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77)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이 땅으로 내려와 자녀를 낳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미 창세기 강해를 통해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살면서 많은 자녀를 낳았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에덴 동산에서 자녀를 낳던 것과 이 땅에서 자녀를 낳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생령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육의 사람으로 변함에 따라 자녀를 잉태하여 낳는 과정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지요. 오늘은 이러한 차이점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이 땅에서 낳은 자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범죄하는 과정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본론
1.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 자녀를 낳은 아담과 하와
에덴 동산에 사는 사람들은 이 땅의 사람들처럼 남녀가 사랑을 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잉태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를 잉태를 하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씨, 곧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있어야 하는데 에덴 동산에 사는 사람들은 정자와 난자가 항상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품어야 생명의 씨들이 발생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에덴 동산의 사람들은 이 땅의 사람들처럼 잉태가 가능한 기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사랑을 나눈다고 해서 매번 잉태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잉태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만 몸도 거기에 맞추어 잉태의 조건이 갖추어짐으로 비로소 잉태가 되어지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을 때의 상황도 에덴 동산에서와 이 땅에서는 많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아이를 낳을 때, 출산과 함께 이제 더 이상 몸 안에 필요 없는 것들이 산모의 몸 밖으로 함께 배출됩니다. 예를 들면 양수와 양수를 담고 있던 양수막, 그리고 태아와 산모를 연결하고 있던 탯줄 등이 배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 동산에서는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산모의 몸 안에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이 분해되어 없어져 버립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 모든 뒷처리가 끝나고 깨끗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에덴 동산은 이 땅에서와 달리 썩거나 변질되는 것이 없으므로 불필요한 것들이 아예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의 사람들은 음식을 먹는다 해도 남은 찌꺼기가 배설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분해되어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에덴 동산에서는 아이를 낳을 때 생기는 불필요한 물질들도 저절로 분해되어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니 에덴 동산에서 아이를 잉태하여 낳는 것은 이 땅에서처럼 수고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아이를 낳는 순간에도 인간이 저주받은 후에 받게 된 지금과 같이 극심한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약간의 통증만 있을 뿐이지요. 또한 에덴 동산에서는 자신이 원할 때만 몸이 임신할 수 있는 조건으로 갖추어지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이 땅에 사는 여성들처럼 매달 생리적인 작용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이 밖에도 에덴동산에 사는 사람들은 생령의 몸이므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육의 사람들의 몸과는 많이 다릅니다. 설령 오랜 시간 잠을 안 자거나 일을 했다고 해서 피곤하다든지 힘이 빠지는 일은 없지요. 물론 때를 좇아 쉼의 시간을 가져 주기는 하지만 이것도 피곤해서가 아니라 더욱 충만함을 입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생령인 몸이 육의 몸으로 변화된 아담은 그 차이를 매우 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요. 더욱이 이 땅에서는 한낱 피조물로서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니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살았던 에덴 동산의 삶과 비교하면 많은 것들이 제약되고 구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녀를 낳는 것도 전에 에덴 동산에서 자녀를 낳던 것과는 전혀 느낌이 다르고 감격이 다를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므로 하와는 아들 가인을 낳은 후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 살 때에는 자녀를 낳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생명의 근본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 아이를 낳고, 낳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처럼 아이를 원치 않는데도 아이를 가진다든지 반대로 아이를 원해도 갖지 못한다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지요.
하지만 이 땅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랐습니다. 자신들의 자유의지만으로 자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즉 자신들의 자유의지 가운데 태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열고 닫으시므로 생명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아무 때나 아이를 가지려 한다고 해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자연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서는 아이를 가지려면 잉태하는 기간과 환경, 조건, 몸의 상태 등이 모두 맞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상황에서 자녀를 얻게 된 하와는 자신에게 자녀를 주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며 은혜임을 깨닫고, 이에 대해 감사하며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에덴 동산에 살 때에도 아이를 잉태하고 낳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었습니다. 다만 에덴 동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유의지 가운데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조절하고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지요. 그러니 마치 자신들의 의지로 하는 것처럼 느꼈지만 이 땅에 내려와 살아가면서 비로소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2. 아담과 하와가 낳은 아들 가인과 아벨
이어지는 2절을 보면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이 각각 하나는 양치는 자로 하나는 농사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에 살면서 지녔던 수많은 지식과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살면서 이러한 지식과 지혜를 적용해 나가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순간에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면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지식이 있다고 해도 부품이 없으면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아담이 뛰어난 지식과 지혜는 지녔지만 이것을 펼쳐나가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과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아담이 비록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이 땅에 내려왔다 해도 미개인과 같은 생활을 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활용하여 이 땅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가 있었지요.
더욱이 아담은 둘째 하늘은 물론이고 첫째 하늘까지 지배하고 다스리던 자로서 이 땅의 자연의 법칙에 대해서도 능히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육축을 비롯한 각종 짐승에 대해서도 그 속성이나 특징 등을 알고 있었고, 땅에 씨가 뿌려져 싹이 나고 자라 열매를 맺게 되는 과정들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지요.
그러므로 아담은 이 땅에 살면서 이러한 지식들을 이용하여 농사도 지을 수 있었고 가축도 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경험을 아들들에게 전수해 주었기 때문에 가인은 농사하는 자로, 아벨은 양치는 자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과 아벨 두 아들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3-5절을 보면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 말씀하고 있지요. 바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로 인해 가인의 마음에 감정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난 후에도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알려주시고 또 깨우쳐 주셨지요.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 땅에 살게 되면서 죄를 지었을 경우, 죄사함을 받는 길을 알려 주셨지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에 따라 죄를 지은 사람은 사망으로 가게 되므로 제사를 통해 사함받을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속죄의 제사 외에도 각종 감사로 드리는 제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속죄의 제사였지요.
이러한 제사의 방법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자세히 가르쳐 주셨고, 아담은 또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따라서 가인과 아벨도 어떻게 하나님 앞에 제사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게 되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변질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동생인 아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제사를 드렸지만 형 가인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 앞에 죄를 속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는 반드시 피의 제사가 되어야 하는데 가인은 이러한 법칙을 어겼던 것이지요.
결국 가인은 자신의 생각 가운데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드렸던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께서 동생의 제사만을 받으시는 것을 보고 심히도 분해하며 안색이 변하기까지 하였지요. 바로 동생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도 서운한 마음과 감정을 품게 되었지요.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두 사람이지만 형 가인은 동생 아벨에 비해 그 마음 밭이 깨끗지 못했고 그만큼 육신의 생각을 동원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 가인과 아벨은 아버지인 아담으로부터 똑같이 가르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행하여 이런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지요.
오늘날의 사람들을 보아도 마찬가지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면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에 맞추어 나름대로 해석해서 임의대로 행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육신의 생각 가운데 신앙생활을 잘못해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비추어 다른 사람들까지 판단하고 정죄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인정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로마서 8:7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도 못하면서 하나님과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해도 그것이 '자기 보기에 의'라면 하나님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지요. 무엇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지 깨닫지 못하므로 여전히 자기 의, 자기 틀 가운데 신앙생활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돌아보시고 '혹여 나에게는 가인과 같이 내 생각과 내 의 가운데 행하는 것은 없는지' 점검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로 인하여 마음에 감정이 생긴 가인
가인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열납하시고 자신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5절 이하를 보면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자기 나름대로는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한다 생각했고 모든 정성을 다해 드린다 생각했지만 이것이 하나님 앞에 열납되지 않자 마음에 악이 발동하였습니다. 더욱이 동생의 제사만이 열납되는 것을 보면서 동생에 대한 시기, 질투와 함께 분한 감정이 마음에서부터 발동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열매로 드러나게 되니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가인의 마음 중심도 아시고 더욱 큰 악의 행동으로 나올 것도 아시기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말씀하시며 가인이 지금 빛이신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것이 바로 선을 행치 않았기 때문임을 깨우쳐 주십니다. 마음에 분을 품고 동생에게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까지 품고 있으니 어찌 하나님 앞에서 낯을 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는 사실만을 생각하며 그 마음의 악을 발동시켜 나가게 됩니다. 요한복음 3:20에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말씀하신 대로 죄를 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빛이신 하나님 앞에 나오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문(門)'은 진리의 문이요, 구원의 문이며, 천국의 문입니다. 선을 행치 않는 사람 다시 말해 죄 가운데 행하는 사람은 그 죄로 인해 문에 엎드린다는 말씀인데 즉 '문에 엎드린다'는 것은 결국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의미이지요.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죄의 소원'이란 바로 가인의 마음에 동생을 미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행함으로 나오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인의 마음 안에 있는 미움이라는 죄의 속성은 어떻게든 겉으로 드러나는 열매로 이루려고 하는 즉 행함으로 나오려고 하는 성질이 있는데 이것을 가리켜 죄의 소원이라 표현한 것이지요.
우리 마음 안에 선이 있어서 선을 좇으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이것이 결국 선의 열매로 나오듯이 마음 안에 있는 죄와 악도 죄를 짓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인해 결국 죄의 열매로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45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말씀한 대로 입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 선이 많으냐, 악이 많으냐에 따라 선을 행하려는 소욕과 악을 행하려는 소욕 중에 어느 쪽을 좇느냐가 결정되지요.
갈라디아서 5:17에서는 이를 각각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가인은 바로 그 마음 안에 있는 악으로 인해 악한 행동이 발동되어 나오려고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아시기에 가인에게 "네 마음 안에 죄를 행하려는 소욕이 있으나 너는 그것을 다스리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권면을 듣고도 결국 살인죄를 범한 가인
이처럼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차례의 권면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안에 있는 죄를 다스리지 못하여 결국은 엄청난 죄를 범하고 말지요. 그래서 8절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인류 최초의 살인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것도 즉흥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두고 두고 마음에 품어왔던 감정을 때를 보아 실행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그 죄가 참으로 크다 하겠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권면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죄의 소원대로 행했다는 것은 이미 그 마음에 얼마나 악이 심겨져 있었는지를 나타내 주고 있지요. 8절 말씀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동생을 죽이는 엄청난 죄를 짓고 난 가인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믿음이 연약한 단계에 있는 사람, 즉 아직 마음 안에 비진리가 많이 남아 있어서 자기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이것이 죄이구나' 하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 죄를 행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마음 안에 있는 육체의 소욕에 이끌려 그만 죄 가운데로 빠지고 마는 것이지요. 바로 믿음의 1단계나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믿음의 3단계 정도 들어오면 알면서 죄를 짓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믿음의 3단계라면 아직까지는 비록 육신의 일은 남아 있지만 육체의 일은 대부분 버린 상태입니다. 만약 여전히 육체의 일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을 믿음의 3단계라 말할 수는 없지요.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변함 없을 때 이런 사람은 '믿음의 반석'에 섰다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마음 안에 있는 모든 악의 모양까지라도 뽑아내므로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고 순종하는 단계, 이러한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영의 차원인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것이지요. 그러면서 생명 다해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믿음의 5단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어느 단계에 와 계십니까? 혹여 마음에 있는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하여 여전히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하고 계신 분은 없으신지요?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 없는 믿음의 단계인 영의 차원에 들어왔다'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행함도, 생각도, 마음도 능히 다스릴 수 있어서 온전히 진리 안에 거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야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더 열심히 충성하여 새예루살렘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출 수가 있지요.
계속되는 창세기 강해를 통해 또한 각종 예배의 말씀들을 통해 아직 자신의 부족한 분야가 발견되는 분이 있다면 지체하지 마시고 신속히 육을 벗고 영으로 변화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금년도 기도제목 중에 하나인 '온 영'의 기도제목을 이루시는 분들이 많이 나오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4:4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