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36)
서론 /
지난 주 금요철야와 이번 주일에는 필리핀 대성회로 인해 여러분을 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님들이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는 필리핀 대성회의 현장 실황을 보시면서 마치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듯한 현장감 속에서 은혜와 감동의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필리핀 교회 지도자 세미나와 연합 대성회는 아버지 하나님의 보장하심과 축복 속에 너무나 형통하게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준비단계에서부터 성회가 마쳐지는 순간까지 아버지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매사를 친히 주관해 가신 성회였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는 그대로 순종만 해 나갔을 때에 가히 경천동지할 만한 최상의 창조의 권능의 대폭발로 나와졌던 것입니다.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창조의 권능의 차원으로 역사되었는데 우리와 함께하셔서 수많은 영혼들에게 구원의 은총과 질병의 치료를 비롯한 갖가지 문제에 응답으로 역사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본론 /
오늘 증거될 말씀에는 장차 우리가 신랑되신 주님과 함께 할 7년 혼인잔치, 그리고 천년왕국과 백보좌 대심판 또한 새예루살렘에 대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창세기 강해에서 왜 갑자기 이런 내용이 나오나 의아해하실 수도 있는데 생령이었던 아담의 몸과 부활체의 몸과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하려다 보니 약간 설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1. 생령의 몸과 부활체의 몸
지난 시간에 생령으로 창조되어진 아담의 몸과 부활하신 주님께서 입고 계신 부활체의 몸과의 차이점에 대해 잠깐 설명을 드렸었지요. 첫 사람 아담이 입고 있던 몸은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육에 속한 몸과는 전혀 다른 영에 속한 신령한 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영에 속한 신령한 몸이라 해도 온전히 영에 속한 것은 아니었지요.
영으로만 된 존재들과는 달리 만져지는 살과 뼈가 있는 몸이었으며 태어나서 성장도 할 수 있는 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어느 시점까지만 성장하고 나면 그 후로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노화되거나 퇴화되지도 않는 몸이라 했지요. 그러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장차 우리가 입게 될 부활체의 신령한 몸은 아담이 입고 있던 몸과는 또 다르지요. 둘 다 영에 속한 신령한 몸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휴거되면서 홀연히 변화되어 입게 될 부활체의 신령한 몸은 첫 사람 아담이 입고 있던 몸보다는 더 높은 차원에 속한 것입니다. 아담의 몸이 육과 영의 중간차원 정도 된다면 부활체의 신령한 몸은 온전한 영의 몸이지요.
그래서 부활체의 신령한 몸은 마치 영과 같이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몸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입고 있던 몸은 하늘을 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에덴이 있는 둘째 하늘과 우리가 사는 첫째 하늘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흐름의 차이를 극복할 수가 없다고 했지요. 우리 주님이 승천하실 때 시간대 흐름의 차원과 상관없이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나 에녹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러나 에덴에 있는 백성들은 다릅니다.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사이의 시간의 흐름의 차이를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담은 에덴동산에 살면서 이 지구를 다스리러 내려오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그 도구가 바로 UFO이지요. UFO는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사이의 시간의 흐름의 차이를 극복해서 이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도구로서 그 형태나 크기 등이 매우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런 UFO가 사람들에게 쉽게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UFO가 워낙 빠르기도 하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전자막과 같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물을 덮어놓은 것과 같은 형태의 밝게 빛나는 막이 UFO를 둘러싸고 있어서 사람들이 설령 그것을 눈으로 보았다고 해도 UFO의 본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둥근 발광체로만 보이게 되지요.
이런 물체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니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보았다 해도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전세계 곳곳에는 UFO가 목격되고 있고 이제는 더 이상 UFO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지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UFO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해도 정작 그 정체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누구이고 어디서 날아오며 왜 날아오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추측만 하고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고 의문을 밝히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UFO는 바로 에덴에 사는 사람들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사이의 시간의 흐름의 차이를 뛰어넘어 이 땅에 오고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UFO를 타고서 이동하면 에덴에 살던 사람들이 이 땅에 내려와도 에덴에서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고 반대로 우리가 만약에 UFO를 타고 에덴에 가도 우리의 모습은 그대로 유지되지요.
부활체의 몸은 이러한 생령이 입고 있는 몸과는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영과 육의 세계 사이 역시 자유롭게 이동할 수가 있지요. 그래서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사이는 물론이고 천국이 있는 셋째 하늘에도 왕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주님이 재림하시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두 부활체의 몸을 입는다 해도 아직 백보좌 대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즉 7년 혼인 잔치와 천년왕국 동안에는 아무나 천국에 왕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동하는 극히 몇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가 있지요. 그 몇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부활체 역시 영혼육을 다 갖추고 있는데 이 때의 영혼육은 온전히 영에 속한 것입니다. 온전히 영으로만 되어 있는 천사나 천군 등과 마찬가지로 부활체의 몸은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영과 육의 세계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부활체의 몸이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한 후 천년왕국 때 다시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는 것이고 백보좌 심판 후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백보좌 대심판 후에는 천국에서 부활체의 신령한 몸을 그대로 입게 되지만 같은 부활체의 몸이라도 7년 혼인잔치나 천년왕국 때의 모습과 백보좌 대심판이 끝나고 천국에 갔을 때와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요. 천국에서의 모습에 대해서는 앞으로 천국에 대한 설교를 할 때 자세하게 설명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7년 혼인잔치와 천년왕국 때의 우리의 모습에 대해 조금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공중 재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들의 육의 몸은 신령한 부활체의 몸으로 홀연히 변화되면서 마치 자석의 힘에 쇳가루들이 끌어당겨지듯이 공중으로 들어올려지게 됩니다. 무게가 있는 듯 하면서도 없는 것 같은 아주 가벼운 몸이 되어 올라가게 되지요. 이 때부터 공중에서는 신랑되신 주님과 7년 혼인잔치가 시작되는데 이 때는 아직 각 사람에게 상급이나 영광이 주어지지 않은 때입니다. 백보좌 대심판 때에 각 사람에게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상급과 영광이 주어지면서 비로소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모습이 결정되지요.
그러므로 7년 혼인잔치나 천년왕국 동안에는 아직 천국에서 받게 될 면류관이나 세마포 그리고 갖가지 보석 장식들이 없는 상태입니다. 모두가 흰색의 기본 세마포를 입고 있지요. 그렇지만 아직 영광과 상급이 주어지지 않았다 해서 서로간에 상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온전히 영에 속한 상태이기 때문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영끼리는 서로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얼마나 성결되어 주님을 닮았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얼마나 합당한 사람이었느냐에 따라 서열이 구분되어지지요. 그 서열에 따라 경외하게 되며 경배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과 함께하는 혼인잔치나 천년왕국 동안에도 아무나 주님 곁에 가까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외모적으로도 어느 정도 구분이 되어질 수가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상급과 영광이 주어지기 전이지만 여자들의 머리는 이 때 이미 앞으로 어떤 처소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지요. 그러나 어떤 장식을 달고 있다거나 머리 모양이 다른 것은 아니며 단지 기본적인 머리 모양에 그 길이만 다르다는 말입니다.
2. 부활체로서 특별한 분들
그런데 이들과는 다른 좀 특별한 분들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게 이미 천국에서 받게 될 상급과 영광을 입고 있는 분들로서 바로 주님과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사도 바울 선지자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또 한 분이 계십니다. 이분들은 당연히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분들인데 7년 혼인잔치와 천년왕국 동안 천국과 이 땅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가 있지요.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천국과 이 땅을 왕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극히 제한된 몇 사람에 한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 중에 특히 엘리야와 에녹 선지자 또한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경우는 주로 아버지 하나님의 곁에 머뭅니다. 수시로 아버지의 보좌와 이 땅을 오고 가면서 아버지 하나님께 이 땅의 일들을 보고 드리지요. 반면에 주님을 비롯하여 아브라함과 모세, 사도바울 선지자, 그리고 또 다른 한 분은 물론 자유롭게 아버지의 보좌에 갔다 올 수는 있지만 쉽게 그러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이분들이 이 땅에서 하셔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에 좀처럼 시간을 내서 다녀올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이렇게 천년 왕국까지 마쳐지면 마침내 백보좌 대심판이 시작되는데 어떤 분은 혹여 이 땅에서의 천 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지 않는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를 않습니다. 천년왕국 동안 여러분도 이 땅에서 매우 바쁘게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때는 이미 영에 속해 있는 상태이므로 천 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니지요. 이 땅에 사는 육의 사람들에게는 천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질지 모르나 베드로후서 3:8에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말씀하신 대로 영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빨리 지나가는 시간들입니다.
마침내 백보좌 대심판이 시작되면 창세 이래 이 땅에서 경작 받은 모든 사람은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때에도 예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선지자는 심판대에 서지 않게 됩니다. 물론 우리 주님도 제외되지요.
이분들 중에 엘리야나 에녹 선지자는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들림을 받았는데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즉 모든 죄를 벗어 버린 분들로서 이분들에게는 심판이 필요 없습니다.
또한 모세 선지자도 마찬가지이지요. 유다서 1:9에 보면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34:6에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느니라" 말씀한 대로 모세 선지자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고 있지요.
다음으로 비록 죽음은 보긴 했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심판대에 서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뭐 하나 흠 잡을 것이 없는 분으로서 죽음을 보지 않아도 되는 분이었지만 그는 음부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기에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그는 창세 이래 모든 믿음의 조상이 됨으로, 윗음부에서 믿음으로 구원받을 영혼들의 아비가 되어 그들을 품에 안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와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이 땅에서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쳐 천국 가지 아니하고 윗음부로 갔던 것이지요.
눅 16:22-25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그러면 여기서 왜 아브라함 품에 안긴다고 하였을까요? 아직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 지시고 3일 만에 부활해서 사망 권세 깨뜨려서 나오셨을 때, 믿음으로 구원받은 윗음부의 영혼들은 전부 주를 따라서 낙원으로 이동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 아브라함도 새예루살렘에 들어갔는데 주님께서 영광받으신 후부터는 주님 품에 안긴다고 하는 겁니다. 주님이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후부터는 우리가 주님 품에 안긴다고 하는 것이며 아브라함 품에 안긴다고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죽으면 주님 품에 안기게 되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도 죽음을 앞두고 기도할 때 "아브라함이여, 내 영혼을 받으옵소서" 하지 않고 "주여, 내 영혼을 받으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좌우편의 강도에게 "너와 내가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인 것이지요.
이렇게 네 사람은 전혀 흠과 티가 없는 분들로 그들은 심판대 앞에 선다 해도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거리가 없지요. 이처럼 심판받을 아무런 죄도 없다는 것이 증명된 분들이기에 이분들은 심판대에 서지 않게 되며 따라서 지금 이미 영광과 상급도 주어진 상태입니다.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선지자 이 네 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설교하면서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몇 분의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경작받은 사람은 누구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며 그 때 각자가 들어갈 처소와 상급이 결정됩니다. 지금 이미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있는 분들도 이 때 비로소 자신의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되지요.
3. 새예루살렘 내에 있는 차원이 다른 공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보다 먼저 천국에 간 영혼들은 지금 대부분 낙원 가장자리에 있는 대기장소에서 주님의 재림하시는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새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될 영혼들은 낙원에서 대기하는 게 아니라 미리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있게 되지요. 그런데 이분들이 새예루살렘에 가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자신들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지금 천국은 1천층, 2천층, 3천층은 물론이고 새예루살렘 역시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새예루살렘에 가신 분들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새예루살렘 안에 있지만 우리가 말하는 새예루살렘과는 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새예루살렘은 차원에 따라 몇 개의 공간으로 구분이 되어지는데 중앙부에는 차원이 좀 다른 공간이 있어서 이곳에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있으며 지금 새예루살렘에 이미 가 있는 분들은 바로 이곳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있지요.
장차 우리가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영광을 돌리며 예배하는 때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보좌는 또 다릅니다. 우리가 아버지를 모시고 예배할 때에는 바로 그러한 차원의 공간에 있는 보좌로 아버지께서 내려오시게 되는 것이지요. 즉 새예루살렘에서 장차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거하시는 보좌도 있는 것이고, 이 보좌와는 달리 차원이 좀 다른 공간에 거하시는 보좌도 있지요.
하나님의 참자녀들이 새예루살렘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새예루살렘 안에서도 차원이 좀 다른 공간에 거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 주위를 천군과 천사들이 돌고 있으며 선지자들을 비롯하여 새예루살렘에 들어간 분들은 지금 이곳에 거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안에서도 또 다른 차원의 분리된 공간이 존재합니다. 이 곳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들어가실 수 있는 곳이며 장차 우리 주님과 성령님만이 함께 들어가실 수가 있는 공간이지요. 바로 처음 아버지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되셨던 가장 정점의 공간입니다. 이처럼 분명 새예루살렘 안에 있다 해도 그 안에는 다른 차원의 새로운 공간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결론 /
오늘도 말씀을 통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한 것을 알게 되셨습니다. 과연 누가 이러한 비밀들을 알 수 있겠습니까. 또 이제 잠시 후 2부 시간에는 '아름답도다 나의 신부여'라는 제목하에 창립전야 행사로서 뮤지컬 공연이 있는데 그 안에는 새예루살렘의 모습과 생활에 대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또한 이처럼 장차 우리가 가서 살게 될 천국,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새예루살렘에 대해 밝히 알아서 그것을 작품으로까지 만들어 공연할 수 있겠는지요.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 주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놀라운 비밀들까지 알려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왜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러한 깊은 내용들까지 알려 주시는지 그 이유도 분명히 알아야 하지요. 바로 우리에게 믿음이 되고 천국 새예루살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넘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신부단장을 잘하여 장차 우리가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때 주님께서 "어서 오라. 나의 사랑하는 신부여" 하며 여러분을 반겨 맞으실 수 있는 주님의 아름다운 신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을 통해 이런 소망과 확신이 더해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오늘 2부 공연을 통해서도 새예루살렘에 대한 소망과 뜨거움이 한층 더해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토록 소망하는 새예루살렘에 꼭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를 맞으러 곧 다시 오실 신랑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6:2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