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50)
서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에는 공룡의 배신 사건에 대해 설명하면서 영적으로 어떠한 교훈을 주고 있는지도 살펴보았지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작은 육의 모습이라도 그것이 점점 자라게 되면 마침내는 큰 악의 모습으로 나올 수가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공룡의 배신도 처음에는 단순한 부러움에서 시작되었지만 사단의 역사를 받아들이면서 점차 시기와 질투로 발전되어 갔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으려고 하는 엄청난 불순종의 악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먼 훗날 아담과 하와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루시퍼의 반란에 대해서도 들었을 것이고 공룡의 반란 역시 직접 목격했으면서도 사단의 계속된 미혹에 조금씩 마음을 내어 주다 보니 그들도 마침내는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절대 안 돼' 하고 마음을 다졌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명심하지 못하고 결국 불순종의 악을 행하고 말았던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괜찮겠지, 겨우 이 정도야 뭐, 나는 해당되지 않을 거야, 이것이 마지막이야,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지. 바로 이러한 이유와 변명들을 대면서 작은 악들을 하나하나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교만이지요.
교만이라는 것이 꼭 나는 이렇게 잘났다.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 이렇게만 생각해야 교만이 아니라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 자체가 벌써 교만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12:9-10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의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겼기 때문이요, 이는 곧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만이란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쌓이다 보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서 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그러니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아예 처음부터 시작을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새예루살렘을 소망하고 달려가는 분이라면 당연히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는 것이며 그 모습이 충만하고 은혜받았을 때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변함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공룡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에덴 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난 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
1. 범죄한 공룡과 헤어진 후 아담의 마음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공룡이 쫓겨났을 때 아담은 여기에 대해 별로 마음 아파하지를 않았습니다. 비록 공룡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기는 했지만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영역인 지구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아담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아담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함 속에서 소중히 여긴 것이 아니라 마땅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요.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것을 잃게 되는 아픔을 체험해 본 것도 아니고 무엇에 대한 아쉬움이나 부족함을 느껴 본 적이 없기에 공룡과 헤어졌을 때에도 그것을 마음 중심에서 이별의 슬픔으로 느끼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혹여라도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주신 건강, 물질, 가족 등 평소에 항상 있는 것이었기에 그 소중함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도 감사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축복 주셨을 때 처음에는 기뻐하고 감사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지는 않았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시편 44:8에는 "우리가 종일 하나님으로 자랑하였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했고 에베소서 5:20에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마음 중심에서 영원토록 감사하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참 자녀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2.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공룡의 모습
이미 사단의 역사를 받아들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공룡은 이 땅에 살면서 더 쉽게 사단의 역사를 받게 됩니다. 일단 어두움에게 한 번 마음을 내어 주게 되면 그것을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 한 다음에는 전보다 더 쉽게 마음을 내어 주게 되지요. 그러다가 결국 완전히 사단의 밥이 되는 것이구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신앙 생활을 잘하는 것 같은데 막상 그 마음에 악을 버리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자칫 세상에 한 번 마음을 내어 주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어두움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이처럼 공룡도 일단 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이후로는 빠른 속도로 악에 물들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교만이 쌓여 가고 이 땅의 다른 생물들은 안중에도 없게 되었지요. 이 땅의 동물들을 보니 그 크기로 보나 지적인 능력 면에서 보나 공룡 자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에덴 동산의 공룡은 이 땅의 짐승들과는 지혜가 달랐습니다. 이 땅의 것보다 훨씬 지혜가 더 뛰어났던 것입니다. 물론 공룡들도 흙으로 지음받기는 했지만 그들은 둘째 하늘에 살던 영물로서 이 땅의 동물들보다는 모든 면에서 뛰어났지요.
전에 악이 없는 에덴 동산에 살 때는 아무리 자기들의 덩치가 크다고 해서 다른 동물들을 하찮게 보거나 우습게 여기지 않았던 공룡이었지만 이제 악이 들어오고 사단의 역사를 받게 되니 이처럼 다른 동물들이 하찮고 우습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이 땅 역시 공룡들에게 있어서는 눈에 차지가 않았습니다. 훨씬 넓고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서 살았던 공룡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너무나 좁고 한정된 이 지구가 볼품 없어 보였던 것이지요. 그러니 공룡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무시하게 되고 다른 동물이나 자연을 존중해 주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러한 공룡으로 인해 이 땅의 동물들은 위협과 해를 받게 되었고 환경 파괴도 심하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공룡이 살던 에덴 동산은 하나님께 속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성함도 느낄 수가 있었고 신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지요. 아담의 권세 아래 모든 것에 질서가 세워져 있어서 공룡들은 그 질서에 순응해 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내려와 보니 에덴 동산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났으니 신성함도 느낄 수 없고 자신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던 아담의 권세도 느낄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다가 이 땅의 동물들은 그저 자연 질서를 좇아 살아갈 뿐 공룡 자신들처럼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적인 것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들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자신들은 너무나 우월하고 뛰어난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스스로가 이 땅의 지배자처럼 느껴졌고 더 나아가 이 땅을 지배하는 왕이요 신과 같은 존재로까지 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능히 이 땅의 모든 것들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신들이 마치 에덴 동산을 다스리던 아담이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사람들 중에도 이처럼 낮은 위치에 있을 때에는 별로 교만한 것 같지 않고 잘 순종하는 것 같다가 조금만 그 위치가 높아지고 그 아래 붙여지는 일꾼들이 생겨지게 되면 이내 마음이 높아지고 교만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을 봅니다.
다른 사람의 아래에 있을 때에는 어차피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마음 안에 있는 교만이 드러나지를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자신에게 힘과 권세가 주어져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게 되면 그 때 비로소 마음 안에 있는 교만이 발동하여 자기 뜻대로 힘과 권세를 휘두르고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룡도 자신들이 이 땅에서 가장 힘이 세고 가장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하자 더욱 교만해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공룡은 사단의 역사를 받기가 더욱 쉬워졌지요. 그래서 사단이 더 강하게 역사해 감에 따라 공룡들은 갈수록 더 강퍅해지며 이 땅의 질서를 파괴해 나갔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실수로 이 땅의 동물들을 밟아서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일들이 발생하더니 점차 악이 더해지면서 자신들의 악에 의해 사사로이 동물들을 헤치는 일들이 일어났지요. 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찢는 횡포까지 부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공룡들은 이 땅으로 쫓겨났을 때에 자신들의 잘못을 돌이키고 자숙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했지요. 자신들이 큰 악을 행했다는 생각을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지도 않았음에도 이처럼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나게 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이 땅에 내려와 악으로 발산한 것이지요.
이런 모습은 우리 가운데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일로 인해 작게는 주변으로부터 지적을 들었다거나 크게는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을 때에 신속히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억울하다 생각하는 경우이지요. 또 누군가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면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거나 억울하게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아니면 도리어 지적해 주는 사람에게 감정을 가지고 찌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해 드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어떤 잘못이 있을 때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시기에 때로 지적과 책망과 징계까지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를 의롭다 생각하여 도리어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만들거나 자신의 잘못을 주변의 탓으로 돌린다면 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해 드리는 것이지요. 결국 사단에게 더 큰 송사거리를 만들어 줌으로 더 깊은 죄의 수렁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공룡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기보다는 억울하다 생각하며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것이 올무가 되어 사단이 더 쉽게 역사할 수가 있었지요. 그러면서 점점 악에 악을 더해 가는 공룡으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아름다운 지구는 빠르게 오염되고 파괴되어 갔습니다. 공룡이 이 땅에 살았던 시간이 오늘날 과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지구는 짧은 시간동안 공룡들에 의해 심하게 파괴되어 갔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서너 평 정도 되는 꽃밭 안에 수십 마리의 개미나 곤충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개미나 곤충들로 인해 꽃밭이 망가지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크기의 꽃밭 안에 이번에는 커다란 개나 멧돼지와 같은 짐승을 풀어놓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 마리만 있어도 아마 순식간에 꽃밭은 짓밟혀서 완전히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지구에 처음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동물들만 있을 때에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곳에 어마어마한 수의 공룡들이 그것도 이 땅의 동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다란 공룡들이 갑자기 나타나 살게 되었으니 이것이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겠습니까?
당시 공룡의 수는 단지 많다는 정도가 아니었지요. 오랜 세월 동안 에덴 동산에서 번성하던 공룡이 일시에 이 땅에 내려왔으니 그 수는 실로 엄청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공룡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이 땅의 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게 되었고 자기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과일이나 풀들을 엄청난 속도로 먹어치우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대로 놓아 두면 동물들은 물론이고 과일 나무나 풀 등도 씨조차 말라버리게 될 형편이 되었지요.
게다가 이 땅에 내려온 공룡들은 스스로 육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에 있을 때에는 배가 고프다거나 무엇을 먹어야겠다는 욕심이 없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배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라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더욱 충만해지기 위해서 먹기 때문에 굳이 안 먹는다고 해서 못 참거나 또 많이 먹어야겠다는 욕심을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육의 차원으로 떨어지자 배고픔과 허기를 느끼게 되었고 큰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음식을 먹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공룡들은 보이는 대로 과일이나 풀 같은 것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것으로는 만족하지를 못했지요. 그러면서 어느 순간 자기들이 죽인 동물들의 피 맛을 보게 되었고 이 때부터 육식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땅은 영육간의 질서가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환경과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룡 역시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로서 다 같은 피조물인 이 땅의 동물들을 멸시하고 해침으로 영적인 질서 또한 파괴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공룡에 의해 이 땅에는 실질적으로 죽음이라는 개념이 생겨납니다. 물론 이런 일이 있기 전에도 이 땅의 생물들은 자연의 순리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노화하여 죽어 가는 순환의 과정은 있었지요. 그러나 이 때까지는 아직 어떠한 인위적인 죽음이나 질병 균들로 인해 병들어 죽는 등의 죽음은 없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자연의 순리를 벗어나는 죽음은 없었지요. 모든 것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여 살아가다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수명도 무척 길었구요. 또한 일정한 수가 수명을 다하여 죽어 가면 그 수만큼 다시 태어남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일정한 상태가 유지되었지요.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우면서 천천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마치 변화가 없는 듯 느껴졌고 이런 가운데서 죽음이라는 것도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이러한 지구를 보면서도 죽음이 없는 에덴 동산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죽음도 단지 하나의 순환과정으로 받아들였지요. 더욱이 아직까지 사람이 죽는다거나 자신과 가까운 어떠한 존재가 죽은 일이 없었기에 그만큼 죽는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룡이 이 땅에서 살게 되면서부터 죽음에 대한 개념이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공룡에 의해 동물들이 무참히 죽임을 당하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죽음의 고통과 비참함을 보게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되었던 공룡들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일시에 죽음을 맞게 되지요.
아담은 바로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이제 어렴풋이나마 죽음에 대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죽음이 없는 에덴 동산에서 오랜 세월 사랑을 나누며 함께 했던 공룡들이 이처럼 죽음으로 멸망당하는 것을 보면서 아담은 비로소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이러한 과정을 우리 인간이 이 땅에서 경작받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공룡으로 인한 이 사건이 다만 아담에게 죽음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는 되었지만 인간이 이 땅에서 경작을 받으며 겪는 슬픔과 애통과 헤어짐의 고통과는 다르지요. 여전히 아담 자신은 죽음이 없고 예전과도 전혀 차이가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직접적인 고통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공룡은 과연 이 땅에서 얼마나 살았고 어떻게 멸망당했을까요?
공룡은 이 땅에서 살면서 주로 물이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요즘 우리 나라에서 공룡이 발견된 곳은 다 물이 있는 곳으로 섬 아니면 남해 물이 있는 곳이지요. 에덴 동산에 흐르는 생명수를 그리워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공룡들이 처음부터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다 초식이었다가 그 중에 육식을 하는 공룡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것이 점차 번져 나간 것이지 어떤 것은 초식공룡이고 어떤 것은 육식공룡이다 라고 하는 구분을 굳이 지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덜 포악하고 더 포악하고의 차이이지 공룡 모두가 악으로 물들어 가면서 점점 더 포악해지며 살상까지 일삼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찌 이러한 공룡들을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에 살도록 허락하실 수가 있으셨겠습니까? 오늘날 진화론에서는 공룡이 1억 수천만 년 이상을 이 지구에 살았다고 추측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학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층을 조사하여 공룡이 살았던 시기를 추정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 정확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존의 과학에서 사용하는 연대 측정 방법이 전혀 틀리다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공룡이 이 땅에 살았던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매우 오랜 세월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진화론의 주장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공룡이 매우 오랜 세월을 살았다고 하는 것은 공룡의 화석이나 지층의 비교에 의한 추측인데 바로 하나님께서 공룡들을 심판하신 방법 때문에 이러한 오류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공룡들을 일시에 멸하여 버리셨는지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시간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
하나님께서 공룡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는 이유는 공룡에 대한 세상의 잘못된 지식을 깨뜨려 주심도 있지만 바로 공룡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에게 큰 깨우침을 갖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작은 악을 허용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크게 자랄 수 있는지, 혹여라도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지요.
그런데 이 사건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더 중요한 교훈을 얻게 하는 것은 바로 아담은 이 모든 과정을 보았으면서도 결국 같은 길을 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담이 장차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났을 때에 그가 얼마나 가슴을 치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겠습니까? 그 영화롭던 자리에서 추락하여 하나의 인간으로서 이 땅에 살아가야만 했을 때 아담이 느꼈던 마음의 고통과 후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만 더 명심할 걸, 그 때 공룡들의 멸망을 보면서 조금만 더 내 마음에 다지고 다질 걸' 후회 섞인 한탄과 함께 아담은 이 땅에 사는 동안 공허함과 좌절감 속에 참회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전에 지옥설교를 통해 설명드린 대로 아담이 겨우 구원에 이를 수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얼마나 비참한 모습입니까?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다스리던 지배자에서 한낱 피조물로 생을 살아가다 마쳐야 했고 간신히 구원에 이르렀으니 하나님 앞에 너무나 죄송스럽고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만일 불순종으로 공룡이 갔던 길, 아담이 갔던 길, 그 길을 또다시 가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나 어리석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은 사망이다 하신 길을 여전히 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 선악과를 또다시 따 먹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러한 사람이 한 분도 없기를 부탁드리며 혹여 그러한 분들이 있다면 공룡처럼 오히려 마음을 더 강퍅하게 하고 교만해져서 더 깊은 죄로 빠져들 것이 아니라 용서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을 찾고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만민의 배를 함께 탄 우리 모두는 전부 구원받아 천국에 이르며 더 나아가 정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변함 없는 참자녀가 되어 새예루살렘의 영광중에 거하게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6:2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