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계명 (2)

    거짓 증거 [출 20:16]
    2018.12.16 | 정구영 목사
    •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입니다. 오늘은 넓은 의미의 거짓 증거인 ‘일상생활에서 하는 거짓 증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넓은 의미의 이웃에 대한 거짓 증거는 모든 형태의 부정직한 말을 하는 것, 진실을 말해야 할 순간에 침묵을 지키는 것, 선의의 거짓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은 넓은 의미의 거짓 증거 첫 번째, 진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모든 형태의 부정직한 말에서 오는 거짓말”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되게 어떤 말을 더하거나 빼서 전달하는 것

      태초의 거짓말쟁이는 원수 마귀 사단입니다. 들짐승 중 가장 간교한 뱀을 사주해서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타락하도록 미혹하였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어느 날 간교한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를 먹으라고 하셨는데 이것을 왜곡하여 물은 것이지요. 그러자 여자가 뱀에게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대답합니다.
      하와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에서 ‘각종’이라는 단어를 빼고,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더했습니다. 그리고 ‘정녕 죽으리라’ 대신 ‘죽을까 하노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켰는데 이 말에는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간파한 뱀은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말을 던집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였지요. 결국 하와는 욕심이 잉태되어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으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마침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약 1:15).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자신의 생각과 느낌 속에 말을 더하거나 빼서 엉뚱하게 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상대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 판단하고 헤아리며 비판하는 것

      사무엘하 10장을 보면, 잘못 헤아리고 판단해서 망한 나라가 있습니다. 암몬의 나하스왕이 죽어 그 아들 하눈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조문객을 보냅니다. 그런데 하눈의 신하들이 “다윗이 조객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 신복을 보내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라고 왕에게 간언합니다.
      왕은 지혜롭게 모든 것을 살펴 신하들의 말이 진실인지 규명해야 하는데 하눈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는 조문 사절단에게 정탐꾼이라는 혐의를 씌워 그들의 수염의 절반을 깎고, 엉덩이 부분에서 옷을 잘라 하체가 드러나도록 수치를 주어 돌려보냅니다. 그 후 암몬 왕 하눈은 다윗왕에게 미움이 된 줄 알고 주변 나라로부터 3만 3천 명의 용병을 고용하여 전쟁을 일으키지만 결과는 참패를 당해 자신의 생명과 왕위를 동시에 잃고 왕국마저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과 기준에 맞춰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야고보서 4장 11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말씀한 대로 형제를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은 곧 재판장인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큰 악입니다.


      3. 중상모략하는 것

      ‘중상’이란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킨다는 뜻이고, ‘모략’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 남을 해롭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중상모략이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거짓말인지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기독교회사>를 보면 1888년 5월부터 9월까지 선교 금지령이 내렸는데 이는 당시 선교사들을 중상모략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중 가장 큰 루머는 영아소동(The baby riots) 사건으로 선교사들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증폭되면서 터진 것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이 아이들의 눈알을 빼서 약용이나 사진 현상 재료로 사용한다는 음흉한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특히 의료 선교를 하는 외국인 병원들은 범죄의 소굴로 지목되어 아기들의 심장과 눈을 잘라내어 외국인들과 선교사들의 요리상에 진미로 올라간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복음전파를 막기 위해 원수 마귀 사단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 음해성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훗날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선교사들은 화산 위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4. 아첨하고 아부하는 것

      ‘아첨’이란 교묘한 칭찬으로 비위를 맞추는 것을 말하며, ‘아부’란 진실하지 못하게 거짓으로, 혹은 과도하게 추어올리는 행위를 뜻합니다. 잠언 28장 23절에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아첨하는 사람은 당장은 사랑받는 것 같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중국 제나라에 3명의 왕을 섬긴 안영이라는 유명한 재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청렴하여 고기반찬을 한 가지 이상 올리지 않았고, 자신뿐 아니라 식솔들에게도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 인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나라 왕의 총애를 받았는데 어느 날 영공은 신하들의 간언을 듣고 충직한 신하와 아첨하는 신하를 판단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안영은 “폐하의 말을 듣고 모자란 것은 차게 할 방도를 말하고, 넘치는 것은 적당히 할 방법을 말하는 사람은 바른말을 할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폐하의 말에 장단을 맞춰 긍정을 긍정하고, 부정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저 아첨꾼일 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아첨하고 아부하는 것일까요? 대개 아첨은 듣는 사람의 이기심이나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것이며, 그에게 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동기는 첫째 다른 사람에게서 혜택을 받거나 물질적 이득을 얻기 위해, 둘째 아첨하는 사람에 대해 뭔가 빚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셋째 그에게 영광을 안겨 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넷째 다른 사람을 덫에 걸려 넘어지게 하기 위한 경우가 있습니다.
      잠언 29장 5절에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아첨하는 말을 듣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특히 머리 된 사람들은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혜안이 있어야 합니다.


      5. 변명하는 것

      변명은 남에게 핑계를 댐으로 자신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해결방법을 찾을 것이고, 그러면 지혜가 나오고 힘이 생깁니다. 그런데 변명을 하다 보면 나태해지고 결국 망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모세 선지자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간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의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론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가져오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녹여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합니다. 이에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멸하려 하시나 모세의 기도로 노를 그치고 뜻을 돌이키십니다.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아론에게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론은 변명하기 시작합니다.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백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이제는 거짓말을 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라고 하지요. 신명기 9장 2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진노하셔서 멸하려 하셨으나 모세가 아론을 위하여 대신 중보 기도함으로 다시 대제사장으로 기용해서 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변명하는 사람은 결국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점점 더 나약해지고 악한 꾀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변명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거짓 증거로 보시기 때문에 우리가 피해야 될 항목입니다.


      6. 사소한 거짓말

      예를 들어, 상대가 아주 많이 먹었다면 “다 먹어 버렸다.”고 말하기도 하고, 조금밖에 안 남았을 때는 “하나도 안 남았다.”고 과장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악한 의도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런 것쯤이야’ 할 수 있지만 옛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나중에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거짓말을 지혜롭게 사는 비결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소한 거짓말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죽음까지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1장에 보면, 다윗왕에게 거짓 보고를 함으로 목숨을 잃은 아말렉 소년이 나옵니다.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전하고 중상을 입은 사울왕이 자기 칼을 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던 아말렉 소년이 사울왕의 면류관과 팔의 고리를 가지고 다윗왕에게 가지고 옵니다. 이 소년은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왕을 자신이 죽였다고 말함으로 다윗에게로부터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다는 죄명으로 이 소년을 그 자리에서 참형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사소한 거짓말이라고 해도 ‘이것쯤이야’ 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의도적으로 거짓말하지 않는다 해도 마음 안에 거짓의 속성이 있으면 결국 거짓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거짓이라고 하는 죄성을 버리고 마음에 진실을 이룰 때 진실된 말만 나올 수 있으므로 거짓을 열심히 벗어 버리고 성결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2018-12-17 오후 11:04:23 Posted
      2018-12-22 오전 12:03:3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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