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2)
지난 시간에는 팔복, 첫 번째로 ‘심령이 가난한 자’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애통하는 자’의 축복에 대하여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육적인 애통이 아닌 영적인 애통을 원하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5장 4절에 보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복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늘 인상을 찌푸리고 슬퍼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애통에는 육적인 애통과 영적인 애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악함과 감정 가운데서 나오는 애통은 하나님과 상관도 없고 축복받지도 못하는 육적인 애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난해서 슬퍼하고 질병과 연약함으로 한탄하며 혹은 어떤 일을 자신의 욕심대로 이루지 못하므로 분이 나서 애통하고 낙심합니다. 배신당해 슬퍼하고 누군가 서운하게 할 때 가슴 아파하고 애통하지요. 슬픈 영화를 보다가 울기도 하고, 음악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이런 애통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고, 빌립보서 4장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말씀하셨지요. 이 밖에도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수없이 기뻐하라,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시련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구원받고 천국을 약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려움이 있을 때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 아뢰면 그 기도에 응답받을 줄 믿기 때문에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의 애통은 이런 육적인 애통이 아니라 영적인 애통인데, 영적인 애통이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하는 애통입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애통
첫째로, 회개의 애통이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을 때 자신의 죄로 인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깨달음으로 눈물, 콧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애통합니다. 그런데 죄를 회개하여 애통하고 은혜를 받았다 해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또다시 애통할 일이 생깁니다.
믿고 구원받았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죄악을 벗어 버리고 성결되어 나가야 되겠는데, 믿음이 연약한 가운데 다시 범죄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죄악이 발견될 때 다시 애통하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하여 결국은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행하여 어느 정도 신앙이 있고 일꾼으로 충성하게 되면 이런 회개의 애통은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범죄하고도 애통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범죄하지 않음으로 애통할 일을 아예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사명 감당을 못했을 때도 회개의 애통을 하게 됩니다.
직분자로서 마땅히 성도의 본이 되어 기도하고 전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때, 열심히 심방하여 부흥해야 하고 맡은 분야에서 열매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때, 이로 인해 마음을 찢으며 애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명을 소홀히 하고 열심 내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도 없고 돌이켜 충성하려는 모습도 없다면 이는 믿음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없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형제가 죄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볼 때 애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범죄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있을 때, 또 형제가 시험 들어 힘을 잃고 있을 때 마땅히 그에게 권면해 주고 힘을 주어야 하며 자신의 일과 같이 애통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하지요. 불쌍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자신이 대신하여 회개하며 상대가 진리로 행할 수 있도록 애통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통하고 기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허물과 티를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며 찌르는 말로 고통을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 허물을 전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합당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끌던 백성들이 심히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을 때 그들을 대신하여 회개하며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순종하고 사랑스러운 백성들도 아니고 늘 원망하고 불평하며 모세를 힘들게 했지만 그런 백성들이라도 사랑하여 대신 회개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하나님 앞에 합당한 마음이요, 복 받을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밖에도 영혼 구원을 위한 애통이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가족, 일가친척이나 이웃이 구원받지 못하여 사망의 길을 가고 있을 때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애통하는 것이지요. 또 세상에서 멸망으로 가는 무수한 영혼들을 위해 애통하며, 나라와 민족에 대한 애통, 교계에 대한 애통,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 일들에 대한 애통이 바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영적 애통입니다.
3.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염려하며 애통하였던 사도 바울
고린도후서 11장에 복음 전파를 위해 무수한 고난을 당했던 사도 바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여러 차례 옥에 갇히며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사십에 하나 감한 매와 태장을 맞은 것도 여러 번이며, 파선 당함으로 일주야 곧 하루, 낮과 밤을 바다에서 지내며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기도 했고, 춥고 헐벗은 일도 여러 차례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11장 28절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하여 그가 고민하고 염려하는 것이 자신의 고난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사도행전 20장 3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했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애통하는 사람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굳게 서지 못할 때, 교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할 때, 이를 인해 애통하고 염려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을 때 핍박받는 것이 힘들어서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영혼을 위해 애통하고 기도하게 되지요. 세상이 흑암이 짙어가는 것을 볼 때 애통함으로 “더 크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이 나라와 전 세계의 무수한 영혼들이 구원받게 하시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4. 행함이 따르는 참된 애통을 할 때 임하는 축복
말로만 “안타깝다.” 하고 눈물만 흘린다고 해서 참된 애통이 아닙니다. 행함이 따라야 하지요. 예를 들어, 죄로 인해 애통한다면 말로만 회개하고 다음에도 계속 같은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열매를 맺음으로 죄악을 버려야 합니다. 영혼들을 위해 애통한다면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 전도, 심방하는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참된 애통을 할 때 축복을 받게 되는데 곧 저희가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위로를 받기에 축복이라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사람들이 주는 위로와는 다릅니다.
슬픔과 고난을 당한 사람이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어려움을 덜어주는 행함은 없으면서 말로만 위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과는 달리 실질적인 위로를 주십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에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행함과 진실함이 있는 사랑이지요.
배고픈 사람에게는 양식을 주시고 질병이 있는 사람은 치료해 주시며 마음의 소원에는 응답해 주십니다. 이것이 참된 위로이지요. 그래서 여러분이 영적인 애통을 하여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때는 반드시 그 열매가 있습니다.
시편 32편 1절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말씀하신 대로 범죄함으로 인해서 마음을 찢고 애통할 때는 죄 사함의 축복이 오지요. 이렇게 용서받아 죄의 담이 헐어지면 충만함과 기쁨이 임하며 그 충만함 가운데 위로부터 능력과 은혜도 주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능히 죄악을 벗어 버리게 하십니다.
죄악을 벗어 버리면 그만큼 영혼이 잘되고 그러면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하시지요. 곧 마음의 소원에 응답하시며 가정과 사업터, 일터에 넘치는 축복으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사명 감당을 못해서 애통하는 사람에게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영혼들을 위한 애통의 기도와 행함은 맡은 분야에 부흥의 열매를 맺게 하시지요. 그리고 이러한 애통 가운데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가는 만큼 사도 바울과 베드로와 같이 큰 권능도 나타내어 주십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 귀히 사용할 뿐만 아니라 천국에도 상급으로 쌓이게 되니 참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어떤 성도는 다른 사람이 나를 오해하고 험담한다고 슬퍼하며 괴로워합니다. 가진 것도 없고 자랑할 것이 없으니 기쁨도 없이 슬픔으로 가득하지요. 하지만 이제는 이런 육의 것으로 애통하지 말고 영적인 애통, 바로 죄악을 벗기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애통하는 값진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죄로 관영한 마지막 때 더 많은 영혼이 주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애통함으로 힘써 전도하고 기도하셔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여김 받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애통하며 기도할 때 주시는 많은 위로와 응답을 항상 체험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일꾼으로서 여러분이 영적으로 애통한 것은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다 그대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그토록 사모하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넘치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11-28 오후 4:46:32 Posted
2024-12-27 오후 11:09:42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