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86)
서론
지난 시간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라는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첫째는 문자 그대로 이 땅에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서 여러 종족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사람들의 삶도 안정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 했지요. 둘째는 이처럼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삶이 안정됨에 따라 오히려 하나님과는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라 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점점 죄악 가운데로 더욱 깊이 빠져들어 가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이 땅에는 또 한 가지 영계의 질서를 깨뜨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지요. 바로 에덴 동산에 사는 아담의 후예들 중에서 이 땅에 내려와 이 땅의 여인들을 아내로 취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후예
본문 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바로 에덴 동산에서 내려온 남자들을 의미하며 '사람의 딸들'이란 이 땅의 여자들을 의미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에덴 동산에 사는 사람들이 이 땅의 여인들을 아내로 취하게 된 데에도 그 동기에 따른 두 가지 부류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이 땅의 삶을 동경하여 아예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해서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취해 사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이러한 사람들은 어떤 악한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이 땅 사람들의 삶을 동경하여 스스로가 이 땅의 삶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하여 살게 된 사람의 수는 극히 적었지요. 따라서 이들의 존재가 영계의 질서를 깨거나 이 땅의 질서를 깨뜨리고 문란하게 할 만큼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 합한 것은 아니었으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도 그들이 어떤 악을 행하거나 죄를 지으려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니었기에 이들을 그냥 이 땅에 두셨지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후예들이 본문 4절에 나오는 '네피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이 땅에 내려와 정착했던 에덴 동산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이 땅에 내려와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취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이 땅의 여인들의 육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려 정욕 가운데 그들을 아내로 삼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한 명만 아내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지요. 이는 이미 그들의 마음에도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이 들어왔음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도 이 땅의 후예가 태어나게 되지요.
본문 4절 말씀이 이러한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말씀한 대로 먼저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 또다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후예를 낳았던 것이지요.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유에서 결국 이 땅에 후예를 남기게 된 두 경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들들 중에 극히 일부이기는 하기만 이미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해서 네피림이라는 후예를 낳고 살아갈 때에, 이번에는 하나님의 아들들 중에서 정욕에 이끌려 이 땅에 내려와서 여인들을 아내로 취하여 후손을 낳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이처럼 짧은 한 절의 말씀에도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에 이 땅에서 있었던 엄청난 사건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2.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죄라는 것은 금방 주변으로 전염되고 또 더 깊이 빠지게 만드는 속성이 있지요. 그 당시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모습이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이 땅의 사람들까지도 급속도로 도덕적인 문란함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지요.
이 땅에는 이미 성적 타락이 심해져 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 좋을 대로 모든 여자를 아내로 취하는 모습은 이 땅의 사람들의 성적인 타락을 부추기는 매우 안 좋은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죄에 빠진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 땅에 내려와서 정착하여 산 것이 아니라 이 땅과 에덴 동산을 오고 가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자칫 이들로 인해 에덴 동산에까지 비진리가 급속하게 퍼질 수 있었지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보고만 계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의의 한계를 넘었기 때문에 공의의 심판이 내려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 홍수의 심판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단번에 홍수의 심판을 결정하신 것은 아니지요. 단번에 다 멸해 버릴 수도 있으셨지만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먼저 1차적으로 경고성의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 내용이 바로 본문 3절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대상은 단지 당시에 이 땅에 내려와 육에 물들어 감으로 결국 육체가 되어 버린 에덴 동산의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이 땅에 살던 모든 사람들 가운데 육체가 되어 버린 사람들은 다 포함되지요.
여기서 육체가 되어 버렸다는 것은 죄와 악과 불법, 불의 등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어둠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처럼 육체가 된 사람들을 향해 그들과는 영원히 함께하지 않으시겠다 선언하신 것이지요. 이는 다시 말해 육체의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요 자녀로서 결국 사망 즉 지옥으로 갈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여 고린도후서 6:14 후반절에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말씀한 대로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둠과 함께하실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에 혹여 나는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데 나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은데 왜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해 주시지 않는가? 나는 왜 형통함을 받지 못하는가? 나는 왜 축복을 받지 못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바로 이 말씀에서 해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빛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거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실 수가 없지요. 따라서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오고 시험, 환란이 찾아왔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 내가 아직 육체 가운데 있지는 않은가, 내가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6에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말씀한 대로 여러분이 진리 안에 빛 가운데 살지 않는다면 아무리 여러분 편에서는 "나도 하나님을 믿는데요." "나도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데요." 말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거짓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빛 가운데 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해 주시며 반드시 축복을 주십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축복 주시기 위해 허락하신 연단의 과정 속에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는 항상 따릅니다. 요셉이 바로 그러했지요. 요셉이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를 보면 창세기 39:2-3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셉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을 때도 창세기 39:23에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했지요. 종으로 팔려가고 옥에 갇히는 연단의 과정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요셉과 함께해 주셨기에 범사에 형통함을 받을 수가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도 누구나 그것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육체가 된 사람과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하지 않으시니 형통함을 입을 수도 없고 축복을 받을 수도 없으며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육체가 된 사람들을 향해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일백이십 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에 사람의 딸들을 보고 정욕에 이끌려 그들을 아내로 삼았던 에덴 동산의 사람들은 이 땅에 정착해서 산 것이 아니라 에덴 동산과 이 땅을 오고 가며 살았다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들의 날을 일백이십 년으로 정하신 후로 그들은 다시 둘째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게 됩니다. 더 이상 이 땅과 에덴 동산을 오고 가며 이 땅과 영계의 질서를 어그러뜨리지 못하도록 바로 잡으신 것이지요. 그리고 이들도 이 땅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육의 사람들이 되어 한정된 수명을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육체가 되어 버린 이 땅의 사람들 역시 수명이 급격하게 단축되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구백 살이 넘던 수명이 단 번에 일백이십 년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노아 홍수 이후로 꾸준히 감소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일백이십 년이라는 숫자가 꼭 사람들의 수명을 한정짓는 숫자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앞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꼭 일백이십 살만 살게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일백이십 년을 말씀하신 것일까요? 여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일백이십이라는 숫자는 빛의 수인 12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빛과 어둠을 가른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즉 어두움인 육체에 거하는 사람들을 빛과 분리하여 갈라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육체가 되어 어두움이 되어 버린 사람들로 하여금 이제 더 이상 빛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선을 그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육에 물들어 버린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다시는 빛의 영역인 에덴 동산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지요.
다음으로 일백이십 년에 담긴 또 하나의 의미는 앞으로 육체의 사람들에게 허락된 시간을 뜻합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 선포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에 물들어 가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사람들의 악이 극에 달하는 시점에 이르러 마침내 홍수의 심판이 있게 됩니다. 그때까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참으시는 것이지요. 지금 그때까지 남은 시간이 앞으로 일백이십 년이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물론 이때도 꼭 정확하게 일백이십 년 후에 홍수의 심판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심판에 이를 만큼의 악이 차기까지 유예 기간을 선포하고 계시다는 뜻이지요.
성경에는 이처럼 유예 기간을 두시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장차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세기 15:16에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하시지요. 앞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텐데 그때가 4대 후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그 이유가 바로 아직은 가나안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을 멸해 버리실 만큼 그들의 죄가 관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일백이십 년도 이와 같은 경우로서 장차 홍수의 심판이 분명히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차적인 경고를 무시한 채 사람들은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다가 결국 홍수의 심판을 맞게 되고 말았지요. 아직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당시의 사람들이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아마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4. 네피림, 용사, 고대에 유명한 사람
그러면 본문 4절에 네피림, 용사,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라는 말들이 나오는데 왜 이런 단어들이 나오게 된 것일까요? 당시 이 땅에는 서로 다른 이유에서 이 땅에 내려온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있었다 했습니다. 이 땅의 삶을 동경하여 내려와 정착한 사람과 정욕에 이끌려 이 땅에 내려온 사람들이지요.
그 중에서 이 땅의 삶을 동경하여 이 땅에 완전히 정착했던 에덴 동산의 사람들의 후예가 바로 '네피림'이라 했는데 이들은 외모가 매우 출중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기를 타고 태어났기에 이 땅의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더욱이 네피림은 아직 육에 물들지 않은 하나님의 아들들에 의한 후손이었기에 그만큼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가진 뛰어난 면을 그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지요.
이러한 네피림과는 달리 정욕에 이끌려 이 땅에 내려와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취했던 에덴 동산 사람들의 후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도 기본적으로는 에덴 동산의 사람들의 기를 받고 태어났기에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뛰어나게 태어났지요. 이들은 어디에 살든 눈에 띄었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존재로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네피림이든 그렇지 않든 에덴 동산의 기를 받고 태어난 사람들은 자연히 보통 사람들과는 구분이 되어졌지요. 이들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 용사처럼 보여졌고 유명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용사'라 '고대의 유명한 사람'이라 표현하고 있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낳은 출중한 후예들이 계속해서 몇 대에 걸쳐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이들이 계속해서 번성했다면 아마 이 땅은 에덴 동산의 사람들의 후예에 의해 정복되고 다스려지는 세상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겨우 한 세대가 지나면서 끊어지고 맙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 역시 육에 물들어 갔기 때문이지요. 그들 안에 죄가 들어오고 육에 물들어 가면서 그들도 결국은 육체의 사람이 되고 말지요. 그리고 이처럼 육체의 사람이 되어 버리자 이제 그들의 기 안에 더 이상 하나님의 아들들에게서 이어받았던 뛰어난 외모나 능력은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바로 다음 세대부터는 이 땅의 육의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생령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육의 사람이 되어 이 땅으로 쫓겨 내려온 후로는 그들이 낳은 후손도 육의 사람인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땅에 낳은 후예들 역시 죄 가운데 빠져 육체의 사람이 되자 더 이상은 뛰어난 후손이 태어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용사라 불리던 사람들이 그 후에도 계속해서 있었던 것이 아니며 후세 사람들에게 이들은 고대의 유명한 사람으로서 기억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해 내려왔던 거예요. 그나마 시간이 더 지남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인물들로 기억될 뿐이지요. 그리스 신화나 로마 신화들을 보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줄 만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5. 죄악의 관영함과 심판
이처럼 당시의 상황은 사람들이 빠르게 악으로 치달아 가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시며 근심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땅에 대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는데 바로 본문 5-7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렇다면 당시에 얼마나 죄악이 관영했던 것일까요?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어떤 문명이나 융성했던 제국이 멸망할 때를 보면 그들의 죄악이 극에 달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삶이 안정되고 부유해질수록 음란하고 음탕한 풍조가 만연하며 육적인 쾌락을 취하는 데만 빠졌던 것을 보게 되지요. 성경상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나 여러분이 잘 아시는 로마 제국의 폼페이가 그러했습니다. 이러한 문명의 마지막 시기에는 퇴폐적인 풍조와 도덕적 문란이 매우 심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있기 전의 상황도 바로 이와 비슷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한 채 쾌락과 욕심과 허영과 사치가 난무했고 온갖 정욕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지요. 사람들은 이미 모든 생각과 마음까지도 원수 마귀 사단에게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실 수밖에 없으셨지요.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시작하신 것 자체를 후회하시거나 한탄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이 이제는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 아프셨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생령이었던 에덴 동산의 사람들 중에서도 정욕에 이끌려 죄로 물들어 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시면서 마음에 크게 상심되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라는 의인을 택하셔서 인간 경작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 가기로 계획하시고 노아와 그 가족을 제외한 이 땅의 모든 사람은 홍수의 심판을 통해 멸해 버리시기로 작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의 심판을 통해 사람뿐이 아니라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도 함께 심판하시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굳이 이러한 동물들까지도 함께 심판하려 하신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또한 다음 시간에는 노아가 과연 어떤 인물이었고 당시에 이 땅이 얼마나 죄로 관영되어 있었는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릅니다. 그런데 가벼운 연단이나 마음의 연단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시험 환난이나 재앙으로 임하기도 하지요. 시험이나 환난, 재앙이 오는 경우에는 바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공의의 선을 넘었을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단번에 외면하시거나 곧바로 징계를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그 사람의 죄가 쌓여 한계선을 넘어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결국 외면하심으로 시험과 환난과 갖가지 재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돌이킬 수 있도록 기회를 자꾸 주시며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요. 성령께서 탄식하심으로 마음의 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주의 종이나 주변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권면하시기도 하며 가벼운 연단을 통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이런저런 형태를 통해 신호를 보내 주십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돌이키지 않을 때 비로소 공의의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땅을 홍수로 심판하실 때도 이처럼 오래 참으심으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끝내 돌이키지 않으므로 심판이 내려질 수밖에 없었지요. 여러분 중에는 이러한 사람이 하나도 없이 하나님 앞에 돌이켜야 할 것이 있으면 지체하지 말고 즉시로 돌이켜야 할 것이며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더 이상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송구영신 예배 때 주신 말씀처럼 올해는 영적으로 급속한 변화의 물결이 일어날 것입니다.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특별한 은혜가 있게 되지요.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 각자에게도 지금까지 신앙생활해 보면서 아마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임했던 때가 있으실 것입니다. 대부분 첫사랑의 은혜가 임했을 때가 그러했지요. 물론 이 외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경우는 많은데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면 그때는 신앙생활하는 것이 너무나 쉽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기도를 하는 것도 죄를 버리기 위해 금식을 하는 것도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지요. 누구든 섬기려 하거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걸리지도 않고 전도에도 열심을 내게 되며 심방하는 것도 주 안에서 교제를 나누는 것도 모든 것이 은혜 안에서 충만하지요. 그러면서 구습을 좇던 옛사람의 모습을 신속히 벗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이러한 은혜를 잃은 사람들은 예전에 뜨거웠던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한 번 임했으면 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올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변화의 물결을 타게 되면 이러한 은혜를 다시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죄를 버리는 것도 수월해질 뿐만 아니라 기도하고 전도하고 심방하며 온 집에 충성해 나가는 것도 훨씬 수월해지지요. 급속한 변화의 물결에서 여러분이 이탈되지만 않는다면 올 한해가 능히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있어도 영적인 잠에 빠져 있다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올 한해 동안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여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가심으로 반드시 영으로 변화되어 나오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1:12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올해에는 새예루살렘까지 침노해 들어가는 분들이 많이 나오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8-05-07 오전 11:58:50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