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92)
서 론 / 창조의 근본된 빛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태초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한 원대한 계획 아래 하나였던 우주 공간을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로 나누십니다. 그리고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육의 세계로 나누어진 공간에 먼저 빛으로 둘러놓으셨습니다.
창 1:3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말씀하신 대로 육의 세계의 공간을 빛으로 두르신 후에 창조의 사역을 해 나가셨던 것입니다. 이때의 빛이 바로 창조의 근본된 빛이었습니다. 창조의 근본된 빛이 둘러지고 창조의 근본된 소리가 발해지면서 무에서 유가 창조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육의 공간을 먼저 빛으로 두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창조의 사역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육의 공간에 빛이 둘러지게 되면 순간적으로 영의 차원이 되어지고 그 공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영의 흐름을 타게 되지요. 그래서 영의 공간 안에서는 육의 법칙에 지배받지 않는 창조의 역사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러진 뼈가 순간에 붙거나 없던 뼈가 순간에 생기거나 자라는 것은 육의 법칙대로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빛이 들어가게 되면 육의 법칙과는 상관없는 영의 흐름을 타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지요. 좀더 간단히 말해서 육의 법칙대로라면 부러진 뼈가 붙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영의 흐름을 타면 이것이 순간에도 가능해진다는 말입니다. 또한 죽은 신경이나 세포가 살아나는 것도 육의 법칙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빛이 둘러지면서 영의 흐름을 타게 되면 그 안에서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요즘 제가 기도해 드릴 때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역사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예전에도 기도받고 즉시로 치료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때로 기도받은 후 몇 시간 혹은 집에 돌아가서 잠자고 나면 치료받은 것을 알기도 하고 며칠 후에 치료받은 증거가 나타났던 경우들이 이제는 몇 분도 채 안 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창조의 근본의 소리로 명하게 되면 창조의 근본된 빛이 환자의 아픈 곳을 두르면서 순간적으로 영의 흐름을 타며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몸에 주먹만한 암 덩어리가 있던 분도 제가 명할 때 순간에 사라지는 경우들이 수없이 많은데 이것은 육의 법칙에 의하면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영의 흐름을 타기 때문에 육의 법칙과는 상관없이 암 덩어리가 순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육의 법칙대로라면 많은 시간이 걸려야 회복될 수 있는 것도 영의 흐름을 타게 되면 순간에 회복될 수가 있지요.이 모든 일이 바로 창조의 근본된 빛으로 인해 육의 법칙과는 상관없이 영의 흐름을 타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더욱이 창조의 근본된 빛 안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담겨있기 때문에 육의 지식이나 이론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예를 들어 아버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를 보면 태양과 달과 별들이 창조되기 이전에 먼저 식물들이 창조된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육의 법칙대로라면 태양 빛이 없이는 식물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태양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식물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지구를 덮고 있던 창조의 근본된 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빛에 담긴 능력으로 인해 태양이나 달과는 상관없이 식물들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동물들 역시 이 빛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본 론
1. 창조의 근본된 빛이 둘러져 있던 육의 세계
전에 창조의 근본된 빛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면서 처음 아버지 하나님께서 둘러 주셨던 빛이 아담의 범죄 이후 조금씩 거두어지다가 노아의 홍수를 계기로 완전히 거두어졌다고 했는데 이처럼 빛이 완전히 거두어지기 전까지는 동물들도 매우 온순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전에는 더더욱 그러했고 아담의 범죄 이후로 죄가 관영해 갈수록 동물들도 조금씩 악해져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노아의 홍수 전까지는 서로 싸우거나 죽이는 일들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둘러 주신 빛으로 인해 그들의 근본에 있는 악의 속성들이 아직 발동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빛의 권세와 능력으로 인해 근본의 악한 성질들이 눌려 있었던 것이지요. 이는 성경을 보아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욕하고 비방했지만 막상 예수님 앞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을 봅니다. 예수님의 빛의 권세에 눌려 죄악된 성질들이 발동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도 지금까지 21년 동안 목회를 해 오면서 제가 직접 보는 앞에서 악을 발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가룟 유다가 있었던 것처럼 아주 특별한 경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아버지가 허락하심 속에 일어난 일이구요. 빛 앞에서는 어둠이 발동될 수가 없지요. 제가 해외에서 성회를 인도하는 경우에도 제가 그 나라에 들어가기까지는 그렇게 훼방과 핍박을 심하게 하다가도 일단 제가 그 땅에 발을 디디게 되면 이내 잠잠해지는 것을 저는 여러 번 체험했고 훼파되어 버리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둘러 주신 창조의 근본된 빛이 이 땅에 존재하는 동안에는 동물들이 가진 근본된 속성들이 아직 발동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노아의 홍수 전에 창조의 근본 된 빛이 둘러 있는 동안에도 왜 사람만은 그처럼 신속히 죄악에 물든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죄로 인해 이미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그 음성에 순종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빛으로 둘러 주셨다 해도 어차피 이 땅은 육의 세계이므로 사람이 자유의지 가운데 스스로 육을 취하게 되면 근본 가지고 있는 육의 속성에 따라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비록 빛으로 둘린 에덴 동산에 살던 아담이라도 자유의지 가운데 불순종을 하게 되니 죄로 물들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하물며 육의 세계인 이 땅에서는 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더욱 쉽게 물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이 아무리 빛으로 둘러 있다 해도 에덴 동산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에덴 동산은 지금도 아버지 하나님께 속한 빛으로 둘러져 있는 공간이며 원래 영의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반면에 이 땅은 빛으로 둘러놓았다 해도 근본은 역시 육의 세계에 속한 곳입니다. 단지 빛으로 둘러 있는 동안만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임시적으로 영의 공간처럼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담이 범죄 이전에 이 땅이 온전히 빛으로 둘러 있었을 때에도 이 땅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영의 세계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없지만 이 땅은 원래 육의 세계이기 때문에 비록 빛으로 둘러져 있었다 해도 그것이 임시적인 것이었기에 근본적으로는 시간이 지나면 노화되고 변질되어 결국은 죽게 되는 육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었지요. 하지만 이 땅이 빛으로 둘러 있는 동안에는 육의 법칙과는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전에도 한 번 말씀을 드렸지만 예를 들어 동물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수명을 다하게 되면 자연스러우면서도 평안하게 숨이 끊어지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지요. 지금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산 것은 물론이구요. 사람들도 노아의 홍수 이전까지는 평균 900세가 넘는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고통스럽거나 힘들게 죽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외모 역시 보기 흉하게 늙거나 병들고 쇠약하여 고통을 겪는 것도 아니라 했지요. 이러한 현상들은 비록 육의 세계에 살고는 있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둘러 주셨던 빛의 영향으로 인해 나타났던 것들입니다.
반면에 에덴 동산은 영원히 빛으로 둘러진 곳이며 원래가 영의 세계에 속한 것이기에 임시적으로 빛에 둘러져 있던 이 땅과는 많이 다릅니다. 죽음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은 물론이고 식물들의 성장 속도나 짐승들의 상태가 다르지요. 빛이 둘러 있는 동안에는 물론 이 땅의 동물들도 매우 온순하고 아름다웠지만 그렇다 해도 에덴 동산의 동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 땅의 사람들은 동물들과 대화할 수 없지만 에덴 동산의 사람들은 동물들과도 대화가 가능했지요. 에덴 동산의 동물들이 사람의 말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곳은 영의 세계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교통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뱀이 하와를 미혹하기 위해 접근하여 하와와 대화했던 것을 보아도 잘 알 수가 있지요.
이처럼 똑같이 빛으로 둘러진 공간이라 해도 근본 육의 세계에 속한 것이냐 영의 세계에 속한 것이냐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땅이 빛으로 둘러져 있는 동안에는 비록 임시적이기는 하지만 이 땅 역시 영의 법칙을 따라 영의 흐름 속에 있었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 살던 아담이나 그의 후예들이 이 땅에 내려왔을 때 많은 불편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지요. 그래서 아담은 물론이고 아담의 범죄 이후에 그의 후손들이 이 땅에 내려왔을 때에 이 땅에 대해 나름대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창조의 근본된 빛이 둘러져 있을 때와 거두어진 후의 차이점
그런데 이 땅이 빛으로 둘러져 있을 때와 빛이 거두어진 후에 나타난 커다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빛이 거두어지면서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물들 역시 근본에 내재된 죄악의 속성이 발동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있기 전에도 이미 이 땅의 사람들이 죄악 가운데 물들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두신 빛이 있었기에 사람의 근본에 내재된 속성들이 온전히 드러났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가 노아의 홍수 이후에 빛이 완전히 거두어진 세상이 되면서부터 사람의 근본 깊숙이 내재된 죄의 속성까지도 하나하나 드러나게 되지요. 사실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인간 경작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거두어지면서 이 지구도 이때부터는 완전히 육의 법칙에 따라 운행되는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 역시 근본된 육의 속성이 드러나면서 본격적인 경작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지요. 동물들 역시 내재된 속성들이 나오면서 이전과 달리 포악한 기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싸움과 살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도 보면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구분되어 나오는데 짐승들을 이렇게 구분한 것은 바로 그 짐승이 근본적으로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땅이 빛으로 둘러 있을 동안에는 내재된 근본의 속성이 발동하지 않으므로 모든 짐승들이 다 온순하게 보였지만 막상 빛이 거두어지게 되니 근본에 내재된 속성들이 나오면서 원래 지음받을 당시의 토질에 따라 짐승들이 속성에 따라 구분되어졌다는 말이지요.
예를 들어, 어떤 짐승은 간사한 성질이 있고, 어떤 짐승은 포악한 성질이 있으며, 어떤 짐승은 탐욕스러운 성질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짐승은 순종을 잘하는 성질이 있고, 어떤 짐승은 순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짐승은 우직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요. 각각의 동물들이 처음 만들어질 때에 어떤 토질의 흙으로 창조되었느냐에 따라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성질들에 따라 어떤 짐승은 정결한 것에 속하게 되고 어떤 짐승은 부정한 것에 속하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모든 짐승을 전부 다 이런 식으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눈 것은 아닙니다. 짐승들 중에 일부를 정결하다 해 주신 것이고 또 일부를 부정하다 해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짐승들 중에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택하여 구별하신 이유는 앞으로 사람들에 의해 그것들이 사용되어질 목적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각각 다른 숫자만큼 보존하게 하셨는데 여기에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3.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1절을 보면 노아와 그의 온 집이 방주로 들어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노아의 의로움 때문임을 다시 한 번 말씀하고 있지요. 지금까지 이미 몇 차례 말씀드린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의인이요 당세의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를 새로운 인간 경작의 시조로 세우시기 위해 그와 그의 가족들을 홍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때 노아의 가족들이 함께 구원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노아 때문이었다는 말입니다. 노아의 의로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가 가족들에게까지 입혀졌던 것이지요.
이어지는 2-3절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창 6:19-20에서는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 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말씀하셨는데 본문에서는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또 공중의 새는 암수 일곱씩을 취하라 하셨지요. 언뜻 보면 방주로 들이게 하신 동물들의 숫자에 대해 창세기 6장과 창세기 7장 말씀이 서로 다르게 기록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잘못 기록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노아가 방주에 들인 정결한 짐승들과 부정한 짐승들 그리고 공중의 새들은 각각 몇 마리씩일까요? 여기서부터는 두바이 성회를 다녀와서 다음 시간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결 론
사람의 본성 속에는 내재된 죄의 속성들이 있는데 부모로부터 어떤 기를 받고 태어났으며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 성장했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예를 들어 갓난아이에게 젖을 주어 키울 때에 모유를 주느냐 소나 양의 젖을 주느냐 또는 늑대의 젖을 주느냐에 따라 그 아이가 성장했을 때 성품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젖을 통해 어떤 기가 전해졌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자녀들 사이에도 각기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으로 들어오려면 부모의 기와 성장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 심겨진 본성 속의 비진리의 속성까지도 발견하여 뽑아내 버려야 합니다. 딤전 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말씀한 대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하나님의 권세있는 말씀과 함께 불같은 기도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명심하여 항상 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며 불같은 기도를 쉬지 않고 올리심으로 영의 물결을 타고 산속히 영으로 들어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5-04-30 오후 1:16:2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