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난 지혜 (9)
이 시간에는 징계의 긍휼에서 선한 지혜의 권면에 대해 설명하고, 구제의 긍휼에 대해 전하겠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한 것이라 했습니다. 긍휼은, 단지 불쌍히 여기는 것만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참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지요. 그를 살리기 위해 용서도 하고 징계도 하며 때를 좇아 구제도 하는 것입니다.
1. 선한 지혜의 권면
상대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책망할 때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책망하기 전에 먼저 그들이 잘한 일들을 하나하나 칭찬해 주십니다. 칭찬을 듣고 마음이 열렸을 때, 잘못한 것을 깨우쳐 주시고 이에 대해 엄히 경고와 책망을 하십니다. 책망을 마치면 또 다른 잘한 것을 칭찬하시지요. 책망 한 가지를 할 때도 상대가 힘을 잃지 않고 잘할 수 있도록 배려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부모님들이 자녀를 교육할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가 엄히 야단해서라도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때 부모의 분노나 짜증, 감정을 책망과 징계에 담아서는 안 됩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했습니다. 어떤 부모는 아이의 잘못을 야단치면서 자기감정에 못 이겨 혈기를 냅니다. 잘못한 것만 깨우쳐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온갖 말로 상처를 주지요. 아이를 자극하고 주눅 들게 할 뿐 아니라 남과 비교해서 자존심을 상하게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이의 입장이라면 ‘아, 내가 잘못했구나. 부모님께 죄송하다. 앞으로 정말 잘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까요? 아마 반발심과 불만이 생기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아무리 어린 자녀라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어른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한 영혼입니다. 자녀들을 대할 때도 긍휼의 마음으로 상대의 마음과 감정을 배려해 줘야 하지요. 그렇다고 내가 혈기와 감정을 내니까 차라리 아이가 잘못해도 상관하지 않겠다,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구하여, 자녀의 감정을 상하지 않고 깨우쳐 줄 수 있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2. 구제의 긍휼
1) 구제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상대를 돕는 것
긍휼이 있을 때 영혼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지혜가 임합니다. 또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그 자신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마음에 긍휼이 있다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불쌍하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의 손길을 내밀게 됩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참된 긍휼은 행함과 진실함으로, 또한 내가 쓸 것을 줄여서라도 상대를 돕는 것이지요.
먼저는, 복음을 알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혹여 핍박을 받거나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받더라도 긍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 병든 사람, 낮고 소외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진실함으로 긍휼을 베풀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 제단은 참 힘써 구제해 왔습니다. 만민의 역사 44년의 기간 동안 주님의 가르침대로 힘써 구제했지요. 원로 목사님과 본 교회가 그동안 어떻게 구제해 왔는지 여러분도 많이 들으셨고 알 것입니다. 우리가 넉넉해서 구제한 것이 아니라 쓸 것이 없을 때도 오직 믿음으로 심어왔습니다. 개척 당시 나오는 헌금으로는 성전 월세도 부족했고 천 원 한 장도 아껴 쓰던 시절이었지만, 개척한 지 2, 3주 후부터 미자립 교회를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고 섬길 때 하나님께서 채워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 전반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대로 우리가 심은 것보다 더 풍성한 축복으로 더하시고 해마다 넘치게 채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제하는 것이 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2) 구제할 때 주의할 점
구제할 때는 그 대상을 잘 가려서 해야 합니다. 진리로 행하지 못하고 공의를 어겨, 사업에 실패한다거나 물질의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긍휼히 여긴다 해서, 그런 사람에게 자금을 대주거나 동업을 한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요나가 하나님께 거역하므로 연단을 받을 때,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까지 큰 어려움을 당했던 사건을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 하셨는데, 요나는 그것이 싫어서 도망을 갑니다.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입니다. 이 배는 항해 중에 태풍을 만납니다. 그것이 자기 때문인 것을 안 요나는 배에 탄 사람들에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차마 그러지 못합니다. 결국 모두가 죽게 될 위급한 상황에 이르자 할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던졌지만, 이미 많은 손해를 입은 후였습니다. 긴 시간 동안 풍랑과 싸우느라 고생해야 했고, 자신들의 화물도 다 바다에 던져버려 물질에도 큰 피해를 본 것이지요.
이 교훈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 중에는 술이나 도박에 빠져서 일하지 않는다거나, 구제를 받아서 유흥비로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구제해 준다고 해도 축복을 받을 수 없지요. 어떤 사람들은 여러 교회들을 찾아다니면서 거짓으로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이처럼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 중에도 여러 가지 경우가 있기에 성령의 주관을 잘 받아야 합니다.
3) 긍휼로 구제할 때 받는 복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다비다라는 여인이 나오는데, 그녀는 항상 불쌍한 과부들을 돌아보며 많은 선행과 구제를 했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다비다가 병들어 죽었을 때, 많은 과부들이 울면서 그녀에게서 구제받은 옷가지들을 사도 베드로에게 보여 줍니다. 선행과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된 다비다는 베드로의 기도로 다시 살아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또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이방인인 백부장 고넬료가 나옵니다. 그가 구원을 받은 것도 그의 선행과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했습니다. 항상 사랑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상한 심령들을 위로하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선한 열매가 가득한 지혜
긍휼이 풍성히 임하면 선한 열매가 가득하게 됩니다. 긍휼로 행한 것은 성령의 역사 속에서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로 맺혀 나옵니다. 무엇보다 무수한 영혼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값진 구원의 열매’를 얻게 되지요. 긍휼로 행한 사람은 마음에도 선한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악인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끝까지 선으로 행한 것, 또 인내와 선과 사랑의 간구로 아버지 앞에 올려드리는 향 등, 모두 선한 열매들로 맺히지요.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영광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상상할 수 없는 긍휼로 무수한 열매를 거두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친히 사망의 고통을 당해 주셨습니다. 그 긍휼의 열매로 인해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지요. 십자가를 거꾸로 지기까지 복음을 전한 베드로, 우레의 아들이라 불렸지만 변화되어 사랑의 사도가 되었던 제자 요한,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 속에 살았지만 주님을 만나 가장 존귀한 여인으로 변화된 막달라 마리아 등 예수님의 긍휼은 수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 모두가 다 주님의 긍휼로 맺힌 선한 열매들이지요.
3. 편벽과 거짓이 없는 지혜
1) 편벽이 없어야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직하게 볼 수 있어
편벽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직하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공의롭고 정직하게 볼 수 있으려면, 먼저 앞에서 설명한 긍휼의 마음을 이뤄야 합니다. 사랑과 긍휼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배운다 해도 그 말씀을 바르게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취향과 성품, 자신의 의와 틀 등에 맞춰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거짓이 나오게 되지요. 앞서, 긍휼로 인해 생명을 살리는 선한 열매가 가득 맺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편벽됨은 판단과 정죄로 진실을 왜곡시키며 생명을 잃게 만드는 악한 열매를 맺히게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스스로 율법에 정통하다고 자부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틀 속에서 율법을 해석하고, 그 틀에 맞지 않을 때는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정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자, 그들의 편벽함 속에서는 이 일이 ‘안식일을 범하는 악한 일’로 해석되었습니다. 원래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조건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안식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병자를 고치거나 복음을 전하며 영혼을 살리는 선한 일 등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노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안식일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요.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의 편벽됨 속에서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판단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는 심히 거짓된 결론을 얻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았지만, 문자적으로만 알았기 때문에 정작 그 말씀을 활용할 지혜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다거나, 혹은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했다고 해서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명심하여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영적인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받았다 해도 그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노력하여 마음의 죄악들, 즉 미움, 혈기, 시기 질투, 욕심, 판단 정죄, 교만 등과 같은 것들을 마음에서 모두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도 없고, 그 사랑을 이해할 수도 없지요. 오로지 자기 기준에 맞추어 남을 판단하게 되므로, 오해를 하거나 상처를 주게 됩니다. 편벽됨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이어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명기 10장 13절에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행복과 축복, 영생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26-09-02 오후 7:11:52 Posted
2026-09-29 오후 10:40:34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