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1)
오늘부터는 “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추어야 할 행실은 어떠한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께서 그 형상대로 지어주신 빛의 자녀였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빛의 자녀로서의 형상을 잃어버렸지요.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로 비진리와 죄, 악의 것들을 가르침 받아 어둠의 자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큰 희생과 값을 치르고 원수 마귀 사단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새롭게 태어난 피조물로, 전에 배우고 취하였던 세상의 것들은 버리고 주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신 대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오늘부터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행해 온 비진리와 육의 것들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추어야 할 행실과 모습은 어떠한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에 대해 6가지 분야 생각, 마음, 눈, 귀, 입, 자세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빌립보서 2장 15절에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길 원한다, 하신 뜻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생각은 항상 진리 자체로, 영적이며 온전하고 거룩하셨습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영혼들에게 생명과 소망을 주기 위한 생각 등 선의 생각들로만 가득하셨지요.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며 이 땅에서 그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생각이셨습니다. 그러하셨기에 아버지 하나님의 영혼들을 향한 마음을 그대로 느끼시고 사랑과 헌신으로 행하셨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시고 많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심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인도하셨지요.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오신 예수님은 늘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1절에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18-1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기도하심같이, 주님의 부활 승천 후 제자들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더 가르치고 인도해 줄까를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같은 것을 보아도 육의 사람의 생각과 다른 영적인 생각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어린아이들을 제자들이 물리칠 때도 그들을 품에 안으시며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말씀하셨고, 많은 물질을 헌금하는 부자보다 훨씬 적은 돈을 드린 과부를 보시며 칭찬하셨지요. 이는 어떤 환경이나 무엇을 보든 진리, 하나님 중심의 생각을 하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함께했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그리하지 마시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마태복음 16장 23절에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며 자신의 안위보다는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생각하는 것이 영적인 생각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 염려와 근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채워 줄 것을 가르치며 믿음과 생명, 소망을 주는 영적인 생각을 알려 주셨지요. 예수님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온전한 생각들로만 가득하시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품고 사십니까?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상황들을 생각하며 상처받고 슬퍼하고 힘들어하지는 않으시는지요? 아니면 진리의 말씀을 떠올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가 될까? 생각하며 천국의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사시나요?
예수님은 주무실 시간도 없이 바삐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환자나 문제 있는 이들을 고쳐주시며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 중에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행하신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염려와 근심도, 판단이나 악한 생각도 쉽게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은 맑고 깨끗하고, 청아하고 순결하며, 흠도 점도 티도 없는 참으로 성결한 마음이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신 말씀처럼 겸손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마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이나 행동, 마음 씀씀이를 보면 그 마음이 어떠한지 알 수 있지요. 마태복음 15장 18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하시며, 마태복음 12장 34절에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말씀합니다.
상대의 말을 들어보면 마음을 알 수 있지요. 물론 겉과 속이 다른 사람도 있고, 거짓말을 하여 미혹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진실하여 빛 가운데 살면 넉넉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가룟 유다의 대화를 통해 그 마음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선하게 말하려 하나 악한 모습을 감출 수 없었던 가룟 유다와 오직 선과 진실된 말로 감동을 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이르셨을 때의 일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하는데 죽었다가 예수님의 기도로 살아난 나사로도 함께 있었지요. 그 동생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 가룟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느냐?”며 여인을 책망합니다. 그는 돈을 사랑함이 도를 넘어서 탐욕으로 가득 차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였지요.
이때 예수님께서 “유다, 네가 돈궤를 맡고 있어서 훔쳐 가는 줄 내가 모르는 줄 아느냐?” 하고 찌르지 않으셨습니다. “저를 가만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 여인의 행함이 합당한 이유를 진리의 말씀으로 차분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마음 중심을 훤히 다 읽고 계셨지만, 굳이 악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온유한 마음과 악한 자라도 품어 변화시키고자 하는 선과 사랑의 마음이셨지요.
여러분은 상대의 실수나 잘못을 보았을 때 어떠하셨습니까? 사람마다 선악의 정도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대의 가벼운 과실만 보아도 싫은 마음이 들고, 악한 말로 상처를 입히거나 주변에 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상대의 커다란 허물을 보아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신 중보 기도하고, 은혜를 끼쳐 변화로 이끄는 사람도 있지요.
예수님의 선과 사랑의 마음을 느껴 볼 수 있는 또 다른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여인의 처벌을 놓고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여인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고, 예수님의 답변에서 허물을 잡으려는 마음으로 가득했지요. 이때 예수님께서 불편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들의 악함을 곧바로 지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곳에 모인 사람의 죄를 본 듯이 조용히 땅에 써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지요. 모세의 율법과 예수님의 가르침인 선과 사랑에 조금의 송사거리도 없이 완벽하게 성립시킨 지혜로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죄가 없으신 예수님도 그 여인을 정죄치 않는다 말씀하시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흠도 티도 점도 전혀 없이 완전무결하시므로 남을 판단, 정죄할 자격이 있었지만 죄인의 허물을 들춰내지 않고 돌이켜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지요. 이것이 바로 온전한 선과 사랑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긍휼과 용서, 진리와 생명을 주는 사랑으로만 채워져 있었기에 죽을 수밖에 없는 여인을 살려 주실 뿐 아니라, 둘러선 사람들의 악함도 깨우칠 수 있도록 하셨지요.
이 외에도 성경에는 예수님의 온전하신 마음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말씀하심과 같이 마음을 낮은 데 두시며 가난하고 병든 자, 불쌍한 이들을 그 마음에 품으신 깊은 사랑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시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삭개오의 집을 찾아주셨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를 깨끗게 하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6절에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하신 말씀을 몸소 실행하신 것이지요.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를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며 사랑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도 주님을 닮은 선한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미워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사랑으로 대할 수 있다면 주님의 마음을 닮았다 할 수 있지요.
이에 더하여 가난한 자를 돌아보며 귀한 것을 나누는 구제와 봉사를 힘써 행하여, 아름다우신 주님의 마음을 닮은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고 다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선과 사랑의 마음 그 행하심을 보았지만,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은 가룟 유다는 자신의 욕심과 유익을 구하다 사망으로 갔지요. 우리도 주님의 선과 믿음의 생각,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을 받는다 해도 닮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아름답고 순전하신 주님을 기준 삼아 매 순간 자신을 돌아보고 비진리의 마음과 생각을 선과 진리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신랑 되신 주님의 품에 당당히 안길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25-01-31 오후 2:44:45 Posted
2025-02-18 오후 3:54:08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