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10)
오늘은 우리가 다스려 변화시켜야 할 몸의 행실 중 입, 부정적이고 무익한 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중 ‘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니며, 듣는다고 해서 다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기에 참된 것을 듣고 진리로 분별하여 들어야 한다 했습니다. 자칫 자신의 귀, 듣는 것을 다스리지 못하여 판단 정죄하는 말, 비진리의 말에 귀 기울여 믿음을 잃고 함께 죄 가운데 빠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들을 것, 즉 선과 진리는 경청하여 듣고, 진리가 아닌 버릴 것은 흘려버릴 수 있는 귀가 되어야 합니다. 귀를 다스려 진리와 선에 속할 때 더 온전히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신속히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지키고 다스려야 할 입, 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말의 중요성
한국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목을 베는 칼이다.’라는 말도 있지요. 이는 말의 중요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말은 상대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에는 입버릇처럼 자신은 운이 좋다고 말하거나 부모나 가족들이 “너는 잘될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반대로 부모의 언어폭력이 자녀의 뇌에 평생 상처로 남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부모의 언어적 학대를 경험한 성인들의 뇌를 분석한 결과, 언어 표현 및 이해,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영역의 신경회로가 일반적인 뇌신경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즉, 언어적 지능과 이해력 저하, 우울, 불안, 신체화 장애(의학적으로는 이상이 없으나 본인은 통증이나 이상을 호소하는 증상), 해리 증상(과거와 현재의 나를 통합하지 못하는 현상) 등을 겪기도 합니다. 이처럼 평소에 하는 말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성경에서도 말의 위력이 무엇보다 크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 3장 2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했고, 3장 6절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또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는 말씀처럼 입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도 있고 사업을 망하게도 할 수 있으며, 성공하게도 할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말 한마디 잘못한 것이 불씨가 되어 결국은 이혼에 이르게 되며 그로 인해 자녀와 양가에 큰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 한마디가 한 사회를 살릴 수도 있고 반대로 그 사회 전체에 큰 물의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마치 불을 잘 사용하면 크게 이롭지만 잘못 사용하면 화재를 일으켜 막대한 피해를 내는 것과도 같이 말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2. 성령 훼방, 거역하는 말
특별히 신앙인으로 더더욱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을 훼방하고 거역하는 말이지요. 이는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내세에도 결단코 죄 사함이 없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우리의 입이 나의 생명을 보전하게도, 잃게도 하며 가족이나 단체, 후손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조심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어려움이 아닌 유익을 주고 살리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말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를 힘들게 만드는 부정적이고 무익한 말과 모두를 살리는 긍정적이고 유익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에 실수가 없는 온전한 자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무익한 말에는 거짓말, 동문서답, 농담, 유행어, 비속어, 욕설 등이 있습니다.
3. 거짓말의 유형
첫째, 행하지 않은 것을 했다거나 행한 것을 하지 않았다는 것
대표적으로 거짓 증언이 있습니다. 이 거짓 증언으로 무죄한 사람이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고 심지어 생사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꼭 거짓 증언이 아니라 해도 나의 거짓말로 상대에게 피해가 되었다면 이는 너무도 큰 죄입니다.
상대가 싫거나 기분이 나빠서, 하지 않은 일에 대해 거짓말을 퍼뜨려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 있지요. 당장 자신에게 해가 오지 않는 것 같아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며 심판대 앞에서는 그 거짓이 드러나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 거짓으로 인해 자신에게 많은 어려움과 문제가 오는데도 깨닫지 못하여 계속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많지요.
우리는 작게나 크게,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는 어떤 거짓말도 없어야 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명백한 거짓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의 사소한 거짓말도 다 버려야 하겠습니다.
둘째, 말을 전할 때 더하거나 빼는 것
자신의 생각과 느낌으로 말을 더하거나 빼기도 하고 과장하거나 축소하여 엉뚱하게 말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다 먹어버렸다.” 하거나 “하나도 안 남았네.” 말하기도 합니다. 또는 모임 중 겨우 두세 사람과 대화하고는 “모두가 다 그렇게 말하더라.” 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의 유익이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기 위해 과장하는 것이지요.
말을 전할 때는 더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말투, 목소리의 크기, 표정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 오해되고 기분 나빠질 수 있는 말을 전하므로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좋은 의도로 전하여도 듣는 사람 편에서 마음이 상하여 이간질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말이 전할 말인가? 아닌가? 부터 생각해 보아야 하지요.
일부러 거짓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허위 보고함으로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모임의 인원을 물었을 때 미리 파악하지 않았으면서 “몇 명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이런 경우 진실한 대답이라면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대략 몇 명쯤 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고 확인 후 정확한 답을 한다면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지요.
그 마음에 거짓이 있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잘못 보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틀린 보고를 한 것을 알아도 정정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봅니다. 그러나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더하거나 빼서 전달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는 그대로만 말하지, 생각과 느낌을 더해서 사실인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셋째, 자기 생각에 맞춰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서 판단 정죄하며 비판하는 것
남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말을 들을 때,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맞춰 상대의 의도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치가 빠르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상대의 마음을 다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의 판단으로 사실이 아닌 말을 전한다면 이 또한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윗사람이 부하 직원을 지적하고 야단을 칩니다. 지나가다 이것을 보고는 ‘상사가 저 직원을 싫어하나 보다.’ 판단하고 말을 만들어 내는 사람도 있지요. 판단과 거짓말이 비방으로 발전하고 이를 듣는 사람도 함께 판단하며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의 중심을 알지 못하면서 “저 사람은 교만하다. 성격이 나쁘다. 나를 미워한다.” 등 판단하여 비방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판단 정죄는 수군수군, 비방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마태복음 7장 1-2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판단 정죄, 비방에 대해 엄히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말은 죄를 짓는 입이 아니라 선을 좇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하신 말씀처럼 수군거리고 판단 정죄하는 비방하는 말이 아니라 칭찬하고 용기를 주는 아름다운 입이 되어야겠습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판단에 대해 더 생각해 볼 것은 사람이 결단코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판단하는 말도 큰 죄인데, 하나님을 내 생각에 맞춰 헤아려 판단 정죄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죄이지요. 특별히 시험 환란이나 어려움이 왔을 때 하나님께 대해 불평, 원망하지는 않았는지 찾아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되지요.
기도했는데 원하는 대로 응답되지 않았다고 “하나님은 너무하신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나 봐.” 하는 등 불손한 말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서나 권능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판단 정죄하는 것은 결국 본인에게 그 화가 임한다는 것도 알아야 하지요.
민수기 12장에는 모세의 형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에 대해 비방한 일이 나옵니다.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이에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었고 모세 선지자의 중보로 치료되었지요.
2025-04-03 오후 4:49:44 Posted
2025-04-11 오후 3:17:19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