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90)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언약이란 곧 홍수의 심판 속에서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건지시므로 그들을 통해 인간 경작의 역사를 새롭게 이루어 가시겠다는 것이지요. 또한 내가 내 언약을 세운다 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변개함 없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우신 언약이기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본론
1. 식언치 않으시며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민수기 23:19에 보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말씀하고 있지요. 이사야 55:11에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신 것이나 한 번 이루시기로 계획하시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무조건 절대적인 권세를 휘두르셔서 원하시는 대로 이루시는 분은 결코 아닙니다. 모든 것을 정확한 공의 가운데 이루어 가시지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어떤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그 일이 공의 가운데 역사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하시며 주변 상황들까지도 주관해 가십니다.
홍수의 심판 때를 위해 노아라는 인물을 미리 예비하신 것도 그러했지요. 어느 날 갑자기 노아라는 인물이 나온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 즉 노아의 오랜 조상의 때부터 환경과 조건 등을 주관해 오심으로 마침내 노아라는 인물이 나올 수 있었다 했습니다. 공의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지는 것도 이러한 공의의 법칙에 맞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거나 직분이 높다고 해서 또는 기도를 많이 하고 장기 금식을 한다고 해서 권능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공의의 법칙에 비추어 권능 받기에 합당한 그릇이 먼저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릇 준비를 위한 연단도 있기 마련이고 합당한 그릇이 준비되기까지는 한 단계, 한 단계 과정을 밟아 나가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인도해 가시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므로 어떤 그릇을 연단하면 그가 장차 권능 받을 수 있는 그릇인가를 아시기 때문에 그러한 그릇을 찾으셔서 연단하여 준비된 그릇이 되었을 때 권능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권능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권능 받을 수 있는 자격만 갖추게 되면 편벽됨이 없이 권능을 주셔서 사용하십니다. 다만 권능 받는 것이 그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그릇이나 택하여 연단하실 수는 없습니다. 권능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합당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공의 가운데 주어지는 힘든 연단과 시험들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러한 연단과 시험을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중심이 합당하고 변개함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택하여 연단을 통해 정금같이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권능을 받기 사모하는 분들이라면 먼저 자신의 중심을 하나님의 보시기에 합당하며 변개함이 없는 정한 마음, 즉 참 마음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후에 성령의 주관하심을 따라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해 나갈 때 권능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제 경우를 보아도 지금까지 저의 권능은 날로 커져만 왔는데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도 거저 받은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하는 연단과 시험을 통과하여 공의의 법칙에 비추어 합당한 자격을 갖추는 만큼 저의 권능도 커져왔던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서 쉽게 권능을 더해 주시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강하게 연단해서 더 큰 권능자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새로운 영의 지식들을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것도 그러한 과정이지요.
예를 들어 선생님이 아주 사랑하는 제자가 있다고 할 때 그 제자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그 제자에게만 시험 문제와 답을 미리 가르쳐준다면 이것은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그 제자를 열심히 가르치고 공부시켜서 그가 실력을 쌓게 하여 시험을 잘 보게 되었다면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시시비비할 수가 없지요. 물론 이때 어려운 내용을 선생님이 가르쳐 준다고 해서 아무나 그 내용을 이해해서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 편에서도 그만큼 어려운 내용까지도 배울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있어야 하고 선생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모든 것이 반드시 공의의 법칙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여러분이 손수건 기도와 단물 그리고 전화 음성사서함 등을 통해 너무나 크고 놀라운 역사들을 항상 체험하다보니 자칫 권능 받는 것이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에 정확하게 비추어 자신이 과연 권능받기에 합당한 그릇인가를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2.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요한일서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하신 대로 정녕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아 책망할 것이 없음으로 담대함을 얻을 수 있을 때만이 구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수차례 언약하셨지만 실제로 출애굽한 1세대 중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언약을 받았으되 믿지 못하고 행하지 않으니 언약이 이루질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번 이루리라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기에 그 말씀이 결국 합당한 자격을 갖춘 출애굽 2세대들을 통해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언약을 받았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사람 편에서의 믿음과 행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노아 역시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기에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만 성취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준행하는 사람은 물론, 주변에 함께하는 사람들과 후손들에게까지도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20:6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노아로 인해 그의 아들들과 아내 그리고 며느리들까지도 방주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의인 노아 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가 그 가족들에게까지도 임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먼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고 은혜를 입는 자가 되면 여러분의 가족에까지도 그 은혜가 입혀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가족 복음화를 위해 기도한다면 먼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하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과 행함을 보시고 때가 되면 가족들에게 역사하여 응답을 받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열매를 맺기까지는 여러분 편에서도 때를 좇아 복음을 전하는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3.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이어지는 창세기 6:19-20을 보면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 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경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부분 중에 하나입니다. 당시에 노아가 어떤 방법으로 모든 생물들을 암수 한 쌍씩 모아서 방주 안에 태울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노아가 직접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일일이 잡아다가 방주에 태운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당시의 동물들은 다 온순해서 노아가 잡으려 했다면 도망하거나 대항하려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언제 그 많은 동물들을 전부 방주 안으로 이끌어 들이겠습니까? 이때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된 소리를 통해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천하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근본된 소리가 발해지자 모든 종류의 동물들이 그 소리에 순종하여 스스로가 방주 있는 곳으로 나왔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금년도 기도제목 네 번째인 목자의 권능에 대한 설교를 통해 이미 설명한 대로 천하만물들은 말씀으로 자신들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된 소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근본된 소리를 기억한다고 하니까 우리 사람들이 서로간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처럼 '아 이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구나' 하고 육적인 목소리로서 분별하는 것이 아니지요. 동물들이야 그나마 귀라도 있지만 바람이나 파도, 구름 등은 어찌 귀도 없는데 육적인 소리로써 알아듣겠습니까?
천하만물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창조의 근본된 소리에 자동으로 반응하도록 자체적으로 프로그램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프로그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좀더 쉽게 말하자면 마치 본능으로 심어져 있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우리 사람이 목이 마르면 본능적으로 물을 찾게 되는 것과 같이 천하만물은 처음 창조될 때부터 마치 본능과 같이 창조의 근본된 소리에 반응하도록 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동물들에게 창조의 근본된 소리를 발하면 그들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그 소리에 순종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때 중요한 또 한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천하만물을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기 전에 먼저 "빛이 있으라." 하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빛으로 공간을 두르신 후에 창조의 근본된 소리를 발하여 천하만물을 순서대로 창조해 가신 것이지요. 이 빛이 바로 창조의 근본된 빛입니다.
태초 이전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주 공간에 홀로 계실 때에는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은 상태로 계셨다 했는데 이때의 빛이 바로 창조의 근본된 빛이며 이때의 소리가 바로 창조의 근본된 소리이지요. 이 빛 안에는 온갖 영의 지식과 지혜와 능력이 담겨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소리를 통해 발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근본된 빛과 창조의 근본된 소리는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빛과 소리는 결국 하나요 항상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써 창조의 근본된 빛으로부터 창조의 근본된 소리가 발하여지는 것이고, 창조의 근본된 소리가 발하여지는 곳에는 창조의 근본된 빛도 있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창조의 근본된 소리를 온전히 회복하려면 바로 창조의 근본된 빛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운용하는 방법 또한 함께 터득해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의 근본된 소리도 온전히 발할 수가 있지요.
4. 창조의 근본된 빛과 소리
성도 여러분,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서 천하만물을 창조하시기 위해 창조의 근본된 소리를 발하실 때에 먼저 창조의 근본된 빛을 두르셨습니다. 따라서 빛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근본된 소리로 창조된 모든 천하만물은 창조의 근본된 소리도 기억하고 있지만 창조의 근본된 빛도 함께 기억하고 있지요. 즉 근본된 소리와 함께 근본된 빛도 천하만물에게 입력되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하셨는데 만물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바로 근본된 빛으로 인해 깃들여진 것이지요. 이처럼 빛으로 둘러진 상황에서 천하만물이 근본된 소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천하만물은 근본된 빛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창조의 근본된 소리를 더 잘 기억하고 온전히 순종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천하만물에게 근본된 소리가 입력될 때와 동일한 조건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근본의 소리를 잘 알아듣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여러분이 연산작용을 생각해 보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렸을 때 매우 인상깊은 장면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커서도 여러분이 그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어렸을 적에 보았던 장면이 기억나게 되지요. 처음 기억 속에 깊은 인상으로 자리잡게 된 때와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지니 어렸을 때의 기억이 더욱 확실하게 되살아나는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창조의 근본된 소리가 발하여질 때에 창조의 근본된 빛이 함께 둘러지게 되면 처음 천하만물에게 창조의 근본된 소리가 입력되었던 당시의 동일한 조건이 되어지면서 천하만물도 그 소리를 즉시로 알아듣고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홍수가 있기 전까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둘러주셨던 이 빛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난 이후로 세상이 점점 죄악으로 관영되어 가면서 빛도 조금씩 거두어져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홍수 전까지는 남아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결국 홍수 이후에 완전히 거두어지게 된 것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마룻바닥에 왁스를 두껍게 칠했는데 처음에는 아주 반짝거리지만 사람들이 빈번히 왕래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왁스가 조금씩 벗겨지면서 마침내는 왁스가 완전히 벗겨지고 맨 마룻바닥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홍수 이전,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담긴 창조의 근본된 빛으로 둘러 있는 동안은 이 땅도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존재하는 육적인 자연의 법칙이나 질서를 초월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붙들린바 되어 운행되었지요. 이 땅이 분명 육의 공간에 속한 것이었지만 빛으로 둘러 있는 동안은 영의 공간과 비슷한 상태가 되어 영이신 하나님의 영향력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아 홍수 이후에 창조의 근본된 빛이 거두어진 뒤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요? 이때부터는 새로운 육의 법칙과 질서가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모든 것이 운행되어집니다. 빛이 거두어지니 완전히 육의 차원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창조의 근본된 빛이 역사되는 때가 있는데 바로 창조의 근본된 소리가 발하여질 때이지요.
창조의 근본된 소리는 창조의 근본된 빛과 함께 역사하기 때문에 빛이 거두어진 후에도 창조의 근본된 소리가 발하여질 때만큼은 창조의 근본된 빛이 순간 역사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창조의 근본된 빛이 둘러지면 같은 공간 안에서도 전혀 다른 차원이 되어지지요. 마치 이 땅이 근본된 빛으로 둘러 있을 때는 육의 법칙과 질서를 초월하여 영의 공간과 같았던 것처럼 빛이 둘러진 곳은 육의 차원의 질서와 법칙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영의 차원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노아 홍수 이후에 해와 달이 멈추고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육의 공간에 속한 육의 법칙으로는 해와 달이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태양계의 질서가 완전히 깨지면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되지요. 하지만 창조의 근본된 빛으로 두르게 되면 그 순간만큼은 육의 법칙이나 질서와는 전혀 상관이 없게 된다 했습니다. 해와 달이 멈추어도 육적으로 이 지구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지요.
사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빛을 거두시기 전에는, 즉 홍수 이전에 지구가 빛으로 둘러 있을 때에는 지금처럼 해와 달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둘러주신 빛에 의해 운행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아담의 범죄로 인해 빛이 사라지기 시작해서 홍수 후에는 이 빛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지구에는 새로운 육의 법칙과 질서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창조의 근본된 빛으로 둘러놓게 되면 설령 해와 달이 멈추어도 이 지구는 예전의 근본된 빛으로 둘러 있을 때처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얼마든지 운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육의 법칙대로라면 바다가 갈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육의 질서가 깨어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많은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지요. 하지만 창조의 근본된 빛으로 두르게 되면 그 공간은 육의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홍해가 갈라져도 주변의 육의 질서에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처럼 창조의 근본된 소리를 발하여 놀라운 권능의 역사들이 일어날 때에는 창조의 근본된 빛이 함께 있어서 육의 법칙과 질서와는 상관없는 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빛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5.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 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홍수 이전 즉 아직까지는 근본된 빛이 둘러 있던 당시에는 동물들 역시 오늘날과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영적인 영향력이 남아 있던 때이므로 동물들끼리 서로 싸우거나 죽이고 잡아먹는 오늘날과 같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던 때가 아니었지요.
이는 여러분이 에덴 동산을 생각해 보시면 금방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에덴 동산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둘러주신 빛으로 감싸여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빛의 영향력으로 인해 이곳에서는 악이 나오지도 않는 것이며 모든 것이 육의 법칙이나 질서와는 다른 영의 법칙과 질서를 따르는 것이지요. 이 지구가 처음 창조되고 근본된 빛으로 둘러 있을 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운행되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지구가 근본된 빛으로 둘러 있는 동안은 아담을 비롯하여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이 땅에 내려와도 자신들이 사는 에덴 동산과 별로 큰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이 땅의 사람들의 죄가 관영해지면서 이 지구를 두르고 있던 근본된 빛도 차츰 사라지자 동물들 역시 전과는 다르게 변해갔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빛이 완전히 거두어지기까지는 서로간의 싸우거나 죽이는 일은 없었다 해도 어떤 것은 좀더 악에 물든 것이 나오게 되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게 되었지요. 예를 들어 같은 사자라 해도 더 포악한 사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온순한 사자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방주에 이끌어들일 동물들을 택하실 때도 그 중에서도 선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사람 중에서 뿐만 아니라 이처럼 동물 중에서도 생명을 보존케 할 만한 것들을 택하여 방주로 이끌어들이셨던 것이지요.
이제 다음 시간에는 방주를 준비하는 노아가 과연 어떠한 심정이었는지에 대해 노아의 고백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주님을 닮아 가는 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영적인 빛을 둘러주십니다. 영으로 더 깊이 들어온 사람일수록 그 빛이 더 밝고 아름답지요. 그리고 온전히 영으로 들어오게 되면 둘러지는 빛이 전과는 전혀 달라지며 이 빛으로부터 능력이 나가게 됩니다.
또한 마치 지구가 근본된 빛으로 둘러 있는 동안은 육의 법칙과 질서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능력 아래서 운행되었던 것처럼 육을 초월할 수가 있게 됩니다. 질병이나 연약함이 틈탈 수도 없고, 육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가 있지요. 원수 마귀도 영물로서 이러한 영적인 빛을 볼 수가 있기 때문에 그 빛 앞에서 두려워 떨며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영의 세계와 교통할 때도 하나님께서 영의 빛으로 둘러 주심으로 몸은 비록 육의 차원에 속해 있지만 영으로는 신령한 영의 차원에 속해지면서 영으로 교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빛이신 하나님을 닮아감으로 여러분에게도 영적인 빛이 둘러지는 만큼 임하게 되는 축복들이지요.
그러므로 로마서 13:12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말씀하신 대로 신속히 모든 어둠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빛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더 온전히 닮아 나가심으로 더 밝은 빛의 갑옷으로 새롭게 갈아입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4:14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