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7)
이 시간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진리만을 채워 큰마음을 이룬 믿음의 선진들을 살펴본 다음, 몸의 행실 ‘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주보다 더 넓습니다. 천지 만물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천지 만물이 하나님 마음 안에 다 담겨 있지요. 그러니 그 사랑과 능력도 무한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죽어있던 영을 살리고 마음 안에 영의 지식을 채워가는 만큼 커지는 것이므로 그 크기가 유한합니다. 또 사람마다 마음의 크기가 다른데, 이는 바로 혼과 비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비진리’는 사람을 작고 옹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마음 곧 선한 마음, 온전한 영의 마음은 큰마음이므로 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품어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선과 영은 하나님의 속성이기에 우리도 그 선과 사랑, 영을 이룬 만큼 마음이 커집니다. 또 그만큼 하나님의 뜻과 마음도 이해하고 믿어드릴 수 있지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찾으시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큰마음을 이루시며, 이를 위해 여러분의 눈을 온전히 진리로 지키시기 바랍니다.
1. 믿음의 선진들의 큰마음
아브라함은, 자신과 조카 롯의 소유가 너무 많아 같이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조카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게 하는 큰마음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씨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 어떤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바로 순종하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처럼 양보, 선과 믿음으로 큰마음을 이루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 받았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애굽에 팔려 보디발의 집에서 종이 되었지만, 신세를 한탄하거나 마음에 미움을 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아 주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며 섬김의 마음을 이루었습니다. 누명으로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며 성실히 행하였고, 그 마음을 넓혀 감으로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 이후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다시 만났을 때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했지요. 이처럼 요셉은 연단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큰마음으로 만들었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사람으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다음으로,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며 생명의 위협을 받았지만,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도 죽이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오히려 선한 말과 행실로 사울을 감동시켰고, 사울이 죽었을 때조차 슬퍼하며 그의 손자를 돌봐주는 크고 넓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시고 연단을 통해 더 깨끗하고 큰 그릇으로 만들어 귀히 사용하신 것입니다.
반면,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며 악을 행했고, 자신이 인정받기 위한 마음으로 가득한 작은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킬 기회를 주셨음에도, 돌이키지 않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 엘리야, 다니엘과 세 친구, 사도 바울, 세례 요한 등 믿음의 선진들은 정직한 마음, 타협하지 않는 마음, 열심과 충성, 영적인 사랑 등 그 마음을 믿음과 선으로 채웠기에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 발람, 아사왕 등은 죄악으로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변질되었기에 결국 멸망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치료받고 응답받은 은혜, 변화되리라 결단했던 충만함과 열심이 식어진 것도 변개함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유익에 맞고 칭찬받으면 충성하고 열심 내다가, 칭찬받지 못하면 서운해하며 열심이 식어집니다. 이런 서운함, 변개함이 있을 때 그 마음은 심히 작아지며, 그런 악을 버리지 않고 있다가 어느 순간 배신으로도 나올 수 있지요.
그러므로 어떤 악의 모양이라도 작다 여기지 말고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다스려 나가야 하겠습니다.
2. 우리가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눈
우리의 눈은 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고, 마음이 어떤지에 따라 같은 것을 보아도 그 느낌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눈은 ‘마음의 창’이라 표현하지요.
눈은 마음의 변화를 잘 나타내기 때문에 눈을 찡그리거나, 크게 뜨거나, 흘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감정변화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눈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세상을 마음에 담기도 하고, 마음에서 원하는 것을 눈을 통해 찾아봅니다.
사람들은 TV 채널을 선택하듯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을 보며, 그것이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미칩니다. 경제에 관심이 있으면 경제 프로그램을, 정치를 좋아하면 뉴스를 선택하며, 드라마를 좋아하면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 여러 감정을 느끼며 시청합니다. 만일 학생이 음란물을 본다면, 그것이 마음과 생각에 남아 학업에 지장을 줍니다. 분별력이 있는 성인이 음란물을 즐겨 본다면, 이는 그 마음에 간음과 음란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눈은 원하는 것을 선택하여 보고, 그것을 마음과 생각에 담게 됩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행함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돈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행함이 달라지지요. 돈에 욕심을 두지 않고 자족하며 감사하는 사람은 구제할 곳을 찾지만, 욕심이 많은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됩니다. 이에 대해 잠언 22:9에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했고, 잠언 28:22에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마음에 담기는 것이 달라지며 결국 삶의 방향과 그 결과까지 달라집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TV 등을 본 그대로 따라 하며 배우기 때문에, 보는 환경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앉고 서는 것과 씻는 것, 먹는 것 등 행동 하나하나를 어떻게 보았느냐에 따라 무의식중에 입력되어 본받게 되지요.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함으로 그가 중국에서 뛰어난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어릴 적 무엇을 보고 배우느냐에 따라 사람의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이 보고 배우는 것은 단순한 행동 습관뿐만 아니라 인격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시고 어머니를 구타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나는 커서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라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어릴 적부터 보아온 아버지의 나쁜 모습을 닮아 술꾼이 되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성장 과정에서 본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고 익혀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동이나 학생을 가르칠 때, 부모나 교사가 먼저 주의 교양으로 본이 되어야 합니다.
3. 예수님의 성장 과정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기에 육의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로 결합된 몸이 아니셨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선 자체이시며 사랑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셨지요.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보고 듣는 환경 또한 중요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악이 없는 육의 부모 밑에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를 보면, 그 중심이 얼마나 깨끗하고 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은 결혼을 약속한 마리아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신과 동침한 적이 없었으니, 마리아가 다른 사람과 간음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요셉은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율법에 따르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또한 믿음과 순종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전했을 때, 그녀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즉시 대답했습니다. 처녀인 자신이 임신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대로 아멘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선한 육의 부모 밑에서 예수님이 성장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환경에서 좋은 것만을 보셨고, 오직 진리만을 마음에 담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는지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아,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며 진리로 분별하여 느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롭게 태어난 성도들은 이제부터 그 눈을 지켜 진리, 선에 속한 것만 보고 들어 마음에 담고, 이미 담겨 있는 비진리는 불같은 기도로 빼내 버리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부모를 만나 어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한 것, 진리의 것을 보는 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하늘과 자연을 보며 하나님을 느끼려 해 보십시오. 같은 하늘과 항상 그 자리에 있던 나무이지만 아버지의 사랑과 섭리가 느껴집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악한 것, 비진리의 것, 세상 것을 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변화되고자 노력하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사랑스럽게 보시며 은혜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안된다” 하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나를 도우시는 성령님, 나를 위해 중보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여러분을 보시고 힘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오늘도 새 예루살렘을 향해 더 가까이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03-12 오후 7:12:35 Posted
2025-03-21 오전 10:35:34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