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87)
서론
우리는 창세기 6장 말씀을 통해 비밀한 것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 가고 있습니다. 아담이 이 땅에 내려와 경작을 받기 시작한 후 에덴 동산의 사람들은 왜 이 땅에 내려왔으며 이로 인해 이 땅에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지요. 죄악으로 관영한 이 땅은 에덴 동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에 의한 죄악까지 더해지면서 마침내는 넘지 말아야 할 공의의 선까지 넘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는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에 대해 선포하시는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본론
1.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7절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당시 이 땅에 살던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에게까지도 이르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러한 동물들까지도 사람들과 함께 심판하시려 한 것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당시의 동물들이 사람들의 타락과 깊은 관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동물들의 형상을 본뜬 우상을 만들어서 집안을 장식하거나 몸을 치장하고 그것들을 섬겼지요.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찬양해야 하는데 그 자리를 한낱 피조물인 동물의 우상이 대신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20:4-5을 보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말씀하시며 우상 숭배에 대해 엄히 경계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그런데 이 땅에 인간 경작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고 노아의 대에 이르러서는 그 정도가 극히 심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동물들까지도 심판을 통해 함께 멸하여 버리심으로 사람들이 만든 우상이 얼마나 헛된 것이며 우상의 대상이 된 동물들 역시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신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심판의 대상에서 유독 물에 사는 동물들은 빠진 것일까요? 그것은 아직 바다의 동물들까지는 사람들의 우상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는 사람들이 아직 바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기 전이었고 바다로 진출하여 오늘날과 같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하고 있었지요. 다만 육지에서 육지로 퍼져 나가며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늘 보아 오던 육지와 하늘의 동물들은 쉽게 우상의 대상이 되었지만 반면에 바다의 동물들은 그렇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상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던 지상과 공중의 동물들은 결국 사람과 함께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로 육지와 공중의 많은 동물들이 함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속한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람들은 갖가지 동물들을 우상으로 섬겼는데 이러한 동물들을 잡아 자랑으로 삼았고 자신의 소유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많은 육축을 거느리고 자신의 부를 과시했지요. 따라서 동물들 자체로는 잘못이 없다 해도 어찌했든 사람에게 속한 바가 되었기 때문에 연대 책임을 물어 심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이방 민족을 진멸하도록 명하실 때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속한 육축과 짐승까지도 함께 멸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신명기 13:15에 "너는 마땅히 그 성읍 거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중에 거하는 모든 것과 그 생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5:3에는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노아의 홍수 때에도 사람들에게 임할 심판이 결국은 사람들의 소유와 다스림의 대상이 되었던 동물들에게까지 임했던 것입니다.
2.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처럼 죄악으로 관영된 속에서도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아가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의인 노아였지요. 그렇지만 의인 노아라는 인물이 그처럼 쉽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태어나기까지 노아에게뿐만 아니라 그의 조상 대대로 이어지는 아버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었지요. 그래서 8절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인간 경작이 시작되기 전부터 장차 사람들이 타락하고 변질될 것을 아셨습니다. 때가 이르면 심판이 있을 것이고 심판 후에 새로운 인간 경작의 시작이 있을 것도 아셨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때를 대비하여 아담의 자녀들 중에 셋을 택하여 계보를 잇게 하시고 그를 통해 결국은 노아라는 인물이 나오기까지 특별한 은혜 가운데 혈통을 이어오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지하시고 예정하신 가운데 정확한 시점에 노아가 태어나도록 섭리해 놓으셨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셔야 했던 것일까요? 그냥 심판의 시점이 되어서 당시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을 택하여 심판에서 살아남게 하시고 그를 통해 인간 경작을 다시 시작하시면 안 되었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제외하고 당시 이 땅의 모든 사람을 멸하는 공의의 심판이었지요. 이런 공의의 심판을 면할 수 있으려면 공의의 법칙에 비추어 볼 때에 전혀 송사할 것이 없는 합당한 인물이어야 했습니다. 만약 조금의 흠이라도 있는 사람이었다면 원수 마귀 사단은 왜 그 사람만 심판에서 제외를 시키시느냐고 송사했을 것이고 그 또한 공의의 심판을 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 경작은 결국 실패로 마쳐지고 말았겠지요.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장차 때가 이르러 모든 사람을 공의로 심판할 때가 되면 새로운 인간 경작을 위해 당시 사람들 중에는 공의의 심판에서 제외될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를 멸하는 대심판 앞에서도 공의의 법칙에 따라 심판을 면할 수 있는 노아라는 인물을 예비해 놓으셨던 것이지요. 만약 노아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인간 경작은 노아의 때에 마쳐졌을 것이구요. 그런데 이러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 하루아침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는 미리 노아의 오랜 조상의 때부터 특별한 은혜와 섭리 가운데 준비해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섭리와 계획이 있었기에 노아의 때에 대홍수의 심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경작은 실패가 아니고 새로운 시작을 맞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기 때문에 이처럼 노아를 예비시키신 것도 공의의 법칙에 전혀 어굿나지 않도록 역사하셨지요. 그러면 노아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어지는 9, 10절을 보면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말씀하고 있는데 이러한 인물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지요.
창세기 5:28-29에 "라멕은 일백팔십이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이들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노아라 부르면서 예언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라멕은 인간 경작의 시작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리신 저주로 인해 사람들이 점차 죄악으로 관영해 감으로 마침내는 그에 대한 심판이 있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자신이 낳은 아들 노아로 인해 자신들이 안위받게 될 것도 알았지요. 만약 장차 이 땅에 내려질 심판의 결과로 지금까지 자신들이 쌓아 놓은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리며 그것으로 인간 경작도 끝나고 만다면 얼마나 헛된 것이겠습니까. 인간 경작이 시작된 지 1500여 년 만에 자신들의 대에서 인간 경작이 마쳐지게 되면 처음 인간 경작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지 못한 채 이 땅에서 수고로이 받아 왔던 경작의 시간들이 끝날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엄청난 심판 속에서도 라멕은 자신이 낳은 아들인 노아만은 살아남아 다시금 새로운 인간 경작이 시작될 것을 알았기에 라멕은 지금 이를 통해 안위를 받는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라멕은 그 당시 이미 장차 대심판이 있을 것과 그런 와중에도 자신이 낳은 아들 노아가 살아남아 인간 경작의 맥을 이어갈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이는 곧 무엇을 의미합니까? 라멕이 그만큼 아버지 하나님과도 밝히 교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태어나게 된 계보는 아버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 보호받으며 그 혈통을 이어왔습니다. 이는 단지 육적으로 조상 셋의 혈통을 잘 이어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으로 잘 이어왔다는 의미이지요. 즉 셋의 후예들 역시 하나님만을 섬기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았던 조상 셋을 본받아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 왔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셋의 모든 후예가 다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노아가 태어나게 되는 혈통이 그러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노아의 조상 중에 보면 바로 에녹과 같은 인물도 태어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담의 대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노아의 아버지 라멕에 이르러서도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과 밝히 교통했다는 것은 그의 조상들 역시 대대로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해 나왔음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지요. 이러한 환경과 조건 속에 태어난 노아는 탄생의 시점부터 아버지는 물론이고 조상들로부터의 수많은 진리의 가르침과 보살핌 속에 성장하였습니다.
나중에 설명이 되겠지만 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와 같은 경우는 노아의 홍수가 있기 직전까지 살아 있었지요. 그러기 때문에 노아는 성장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아버지와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밝히 배우고 가르침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에 노아는 그처럼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진리 안에서 성장하여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될 수가 있었지요.
3.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렇다면 노아 자신은 과연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삶을 살았을까요?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해서 스스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살았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더욱 온전히 드리기를 원했지요.
이러한 노아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는 말씀이 창세기 5:32에 나옵니다.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전에 아담의 계보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성경에 기록된 계보에 오르지 않은 자녀들도 많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계보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이 꼭 첫 번째 낳은 자녀들은 아닐 수도 있다고 했지요. 그런데 노아의 경우는 결혼하여 첫 자녀를 낳은 것이 바로 오백 세 된 이후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왜 이처럼 늦은 나이에 자녀를 낳았던 것일까요? 노아는 당시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 속에서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살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리는 삶을 살기 원했지요. 그래서 결혼도 하지 않았던 것이고 당시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한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했던 노아가 오백 세가 다 된 나이에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던 이유는 바로 자신을 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지요. 노아는 장차 대심판이 있을 것과 그 이후의 자신을 통해 새롭게 인간 경작이 시작될 것을 알았고 그러려면 인간을 존속시키기 위해 자신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야 함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의 심판을 100년 앞둔 그의 나이 오백 세가 된 후에야 비로소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던 것이지요. 노아 당시의 사람들처럼 정욕을 좇아 결혼하거나 자신의 부와 권세를 위해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택하신 도구로써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평소의 삶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따랐고 조상들의 가르침에 순종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삶을 살았지요.
이런 노아였기에 아버지 하나님과 밝히 교통할 수 있었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헌신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의 조상 에녹처럼 노아도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노아의 아내와 그의 세 아들들 또한 세 며느리들 역시 노아의 인도함속에 심판을 면할 수가 있었지요.
4.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그렇다면 노아의 다른 가족들도 심판을 면할 수 있을 만큼 온전한 사람들이었을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들이 심판을 면한 것은 노아처럼 온전해서가 아니라 의인 노아에게 속해 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창세기 19:29에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말씀하고 있지요. 이는 롯이 자신의 의로움으로 인해 소돔에 멸망 중에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삼촌 아브라함으로 인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노아의 다른 가족들 역시 자신들의 의로움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노아에게 속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입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생명의 제단, 은혜의 제단에 함께 할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이유만으로도 여러분을 지키시고 보장해 주시는 것과 같지요.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 편에서 은혜를 베푸셔도 그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롯의 경우, 아브라함으로 인해 롯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니 이러한 롯으로 인해 또다시 그의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사위들까지도 구원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19:12에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하여 하나님의 명을 받고 온 천사들이 롯에게 그의 가족들까지 성밖으로 데리고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딸들과 결혼할 사위될 사람들까지 구원해 주시려고 하지요. 더욱이 창세기 19:16에 보면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했지요.
그러나 이처럼 기회가 주어졌다 해서 모두가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19:14에 "롯이 나가서 그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했지요. 결국 사위들은 장인인 롯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 멸망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또한 롯의 아내 역시 멸망하는 소돔성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버리고 말았지요. 똑같이 구원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그 기회를 잡은 사람도 있고 그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노아의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노아와 함께 구원에 이를 수 있었던 데는 단지 노아에게 속해있었다는 사실 이외에도 그들 역시 노아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았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노아의 가족이었다 해도 노아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명했을 때 노아의 말을 믿지 않거나 세상을 사랑하여 따르지 않았다면 그들도 다른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멸망에 이르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인 노아에게 속했다는 은혜와 더불어 자신들 역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했기에 구원의 방주에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말이지요.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제단이라 해도 단지 이 안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의 방주를 함께 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끝까지 이 안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많은 기회를 주시고 또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주시겠지만 결국 구원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1:1의 관계이지요. 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순종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보장된 구원의 확신이 있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여전히 말씀에 불순종하여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마지막 날에 결국 행한 대로 갚아주실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의인 한 사람으로 인해 그에게 속한 사람들에게까지 얼마나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하는지를 깨닫는 동시에 이처럼 주어진 은혜를 받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왜 노아의 홍수 심판을 두실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 공의 가운데 이루어졌는지, 또한 엄청난 홍수의 재앙을 견뎌낸 방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결론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어떤 인물이 태어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부모를 미리 택하시고 주변 환경까지도 주관해 가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이 나오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당시의 의인이었던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을 택하셨고 그가 태어난 이후에도 때가 이르기까지 세상을 떠나 광야에서 살게 하셨지요.
우리 예수님을 보아도 비록 부모의 씨를 받고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얼마나 선한 마음을 가진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이는 그 사람을 형성해 가는데 있어서 그만큼 조상으로부터 영향과 성장과 교육의 주변 환경 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이미 오래 전 조상의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 안에 그의 혈통을 지키시고 노아의 성장 환경을 주관해 가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의 노력 없이는 결코 좋은 그릇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세례 요한이 좋은 부모로부터 태어나 세상과 구별된 환경 속에 살았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혈과 육을 가졌고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인데 어찌 미혹의 순간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더욱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갔던 것이지요.
노아 역시 의인이요 당세의 완전한 자가 되기까지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세상을 아예 모른 체 살아갔던 것이 아니라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알지만 세상을 취하며 사랑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멀리하며 자신을 지켰던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세상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세상으로부터 여러분을 지킬 수 있지만 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세상을 접하는 기회들도 생기게 되지요. 그러므로 세상으로부터 온전히 지키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 안에 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잠언 4:23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여러분이 바로 마음을 지킬 수 있을 때 세상의 어떠한 미혹이나 핍박이 온다해도 능히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온전히 지킬 수 있을 때까지는 비진리는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아야 하지요. 그러려면 여러분의 마음을 오직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채워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세상의 어떠한 것도 틈탈 수가 없지요.
이처럼 믿음, 소망, 사랑으로 충만해져서 에베소서 3:17-19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 있든지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뿌리깊은 나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4:14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