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8)
이 시간은, 우리가 주님 닮은 눈을 갖기 위해 무엇을 주의해야 하며, 어떤 것을 보아야 하는지 알아 보기 위해 비진리의 눈과 진리의 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눈과 마음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눈을 다스려 선과 진리에 집중한다면 신속히 아름다운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눈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세상을 마음에 담기도 하고, 마음에서 원하는 것을 눈을 통해 찾아보기도 합니다. 그러니 내 눈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점검하면 내가 지금 영을 사모하는지, 육을 좇는지, 천국을 소망하는지, 세상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지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마음에 담기는 것이 달라지며 결국 삶의 방향과 그 결과까지도 달라집니다.
1. 비진리의 눈 - 악한 눈
눈으로 비진리를 보면 그것이 마음에 담기고, 본 것으로 인해 마음과 생각에 있는 죄성들이 요동합니다.
예를 들어, 폭력적인 영화나 게임을 많이 보면 성격과 마음도 폭력적으로 물들고, 선정적인 것을 보면 그것이 생각에 남아 간음의 생각으로 빠져들게 되지요. 싸우고 다투는 것을 보면 짜증과 혈기가 마음에 담기기 쉽습니다.
또 눈으로 본 것이 마음에 있는 죄성을 요동한다 했는데, 이는 안목의 정욕을 말합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어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는 속성’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갖고 싶다’ 하는 욕심이 작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TV 드라마나 SNS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보며 자신과 비교합니다. 그러니 삶에 불평이 가득하며, 형편이 안 되는데도 더 좋은 것을 갖고자 하다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요즘 각종 폭력이나 살인, 성범죄 등 무서운 사건이 자주 나타나는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상, 게임과 같은 미디어의 영향을 꼽습니다. 안 좋은 영상을 눈으로 보기만 했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심각한 죄를 짓게 되는 것일까요?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것을 볼 때 ‘좋다’ ‘멋있다’라는 느낌과 함께 마음에 비진리로 담게 되고, 계속해서 보면 중독됩니다. 인터넷이나 TV에 중독된 사람의 뇌는 마약이나 술에 중독된 사람의 뇌 변화와 비슷하여 자제력이 떨어지고 인지능력이 저하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뇌의 변화까지 영향을 미쳐 강력범죄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악한 것은, 보면 볼수록 점점 마음을 악과 비진리로 물들게 합니다. 어지간히 나쁜 것을 보아도 그냥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느껴지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불륜을 아름다운 사랑인 것처럼 포장한 내용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외로움, 육의 감정을 합리화시킵니다. 그리고는 ‘요즘에는 결혼해도 애인을 두던데’ 하며 배우자 외에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사람을 찾기도 하지요.
이렇게 우리 눈이 세상을 바라봄으로 자신도 모르게 죄악에 물들어 가거나 비진리에 대한 분별력을 잃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비진리를 보는 악한 눈은 지금 보는 것보다 더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을 원합니다. 그러하기에 세상 끝날이 가까워질수록 세상은 점점 음란하고 퇴폐적인 것들로 사람의 눈과 마음을 빼앗고 있지요. 이것을 주관하는 것은 원수 마귀 사단입니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TV, 인터넷, 게임 등 미디어나 문화, 유행, 환경을 통해 비진리, 죄악에 쉽게 물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아, 보지 않아야 할 것은 절대 보지 않아야겠습니다.
2. 진리의 눈 - 선한 눈
우리의 눈이 선한 것, 진리의 것을 보면 마음이 빠르게 진리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눈, 천지 만물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찾는 눈, 나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찾아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눈, 이런 진리의 선한 눈을 가질 때 더 신속히 주님 닮은 아름다운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마음이 온전히 진리로 채워지면 혹여 좋지 않은 것을 보게 되더라도 그것을 마음에 담지 않으며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은 외면합니다. 악한 것이나 상대의 단점 등 좋지 않은 것은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립니다. 그 마음이 선한 것을 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마 7:3). 상대의 허물을 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과 사랑으로 상대의 부족함을 덮어주고 도와주며, 변화될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이렇게 선한 것만 바라보는 진리의 눈이 되기 위해서는, 안목의 정욕을 차단해야 합니다. 비진리의 것, 좋지 않은 것은 차단하고 선한 것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우리 마음은 그릇과 같아서 무엇을 담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진리를 담으면 영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나 사람들 앞에 사랑받고 인정받는 복된 사람이 되지만, 비진리를 담으면 사단이 주관하는 어둠의 사람이 되지요.
우리 마음에 무언가를 담는 데 있어서 눈이 많은 역할을 한다 했습니다. 성장하는 시기에만 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성인도 현재 무엇을 보고 있는지가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혹 비진리의 것을 보고 담아놓은 것이 있다면 신속히 비워버리고 다시 선과 진리로만 채울 때 주님 닮은 선한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계명대로 지키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성경 읽기를 즐겨하고 하나님 계명대로 살고자 하니 천국에 대한 소망이 더해짐으로 무엇을 바라보든지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또한 마가복음 9:23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 하신 말씀을 믿고 삶에 적용해 나갑니다.
3. 믿음의 눈으로 바라봄으로 축복받은 선진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인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하여 약 20년의 연단의 시간을 보낸 후,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외삼촌에게 그동안 일한 대가로 양 떼 중에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검은 것과 염소 중에서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 나면 자신의 소유로 달라고 제안합니다. 보통 양은 희고 염소는 검은 것이 대부분이기에, 외삼촌은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며 야곱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지요.
이에 야곱은 아롱진 양 떼를 얻고자 나무의 껍질을 벗겨 얼룩얼룩하게 만들어 실한 양이 왔을 때는 그 나무를 보고 물을 먹게 했습니다(창 30:37-39). 결국 야곱은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야곱에게 바라봄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닌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마음과 눈이 있었기에 임한 지혜였지요.
하나님께서도 믿음의 선진들에게 언약을 주실 때 산천초목을 보며 믿음을 갖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후손에 대해 축복의 말씀을 주실 때도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하시며 눈으로 바라보아 소망과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4. 관점의 차이
예수님께서는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시고, 걷지 못하던 자를 걷게 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 엄청난 권능을 베푸셨습니다. 이때 선한 눈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사와 표적, 권능이라 고백하였지요.
반면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은 같은 것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알세불 지폈다’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며 시기 질투, 미움으로 눈이 멀어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결국 예수님을 죽이는 큰 악을 행했습니다.
주님의 부활 승천 후, 제자들이나 사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낼 때도, 이를 보고 믿는 자와 믿지 않고 핍박하며 죽이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각색 질병이 치료되고, 성경 상의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와 주의 종을 보거나 들으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선한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시 62:11)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이런 권능을 행하는 교회를 궁금해하며 더 알고자 하지요. 선포되는 말씀을 들으며, 오늘날에도 성경 상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가 있으니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그런 선한 눈으로 바라보니 치료받고 응답받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지요.
그러나 부정적인 눈으로 어떻게 하면 흠을 잡을까 하거나,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더 나아가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를 시기 질투하여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한다면 이는 마음에 있는 악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이처럼, 같은 것을 보고도 어떤 눈과 마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행동이 달라집니다. 즉, 진리의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은 진리의 관점에서 보고, 비진리가 많은 사람은 비진리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이러한 ‘관점’이 ‘생각과 행동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주변 환경과 생각, 행동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살아도 마음에 어두움이 많으면 불행하다고 느끼지만, 아무리 환경이 힘들어도 믿음과 소망이 있으면 평안하고 행복하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과 주변 사람들, 주어진 환경을 긍정적인 눈, 믿음의 눈, 선한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삶에 어두움과 시험 환난이 떠나고 빛과 평안, 사랑이 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19:8에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하시며, 잠언 4:21-22에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말씀한 대로, 진리의 말씀과 선한 것만 보고 마음속에 잘 지킴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25-03-19 오후 10:11:21 Posted
2025-03-28 오후 11:46:14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