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2)
서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계시록 21:2에는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새예루살렘은 장차 맞이하게 될 주인들을 기다리며 아름답게 단장된 신부의 모습처럼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온전한 신부단장을 마친 사람 즉 신랑되신 주님의 신부로서 조금도 부족됨이 없는 사람, 그러면서 온집에 충성한 사람에게만 주어지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경작받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 가장 아름답고 선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나온 참자녀들만을 골라 새예루살렘으로 들이시기 위해 정금 같은 믿음으로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수많은 모래들을 물로 씻어 거르면서 그 중에 사금을 찾아내는 광부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어떤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열심히 죄를 씻어 내고 변화되어 밝게 빛나는 정금으로 나오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자녀들을 발견하실 때마다 인간 경작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받으셔야 했던 수많은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잊으신 채 너무나 기뻐하고 기뻐하시지요. 오래 참으시며 얻은 자녀들이기에 새예루살렘에 들어오는 한 자녀 한 자녀가 더욱 귀하고 사랑스러우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자녀들과 앞으로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의 새예루살렘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 놓으셨겠습니까? 오늘 설명드릴 새예루살렘에 대한 말씀을 통해 여러분 모두에게도 새예루살렘을 향한 뜨거운 소망과 신부 단장을 마치기 위한 충만한 은혜와 능력이 위로부터 임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 새예루살렘
1. 새예루살렘, 영광의 성
계시록 21장과 22장을 보면 새예루살렘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라 말씀하고 있는데 새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온전히 거룩된 자녀들만이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는 새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영광의 성이지요. 새예루살렘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았던 사람들만이 들어가는 곳으로서 일단 이곳에 들어가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세세토록 받게 되므로 영광의 성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성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6천 리씩의 정육면체 모양을 하고 있지요.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둘러져 있어서 이 성으로부터 발산해 나오는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지요. 성벽의 사면에는 각각 세 개씩 총 열두 개의 아름다운 진주문이 있으며 성곽은 열두 개의 보석으로 된 기초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열두 문마다 천사가 있고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지요.
새예루살렘 성의 문이 진주로 되어 있고 길은 정금으로 되어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진주란 인내와 절제 그리고 온 진액을 다한 정성이 모아져서 나온 열매이지요. 바로 조개는 하나의 진주를 만들어내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인내하며 자신의 진액을 다 쏟아 붓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인내와 절제 속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아버지 하나님 앞에 생명 다한 충성을 드린 사람들이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좁은 길을 가면서도 기쁨으로 승리한 사람들이고 맡겨진 모든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들어오는 새예루살렘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성으로 들어오는 성문을 이처럼 진주로 만들어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새예루살렘에 들어온 사람들은 진주문을 통과하면서 자신들의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고, 자신들을 새예루살렘으로 인도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라 했는데 정금은 영적으로 소망을 나타냅니다. 오직 새예루살렘을 향한 소망 가운데 날마다 승리하며 변함없이 달려온 사람들만이 이곳의 정금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새예루살렘은 마음이 맑은 사람, 그 중에서도 유리처럼 맑고 투명하며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올 수 있기에 정금길을 맑은 유리같이 해 놓으신 것이구요.
새예루살렘 성곽의 열두 기초석을 이루고 있는 보석들에도 각각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열두 보석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다 종합한 마음이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이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서 이런 마음을 이룬 사람들이 새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지요.
그러므로 새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열두 보석에 담겨 있는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그것을 우리 마음 안에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은 그 내용을 하나하나 자세히 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 간략하게 의미 정도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기초석인 벽옥은 영적인 믿음을 나타냅니다. 머리의 지식적인 믿음으로만이 아닌 정말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순종한 사람만이 새예루살렘에 들어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남보석은 곧음 즉 절개를 뜻합니다. 이는 진리에 비추어 옳다 하는 것은 어떤 유혹이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간사함이 없는 진실 자체의 마음으로서 정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비록 사자밥이 될지언정 하나님을 향한 정한 마음을 굳게 지켰던 다니엘과 같은 분들이 보여 준 마음이지요.
셋째로, 옥수는 결백과 희생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교회와 목자와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는 마음이지요. 바로 민족을 구하기 위해 왕 앞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갔던 에스더와 같은 사람이 가진 마음입니다.
넷째로, 녹보석은 의를 나타냅니다. 정의롭고 깨끗함을 의미하지요.
다섯째로, 홍마노는 충성을 나타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이루어내는 것으로서 주 안에서 생명을 다할 수 있는 충성의 마음이지요.
여섯째로, 홍보석은 열심을 뜻합니다. 붉은색은 뜨거움을 나타내는데 바로 주 안에서 열심이란 이러한 뜨거운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해 가는 것입니다. 잠깐 뜨거워졌다가 이내 식어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변함없이 뜨겁게 달려가는 영적인 열심이지요. 그 안에는 당연히 주님을 향한 변함없는 열정적인 사랑이 담겨 있게 됩니다.
일곱째로, 황옥은 자비의 마음입니다. 어떠한 미운 사람도 싫은 사람도 없이 모두를 긍휼히 여기고 이해하며 포용하고 선대할 수 있는 마음이지요. 자신을 돌로 쳐서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끝까지 하나님께 그들을 용서해 달라 기도했던 스데반 집사의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여덟째로, 녹옥은 오래 참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 범사에 오래 참는 것을 말하지요. 비록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끝까지 선으로 대하여 승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오래 참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홉째로, 담황옥은 양선을 나타냅니다. 다투지도 아니하고 들레지도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 우리 주님의 마음이지요. 이런 마음이 있을 때 오직 선만을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열 번째로, 비취옥은 절제를 의미합니다. 새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좁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진리에 위배되는 것은 절제하며 인내해야 하지요. 또한 절제의 열매를 통해 모든 것에 지나치지 않고 온전함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열한 번째로, 청옥은 마음의 청결함과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5:8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말씀한 대로 흠도 점도 없는 죄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만이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지요. 그리고 이러한 청결한 마음을 가지려면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영으로 양식 삼아 온전한 행함 가운데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열두 번째로, 자정은 아름답고 온유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마음을 참으로 기뻐하시며 이러한 온유의 마음을 아름답다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유는 영적인 온유이지요. 세상에서는 단지 온화하고 유순하며 잘 나서지 않는 사람을 온유하다 말하는데 영적인 온유는 이러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온유는 사랑과 덕을 가지고 어떤 것이라도 받아서 품어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는 자신을 던져 희생하며 뛰는 적극적인 모습이 따르지요. 그러니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모든 사람과 거치지 않고 화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새예루살렘의 삶
지금까지 설명드린 열두 가지의 마음을 온전히 이룬 사람은 눈물과 인내로 승리한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진주문을 통과하여 정금길을 걸어서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새예루살렘 성 안은 어떻게 생겼고, 그 곳에서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요?
새예루살렘에 들어온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뵈올 수도 있고, 주님과 대화하며 거닐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얼굴을 친히 뵈올 때는 아버지 보좌가 거하는 차원에서 아래 차원으로 내려오실 때입니다. 같은 새예루살렘 안에 있지만 차원이 다른 공간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연회를 베푸신다든가 하는 때이지요.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께서 내려오시기 전에는 아버지가 계시는 차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있는 사람만이 뵙게 되고 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얼마나 가까이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지는 각자의 서열에 따라서 결정이 되어집니다.
하지만 새예루살렘에 들어왔다는 자체만으로도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감동 자체인 삶을 살게 됩니다. 도무지 말로 할 수 없는 감동과 영광과 아름다움 속에서 세세토록 변함없는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땅을 보아도 아름답고 하늘을 보아도 황홀하며 어느 곳을 보더라도 충만함과 감동이 밀려옵니다. 길을 걸어도 휴식을 취해도 놀이를 해도 음식을 먹어도 대화를 나누어도 그 무엇을 해도 행복하기만 합니다. 나무를 보고 꽃과 풀과 짐승들을 보아도 사랑스러우며 성벽이나 집안의 장식과 여러 가지 시설물 그 무엇을 보아도 호화롭고 찬란한 영광을 느끼게 되지요.
한없이 평안함과 행복한 마음으로 숲 속이나 향기로운 정원의 꽃길을 거닐기도 하고 투명하고 맑은 바닷가나 생명수 강가에 금모래 은모래를 밟으며 산책하고 그 상쾌함과 맑은 공기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 곳의 모래는 둥근 원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몸이나 옷에 먼지처럼 달라붙지 않습니다. 가는 모래 굵은 모래 전부 둥근 원으로 만들어졌기에 일어설 때는 깨끗이 떨어지는 것이죠. 물 속에 들어가 수영할 수도 있고 오색찬란한 고기와 행복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늘 함께하면서 운동을 좋아한다면 운동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게임들도 할 수 있으며 원하는 대로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엇이나 마음에만 품어도 천사들이 알아서 그대로 수종 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새예루살렘에서는 늘 연회가 베풀어지는데 때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최하시는 연회, 주님께서 베푸시는 연회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는 예능위원회가 따로 있어 예능팀들이 거기서 연습도 하고 회합도 가지며 모든 악기가 다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예능 방면으로 하나님께 마음 중심으로 충성해서 새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들은 연회에 초청받아 주도하게 됩니다. 우리 찬양팀도 마찬가지예요. 중심으로 찬양하여 새예루살렘에 들어간 분들은 이런 연회 자리에 와서 찬양하게 되는데 수많은 찬양팀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연회에 참석하는 성도들은 최고로 아름다운 단장을 하고 최상의 공연과 최상의 음식을 즐기게 되지요. 연회마다 그 음식 맛이 다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궁중요리 맛이 다르고 지방 요리 맛이 다른 것과 같지요.
천사들이 춤과 연주를 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도 찬양팀이나 공연팀이 나와 마음의 향과 아름다운 찬양과 연주와 무용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천사들과 같이 어울려 찬양과 연주를 하게 되지요. 그러나 천사의 향이 다르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향이 다릅니다. 비록 천사들이 더 잘 하지만 향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향을 아버지께서 더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3. 새예루살렘의 집의 아름다움
새예루살렘의 집들의 규모와 화려함은 하나하나가 거의 한 개의 성과 같습니다. 각각의 집이 특색이 있고 집마다 경계가 뚜렷한데 그러면서도 너무나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 완벽한 통일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보여 주지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과 상급에 따라 그리고 주인의 취향이나 원하는 바에 따라 각각의 집들은 특색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보석에서 나오는 빛깔과 다양한 색채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집들이 특색 있으면서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지요. 새예루살렘의 집은 보기만 해도 그것이 누구의 집인지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집에 얼마나 둘러져 있는지 그리고 어떤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지를 통해 그 주인이 이 땅에서 얼마나 성결되었고 어떻게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린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집의 주인이 이 땅에서 순교를 했다면 순교를 기념하는 장식이나 기록 등이 집에 꾸며져 있어서 누구나 그것을 보면 집 주인의 마음과 행적을 알 수 있지요. "모년 모월 모일 어떠한 연유로 순교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다" 하는 내용이 황금 보석에 새겨져 있어 찬란한 광채의 빛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대문에 들어가면 그 기록된 황금보석에서 발하는 아름다운 찬란한 광채의 빛이 바로 첫눈에 띄게 되고 그걸 보는 사람은 누구나 그 앞에서 경배를 드리게 되지요. 그만큼 큰 영광이요 상급이며 아버지의 자랑이요 기쁨이요 아버지의 자랑이니까요. 천국은 악이 없기 때문에 서열 따라 또 아버지 큰 사랑을 받고 영광을 받는 분이시라면 그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져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 땅에서도 감사패나 공로패가 있는 것처럼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상급 쌓은 것에 따라 아버지께서 친히 기념하는 패를 선사하십니다. 이 패에 따라 그 집의 향과 빛깔이 바뀌게 되지요.
그리고 이 땅의 일들에 대해서도 추억할 수 있도록 각자의 집에는 추억할 만한 물건을 마련해 줍니다. 물론 그 곳에서도 텔레비전과 같은 것을 통해 이 땅에서 있었던 예전의 일들을 다시 볼 수 있는데 저의 집에는 특별히 '고뇌와 추억의 방'이라 이름 붙여진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이 땅에서 마음에 품었던 것, 사랑했던 것, 하고 싶고 갖고 싶었던 것을 주님을 위해 버렸을 때 새예루살렘에서 아름다운 위로와 상급으로 그대로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갖고 싶었던 것이 여러분의 집에 갖추어져 있고 여러분이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 여러분의 집에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집은 호수가 있어 거기에서 배를 타며 노를 저을 수도 있는가 하면 어떤 집은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그 숲을 함께 거닐 수도 있습니다. 아늑한 정원 한편에 T 테이블이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평안한 한때를 즐길 수도 있고, 또 어떤 집은 넓은 초원에 아름다운 잔디들과 아름다운 키 낮은 꽃들이 깔려 있습니다. 그 위를 행복에 겨운 모습으로 노닐기도 하며 여러 가지 새와 아름다운 짐승들과 함께 찬양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땅에서 품었던 것까지도 그냥 흘려버리시는 법이 없이 자상하게 천국에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섬세한 부분까지도 아버지께서 정확히 아셔서 이루어 주신 것을 볼 때 감동과 감격이 한량없이 밀려오는 것이지요.
새예루살렘에는 각자에게 수종드는 천사의 수가 다릅니다. 이 땅에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내보인 믿음의 행함과 충성에 따라 그리고 마음의 아버지를 닮은 정도에 따라 수종드는 천사의 수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큰 집에 산다면 그만큼 집을 관리하며 수종드는 딸린 천사도 많아지는 것이구요. 정원이나 모든 것을 천사들이 주인의 마음에 맞게 다 관리하기 때문에 집이 크면 큰 만큼 또 천사들 수가 많지요.
여러분이 이 땅에서 얼마큼 하나님 앞에 건축예물을 많이 드렸느냐. 얼마만큼 영혼을 많이 구원하였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집의 크기가 결정되어집니다. 여러분이 건축예물을 드리는 것은 전부 여러분의 집으로 지어집니다. 여러분이 영혼을 구원한 것, 영혼을 관리한 것 모두가 여러분의 집 재료로 사용되어지지요.
4. 새예루살렘의 옷과 면류관들
새예루살렘에서는 사람마다 집과 수종드는 천사가 다를 뿐 아니라 의복과 면류관에도 각각 차이가 있습니다. 옷이나 면류관에 달린 장식과 보석들 그리고 새겨진 문양들을 통해 이 세상에서 각자의 행적을 나타냅니다. 이 땅에서도 궁중에서 큰 연회가 있을 때는 왕족이나 귀족들이 각자의 신분 안에서 최고의 예복들을 입고 오는데 이 때 격에 따라 입는 옷이 다 달라지지요. 또한 관리들이 벼슬에 따라 의복과 손에 들고 있는 패가 달라서 한눈에 그 지위가 구분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처럼 아버지가 큰 연회를 베푸시면 각자 가진 것 중에 가장 좋은 옷들을 입고 오는데 그 차림새를 통해 각각의 서열과 공적이 드러나며 얼마나 하나님께 사랑받는지 등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옷에 수놓인 문양들도 매우 다양한데 그 사람이 땅에서 얼마나 감사했는지를 나타내는 감사의 문양이 있고, 찬양의 문양도 있으며 이 밖에도 기쁨의 문양, 기도의 문양 등 여러 가지 문양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양 중에서도 영광의 문양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광의 문양은 새예루살렘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한 경우에만 주시는 것으로 그 영광이 다른 문양과 확연하게 구별되지요.
머리에는 면류관을 쓰는데 의의 면류관이나 금면류관 외에도 면류관들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여 상황에 맞게 바꿔 쓰게 됩니다.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한 화관, 진주관을 비롯하여 온갖 보석들로 섬세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여러 가지 면류관들이 있지요.
그런데 여인들에게는 이러한 면류관 이 외에도 머리에 다는 장식이 따로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왕비와 후궁, 상궁이나 무수리 등이 다 머리 형태와 장식이 달랐던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이런 것처럼 천국에서 머리 장식이 다 다른데 예를 들어 낙원에는 면류관도 없을 뿐만 아니라 머리 역시 아무 장식도 없는 맨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윗단계에 올라갈수록 머리 길이와 장식도 달라져서 더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으로 꾸미게 되지요. 그리고 새예루살렘의 여인들은 보석 장식을 할 뿐만 아니라, 특별히 아름다운 색을 발하는 실과 같은 것으로 머리를 단장하게 됩니다.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색상의 장식 줄이 마치 머리카락의 일부인 것처럼 길게 드리워져 갖가지 광채를 발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천국에서는 각 사람이 입은 옷 색깔이나 빛, 옷에 새겨진 문양과 장식한 보석들, 머리에 쓴 면류관과 각종 장식들을 통해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5.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이들의 감동
천년왕국이 끝나고 백보좌 대심판에 의해서 상급이 주어지는데 천국의 어느 처소로 들어간다는 것은 천년왕국 전에 이미 결정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이 끝나고 백보좌 대심판에 의해서 천국의 각 처소로 들어가게 되면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분들은 새예루살렘을 향해 가게 됩니다.
새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되면 거대한 성에 압도를 당하여 정신이 나갈 정도이고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는 주먹만한 보석을 하나도 못 만져 봤는데 거대한 성곽 자체가 그런 보석으로 돼 있는 것입니다. 벽옥과 정금으로 빛이 찬란한데 흠과 티가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그러면서 새예루살렘 성문에서 감동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세상의 핍박과 환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사랑으로 승리하고 믿음으로 승리하고 결국은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을 얻어 드디어 문 앞에 도달했구나!' 진주문을 보는 순간에 새예루살렘으로 인도해 주신 목자에 대한 감사의 눈물, 그리고 목자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게 하고 온집에 충성하기 위해서 영적으로 열심히 가르쳐 새예루살렘으로 이끈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지요.
새예루살렘 성의 진주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천사들이 자기의 주인을 영접하러 나옵니다. 이들에게는 구름 자가용이 주어짐으로 천사들이 앞뒤를 호위한 채로 날아가 각자의 집 앞에 도착하게 되는데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이미 문이 열려 있는 집 안을 들여다보고 또 다시 감사와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와 주님께 대한 감사와 감동의 눈물이지요. 자기 집 안을 보는 순간에 너무 휘황찬란하고 아름다우며 끝도 없이 정원이 펼쳐져 있고 꽃밭이 쫙 펼쳐져 있고 너무너무 황금 빛나는 보석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육의 눈이 아닌 영혼의 눈으로 멀리까지도 보고 세미한 모든 음성도 들을 수 있지요. 선명하게 보게 되니까 집의 전체를 둘러보게 되지요. 어디에 호수가 있구나, 정원이 있구나, 꽃밭이 있구나, 또 여러분에게 주어진 짐승들이 나와 환영을 합니다. 새, 곤충, 온갖 것들이 나와서 춤을 추고 날고 하면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 무섭던 사자가 꼬리를 흔들고 오색찬란한 깃털에 여러분에게 재롱을 떨고 막 비비고 난리를 합니다.
이제까지 천국에 대한 맛보기를 할 수 있는 정도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천국에 대한 말씀을 듣고 반드시 기억하셔야 할 것은 천국은 철저히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잠시 잠깐 사는 동안 여러분이 어떻게 마음을 정하여 달려가는가에 따라 천국에서의 처소가 결정되고 영적인 서열이 정해지며 그에 따르는 영광과 존귀가 달라지게 되지요. 그리고 그것이 영원토록 지속된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
고린도전서 15:19에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땅의 삶이 전부이고 믿는 자들에게 약속된 천국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천국을 믿고 소망하기에 이 땅에서 취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기꺼이 놓을 수가 있습니다. 또 열심히 죄와 싸우기 위해 노력하지요. 그런데도 만약 천국이 없다면 그 노력과 수고가 다 의미가 없을 테니 얼마나 슬프고 불쌍한 일입니까. 바로 천국이 있음을 믿지 못하는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천국이 있음을 믿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불쌍하다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설령 천국이 없다 해도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하고 취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은 전혀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슬퍼하거나 불쌍하다 생각하지도 않으며 내세에 보장된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 해서 그것 때문에 슬픈 것도 아니지요. 물론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한 대로 우리가 상 주심을 바라봄으로 이 땅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해 나가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제가 설령 천국이 없고 그래서 천국에서 받을 상이 없다 해도 슬프지 않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저에게 있어서는 만약 천국이 없다고 할 때 천국에서 상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욱 슬프고 불쌍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을 뵈올 수 없다는 사실이지요. 제가 너무나 사랑하고 너무나 보고 싶은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이보다 저를 더 슬프고 불쌍하게 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님을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직 아버지 하나님 뵈올 날만을 기다렸고 주님 뵈올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너무나 사모하고 너무나 그립기에 아버지를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 것이 지난 19년 간이었지요. 오직 천국에 하루 빨리 가기를 기다렸구요. 그런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을 뵈올 수 없다면 이보다 더 슬프고 불쌍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물론 내세에 주어질 천국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이 땅의 삶을 기꺼이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다면 그는 참으로 믿음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함께 아버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신랑되신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설령 천국에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 없다 해도 자신의 생명까지 주를 위해 드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과 하나된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주를 위해서라면 또 우리 주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셨을 테니까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주님과 생명을 다한 사랑으로 하나를 이룬 사람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8:38-39에서 했던 고백이 바로 이러한 사랑의 고백이지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처럼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맺어진 자녀들이 들어가는 곳이 바로 새예루살렘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14:3에 예수님께서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말씀하신 대로 이제 천국에 모든 처소가 예비되어 신랑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실 날도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그 날에 저와 여러분은 '나의 신랑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담대히 고백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신부가 되기 위해 오늘도 들으신 새예루살렘의 말씀이 참 소망이 되고 믿음과 생명이 되어서 이전보다 더욱 힘차게 새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6:2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