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39)
서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잠시 상상 속의 행복한 시간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상황을 상상하시면서 현실처럼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싱그러운 나무와 풀꽃이 가득한 초원에서 포근히 감싸안아 주는 것 같은 햇살을 온몸 가득 받으며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있습니다. 위를 바라보면 새파란 바탕에 솜덩이 같은 흰 구름들이 둥둥 떠가는 구름 같은 하늘이 펼쳐져 있고 가지가지 모양의 아름다움으로 펼쳐져 있고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햇살이 반사되면서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는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져 있지요. 눈을 감고 따스한 햇볕을 만끽하노라면 달콤한 꽃향기를 품은 바람이 코끝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갑니다. 숲 속에서는 각양 고운 빛깔의 새들이 세상의 어떤 악기로도 연주할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래를 지저귀고 있지요.
여러분의 곁에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만나기만 해도 아무 말 없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장 평안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있어서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손만 뻗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 날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과 향기로운 여러 가지 음료들을 맛볼 수 있지요. 때로는 넓게 펼쳐진 풀밭이나 꽃 덤불 위에 누워 부드러운 꽃잎과 달콤한 향기를 만끽할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조금 떨어진 바닷가로 가서 하얀 모래알이 반짝이는 해변과 맑고 푸른 파도를 즐길 수도 있고 고기처럼 마음껏 수영할 수도 있지요.
사랑스런 사슴이나 토기, 다람쥐 같은 짐승들이 눈망울을 반짝이며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재롱을 떨고 호수와 바다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노닐며 곳곳에서는 동물들이 평화롭게 어울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마음에는 잔잔한 평안과 기쁨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여러분의 모습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힘겹고 바쁜 삶을 떠나 한 번쯤은 가져보고 싶어하는 가장 평안하면서도 행복한 삶의 한 모습이지요.
본론 /
1. 에덴에서의 삶
여기가 바로 어디일까요? 이는 에덴의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새예루살렘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인데도 에덴동산이 이처럼 행복하며 아름다운 것입니다. 에덴은 원하는 대로 먹을 수도 있고 대화할 수도 있으며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곳으로서 염려, 근심, 걱정 등이 전혀 없으며 오직 기쁨과 즐거움과 평화가 가득한 곳입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와 질서 속에 운행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 편에서는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으면서 영원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에덴에 존재하는데 그것은 처음 만들어진 때부터 지금까지 전혀 오염되거나 변질된 것이 없기 때문에 처음 상태 그대로 깨끗하고 맑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과 같이 높은 지형은 없고 낮은 구릉이 군데군데 있으며 이런 곳에는 장막과 같은 것이 지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에덴의 사람들이 살려고 지은 집은 아니며 다만 잠시 쉼을 위해 지어 놓은 것들입니다.
또한 에덴의 사람들은 옷을 입지 않습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에 악이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에덴의 환경은 사람이 옷을 입지 않고 살아도 될 만큼 가장 알맞은 상태이므로 벌거벗은 채로 생활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습니다. 몸을 찌르는 가시나 상하게 하는 갈대나 무는 벌레 같은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오염된 것도 없으며 추위나 더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약간의 온도 차이는 있지요.
창세기 3:8에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말씀하신 것을 보면 에덴에도 서늘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도차이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고 더워서 땀 흘리고 하는 것도 아니고 추워서 웅크리는 것도 아닙니다. 최적의 온도이되 더 서늘한 곳도 있고 더 시원한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덴의 사람들 중에도 간혹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특별히 머리급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일반 사람들과 구분하기 위해 이처럼 옷을 입고 있는 것이며 이들에 의해 에덴도 정확한 질서와 서열 속에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2. 그룹
이처럼 머리급이 되는 사람들 외에도 에덴의 질서를 유지하며 에덴 사람들의 삶을 관장해 가는 존재가 있는데 바로 그룹들입니다. 에덴에는 천사들이 없고 대신 그룹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며 에덴동산의 질서를 유지할 뿐 아니라 에덴동산과 마주 대하고 있는 공간에 존재하는 악한 영들로부터 에덴동산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24에도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에덴에는 그룹들이 있어서 그 곳 사람들의 삶을 주관해 가기 때문에 만일 UFO가 이 땅에 내려올 때에도 그룹들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영계의 문을 열고 닫는 권세를 갖고 있는 그룹들이 영계의 문을 열어 주어야만 비로소 UFO가 내려올 수가 있는 것이고 내려오는 시간까지도 그룹들이 정해 주게 됩니다.
그런데 예전에 설명 드린 대로 그룹들을 주관하는 가장 머리는 네 생물이므로 결국 에덴을 주관해 가고 있는 그룹들도 네 생물들로부터 지시를 받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원래 하늘 문을 여는 권세를 하나님께서 네 생물에게 주신 것이므로 에덴에 있는 그룹들은 네 생물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는 것이지요.
앞으로 네 생물에 대해서는 다시 자세한 설명이 나가겠지만 이들의 권세는 대단합니다. 그 밑에 있는 그룹들의 권세도 대단해서 원수 마귀 사단이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할 정도의 막강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은 네 생물과 그룹들만으로도 원수 마귀 사단으로부터 철저히 지킴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천사와 그룹의 차이점
그러면 천사와 그룹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천사나 그룹 모두가 우리 사람처럼 인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천사는 희로애락을 느끼며 주인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짐승이라 해도 주인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일만 하는 소와 같은 동물이 있는 반면 그래도 다소 주인의 마음을 알아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영리한 개와 같은 짐승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사는 비록 인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그룹과 비교해 볼 때는 영리한 개와 같이 주인의 마음을 어느 정도 느껴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안이 열린 분들은 천사들이 분위기에 따라 갖가지 표정과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되지요.
우리가 행복하게 율동을 하면 천사들이 와서 같이 율동도 하며 같이 춤도 추고 악기를 다루면 천사들이 와서 같이 악기를 다루며 장난기가 있는 천사도 있어서 재미있는 장면에서는 함께 웃기도 합니다. 어떤 천사는 거룩하게 웃지도 않고 굳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주로 지키는 천사들입니다. 또한 섬기는 주인의 상태에 따라 천사들의 모습이나 분위기도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천사들이 주인의 마음을 느끼기 때문에 주인이 슬퍼하면 천사도 슬퍼하고 주인이 기뻐하면 천사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룹은 마치 로봇과 같아서 오직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물론 주인을 섬기고 흠모하는 마음이 그룹에게도 있지만 천사와는 다르지요. 그래서 이러한 그룹을 움직일 때는 지시하는 편에서 강하게 명령을 해야 합니다.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게 되어 있는 군대처럼 강한 마음을 가지고 담대히 명해야만 그룹들이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천사와 그룹의 또 한가지 차이점은 말에 따르는 권세입니다. 예를 들어 천사들은 입을 열어 말을 하고 서로간에 대화도 나눌 수 있지만 그룹 중에서도 네 생물은 쉽게 입을 열지 않습니다. 이는 그들의 말에는 즉시 보장되는 권세가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룹들이 입을 여는 자체가 때로는 재앙과도 곧바로 연결될 수 있는데 만일 네 생물이 입으로 우박이나 번개를 말하게 되면 그 즉시로 우박이 내리고 번개가 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권세를 가진 네 생물이 있는 곳에는 원수 마귀 사단이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지요.
4. 에덴동산의 크기와 위치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네 생물과 그룹들에 의해 지킴을 받는 에덴을 우리가 동산이라 부른다 해서 이 땅의 동산을 연상해서는 안 됩니다. 에덴동산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넓고 큰 곳으로서 우리가 사는 지구의 수백, 수천 만 배도 넘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첫째 하늘도 태양계로부터 시작하여 은하계를 넘어서까지 그 끝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이보다 더한 둘째 하늘의 한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에덴동산의 크기는 더더욱 알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야 죽음이 없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에덴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영안이 열리신 분들이 에덴동산을 보면 항상 태양 주변으로 해서 마치 태양 뒤편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이 태양을 주변으로 해서 그 뒤편이나 옆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중에는 태양이나 달 안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실제로 하나님께서 태양이나 달 표면에 주님의 모습을 새겨 놓아서 그처럼 보이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모양을 새겨 놓은 것이 아니라 영안을 열어 그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이지요.
에덴동산이 태양 주변으로 보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해 속에서 에덴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거나 해 주변이나 뒤편으로 에덴동산의 모습을 보시는 것은 실제로 그 곳에 에덴과 에덴의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를 중앙에 두고 영계의 문을 열어 주시기 때문에 그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에덴은 동방 즉 빛으로 둘린 영역에 있는 곳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에덴동산을 보여 주실 때에도 빛의 근원이 되는 태양 주변으로 영계의 문을 열어 주셔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아무 곳이나 열어서 에덴동산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수도 있지만 에덴이 빛으로 둘린 공간이라는 영적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이처럼 항상 태양을 중심으로 열어 주시는 것이지요.
또한 보통 영계의 문이 열리게 되면 그 공간에 있는 육의 것은 보이지 않는데 하나님께서는 영계의 문이 열려도 그 중앙에 있는 태양은 그냥 보이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과 태양이 그냥 겹쳐서 보이면서 태양 속에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치 태양 옆에 에덴동산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5.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에덴동산은 이 땅에서처럼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밤과 낮의 구분이 지어져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렇지만 여러 가지 변화를 통해 구분되어지는 것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또한 에덴에는 구름이 참 많이 있지요. 그래서 아름다운 구름들로 각양각색의 모양들로 수놓아지며 산이 없는 대신 곳곳에 구름으로 산 모양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에덴동산에는 각종 실과를 맺는 나무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에덴의 중앙이 되는 곳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9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말씀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동산 중앙에 두셨을까요? 동산 중앙은 약간 언덕이 져있는 지형으로서 사람들에게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곳에 두 나무를 두셨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더욱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후로는 이 곳에 울타리 같은 것을 쳐 놓아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습니다. 다만 유적지와 같이 이곳을 돌아보면서 아담의 범죄와 그로 인한 죄의 결과에 대해 설명을 듣고 다시는 그들 안에서 이러한 불순종이 나오지 않도록 교훈을 삼는 것입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잎사귀도 풍성하고 열매도 풍성하게 맺혀 있는데 그 열매들이 이 땅의 과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탐스럽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6에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보았을 때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다 했지요. 또한 이 열매들은 두 손으로 안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땅의 과일 중에 큰 메론 정도의 크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실과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맛과 향이 뛰어나 향취는 신선하고 그윽하며 입에 닿았을 때의 느낌 역시 마치 입안에서 녹는 듯합니다.
그런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이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확연히 구분이 되어집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은 사과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약간 붉은 색을 띠고 있는데 아주 빨간 색이 아니라 약간의 홍조를 띠며 아름다운 빛을 내고 있습니다. 반면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복숭아와 모양이 비슷하고 분홍빛을 띠지요.
이처럼 두 나무는 확연히 구분이 되어지기 때문에 서로 헛갈리거나 혼동될 염려는 없습니다. 더욱이 에덴의 사람들은 그들의 영이 자연스럽게 두 나무를 구분하여 알지요. 그러니 두 실과를 혼동하여 잘못 따먹을 리는 없는 것입니다.
6.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생명나무와 인류를 죄 가운데로 빠뜨리고 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데 아담과 하와는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로 인해 인간 경작이 시작된 것이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결코 그들이 범죄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지요. 그러나 아담이 결국은 어떻게 될 것을 아셨고 아시면서도 인간 경작을 위해 선악과를 두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데 우리 앞에도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처럼 항상 두 가지의 선택의 길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원수 마귀 사단에게도 기회를 주어 동등한 조건 하에서 인간을 경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라고 하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놓여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무엇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담이 선악과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던 것처럼 분명히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담과 같이 선악과를 따먹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고 죄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가고 말더라는 것이지요. 또한 아담이 자신의 범죄의 원인을 하와에게 돌리고 하와는 뱀에게 돌렸듯이 많은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라고 말하며 자신의 범죄를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아담과 오늘날 우리들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담은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지식적으로는 알았지만 실제 체험해 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뱀의 유혹에 넘어갈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땅에서 경작 받는 우리들은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체험해 보았고 불순종한 아담을 통해 충분한 교훈도 얻었지요. 그러니 설령 한 두 번은 실수로 죄를 지었다 해도 더 이상은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했을 때에 범죄하기 전의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너무나 좋은 환경 속에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살 뿐만 아니라 에덴과도 비교할 수도 없는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상대성을 체험함으로 자유의지 가운데 진리를 선택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을 시작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여러분 앞에 있는 두 가지 나무 중에 온전한 생명나무로 가는 길만을 선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평안하고 조용한 곳에서 쉼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동안에 쉼을 가진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동안은 위안이 되겠지만 참된 평안이나 쉼을 줄 수는 없지요. 오직 우리의 참된 평안과 안식은 영원한 천국에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모두가 하나같이 이 땅에서의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다 드렸던 것이지요. 사도 바울도 이런 삶을 살았기에 디모데후서 4:7-8 전반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8절 후반절에는 이러한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이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말씀하고 있지요.
여러분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나갈 때 사도 바울과 같이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담대히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국 새예루살렘에 대한 확실한 소망과 장차 받게 될 상급에 대한 믿음이 여러분 안에 확실하게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과 소망은 여러분이 영의 세계를 알아 가는 만큼 더해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에덴의 삶에 대해 조금 들으셨는데 천국 새예루살렘의 삶은 이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하니 이러한 믿음과 소망이 있다면 어찌 사도 바울처럼 생명 다한 뜨거운 마음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장차 새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에 이 땅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참된 평안과 안식, 그리고 영원한 행복을 세세토록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6:2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