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6)
이 시간은 진리로 만든 선의 틀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마음을 지켜 영의 마음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마음은 명백한 진리의 마음과 본성을 포함한 양심, 명백한 비진리의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마음 중 명백한 비진리의 마음은 물론 양심과 본성 속의 악까지도 찾아 벗어내어야 주님 닮은, 아름다운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은 옳다, 바르다고 생각하며 선택과 판단의 잣대로 삼습니다. 하지만 양심은 사람마다 다르며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맞지 않은 것이 참으로 많지요.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양심이 진리와 다른 것을 알고 자신의 의와 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 발견되는 악의 모양은 벗어 버리고, 선과 진리로 채워 아름다우신 주님의 마음을 온전히 닮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진리로 만든 선의 틀
우리가 양심과 본성 속에 있는 비진리 벗어냄으로써 변화되는 과정에 또 다른 틀을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로 만든 ‘선의 틀’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꾼이, 목자가 양 떼를 용서하고 감싸 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영혼을 갈무리하려면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선의 틀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양 떼를 갈무리할 때 어찌하든 영혼을 용서하고 감싸 주려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용서만 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도 똑같은 태도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엄히 지적하고 권면하는 것이 진정한 선이지요.
이와 반대로 어떤 일꾼은 양 떼를 지적하고 권면하는 것이 사랑이고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초신자 때부터 그 정도의 말씀은 지켰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상대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하지 않은 채, 허물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즉시 지적하고 권면합니다. 그 영혼의 마음이 어떤지, 혹시 용서하고 덮어 줘야 하는 상황은 아닌지 등 상대의 형편을 살펴 주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본성과 양심에 더하여 진리로 다시 ‘선의 틀’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뜻과는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이것이 선한데, 이것이 의로운데’ 하면서 자기주장을 굽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물론 진리는 절대불변입니다. 다만 물이 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뀔 수 있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진리를 적용하는 모양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사랑과 공의가 어우러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닮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밝히 받아 양심의 악도 발견하고 신속히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2. 마음을 지키려면
본성이란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근본된 성질’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본성을 바탕으로 하여 양심을 만들지요. 그러니 양심 속의 악을 발견하여 버린 후에도 자신의 마음 가장 근본이 되는 본성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내재된 악을 버리지 못하면 온전한 성결을 이룰 수 없습니다.
본성 속의 악은 양심의 악보다 더 깊고 단단합니다. 본성은 땅의 성질 곧 토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잡초와 돌멩이를 제거하고 질서정연하게 작물을 심어 놓은 밭은 그냥 봐서는 토질이 좋은지 나쁜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명백한 비진리를 걷어내고 양심의 악도 뽑아내면 악의 모양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웬만해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요. 하지만 도무지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나 괴로움, 연단이 오면 그 근본이 드러납니다. 믿음이 좋고 선한 사람처럼 보여도 때때로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시는데 이는 본성 속에 숨겨진 비진리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연단받기 전의 욥은 스스로 어떤 악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심한 고난에 처하게 되니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내며, 친구들의 권면도 무시하고 친구들을 눌러버리지요. 의로운 욥의 본성 깊은 곳에 이렇게 악한 것이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 인정받을 정도로 아름다운 마음과 중심을 가졌던 다윗도 본성의 악이 드러났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였고 그녀가 잉태하자 궤계를 써서 우리아를 이방인의 손에 죽게 만들었습니다. 본성 속에 남아 있는 간음이 발동하였고, 이로 인해 궁지에 몰리게 되자 본성 속의 비진리가 드러나 살인이라는 악을 행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욥과 다윗은 연단을 통해 이전보다 더 선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본성 속에 있는 비진리까지 빼어버린 후에는 영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음의 악이 조금도 없는 온전한 영을 이루기 원한다면 자신의 본성과 양심까지 빛의 말씀에 비추어 오직 진리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양심과 본성 속의 악까지 발견하여 버리면 우리의 마음이 진리의 마음, 즉 영이 됩니다. 이때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이 말씀이 내 안에 이루어지지요. 여기서 생명은 자신의 구원에 그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생명을 얻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에 진리만 있으니 생각과 행함이 진리, 선과 사랑으로 가득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므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며 나아가 생명을 낳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이 진리 자체가 되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기에 바라는 소원도 척척 응답받습니다.
반대로 그 마음에 비진리와 악이 있을 때는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하셨으니 이제부터 기뻐하리라 다짐해도 내 유익에 맞지 않고 불편한 상황이 되면 이내 혈기와 짜증을 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으니 순종하고자 마음먹어도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부터 하자’ 하며 기도하지 않지요. 또 자신의 생각도 다스리지 못합니다. ‘악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슬프고 어두운 생각을 품지 말아야지.’ 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도 그 마음에 탐심과 비진리로 인해 마음을 지키지 못하므로 생명이 아닌 화를 입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자신의 소유를 팔아 헌금하며 구제하는 모습을 본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자신들도 소유를 팔아 드려야겠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욕심이 발동하여 작정하였던 것을 변개함은 물론 거짓으로 속이기까지 합니다. 이들은 성령이 충만할 때는 하나님께 다 드리려고 마음을 정하였는데, 막상 돈을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에 욕심, 변개함, 거짓 등 비진리의 마음이 요동했던 것입니다.
바로 사단은 이 비진리의 마음을, 혼의 작용을 통해 움직입니다. 사단이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니 하나님의 사람을 속이며 자신의 마음을 주관하신 성령도 속이려 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단의 주관을 받는 사람들을 혼의 사람이라 합니다. 이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을 “혼이 떠났다” 표현합니다.
물론, 이들 부부같이 마음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해서 곧바로 생명을 거두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찌하든 우리가 변화되기를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부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속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본보기로 알려주셨습니다. 설령 이렇게 곧바로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해도, 결국 마음을 진리로 지키지 않고 계속하여 죄와 악으로 쌓아간다면 결국 생명을 잃는 결과까지 이르는 것임을 우리는 명심하여야겠습니다.
3. 영의 마음을 이루려면
마음이라는 그릇에 진리를 온전히 담으면 이것이 바로 영의 마음이요, 생명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마음속 비진리를 다 뽑아내어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셨고,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 밭을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로 나누어 설명하십니다.
비진리로 단단히 굳어 버린 길가 밭을 갈아엎어 부드럽게 하고,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게 하는 돌을 빼내고, 세상의 염려와 유혹과 욕심을 이기지 못하여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 가시떨기를 다 뽑아내어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개간하는 방법은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는 것은 버리고, “하지 말라”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마음을 옥토로 개간했으면 이제 아름다운 선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옥토 자체는 악을 버린 깨끗한 바탕일 뿐, 아직 씨를 뿌려 열매를 낸 것은 아니지요. 여기에 하나님 말씀에 “지키라”는 것은 지키고, “행하라”는 것은 그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씨를 심는 작업입니다.
셋째로, 행함으로 온전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속의 비진리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지키라, 행하라는 것을 그대로 행하되, 그 행함이 온전해질 때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이렇게 순종하기 위해서는 나의 노력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이 임해야 합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 위로부터 능력을 끌어내릴 수 있으며 내 안에 성령께서 충만히 나를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처럼, 여러분이 성령의 소욕에 따라 명백한 비진리의 마음을 빼내고, 본성과 양심도 모두 진리로 채우면, 마음이 영 자체가 됩니다. 즉 마음을 진리로만 지킬 때 생명의 근원인 영이 살아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마음에서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로 채우면, 이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닮아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더 깊은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작업을 이루어야 합니다. 바로 그 마음의 크기를 넓혀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신 것같이, 깨끗해진 마음 그릇 안에 하나님의 속성인 선과 사랑을 채워, 넓고 큰 그릇을 이루면 더욱 하나님 닮은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닮은 자녀들을 원하십니다. 천지 만물의 주재이시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닮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이런 자녀가 될 때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넓고 크게 임하겠습니까. 이 복된 길을 더욱 힘차게, 뜨겁게 달려나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03-07 오후 2:24:25 Posted
2025-03-14 오후 3:58:24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