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9)
오늘은 십계명 중 제8계명인 “도적질하지 말지니라”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살펴보겠습니다.
1.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
도적질이란 ‘내 것이 아닌 것을 빼앗거나 몰래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라도 잘 압니다. 그런데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는데도 “도적이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매우 불쾌하고 억울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자신이 도적질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도적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를 범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므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도적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 속에서 별생각 없이 남의 물건을 주인의 허락 없이 갖다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로 가깝고 허물없는 사이니까 혹은 값싸고 사소한 물건이니까 굳이 상대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지요. 부득이한 상황에서 상대의 허락 없이 물건을 사용했다면 사용한 후에 즉시 돌려줘야 하는데 그나마 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물질적인 손해를 입힐 뿐만 아니라 상대를 무시하는 무례한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나 음식이라도, 절친한 사이라도 주인의 허락 없이 가져다 썼다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는 도적질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주변 사람에게 그냥 “달라.” 하거나 “빌려 달라.” 합니다. 빌린 것을 다 써버려서 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돌려준다 해도 쓰는 만큼 닳거나 줄어드는 것일 때는 그만큼 상대에게 손실을 입히게 되지요. 남의 것을 그냥 “달라.” 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고요. 양심이 깨끗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남의 것을 취했을 때 가책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꼭 훔치거나 빼앗은 것이 아니라 해도 자신의 것이 아닌데 부당하게 취했을 때는 도적질이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직위나 권세를 이용해 뇌물을 받은 경우나 장사하는 사람이 손님에게 심히 바가지를 씌워 부당한 이익을 취했을 때도 선한 사람은 반드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지요. 비록 상대의 것을 몰래 훔쳐 온 것이 아니라 해도 자신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것이 아닌 것을 취했기에 엄밀히 말하면 도적질에 해당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는 참으로 다릅니다. 세상은 바가지를 씌워 물건을 팔았다면 손님이 호구였다고 좋아하며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리는 남을 속이는 것, 자기 유익을 위해 남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이 죄악입니다.
2.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영적인 도적질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을 때는 구원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는 성도들이 예수님께 은혜받고 공궤한 것들을 관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재정을 정직하게 관리하지 않고 도적질하는 자였으며, 결국 사단의 역사를 받아 예수님을 팔기에 이르렀지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아 장차 존귀한 영광을 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이 스스로 죄악을 쌓아가므로 결국 회개의 영도 받지 못한 채 자살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다닌다면서도 하나님의 재정에 손을 대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라 해도 성전에 있는 것을 훔칠 때는 뭔가 두려운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도적질하며 더구나 감히 하나님의 재정에 손을 댈 정도라면 과연 그에게 구원받을 믿음이 있는 것일까요?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하고 직분도 감당한다고 하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죄의 담으로 막혀있기에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짓는 것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죄가 끝까지 사람 앞에 드러나지 않아 어떤 징계를 받지 않는다 해도 사실은 그것이 오히려 더 무서운 일입니다. 혹 사람이 알지 못한다 해도 분명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시며 때가 되면 반드시 공의 가운데 값을 치르게 되기 때문이지요. 만일 끝까지 회개하지 못하고 있다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자로서 7년 환난에 떨어지게 된다면 얼마나 애통하며 가슴을 찢어야 하겠습니까?
헌금을 직접적으로 도적질한 것이 아니라 해도 성물을 남용하거나 교회 재정을 함부로 사용한다면 이 역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회비를 임의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선교회나 부서에 찬조로 들어온 것이라도 개인이 임의로 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교회 일로 사무용품이나 문구류를 청구해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없어야 하지요. 교회 재정으로 물품을 구입하거나 사용할 때 아낄 수 있는데도 낭비하고, 청구한 재정의 잔액을 반환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써버리는 것도 하나님의 재정을 임의로 사용한 것입니다.
사사로운 일로 교회 전화를 사용한다거나 교회 비품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물건을 사용할 때 자신이 비용을 내야 한다면 쓰지 않을 것도 교회에 비치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쓰거나 낭비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이 있지요. 그러나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 소유보다 더 아끼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또 부모님들은 어린 자녀들이 교회 헌금 봉투나 주보, 교회 신문 등을 장난으로 접거나 거기에 그림 그려 버리거나 찢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육으로 볼 때는 사소한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하나가 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도적질 가운데서도 특별히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엄히 경계하십니다(말 3:8~9). 십일조는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며 수입의 십 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인정한다는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 되므로 저주가 임하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하지 않아 사단이 송사해도 지켜주시지 못하므로 물질의 어려움을 당하며 시험, 환난, 질병 등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되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으므로 지킴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십일조는 월급만이 아니라 전체 수입에서 십 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업으로 얻은 수입, 혹은 용돈이나 선물로 받은 것도 결국 자신에게 들어온 수입이므로 그 십 분의 일을 계산해서 드려야 하지요.
그런데 부수적인 수입은 다 빼고 급여만으로 계산하거나 급여에서도 여러 가지 지출 금액을 다 제하고 남은 수입에서만 십일조를 하기도 합니다. 또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드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교비나 구제, 찬조 등으로 나눠서 드린다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이런 경우들은 결국 십일조를 도적질한 것이 됩니다. 십일조로 드려진 재정을 집행하는 것은 교회에서 할 일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때는 반드시 십일조 명목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 드릴 헌물을 도적질하는 경우입니다. 헌물은 십일조 외에 드리는 모든 감사 예물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감사할 조건이 너무나 많습니다. 구원받아 천국을 가게 되니 감사하고 귀한 직분을 받아 상급을 쌓아가니 감사하며 범사에 지키시고 축복하시니 감사합니다. 또 어떤 어려움이나 연단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합력하여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실 줄 믿으니, 성도의 삶에는 오직 감사의 조건만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한 말씀대로 매 주일 예배 때면,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나오지 않고 감사 예물을 드리며 절기 때나 특별한 감사의 조건이 있을 때는 따로 구별하여 감사 예물을 드립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남에게 어떤 일로 신세를 지거나 은혜를 입게 되면 마음만으로 고맙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행함으로 보답하려고 합니다. 특히 상대의 생일이나 명절 같은 때는 꼭 기억해서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지요. 사람의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당연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물며 천국의 소망이 넘치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한다면 어찌 하나님 앞에 인색한 마음이 들겠습니까? 매주 지켜주신 은혜를 느끼고 기도에 응답하신 열매들을 얻을 때마다 감사해 하나님께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그런데 어떤 경우는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로 드리는 것을 아까워합니다. 십일조는 구원과 직결된다 하니 두려움으로 드리지만, 그 외의 헌물에는 인색한 사람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마지못해 드리는 경우도 있지요. 하나님께 인색하다는 것은 그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천국 소망으로 채우지 못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과 세상 정욕으로 채웠다는 말입니다(마 6:24). 아직 초신자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계속 그런 마음이라면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기 쉽습니다. 받은바 은혜도 점차 기억에서 멀어지며 감사의 조건도 줄어들게 되지요. 그러니 마땅히 드려야 할 헌물을 도적질할 때 구원과도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며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형편과 중심을 아시기에 액수의 크고 작음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두 렙돈 밖에 드리지 못한 과부가 예수님께 칭찬받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감사와 믿음의 향을 받기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 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자신이 드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축복과 감사의 조건들로 돌려받게 됩니다. 곧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날마다 감사의 조건으로 점점 더 넘치게 하시며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축복으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인 도적질 중에 또 한 가지는 하나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하는 경우이지요.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서 마치 점쟁이처럼 남의 앞일에 대해 말하는 경우도 있고, 사업에 계속 실패하는 사람을 보고 “당신은 주의 종이 되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 사업에 실패하게 역사하셨다.”고 말하는 경우도 들어보았습니다. 혹은 자기 생각 속에서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꿈을 주셨다’고 한다든지 자기 생각 속에서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환상을 보여 주셨다’고 하는 경우도 하나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것에 해당합니다(렘 23:30~32). 이는 제3계명에서 설명한 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기도 하지요.
물론 성령의 감동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선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정녕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도구로 쓰일만한 사람인지 반드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음성을 아무에게나 들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악이 없고 깨끗한 사람을 택하여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 선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밖에도 무엇을 취했을 때 양심에 찔린다든가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반드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해서 내 것이 아닌 것을 취하고 있기에 성령이 탄식하시고 마음에 찔림이 되는 것이니 바로 깨우쳐 고쳐야 하지요.
예를 들어, 대가 받고 일하면서도 일을 잘 하지 않거나 직분이나 사명을 받았으면서도 잘 감당하지 않을 때 양심이 선한 사람이라면 찔림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매여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드려지기로 약속한 시간을 임의로 사용해 하나님 나라에 시간적인 손해를 입힐 때 시간을 도적질하는 것이지요. 세상 직장이나 사람 사이에도 다른 사람의 시간에 손실 보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사로운 마음과 탐심을 버리고 선한 양심 가운데 진실하고 충성된 마음으로 항상 상대의 유익을 구하시므로 모두가 진리 안에서 깨끗하고 정결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10-25 오후 10:21:51 Posted
2024-11-01 오후 4:51:02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