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91)
서 론 / 창조의 근본된 소리에 순종하는 동물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 6:19-20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노아로 하여금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즉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이게 하십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당시에 노아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을 일일이 잡거나 몰아다가 방주 안에 태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니 동물들이 스스로 순종하여 방주로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음성, 즉 창조의 근본된 소리를 듣고 순종한 것이지요. 까마귀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떡과 고기를 물어서 날라다 주었던 일이나 발람 선지자를 태우고 가던 나귀가 사람의 말을 했던 것도 창조의 근본된 소리인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노아의 방주에 태울 동물들은 하나님께서 불러 모아 주셨지만 노아와 그의 식구들 그리고 방주에 탄 동물들이 앞으로 방주 안에 머무는 동안 먹을 식물은 노아가 직접 준비해야 했습니다.
본 론
1.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본문 2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하셨지요. 그런데 이때 노아는 장차 홍수가 있을 것은 알았지만 그 홍수가 얼마나 계속될 것이며 또 방주 안에는 얼마 동안이나 머물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또 몇 마리의 동물들이 방주에 탈지도 몰랐지요. 그러니 노아가 식물을 준비할 때도 '얼마만큼의 식물을 준비하면 모두가 먹을 수 있을까?'하고 사람의 지식이나 생각을 동원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방주를 어느 장소에 지어야 할지 매일 매일의 작업 속도는 어느 정도로 진행해야 할지 이러한 모든 것들도 노아 자신이 임의로 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의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해 갔지요.
이처럼 노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만 했기에 본문 22절에서는 이러한 노아에 대해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지식에 맞추면 순종하고 맞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떠한 말씀에도 다 순종하여 준행했던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세세한 것까지도 인도해 가십니다. 그러니 순종하는 사람도 행복하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요.
반면에 순종할 마음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축복을 손에 쥐어주어도 결국 자기 뜻대로 가다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사업을 할 때에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계산 속에서 모든 계획을 다 세워 놓고 나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저의 길을 인도해 주세요."하고 기도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해 주시려 해도 이미 자기 마음에 정한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지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으면 결국 자기 보기에 더 좋은 길로 가고 말지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좋을 대로 풀어서 엉뚱한 길로 가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요. 분명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 드리는데도 수긍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납득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니 이런 경우 어떻게 되겠습니까? 깨우칠 수 있도록 몇 번 말씀을 드리지만 대부분이 자기 뜻대로 행하는 것을 봅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지식의 틀이 깨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너무나 쉬운데 여전히 자기 생각과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요. 본인은 순종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불순종이 되는 것이며 불순종하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조차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가진 경험이나 지식 자체가 아예 아무 소용도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요.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도 노아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지만 방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알고 있던 나름대로의 지식과 기술을 활용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의 수에 대한 개념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었지요. 오늘날의 조선 공학적인 관점으로 보아도 손색없는 안정되고 튼튼한 방주가 나올 수 있을 만큼 수학적인 개념과 지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정확한 측량을 위한 도구와 기술도 있었기에 이러한 것들이 방주를 짓는데 활용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할 때 지식과 경험이나 기술을 바탕으로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편집국에서 책자를 발간하는 일 하나만 보아도 물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해 나가지만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난 오랜 세월동안 책자 발간에 필요한 많은 지식과 기술, 경험이 축적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만약 어떤 분이 음식점을 경영하려고 하는데 요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가게 터도 아주 외진 곳에 잡았다고 합시다. 그리고는 "가게가 잘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해서 잘될까요? 물론 믿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받으면 어떤 상황, 어떤 조건 속에서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람 편에서 할 수 있는 것조차 전혀 안 한 채 복 주시라고 기도만 하는 것은 믿음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풍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해도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을 때에는 어차피 자신의 육적인 능력과 한계 안에서밖에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육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상황을 만나게 되면 결국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 기술만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순종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의 길을 인도해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능력의 한계만큼만 이루는 것이지요.
2. 노아의 순종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노아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준행하는 것이 결코 힘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 그리고 순종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순종할 수가 있지요. 하나님께서 때로는 여러분의 능력의 한계를 넘는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부터 그처럼 큰 믿음을 요구하시지는 않습니다.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가셔서 더 큰 믿음의 분량으로 성장시켜 나가시지요. 믿음도 별로 없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큰 믿음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을 명하시면 어차피 그 사람이 순종하지 못할 것을 아시는데 어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그 사람이 믿음으로 승리하여 체험하게 하심으로 점차 믿음이 성장해 나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설령 여러분의 믿음보다 훨씬 큰 것을 요구하셔도 순종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이 따릅니다. 더욱이 이러한 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만큼 믿음의 성장도 빠를 것이구요.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처음부터 감당하지 못할 큰 믿음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고전 10:13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말씀하고 있지요. 각 사람에게 허락하시는 믿음의 시험도 감당할 만큼만 주시며 그것도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길을 예비해 두십니다.
그런데 때로는 능히 감당할만한 시험 앞에서도 그것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요. 이런 경우는 어차피 믿음의 성장을 위해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그 시험을 통과할 때까지 계속해서 같은 종류의 연단이나 시험이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의 시험이 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가는 사람은 신속하게 시험을 통과하여 믿음의 성장을 이루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언제까지나 제자리걸음만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노아의 순종을 통해 또 한 가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온전한 순종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 변함없이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이 성경에 정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그 커다란 방주를 몇 달 혹은 몇 년 안에 다 지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노아는 언제 올지 모르는 홍수를 대비하여 오랜 세월 방주를 지어 가는 동안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온갖 조롱과 비웃음도 받아야 했지요. 세상 사람들의 보기에는 노아의 하는 일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으니 그를 어리석다 놀려대기도 했겠구요.
여러분이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혹여라도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마음에 조금씩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이 생기지는 않으시겠는지요? 노아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도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거나 '오늘일까? 내일일까?'하며 조바심을 내지도 않았지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변함 없이 방주 짓는 일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순종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좀 더디게 성취되는 것 같아 보여도 한 번 하신 말씀을 끝까지 믿고 순종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가장 정확한 때를 맞추어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당장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의심을 하거나 충만함이 떨어지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의 말씀을 주시면 자기 생각에 맞추어 마치 당장 하늘에서 축복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지요. 그러다가 1년, 2년을 기다려도 축복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거나 아예 포기를 합니다. 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10년 전에 주신 말씀이든 20년 전에 주신 말씀이든 결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이루어질까?'하며 의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지요. 한 번 주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믿기에 응답이 오기까지 믿고 기도해 왔으며 그럴 때 지금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 왔습니다.
여러분이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의 말씀을 주셨다 해서 그때부터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축복이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축복의 말씀을 주시는 순간에는 열심히 심고 기도하며 그릇 준비를 해 놓았는데 축복의 말씀을 받고나서 변개해 버렸다면 하나님께서도 축복을 주실 수가 없지요. 축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축복을 받기 위해 간절히 사모하며 달려왔던 행함과 중심으로 계속해서 변함없이 나올 때만이 온전히 성취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어떤 분이 21일 철야를 작정했는데 중간에 응답이 오자 나머지 기간을 채우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것이 과연 온전한 응답으로 주어지겠습니까? 물론 이런 사람에게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시지도 않겠지만 설령 주셨다 해도 원수 마귀 사단이 이내 송사하여 축복을 도로 다 빼앗아 가고 말 것입니다. 어떤 분은 작정해서 기도를 했는데도 당장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으려나 봐'하며 실컷 기도해 놓고서는 의심하는 말을 하거나 '하나님께서는 왜 내 기도를 받지 않으시지'하며 불평하는 말로서 그동안 자신이 쌓아놓은 기도를 스스로 허물고 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 21:22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고 말씀했고, 막 11:24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할 때 응답이 올 때까지 믿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며 결코 의심하거나 불평 불만하는 말로서 축복을 스스로 막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노아는 어떤 상황에서도 조바심이나 의심 없이 오직 믿음으로 오랜 시간을 인내하며 순종했기에 온 인류 가운데서 유일하게 홍수의 심판을 피하여 새로운 인간 경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 노아는 하나님과 밝은 교통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온전한 확신 가운데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과 교통함을 통해 왜 홍수의 심판이 있어야 하고 그와 그의 가족들은 구원을 받아 장차 그들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질지까지도 이미 깨우치고 있었지요.
3. 노아의 고백 속에 담겨 있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
이처럼 모든 것을 알고 방주를 준비하며 기다리는 노아의 마음은 자신과 가족들이 구원받는 사실로 인해 기쁠 수는 없었습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홍수의 심판 앞에 놓여 있는 인류를 바라볼 때 늘 애타하며 안타까운 마음이었지요. 이제 방주가 완성되면 곧 홍수가 닥칠 텐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 행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노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아무리 외쳐도 귀 기울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 이런 고백을 올렸습니다. 이 고백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깊은 교통함 속에서 성령의 감동함으로 알려 주신 내용입니다.
"아버지여 지금의 지어지는 이 방주로 인하여 그날이 임박함을 느끼고 있으되 이 방주가지어지는 것으로 인해 기쁨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안타깝고 심히 안타까울 뿐이니이다. 내가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고, 내가 때를 좇아 아버지의 말씀에 의지하여 모든 것을 만들어 나갔으며 또한 내 모든 분야에 있어서 밤낮 충성하였으나 이렇게 하나가 지어지고 하나가 완성되면 될수록 그날이 임박함으로 인하여 안타까울 뿐이니이다.
저는 아버지의 주신 명령 가운데서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명심하여 하나하나를 이루어 옴으로 날이 갈수록 방주의 모양이 드러나고 정확하게 준비되어 가는 만큼 세상의 사람들을 볼 때에 심히 안타깝고 안타까울 뿐이니이다. 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제가 앎이나이다. 그들에게 전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그들에게 말한다 할지라도 듣지 못함이나이다. 그들은 귀가 있으되 듣지 못하고 눈이 있으되 보지 못하며 정녕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날을 보냄이나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옵니다.
이제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이곳에 저와 저의 가족들이 들어가게 되어지며 아버지의 말씀하신 대로 정해진 것들이 들어가게 되어졌으되 세상에 있는 저들은 어찌할까 생각할 때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진해질 뿐이니이다. 그러나 이처럼 안타까워한들 어찌 아버지의 마음과 같을 수 있으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겠나이까?
저는 정녕 아버지의 말씀에 의지하여 나의 모든 것을 다 버릴 수가 있음이나니 아버지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며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왜 아버지께서 방주를 내게 만들라 하셨고 내게 하나하나 이루시는지를 내가 느끼나이다. 그러나 저의 마음이 이토록 안타까운 것은 그날이 임박해 왔음을 느낌이나니 저들을 향한 저의 이 안타까운 마음을 아버지여 이해하여 주소서.
아버지여, 어찌하리이까? 그들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며,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계획하심 속에서 이처럼 모든 것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저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저들을 돌이킬 수가 있겠나이까. 아버지여, 그러나 이 아들은 아버지께서 명하시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리니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 가운데 이루어짐이니이다. 이 아들이 하나도 실수하지 아니하고 정확하게 이룰 수 있도록 늘 주관하시고 인도하여 주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의 애타는 마음이 느껴지시는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의인 노아는 그만큼 그 마음에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임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아의 마음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바라보시며 애타하시고, 마음 아파하시는 마음이 함께 느껴지고 있었지요. 여러분도 마음을 영으로 일구는 만큼 마음 안에 영혼 사랑함과 긍휼의 마음이 더해지게 됩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을 입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인들에게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파했던 사도 바울을 보아도 그 마음에 영혼 사랑함과 긍휼의 마음이 가득했던 것을 볼 수가 있지요. 고후 11:23-27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의 일을 하면서 얼마나 고난과 핍박과 환난을 받아야 했는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옥에 갇힘과 매맞음과 파선과 갖가지 위험들에 직면했을 뿐만 아니라 추위에 떨며, 헐벗고, 주리고, 목말라야 했던 당시의 상황들을 기록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어지는 고후 11:28-29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히려 그 마음에는 교회에 대한 염려와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십니다.
결 론
저도 지금까지 교회를 치리해 오면서 오직 교회와 영혼들에 대한 생각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날들을 눈물로 지새워야 했지요. 92년도에 제가 몸에 모든 피를 쏟고 죽어갈 때도 저는 교회와 영혼들에 대한 염려뿐이었습니다. 의식이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숨이 끊어져서 제 영혼이 주님을 뵈었을 때에 사랑하는 주님 품에 너무나 안기고 싶은 마음에 잠시 동안은 이 세상의 일들을 잊었었지만 주님께서 제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교회와 영혼들이 어떻게 될지를 보여 주시자 저는 주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도 뒤로한 채 다시금 살려 주실 것을 주님께 간청했지요. 제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고, 많은 성도들이 세상으로 다시 빠져서 결국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장면을 보게 되니 도저히 그대로 주님 품에 안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게 맡겨주신 양 떼들을 모두 천국으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수고와 핍박과 고난이 온다 할지라도 어찌 그것을 힘들다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마음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처럼, 주님의 마음처럼 영혼에 대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가득하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신속히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도 세상 가운데서 구원의 방주를 완성해 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항상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버지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어떠한 위험이 있는 곳이라도 담대히 나갔고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행 20:24에 말씀한 대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하며 달려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5-04-30 오후 1:16:2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