났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포함하는 중동지역은 사람이 살아가기에 매우 힘든 척박한 환경 가운데 놓여 있는 것을 봅니다. 물론 이 지역이 홍수가 끝나면서 하루아침에 지금처럼 변한 것은 아니며 또 지금도 곳곳에 기름진 땅이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아담을 처음 이 땅으로 보내어 인간을 경작하실 때와는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이집트 지역 역시 아담이 그토록 동경할 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이 지역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통해 인간 경작이 시작되면서 이 지역은 급속히 사람들로 번성해 갔고 결국 죄악 가운데도 가장 깊이 빠져드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욕과 쾌락 그리고 우상 숭배 등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홍수의 심판을 내리실 수밖에 없는 죄악의 중심지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곳은 홍수의 심판과 더불어 땅이 갈라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그에 속한 소유물들이 함께 땅 속에 묻히게 되는 저주의 땅이 되고 말았던 것이지요.
이러한 저주로 인해 세월이 흘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척박한 환경으로부터 오는 고통은 물론이고 끊이지 않는 분쟁과 전쟁으로 인한 고통에 신음하는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 땅에서는 석유가 나오니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대로 이것이 당장에는 경제적인 유익이 되겠으나 오늘날 중동 지역은 오히려 석유로 인해 분쟁의 불씨가 상존하고 있는 세계의 화약고가 되고 말았지요.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질수록 이 지역은 더 많은 고통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7년환난 중에도 엄청난 재앙의 중심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데 저주받은 땅이 된 또 다른 증거는 오늘날 세계에서 이 지역만큼 복음의 문이 닫혀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결국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과는 멀어져있는지를 말해주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인간 경작을 마무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경작의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니 마지막 때에 복음이 회귀(回歸)토록 역사하십니다. 그들에게도 끝까지 기회를 주시는 것이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하신 인간 경작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한 치의 오차 없이 아버지 하나님의 소관 아래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린 노아 홍수 심판
또한 홍수와 관련된 모든 것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주관하셔서 이루어 가셨지요. 본문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홍수가 있은 후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지면서 방주가 물 위에 떠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해지자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이게 되었지요. 물론 홍수를 통해 급격한 지형의 변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주 높은 산이나 산맥 등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천하에 높은 산을 다 덮었다는 것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홍수였음을 말해주지요.
더구나 출애굽 때에 모세를 원망한 악한 자들이 땅이 갈라져서 매장되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이 곳곳에 땅을 갈라서 사람과 동물과 수목을 매립되게 했는데 다행히도 애굽은 그렇게 하시지를 않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피라미드를 비롯한 옛 유적들이 남을 수 있었지만 거기서는 석유가 발견되지 않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게 됩니다.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은 물론이고 공중을 나는 새들 역시 다 죽게 되지요. 높은 산까지 다 물로 덮인 상황에서 새들 또한 내려앉을 곳이 없으므로 결국은 물에 빠져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녕 그 어느 것도 피해갈 수 없는 심판이었으며 방주 안에 타지 못한 사람이나 짐승은 하나라도 살아 남을 수 없는 완전한 심판이었지요.
앞으로 있을 백보좌 심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날에는 창세 이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심판이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모두가 영원한 사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심판이지요. 고후 5:10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처럼 홍수로 인해 천하의 높은 산까지 다 덮인 지구는 마치 처음 지구가 탄생할 때의 상황을 연상케 합니다. 창 1:2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여 본격적인 천지 창조가 시작되기 전, 지구는 온통 물에 덮여 탄생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지요. 우리 아이들이 복중에 잉태되어 있을 때 역시 양수라는 물로 아이를 완전히 덮어 감싸고 있어 그 안에서 자라다가 분만 때 터뜨리고 나오는 것처럼, 지구도 그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셨던 것이지요. 홍수를 통해 그 당시의 상황이 다시 한 번 재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그렇다면 우리는 천지창조 당시의 상황을 통해 홍수 후에는 그 많던 물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가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둘째 날에 물 가운데 궁창을 두시고 물을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셨는데 궁창 위의 물은 어디로 갔다고 했습니까? 바로 둘째 하늘로 옮기어졌다 했지요. 이렇게 해서 둘째 하늘에 샘의 근원을 이루었던 물들이 노아의 홍수 때에 다시 하늘의 창들이 열리면서 이 땅으로 쏟아져 내려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쏟아져 내려온 물은 홍수 후에는 다시 둘째 하늘로 옮기어졌습니다.
본문 창 8:1-2에 보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쳤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면서 비가 그치고 땅 위에 바람을 불게 하시므로 물이 감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혔다고 했는데 이는 닫혔다는 표현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얼핏 생각하면 같은 의미로 들리지만 두 가지 표현이 전혀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닫혔다고 했다면 이는 하늘의 창이 아예 닫혔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땅에 내려온 물들이 다시 둘째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가 완전히 닫혀버린다는 의미가 되지요. 즉, 바람이 불어서 물이 증발해도 둘째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들을 닫으신 것이 아니라 막으셨지요. 더 이상 쏟아져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으셨던 것입니다. 즉 둘째 하늘과 첫째하늘 사이의 통로는 열어 놓으신 채 다만 물이 더 이상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아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아예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들을 닫아버리시면 이 땅에 있던 물들이 돌아갈 길까지 막히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막아 놓으시고 열려 있는 하늘의 창들을 통해서는 이 땅에 내려왔던 물들이 증발하여 다시금 둘째 하늘로 되돌아가도록 하셨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네 생물을 동원시키셨습니다. 네 생물 중에 하나를 통해 물이 더 이상 쏟아져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게 하셨고, 네 생물 중에 또 다른 하나를 통해서는 이 땅에 계속해서 바람을 불게 하셨지요. 하나님께서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셔서 물을 감하게 하셨다고 하니까 그냥 자연의 바람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네 생물의 날개가 일으키는 엄청난 바람으로 이 땅을 덮고 있던 물 위에 불게 하셔서 물이 다시금 둘째 하늘의 깊은 샘 속으로 돌아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노아의 홍수는 얼마동안 비가 와야 하고 물은 얼마나 불어나야 하며 또 어느 정도의 속도로 물이 감해야 하는지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정확한 계획 속에 이루어져 갔지요. 그래서 정확한 계획 속에서 날짜에 맞추어 비가 오고 멈추며 바람이 불어 물을 감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과 밝히 교통했던 노아도 이러한 과정들에 대해 알고 있었지요. 홍수가 하루 이틀에 끝날 것이 아니라는 것도 또 물이 얼마 동안이나 창일하였다가 이후에 줄어들게 될 것도 노아는 알고 있었습니다. 노아가 방주 안에만 있다 하여서 바깥 세상의 돌아가는 일을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니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는 몰라도 대충은 알고 있다 이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는 가운데 앞으로의 되어질 일들을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갔습니다. 암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말씀한 대로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 제단도 제가 일일이 세세한 일들까지 살피거나 돌아보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늘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통함 속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니 알 수 있는 것이고, 때로는 영감으로 때로는 성령의 음성으로 때로는 꿈으로도 알려주시지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일일이 아는 척 하지는 않습니다. 알아도 모른 척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제가 안다는 것을 상대가 알면 그 사람이 제 앞에 나오지 못할까하여 도리어 제 편에서 더 조심하기도 하지요. 그러니 혹여라도 '당회장님께서 이것은 모르시겠지' 하며 목자를 속이고 성령을 속이려 해서는 안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4.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여러분이 오늘 본문을 읽어가다 보면 한 가지 궁금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7:20에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말씀하신 내용이지요. 이 말씀만 보아서는 마치 물이 십오 규빗, 대략 6.5미터에서 7미터 정도 오르자 산들이 덮였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가장 높은 산이 겨우 7미터 정도였다는 말일까요?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십오 규빗이란 바로 방주가 물에 떠서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는 물의 높이를 말하지요.
창 6:15에 기록된 대로 방주는 그 높이가 삼십 규빗입니다. 따라서 삼십 규빗의 높이를 가진 방주가 안전하게 물 위로 떠다닐 수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방주 높이의 반정도 되는 십오 규빗 정도 깊이의 물이 여유가 있어야 하지요. 방주가 물에 잠기는 깊이를 고려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빈 방주라면 방주 높이의 반 정도까지 물에 잠기지도 않겠지만 당시 노아의 방주 안은 가득 찬 상태였기에 적어도 방주 높이의 반 정도는 여유가 있어야 방주가 물에 잠긴 상태에서도 안전하게 떠다닐 수가 있는 것이지요. 만약 이러한 여유가 없었다면 자칫 물 위를 떠다니던 방주의 바닥이 높은 산의 봉우리에 닿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 7:17-20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물이 불어나 방주가 물 위에 뜨고 물 위를 떠다니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십오 규빗의 물이 더 불어나서야 비로소 방주가 물 위를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처럼 산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양의 물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 사람의 지식과 생각을 동원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창세기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는 성경 그 자체가 증명하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전설이나 신화를 통해서도 사실성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조사와 연구를 해본 결과 유럽, 아시아, 호주, 동인도, 알래스카, 그리스, 핀란드, 아일랜드, 태평양의 섬들, 필리핀 군도, 남아메리카, 중앙 아메리카, 북 아메리카, 동아프리카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수집된 홍수와 관련한 전설이나 신화만도 100여 개가 넘지요. 그리고 이들 전설의 대부분은 큰 홍수가 일어나 땅을 뒤엎었고 인류의 소수만이 살아 남았으며 그 외에는 모두가 멸망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전설 중에 다수에서는 큰 방주의 건축과 방주 안에 있던 사람과 동물들의 구원 그리고 방주가 산에 상륙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그 중에서도 홍수에 대한 세밀한 설명은 노아의 방주가 상륙했던 아라랏 산에 가까운 나라들에서 발견됩니다. 특히 바벨론의 홍수 설화는 창세기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와 그 내용이 매우 유사하지요. 이처럼 대다수의 나라에서 홍수의 전설이 전승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이 모든 전설이나 신화의 모체가 된 하나의 홍수 사건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곧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이지요. 물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노아의 홍수에 대한 정확한 내용들이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변형되고 첨삭(添削)될 수는 있었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들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인류는 지금까지도 노아의 홍수에 대한 공통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이 노아의 홍수를 분명한 사실로 믿고 거기에 담긴 심판의 영적인 의미를 깨닫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더욱이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지요. 벧후 3:6-7에는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는 홍수로 심판이 있었듯이 이제 이 세상은 다시 한 번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게 되지요. 바로 3차 대전과 7년 환란 때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 날에는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이 심판받고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닥쳐왔을 때도 하나님을 멀리 한 채 경건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가 심판으로 멸망당했지요. 오늘날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은 심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노아의 홍수가 왜 있어야 했고 어떤 사람만이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받았는지를 정녕 마음에 깨닫는 사람만이 앞으로 다가올 마지막 때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홍수의 심판이 믿어지지 않고 노아의 홍수가 사실로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노아 당시 방주가 지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여전히 죄악 가운데 빠져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오늘날도 심판이 다가옴을 깨닫지 못한 채 죄악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창세기 강해를 통해 왜 홍수의 심판이 있었으며 홍수의 심판이 얼마나 분명한 사실인지를 마음에 깊이 깨달아 구원의 방주 안에 확실히 들어가 깨어있는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홍수가 끝난 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의 문을 열고 힘차게 새로운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었듯이 여러분 모두도 새예루살렘의 성문 안으로 힘차고 당당하게 발걸음을 내딛어 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5-04-30 오후 1:16:2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