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58)
서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이미 창세기 강해를 통해 들으신 것처럼 태초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홀로 계셨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홀로 우주를 다스리시며 존재하고 계셨지요. 그런데 신성만이 아니라 인성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홀로 계신 외로움을 느끼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그러니 이처럼 오랜 세월 홀로 있다는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첫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그가 홀로 있으면서 느끼게 될 외로움을 아시므로 그에게 돕는 배필로 여자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의지가 되며 살아가도록 섭리하셨는데 오늘은 이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본론 /
1.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신 하나님
본문 18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왜 아담에게 배필을 주셔야 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십니다. 여러분도 사랑이 넘치게 되면 당연히 주변의 사람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게 됩니다. 하물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떠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홀로 계실 수도 있으셨지만 이처럼 넘치는 사랑을 나눌 대상을 얻으시기 위해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던 것이지요.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고로 앞으로 인간 경작의 과정 동안 어떠한 아픔과 고뇌가 있을 것을 아시면서도 오직 참자녀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을 경작하셨던 것입니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이니 당연히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이 담겨졌을 것이고, 이러한 아담 역시 그 안에 넘치는 사랑을 나눌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아시기에 아담에게 돕는 배필로서 여자를 주시고 서로가 사랑을 나누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인간 경작의 과정 가운데 후손을 낳기 위해서는 남자가 있으면 당연히 여자도 있어야 했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으신 이유에는 단순히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려는 것만이 아니라 이처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때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이므로 오직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사랑만이 존재했기에 서로가 돕고 위로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 이후 사람에게 육이 들어오게 되면서부터 하나님께서 처음 정해 주셨던 부부 사이의 관계도 점차 육으로 변질되어 가기 시작했지요. 자기의 유익을 구하게 되고, 자기의 뜻에만 순종해 주기를 원하게 되며, 처음 사랑할 때의 마음도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툼도 생겨나며 불화하고 합당하지 못한 죄들도 짓게 된 것이지요. 정욕이 들어오게 되면서 온갖 음란과 호색과 간음 등이 생겨나고 점차 방탕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부부간에도 돕는 배필로서 맺어준 관계는 어그러지고 오히려 많은 불의한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 와서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씀이 나오고 있는데 고린도전서 7:1-2을 보면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지으셨을 때는 서로 간에 위로가 되며, 사랑을 나눌 존재로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는데 고린도전서 7장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하고 있지요.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청년의 때에 주님을 만나 60세가 넘어 운명할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기에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고백하며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들이 왜 결혼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자신을 위해서 유익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부 간에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진리의 모습이 아니라 비진리의 모습들로 변질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녕 돕는 배필로서 상대를 위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며 자기의 정욕과 욕심을 좇아가고 있지요. 그러니 마태복음 19:10에도 "제자들이 가로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즉 사람이 마음에 완악함으로 인해 아내를 버리는 일이 생겨날 것 같으면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섭리해 주신 부부 사이의 관계가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이렇게 변질되어 가니 차라리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다 말할 지경까지 이른 것이지요.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고린도전서 7:9에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말씀한 대로 결혼하지 않음으로 범죄하게 될 바에야 차라리 결혼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9:11-12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여 오직 신랑되신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실 그날까지 변함없는 중심으로 달려갈 사람이라야 능히 이 말씀을 받아 홀로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는 장차 천국에서 매우 귀한 것으로 상급이 주어지게 되지요. 만약 결혼했다면 가족과 세상 일을 위해 쓰여졌을 마음과 정성과 시간과 물질을 결혼하지 않음으로 인해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드려질 수 있으니 그만큼 더 많은 상급을 쌓아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7:32-34에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결혼한 분들은 '나는 어떻게 하나?'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부부 사이의 관계란 어떠한 것인지를 깨달아 그대로 이루시면 됩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행하는 모든 일도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영으로 한다면 이것도 상급이 되기 때문입니다.
2. 아담이 일컫는 대로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주신 하나님
이어지는 본문 19-20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도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들짐승과 새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 땅처럼 악하고 더러운 짐승들이 있는 것은 아니며 이 땅의 것들보다는 훨씬 아름답지요. 그런데 이러한 동물들도 근본 이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 땅의 흙으로 각종 짐승들과 새들을 만드신 후, 아담처럼 에덴 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이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지금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짐승들이 에덴 동산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덴 동산의 짐승들은 처음부터 악이 없던 상태로 지금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모든 동물들이 온순하며 처음의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지요. 반면에 이 땅의 동물들은 에덴 동산의 동물들과는 달리 악이 들어옴으로 인해 처음 지어진 모습에서 변형되어 무섭고 흉측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에 속한 동물들이 있는데 셋째 하늘에도 동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셋째 하늘의 동물들은 첫째 하늘이나 둘째 하늘의 동물들처럼 근본 흙으로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셋째 하늘의 동물들은 영안이 열린 분들만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천사나 그룹들을 창조하신 것처럼 말씀으로 창조하신 동물들입니다. 그들은 에덴 동산의 동물들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를 정도로 아름다우며 장차 천국의 백성들을 주인으로 섬기며 항상 곁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되어 줍니다.
물론 에덴 동산의 동물들도 아담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 늘 곁에서 기쁨이 되어 주곤 했지요. 그래서 아담도 사랑으로 대해 주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에덴 동산의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담에게 대단한 지식과 지혜를 주셨는지 잘 알 수 있지요.
학창 시절에 학생들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시험입니다. 그 동안 배운 내용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 시험은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왠지 시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긴장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요. 이런 시험을 보는 데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암기입니다. 물론 암기를 매우 잘해서 한두 번만 보고도 줄줄 외우는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많은 내용을 외우느라 애를 쓰지요. 여러분도 이런 경험들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시험을 보는 데 그 문제가 바로 이 땅에 사는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의 이름을 외워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종류가 수백만이나 되는 동물들의 이름을 일일이 다 외워서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아무리 동물에 대해 일평생을 연구한 사람이라 해도 그가 아는 것은 전체 동물 중의 일부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인류의 조상이었던 아담은 모든 동물들의 특성에 맞게 이름을 지어 줄 만큼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담이 그 동물들을 보고 일컫는 바, 즉 부르는 이름이 곧 그 동물의 이름이 된 것이지요. 그러면 혹여 아무렇게나 이름을 붙여서 부르면 되는데 그 일이 뭐 어려운 것일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러분이 만약 한 만여 가지만이라도 새롭게 이름을 지어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과연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아담은 수백만 종류가 넘는 동물들의 이름을 일일이 다 지어 주었습니다.
더욱이 아담은 한 번 이름을 지어 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물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지요. 따라서 수시로 동물들을 돌아보며 보살펴야 했고 그러려면 각각 동물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니 첫사람 아담이 가지고 있었던 지혜와 지식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지혜와 지식도 모두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모든 만물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시면서 그 일부로서 이처럼 놀라운 지혜와 지식도 주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동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지어 가는 것을 보시면서 즐거워하셨습니다. 아담이 권세와 능력을 받아 행하는 일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에게 자녀가 있는데 매우 총명하고 똑똑할 뿐만 아니라 매사를 여러분의 마음에 쏙 들게 처리해 나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자녀가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럽겠습니까? 당연히 여러분의 마음은 흡족할 것이고 기쁨과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첫사람 아담에게 권세를 주시고 아담이 아버지의 마음에 맞추어 일들을 처리해 나가는 것을 보시면서 마음에 흡족해하시고 기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요한복음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하신 대로 저와 여러분은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받았습니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를 입었으니 주의 일들을 행해 나갈 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행하면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 처음에는 아버지의 마음에 맞추어 열심히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바를 찾아 행하다가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충만함이 떨어지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까지 행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아담이 처음에는 오직 아버지의 기쁨만 되었다가도 오랜 시간이 지나자 결국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불순종의 죄를 지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담을 향해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그처럼 큰 사랑과 은혜를 받았고 놀라운 권능까지 받았으면서도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을 수가 있을까 말하기에 앞서 자신은 과연 얼마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항상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 /
많은 사람들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앞으로 평생 변치 않을 것이라 다짐들을 하곤 합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물론이고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드리리라 다짐하기도 하지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하며 죄를 싸워 버려 나가게 되지요.
그런데 많은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충만함이 떨어지게 되면 처음 가졌던 마음이 점차 변하는 것을 봅니다. 은혜받고 나서 끊어 버렸던 세상의 것을 다시 취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비 진리의 행함과 생각들이 다시금 틈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처음 주신 사랑을 여전히 변함없이 주고 계신데, 사람 편에서 오히려 변개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때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마치 집 나간 자녀를 기다리는 아비의 마음으로 기다려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참자녀를 얻을 수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모든 고통과 인내를 감수하신 것처럼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고 인내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진정 회개하고 돌이켰을 때는 예전 것을 기억지도 않으시며 잃었던 자녀를 얻으셨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저 또한 성도님들이 영으로 변화되어 나오는 것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말씀한 대로 저 역시 한 영혼이라도 더 새예루살렘으로 이끌고자 참고 인내하며 눈물의 간구와 기도로서 해산의 수고를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처럼 해산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며 오직 참자녀를 얻기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결코 처음 은혜받았던 순간의 모습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19에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충성이 처음보다 날로 더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히브리서 10:22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한 대로 신속히 마음 안에 있는 모든 육의 모습을 벗고 온전한 영의 모습으로 이루어 아버지 하나님의 기뻐하심 가운데 들어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5:49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