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65)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기 3장에서는 사람에게 죄가 들어오게 된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설명이 되어집니다. 어둠이 전혀 없던 에덴 동산에 살던 아담이 어떻게 해서 선악과를 따먹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었는지와 그 죄로 인해 인류에게 임하게 된 율법의 저주, 그리고 그 율법의 저주를 풀어 주시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계획해 놓으신 구원의 섭리 등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요. 또한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에덴 동산의 생활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더 자세한 내용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몇 주간에 걸쳐 증거되는 말씀들을 통해 꼭 깨달아 양식 삼아야 할 것은 사단이 얼마나 교묘하게 사람을 미혹하여 죄 가운데로 이끌어 가는 내용입니다. 사단이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 와서 또 어떻게 올무를 놓아 가는지가 설명되므로 증거되는 말씀을 붙잡고 불같이 기도하여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사단의 미혹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악의 모양들을 빼내어 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1절 전반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했는데 이는 뱀만 간교하다는 뜻이 아니라 간교한 것들 중에서 뱀이 가장 간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분들은 '에덴 동산은 어둠이 전혀 없는 곳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뱀을 간교하게 만드셨을까?' 생각할 수가 있지요.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아시면서도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하는 질문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원대한 계획 속에서 앞으로의 모든 일을 다 아시면서도 선악과를 두셨던 것과 같이 뱀 역시 그가 장차 어떻게 쓰임 받을지를 아시면서도 간교한 속성을 갖도록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뱀의 간교한 속성이 오랜 세월 동안 사단의 역사를 받음으로 마침내는 사단의 도구로 변질되고 말았지요.
그렇다면 영에 속한 에덴 동산에서 생령인 아담이 어떻게 변질될 수가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하시려면 사람은 물론이고 에덴 동산의 동물들도 근본 이 땅의 흙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흙은 원래의 성분에 다른 것이 섞이면 성질이 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요. 따라서 아담이 비록 생령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그도 근본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만약 다른 성분을 받아들이게 되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생령인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변질될 수 있었던 이유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의 기운인 생기로 채워져 있었음으로 그 동안은 다른 성분, 즉 육의 것이 틈탈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에덴 동산 자체가 육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사단이 아무리 사람의 마음 안에 육의 속성을 심어 넣으려 해도 들어올 수가 없었지요. 그렇지만 이때 한 가지 조건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담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아담 스스로가 이러한 자유의지 가운데 육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만약 스스로가 자유의지 가운데 육을 받아들이면 생령이라 해도 육이 틈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스스로가 마음을 열고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 육을 받아들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처럼 자유의지를 주신 것부터가 결국은 인간 경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지 않으셨다면 아담은 아예 육을 받아들이지도 않았겠지만 그러했다면 인간 경작 자체가 이루어지지도 않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인간 경작은 시작되어야 했기에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아담을 지으셨던 것이고 그에게 자유의지도 주셨던 것입니다.
혹여 '아무리 자유의지가 있다 해도 어떻게 악이 전혀 없는 아담이 사단의 미혹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을까?' 생각할 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하시려면 아담처럼 처음부터 죄가 없는 상태와 그렇지 않고 인간 경작을 받아서 죄성을 빼내어 버리고 성결되어 영으로 들어온 상태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죄가 없는 상태로 봐서는 두 경우가 다 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만약 죄의 유혹을 접하게 되었을 때 그것에 대해 반응하는 태도는 전혀 다르지요.
여러분이 좀더 이해하기 쉽도록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이 어린 동생과 다 자란 형이 있다고 합시다. 어느 날 어머니가 이 둘 앞에 뜨거운 물이 담긴 그릇을 가져다 놓고 이것을 잘못 만지면 다칠 수가 있으니까 절대 만지면 안 된다고 말씀을 했지요. 그런데 형과 동생은 모두 어머님의 말씀에 순종을 아주 잘하는 자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둘이 다른 것은, 형은 전에도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은 경험이 있었고 동생은 그러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형은 물에 데이면 어떤 고통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동생은 단지 들어서 알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형과 동생은 어떻게 할까요? 물론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여 뜨거운 물이 담긴 그릇을 만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똑같이 순종을 해도, 형과 동생과는 큰 차이가 있지요. 형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유의지 가운데 스스로가 만지지 않는 것이지만, 동생은 진정한 자유의지 가운데 나온 순종이 아닙니다. 동생은 뜨거운 물을 잘못 만졌을 때 당할 수 있는 고통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고 또한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었기에 만지지 않고 있을 뿐이지요. 만약 이후로도 똑같은 상황이 여러 번 계속되었는데 어느 날은 갑자기 뜨거운 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보던 동생의 마음에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갑자기 만져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그러고는 그 마음을 좇아 뜨거운 물을 만졌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 아이가 뜨거운 물을 만졌다고 해서 그것이 어머니의 말씀에 불순종해야겠다는 악한 마음에서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을 마음에서부터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만 어머니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아담도 바로 이와 마찬가지였다는 말입니다. 아담은 마음에 악이 전혀 없었지만 그것이 인간 경작을 통해 상대성을 체험하며 영으로 일군 것이 아니었고 그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꼭 마음에 악이 있어서가 아니라 해도 사단의 미혹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이 자신의 자유의지 가운데 마음에서 사단의 미혹을 받아들이는 순간 죄성이 들어와 마음과 결합해 버린 것이지요.
여러분이 어떤 죄성을 뽑아 내었다 해도 만약 그 죄성을 다시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 안에 자리잡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혈기가 많은 사람이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하며 혈기를 빼내어서 거의 혈기를 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만약 이 사람이 기도를 쉬어서 다시 혈기가 나는 대로 화를 내고 악을 발해 가면 금세 예전처럼 혈기의 죄성이 마음에 심기어져서 혈기 내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되었다 해도 만약 다시금 죄를 마음에서 받아들이게 되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 5:23에도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여 악을 다 버리고 거룩할 뿐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흠 없도록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경작받은 여러분이 죄를 버리고 온전히 영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때는 여러분에게 죄를 다시 지으라고 해도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죄가 얼마나 더럽고 추하며 고통스러운지를 인간 경작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깨달았기 때문에 누가 아무리 달콤한 말로 미혹해도 예전에 육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고는 하지 않지요. 억지로도 아니고, 심판이 두려워서도 아니며, 오직 자유의지 가운데 스스로가 다시는 육의 것에 마음을 내어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원수 마귀 사단도 아예 미혹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미혹해도 넘어가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생령이었던 아담은 이런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악이 없었다 해도 경작을 통해 온 영을 이룬 것과는 전혀 달랐지요. 아예 처음부터 악의 모양이 없었기 때문에 악이라고 하는 상대성 자체를 몰랐을 뿐입니다. 또한 죄와 악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은 알지만 지식적으로 가르침 받아서 알 뿐이지 마음에서 깨달을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아담은 자유의지 가운데 사단의 미혹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담 자신도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요. 이처럼 상대성을 알고 영으로 일구어 순종하는 것과 영이라 해도 상대성을 모른 채 순종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 경작이 필요한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생령인 아담을 참자녀로 받으신 것이 아니라 경작을 통해 영으로 나와진 자녀들을 참자녀로 받으시는 것이지요.
3. 뱀이 사단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었던 이유
그렇다면 뱀의 경우는 어떻게 해서 사단의 도구로 사용될 수가 있었던 것일까요? 뱀도 흙으로 지어졌는데 뱀은 처음부터 재료로 사용된 토질 자체가 간교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뱀이 처음부터 악을 가지도록 만들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만 마음 안에 간교함이라는 성질이 다른 짐승들에 비해 많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빛의 공간인 에덴 동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간교한 성질이 악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간교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짐승보다는 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았지요.
한 가지 비유를 들면, A와 B라는 두 종류의 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A라는 종류의 흙은 토질 자체가 단단한 성질을 가지고 있고, B라는 종류의 흙은 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면 이러한 두 종류의 흙으로 각각 그릇을 만들었을 때 어떤 그릇이 더 단단하겠습니까? 당연히 A라는 흙으로 만든 그릇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때 두 종류의 그릇을 놓고 똑같이 충격을 주게 되면 B라는 흙으로 만든 그릇이 먼저 깨지겠지요. B라는 흙으로 만든 그릇이 처음부터 흠이 있거나 금이 간 것이 아니고 일부러 약하게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근본 토질 자체가 A라는 흙보다 약하기 때문에 결국 약한 그릇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뱀도 처음부터 그 안에 악을 심어 주었거나 때가 되면 악이 발동하도록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근본이 간교한 성질을 가진 토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국 어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뱀은 어찌하던 아담을 미혹하여 죄 가운데로 빠뜨리려 했던 사단에게는 더없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단은 뱀을 자기 도구로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어둠을 그 안에 심어 주었고 그곳에 노출된 뱀의 간교한 성질은 마침내 사단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사단의 도구가 되고 말았지요.
성경에는 사람 중에 간교하다 말씀하신 인물로 야곱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처럼 간교한 야곱이 영적으로 변화되니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이 되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에 간교한 성질과 지혜와는 서로 통하는 곳이 있습니다. 따라서 간교함이 영으로 변화되면 지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변화되는 것이 쉽지는 않기에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연단이 따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도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연단의 과정을 거치며 결국 자기가 깨어졌을 때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아 하나님 앞에 스스로 지혜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영으로 온전히 변화되기 전까지는 지혜가 잘못 사용될 경우 간교함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뱀은 간교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처음부터 그것이 악으로 나온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로 인해 뱀은 하와로부터 더 사랑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뱀은 다른 짐승들에 비해 눈치가 빠르고 하와의 마음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알아서 거기에 맞추어 줄 수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말 하나를 해도 뱀은 하와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가 있었고 자연히 이러한 뱀은 하와의 사랑을 받으며 주변에 가깝게 머물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후일 뱀은 사단의 도구로써 하와에게 접근하여 달콤한 말로 미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평소 아무런 사귐이 없었다면 감히 하와에게 접근하여 미혹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여러분이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은 뱀이라고 하니까 오늘날의 뱀을 연상해서는 안 됩니다. 타락하기 이전에 에덴 동산에 살던 뱀은 지금의 뱀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요. 그 피부가 매끄러울 뿐만 아니라 그 색은 찬란하기까지 했습니다. 찬란하다는 것은 색이 순수하면서도 매우 화려하다는 뜻인데 이처럼 찬란한 여러 가지 색상들이 알록달록한 무늬로써 뱀을 장식하고 있었지요. 그러니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고 아담도 하와도 이러한 뱀을 아름답다 생각하며 가까이 했던 것이지요. 사단은 바로 이러한 뱀에게 접근해 왔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단은 악의 속성과 잘 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습니다. 즉 마음 안에 비진리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사단의 즉각적인 목표가 되지요. 사단이 조금만 미끼를 던져 주어도 마음 안에 있던 비진리가 순식간에 동원되면서 그 미끼를 물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단이 이렇게 비진리가 많은 사람만 목표로 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단은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죄 가운데로 이끌어서 지옥으로 데려가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지요.
비록 영으로 많이 일군 사람이라 해도 아직 그 마음 안에 조금의 비진리라도 남아 있는 사람 역시 결코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도 각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의 마음을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바로 그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아직 버리지 못한 이러한 죄성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서 바로 그것을 유발시킬 수 있는 미끼를 사용하지요.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온전히 영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누구나 사단의 유혹에 넘어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음 안에 남아 있던 조그만 비진리의 마음이 사단의 역사를 받아 발동되어지면 생각지도 못했던 큰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지요. 아무리 많은 마음을 진리로 이루었다 해도 작은 비진리의 마음으로 인해 진리의 마음을 덮어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바로 그러했지요. 다윗 왕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며, 믿음이 좋았던 사람이지만 마음 안에 버리지 못한 악의 모양이 발동하여 죄를 짓게 되자 나중에는 충성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이방인의 손에 죽게 만드는 악까지 행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 왕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으나 작은 악의 모양 하나가 이처럼 하나님 앞에 큰 악으로까지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정녕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전한 영의 차원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항상 깨어 기도하여 시험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말씀하신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4.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이어지는 1절 후반절을 보면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사단이 얼마나 교묘하게 뱀을 통해 미혹의 말을 던지고 있는지가 잘 나옵니다. 하와로 하여금 스스로 올무에 걸리도록 단어 하나하나에 함정을 파놓고 있지요.
먼저,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했으니 직접 남자인 아담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전에 창세기 강해를 통해 말씀드린 내용 중에 공룡의 반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사단은 아담에게 직접 접근하는 방법보다는 아담의 사랑받던 공룡을 먼저 미혹함으로 결국 아담을 넘어뜨리려 했지요. 사단은 이번에도 마찬가지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아담에 사랑받던 여자를 먼저 미혹해서 여자를 통해 궁극적으로 아담을 미혹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뱀이 아담에게 직접 접근하여 그를 미혹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당시 아담은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다스리던 지배자로서 그의 권세와 위엄은 대단했지요. 모든 들짐승들도 그 앞에 순종했고 아담을 존경하며 따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히 뱀이 아담에게 접근하여 그를 미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사단은 아담을 미혹하기 위해 먼저 아담의 사랑받는 여자를 미혹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지요. 사단이 여러분을 미혹하려 할 때 때로는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을 이용합니다. 마태복음 10:35-37에 보면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말씀했는데 이 말씀을 육으로 풀면 오해가 생기지요. 마치 주님으로 인해 집안에 불화가 생기고 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설령 집안 식구라 해도 헛된 육의 사랑과 정을 끊어야 참된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가족에 대한 육적인 사랑과 정에 이끌려 함께 사망의 길로 간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설령 잠시 동안은 불화한 듯 보여도 결국 여러분이 영적인 사랑으로 승리했을 때 여러분의 가족도 함께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 중에도 부모나 자녀를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여서 그만 세상으로 향하고 마는 경우들이 있지요. 부모 때문에, 자녀 때문에, 혹은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참된 생명의 제단을 떠나고 세상과 타협해 가는 경우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보다 부모와 자녀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사단이 아담을 미혹하기 위해 먼저 여자에게 접근을 했듯이 사단이 먼저 그 사람의 주변 사람에게 역사하지요. 그래서 부모나 자녀를 통해 핍박을 하게 만들고 이런 저런 말로 미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 처음에는 믿음을 지키려 하다가 그 마음이 하나님보다는 부모나 자녀를 더 사랑하기에 결국은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믿음을 저버리게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도 결코 타협하거나 미혹당하지 않으며 끝까지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으로 행하여 마침내는 가족들을 복음화 시키게 됩니다. 바로 마태복음 19:29에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약속하신 대로 잠깐 동안은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아 보일 수 있으나 결국은 더 큰 것으로 얻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갈라디아서 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육적인 정과 욕심은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1절 후반절에 나오는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말씀의 단어 하나하나에 사단의 어떤 궤계가 담겨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베소서 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말씀합니다. 즉 우리의 싸움은 눈에 보이는 싸움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런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 번 싸워도 백 번 이길 수 있으니 어둠의 세력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적을 알아야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단이 어떠한 말과 방법으로 미혹하고 꾀는지를 배우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적에 대해서 알았다면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악의 모양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뽑아내야 하는데 마치 굵은 뿌리가 뽑히면 잔뿌리들이 딸려서 뽑히듯이 여러분 안에 있는 가장 굵고 뿌리 깊은 악의 모양을 뽑아내면 다른 악의 모양은 비교적 쉽게 뽑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신속히 자신과의 싸움의 단계를 마치면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으며 다른 사람을 영으로 이끌어 줄 수도 있습니다. 계속되는 창세기 강해를 통해 이러한 차원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 성령의 역사가 대폭발적으로 나타나는 마지막 때에 성결의 복음과 권능을 가지고 전세계로 나아가 성령의 사역에 크게 동참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5:49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