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난 지혜 (11)
오늘은 ‘위로부터 난 지혜’ 마지막 시간으로 ‘화평케 하는 자’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이지요.
응답받는 비결도 성경은 정확히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지요. 그런데 “저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데, 응답받지 못했는데요.” 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무장하고 있다면 위로부터 난 지혜가 임하여 답이 생각날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2절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이 떠오르며 죄의 담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겠지요.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답을 알려주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이렇게 응답받는 길, 치료받는 방법, 축복받는 길을 깨닫는 것도 지혜인데 그 모든 답은 하나님 말씀 안에 있습니다.
1. 화평케 하는 자
야고보서 3장 18절에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했는데 17절에 나온 지혜의 말씀을 결론짓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처음 나온 성결만 해도 성결을 이루면 두루두루 화평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는 사람은 관용과 양순 속에 행하게 되지요. 또 긍휼하고 선한 열매가 가득하며, 그런 사람은 편벽과 거짓이 없습니다. 이렇게 17절의 항목들을 다 이루었을 때, 18절 말씀처럼 화평케 하는 자가 되고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되지요.
1) 하나님과의 화평을 먼저 이루어야
17절에서의 화평은 주로 사람과의 화평이고, 18절의 화평은 하나님과의 화평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눈에 보이는 사람과의 화평만을 생각하여 하나님과의 화평을 깨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리를 어기고 불의와 타협하면서 “이것은 화평을 이루는 지혜”라고 생각하지요. 혹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 마음이 약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한 예가 바로 보증이나 재정의 문제입니다.
성경 말씀에 결코 보증을 서지 말라 하셨고,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떤 빚도 지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형제간에 물질 거래하지 말라, 그로 인해 실족하는 일이 생긴다’고 늘 가르칩니다. 그런데 막상 가까운 사람이 “보증을 서 달라” 하거나 “사업 자금을 빌려 달라” 하면, 이 말씀을 잊어버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형제가 “어렵다, 도와 달라” 한다고 해서 보증을 서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는 지혜가 없는 것이고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아예 거저 줄 수 있을 만큼 사랑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그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며 결국은 원수를 맺게 되지요. 교회 안에서 덕이 되지도 못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으니 사단이 역사해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과의 화평보다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항상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 유익을 구하여 타협하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화평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숭배를 거부하여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왕과 화평을 깨뜨리지 않으려면, 우상 앞에 한 번만 절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앞에 너무나 큰 범죄이고, 하나님과의 화평을 심히 깨뜨리는 일입니다. 그들은 왕과 화평이 깨어짐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과의 화평을 택하지요.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의를 크게 드러내셨습니다. 풀무불에 던져지고도 온전히 지킴을 받아 왕과 백성들 앞에서 영광을 돌리게 했던 것입니다. 그 기적을 본 왕과 백성들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화평을 지켰을 때, 다니엘의 세 친구는 자신들이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화평케 하는 자”의 역할도 감당한 것이지요.
많은 경우, 사람이 생각하는 의와 하나님께서 보시는 의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로운 쪽을 택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을 가하다 합니다. 이것은 귀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미풍양속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하거나, 혹은 믿지 않는 가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말합니다. 우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가정 복음화의 길이 막힌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영적인 안목으로 보면 이와 반대입니다. 믿는 사람이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이 깨어지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으니 가정 복음화는 더욱 더디게 이루어집니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과 먼저 화평을 이룰 때 사람과도 화목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과의 화평을 깨뜨리고 사람과 화평을 이룬다면 그 화평은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고 아무 유익이 되지 않지요.
2) 선의 지혜 속에서 화평을 이루는 방법
물론 똑같이 우상 앞에 절하지 않는다 해도, 그 방법론에 있어 얼마나 지혜롭게 행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선하고 지혜로운 말로 믿지 않는 가족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면 차라리 잠잠한 것이 낫습니다. 잠잠히 기도하면서 빛과 소금이 되고 꾸준히 하나님 앞에 선을 쌓아 나갈 때, 때가 되면 가족 복음화의 기회가 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급하게 행하여 형통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강한 말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거나, 감정 섞인 말로 다투는 등 가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요. 이렇게 해서 가정 복음화가 더디게 이루어진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길을 빙빙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은 역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사람이 잡혀서 취조받는 장면을 본 적이 있지요. 심문받을 때나 재판정에 섰을 때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좋은데, 이때 순사의 얼굴에 침을 뱉거나 욕을 하고 판사를 모욕하는 말을 하는 등으로 더 큰 고난을 자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 대 맞을 것을 열 대 맞기도 하고, 1년 선고받을 것을 3년 선고받기도 합니다. 아무리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해도, 자기 의 속에서 불필요한 악을 행하여 더 큰 연단을 불러온다면 이는 지혜가 아니지요.
일상생활을 할 때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쪽을 택할 뿐 아니라, 그 방법론에 있어서도 선한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속히 응답과 축복을 받고, 모든 사람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는 공의가 성립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화평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일 뿐 아니라, 온 집에 충성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섬김과 희생, 사랑과 덕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도 화평을 이루어야 하지요. 이렇게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면, 하나님 앞에 영적인 담대함을 얻어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가는 곳마다 축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들
아담 이후로 죄인이 된 인류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되어 주셨고,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써 의인이라 칭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 해도,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일단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이제 행함이 있는 참믿음으로 자라야 합니다. 죄악을 벗어 버리고 성결과 관용, 양순과 긍휼, 이러한 의를 마음에 이뤄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여전히 죄 가운데 살면, 그만큼 하나님과 화평이 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희생하여 우리와 화평을 이뤄주셨는데, 우리 편에서 그 화평을 깨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속히 모든 죄악을 벗고 항상 하나님과 화평할 뿐 아니라 점점 더 깊은 신뢰 관계를 만들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하나님의 벗’이라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은 다른 영혼들에게까지 하나님과 화평케 하여 축복을 줄 수 있는 공의를 이루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화평하므로, 아브라함과 함께한 롯도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였던 모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용서와 긍휼을 입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영혼까지 하나님께 인도하여 화평하게 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참 자녀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뉴스를 보면 세상이 참으로 어수선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자연재해와 난리의 소식들. 뉴스마다 들려오는 사건 사고나 경제적인 어려움은 “참 살기 힘들다, 못 살겠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지요. 이런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는 여러분을 위로하고 평안케 하며, 축복의 길로 인도합니다. 고센 땅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열 재앙 속에서도 지킴 받았습니다. 요셉은 큰 기근이 7년이나 계속되었어도 자기가 섬기는 왕을 부하게 했고, 자기 민족을 풍요롭게 돌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는 힘들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여러분을 위로하고 평안케 하며, 축복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란, 하나님의 66권 말씀 자체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악을 버리는 것이며, 성결을 이룬 마음에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 설교에서는 그것을 다시 몇 가지 항목들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예를 들었습니다. 성결과 화평, 관용과 양순, 긍휼과 선한 열매, 편벽과 거짓이 없는 것, 하나하나의 항목들을 마음에 깊이 담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여러분이 되어 하나님의 평안과 축복 중에 항상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깊은 마음속의 죄악까지도 속히 모두 벗어 버리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수정같이 맑고, 보석같이 아름다운 마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얻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09-16 오후 2:54:10 Posted
2026-09-29 오후 10:39:40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