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4)
지난 시간에는 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중 첫 번째 ‘생각’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오늘도 ‘생각’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진리에서 나오는 영의 생각
성경 상에는 선한 생각을 했던 복된 사람들과 악한 생각, 육신의 생각으로 패망에 이르렀던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살펴볼 때 여러분의 생각과 비교하며 선한 영의 생각을 사모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먼저 선한 영의 생각을 이루었던 선진들 중 룻과 스데반 집사의 생각을 살펴보겠습니다.
룻은 모압 지방에 살던 여인으로, 흉년을 피해 이주해 온 이스라엘 사람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죽고 시어머니와 과부인 동서만 남게 되었지요. 마침 이스라엘의 흉년이 끝났다는 소식에 시어머니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두 며느리에게 친정이 있는 모압에 남을 것을 권합니다.
다른 며느리 오르바는 처음에는 사양했으나 결국 친정으로 돌아갔고, 룻은 시어머니를 끝까지 섬기겠다는 맹세까지 하며 이스라엘로 따라갑니다. 룻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그 마음에 선이 가득했기에 아무리 불이익이 오는 상황이라도 도리를 좇아, 선과 사랑의 감동적인 말과 행함이 진실함으로 나타났던 것이지요.
양보하고 희생하니 현실적으로 손해가 되며, 어려움이 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선한 사람을 힘들게만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계획, 생각과는 다른 방법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룻 또한 결과적으로 평안과 안정을 누림은 물론 다윗의 계보에 오르는 복된 여인이 되었지요.
스데반 집사 또한 악이나 시기, 질투, 미움 같은 비진리의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진리의 말, 복음만 전했지만 악한 자들이 그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돌로 쳤지요. 그러나 스데반은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며 죽어가면서도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올렸습니다. 진심 어린 용서의 기도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죽이는 자들에게 미운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마음속에 악이 조금도 없는 영의 생각입니다.
2.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
이와는 반대로 악한 생각이 가득하여 악을 도모한 사람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세벨과 아합왕의 생각을 살펴보겠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인 아합과 그 아내인 이세벨. 그들은 마음과 생각이 온통 악으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범사에 악한 행동들이 여러 방면에서 나타났습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나봇의 포도원을 몰수한 사건에서도 볼 수 있지요.
아합왕은 자신의 궁 가까이에 있는 백성,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조상의 땅을 줄 수 없다 하였지요. 아합은 포도원을 가지고 싶은 생각에 근심으로 가득하고 답답했습니다. 만약 아합왕이 십계명 중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영의 생각을 떠올렸다면 근심하고 답답해하며 기어이 빼앗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으로 가득한 아합은 끝까지 욕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왕후 이세벨은 “왜 그런 것으로 근심하십니까?” 하며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악한 궤계를 짜냅니다. 계략을 꾸미고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죽게 하고 그 포도원을 취합니다. 결국 아합왕과 이세벨은 그 마음과 생각을 사단, 마귀에게 조종받아 악에 악을 쌓은 것이지요.
사단은 그들의 마음에 있는 욕심과 사심을 주관했고, 거짓을 꾸며내고 사람을 죽이는 행동으로까지 나오게 한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한 악한 생각과 궤계로 잠시는 배부르고 즐거움을 얻는 것 같으나, 결국 행한 악대로 보응을 받아 이세벨의 시체를 개가 먹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전도서 12장 14절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심지어 은밀한 것까지도 다 알고 계심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선한 생각이나 악한 생각, 영의 생각이나 육신의 생각은 행동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치거나 살인할 때는 먼저 악한 생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혹 계획 없이 우발적으로 죄를 지었다는 경우도 있으나 그 경우는 평상시 쌓인 감정과 미움의 생각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 역시 선한 생각과 마음을 통해 행동이 나오게 되지요. 특히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와 같이 그 결과의 큰 차이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3. 선한 지혜와 악한 지혜
‘지혜’란 ‘우리의 뇌 안에 담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혼의 작용 방법’입니다. 진리의 혼의 작용을 하느냐, 비진리의 혼의 작용을 하느냐에 따라 선한 지혜와 악한 지혜로 달라지지요.
에스더와 하만의 경우를 통해 선한 지혜와 악한 지혜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남 유다가 멸망하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많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하나님을 신실히 믿는 아름다운 여인 에스더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바벨론의 왕후가 되었지요. 에스더에게는 고아인 자신을 보살펴준 삼촌 모르드개가 있었는데, 그 역시 하나님을 신실히 믿는 자였습니다. 모르드개는 우연히 ‘왕의 암살 음모’를 알게 되어 왕의 목숨을 구해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왕 다음가는 권세자인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신을 존중하지도 경배하지도 않아 심히 마음이 상하여 모르드개뿐 아니라 유대인 전체를 멸하고자 계략을 세웁니다. 하만은 그들을 진멸시킬 계략으로 왕의 조서를 받아냅니다. 이를 알게 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알렸지요.
이에 에스더는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 인간적인 방법이나 지혜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3일 금식과 기도를 하고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왕은 에스더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식어 있었습니다. 또한 누구든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왕에게 먼저 나아가면 죽이는 법이 있었지만, 에스더는 백성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죽으면 죽으리라” 담대히 왕에게 나아갑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에스더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왕의 눈에 에스더를 너무도 사랑스럽게 보이게 했고 그 마음에 감동을 주니 왕은 에스더의 소원은 무엇이나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방법을 선택하니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교만과 악으로 악한 지혜를 동원한 하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고자 계획할 때 하나님께서는 왕에게 역사하셔서 전에 모르드개가 왕을 구한 사건을 알게 하시고, 하만에게 모르드개를 높이며 칭송하게 하는 일을 행하십니다.
또한 사랑스러운 왕후 에스더와 그 백성을 죽이고자 계획한 하만의 악한 꾀를 알게 된 왕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운 높은 나무에 하만을 달아 죽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계획을 아심으로 자기 꾀에 빠지게 하셨지요.
선한 지혜를 활용한 에스더의 모습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에스더는 자신과 이스라엘 민족에게 닥친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악한 생각 또는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하나님께 금식하고 기도하여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받아 행하였습니다.
왕이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조급한 마음에 곧바로 저와 제 민족이 죽게 되었다고 말하기보다 잔치를 준비하여 더 사랑스럽게 행동하고 때를 기다렸지요. 그 사이 하만의 악은 더 드러나게 되었고, 에스더는 일부러 하만을 죽이려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으로 민족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악인도 심판하셨습니다.
에스더와 같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함으로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해 주십니다(야고보서 3:17). 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사랑으로 대하고 선을 좇으면,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환경을 변화시키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지요.
잠언 9장 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신 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지혜와 명철이 임하는 것입니다.
4. 육신의 악한 생각을 버리고 진리의 생각을 하려면
먼저 생각을 분별해야 합니다. 평소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두지 말고 잠시 생각을 멈춰보십시오. 지금 악한 생각, 비진리의 생각을 하는지, 선한 생각, 진리의 생각을 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평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구하지 않고, 생각은 ‘그냥 떠오르는 거지.’ 하고 그냥 두면 결코 변화될 수 없습니다. 기도로 진리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이 생각을 주관하도록 그냥 두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생각만 하고, 부정적인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 자체가 온전해야 합니다. 악한 생각과 육신의 생각은 악한 마음에서 나오지요. 근본적으로 악한 마음을 버리면 악한 생각, 비진리의 생각도 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립보서 4장 6-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셨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2장 7절에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있으면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선과 진리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님께서도 우리를 도와주신다 하셨지요.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실 수 있도록 생각을 진리로 바꾸는 연습을 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을 떠올리며 은혜받은 말씀을 생각하는 등 영의 생각을 하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영의 생각을 하면 우리 자신이 행복해집니다. 상대에게도 기쁨과 행복을 주며 이웃에게도 소망의 등불이 되어줄 수 있지요. 우리 성도님들은 주님처럼 영의 생각만 하므로 항상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형통함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02-20 오후 6:07:33 Posted
2025-02-28 오후 3:59:46 Updated